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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나만의 미스테리 작가 3인방은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이었다. 제프리 디버의 최근 작, <킬룸>과 <옥토버리스트>, 할런 코벤의 최근 작 <미싱 유>를 읽고 뻘쭘해졌다.
‘지인들한테 추천한 작가건만 어떡한담, 이런 졸작을 쓰고 있으니.’
<살인자들의 섬>이나 <미스틱 리버>를 읽고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무너진 세상에서>를 읽고 고민에 빠졌다. 이제, 제프리 디버나 할런 코벤을 빼고 그 자리에 데니스 루헤인을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
하드 보일드란 이런 것이구나! 소설은 주인공 조 커글린을 중심으로 한 템파 마피아의 영락을 다루므로 마리오 푸조의 <대부>를 연상시킨다. 조에게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 과연 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폭들 이야기는 결국 권력과 죄의식, 구원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옆집 저택에 개자식이 하나 살고 있어. 대출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았지. 빚을 갚지 못한 이유는 1929년 은행들이 이자 놀이를 하다 돈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이 저축도, 직업도 없는 이유는 고용주나 은행이 그 사람들 저축과 집을 날려버렸기 때문이고, 하지만 그런 이들을 집에서 내쫓은 자들? 그자들은 잘 먹고 잘 살아.....도둑과 은행가의 차이라면 내 눈엔 기껏 대학 학력이 전부야.”
바네사가 고개를 저었다.
“은행가들은 거리에서 총을 쏘지 않아요, 조.”
“정장을 구기고 싶지 않으니까. 바네사, 총이 아니라 펜으로 추악한 짓을 한다고 더 깨끗해지지는 않아.”
그렇다고 총으로 추악한 짓을 한다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다. 조 커글린은 템파 럼주 전쟁에서 스물 다섯 명을 죽였다. ‘영혼이 무구하고 삶이 자유로워’ 조나 디온이 조폭이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죄와 슬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뿐.
죄가 정말로 크다면 죄의식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커진다.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때도 있다. 이따금 불법이 불법을 낳고, 그 일이 빈번해지면, 우주의 구조를 위협하고, 결국 그 우주는 물러나고 만다.
마피아 세계에서는 로마 시대 원로원을 연상시키는 ‘커미션’에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다. 가진 자의 이익에 누가 된다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어제는 그 놈이 죽었다. 오늘은 어쩌면 내 차례일지도.
어제 강남역 상가 화장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꽃다운 나이의 젊음이 사그라들었다. 갑질이 일반화된 사회, 갑질을 당한 을은 또 다른 병을 찾아 갑질을 부린다. 병은 또 다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에서 이런 사건들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나는 남자니까 상관없어’가 아니라 ‘나, 혹은 내 가족이 죽을 수도 있었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나쁜 페미니즘>을 읽으며,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육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남성이어서일까.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저자 마이클 길모어의 형 게리 길모어는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했다. 훗날 게리 길모어는 살면서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지만 8학년 담임인 라이든 선생님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라이든 선생님이 조금 더 게리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도 게리는 살인을 저질렀을까. 억압된 것이 회귀된다는 건 진리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경멸하고, 멸시하는 사회에서 ‘억압된 자’들은 유령처럼,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