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스르자 포포비치.매슈 밀러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 가장 궁금했던 인물은 스르자 포포비치였다. 맞춤 맞게 포포비치의 책이 나왔다. 제목의 ‘독재자’를 나는 ‘도살자의 딸’ 박근혜, 혹은 새누리당으로 읽었다. 누가 뭐라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악마다. 논쟁할 가치도 없다. 저 버러지 같은 것들을 대통령,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사람들은 언젠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인간이라면) ‘난 단지 몰랐어요.’라고 하겠지. 그날이 제발 빨리 오기만을 바랄뿐이다.
포포비치는 비폭력 저항운동 단체 오트포르!의 리더로서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끌어내린 장본인이다. 이후 그는 전 세계의 독재자를 끝장내도록 각국의 사회 운동가를 막후 지원해왔다. 벨라루스 청바지 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이란 그린 혁명, 레바논 백향목 혁명, 튀니지 자스민 혁명 등등.
포포비치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핵심전략은 ‘유머’다. 재밌게, 웃기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1982년 폴란드 동부의 작은 도시 시비드니크 주민들은 TV를 들고 걸어 다녔다. 거짓 투성이 TV뉴스에 질린 시민들의 ‘노골적이지 않은’ 항의였다. 별로 재미가 없자, 시민들은 유모차 밀 듯 TV를 손수레에 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경찰로서는 딱히 법에 저촉되지 않았기에 체포할 수 없었다. (우리도 유모차에 TV실고 돌아다닐까)
시리아 활동가들은 ‘이제 그만’, ‘자유’라는 문구를 새긴 탁구공 수천 개를 경사진 거리 골목길에 쏟아버렸다.
경찰 당국은 탁구공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나.
2012년 푸틴의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 시위를 불허하자 활동가들은 장난감 인형 시위를 주도했다. 레고 인형, 장난감 병정, 봉제 동물 인형, 모형 자동차 등. 장난감 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장난감을 비롯한 무생물의 시위도 법률위반’이라고 대응해 국제적인 ‘등신’으로 등극했다.
1인 시위 외에는 시위를 불허하는 한국에서 본받을만한 시위 방법이지 않은가?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도 비슷하네. 곰돌이 푸에게 피켓을 들게 하면 어떨까? 아이한테서 초를 빼앗을 만큼 멍청한 한국 경찰들은 푸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을까? 뽀로로, 루피, 크롱, 등등이 닭장차에 실려 감옥에 갇힐 지도 모르겠다. 유치원 아이들의 글로 청와대 게시판 불 날거다. “대통령 할머니 나빠요. 뽀로로를 풀어주세요.”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라
‘돼지 같은 자본주의’를 끝장내기로 결심한 이스라엘 운동가 이치크 알로브는 커다란 대의명분을 이루기 위해 실행 가능한 아주 작은 부분에 집중했다. 이치크 알로브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코티지치즈의 가격’을 문제시 삼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코티지 치즈를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과거 정부는 국민의 기본 식단이라는 이유로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2006년 보수 정권, 신자유주의 정권은 보조금을 폐지했다.
알로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코티지치즈를 썩게 내버려두자고 주장했다. 이에 초기에는 서른 명 정도의 친구들만이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한 블로거가 알로브를 인터뷰한 다음날 9,000명이 서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로브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로 치면 농심을 연상시키는 업계 1위 트누바는 가격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예상할 수 있듯 트누바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2주 만에 마트에서 할인에 들어갔지만 할인 폭은 크지 않았다. 시민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유제품 회사에서 시위대가 원하는 가격으로 할인에 들어갔고, 트누바 사장은 사임했다.
동성애자인 하비 밀크는 초기에 개똥 문제를 해결해 동성애 운동을 펼쳐나갔다.
‘비폭력 투쟁이론의 아버지’ 진 샤프는 모든 정권은 몇 안 되는 기둥에 의해 유지되며, 따라서 기둥 한두개에 충분한 압력을 가하면 체제 전체가 곧 붕괴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가들의 기둥이 무엇일까? 재벌들 아닐까? 예를 들어 삼성을 끝장내면 독재 학살정권들을 끝장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돼지 같은 자본주의’를 끝장내기 위해 집중해야할 사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작게 시작할 만한 실행가능한 것. 또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 통신료는 어떨까? 나는 왜 매달 3만 5천원이 넘는 돈을 꼬박꼬박 통신 회사에 지불해야 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요즘 핸드폰 안 쓰는 사람이 있나? 수도나 전기만큼이나 모든 국민들이 사용한다면 그렇게 비싼 요금을 내는 건 부당한 일이다. 통신회사들은 정치가를 돈으로 매수해 매년 수 십 조원을 국민들로부터 강탈해 간다. 도둑놈들이 따로 없다. 핸드폰 요금을 국유화 하던가, 예전의 전화 요금과 비슷한 정도의 최저 요금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은 국민들 99%가 찬성할 만한 정책을 계발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
몰디브는 독재자 압둘 가윰이 30년간 군림해왔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코티지 치즈에 비교할 만한 음식이 몰디브에선 라이스 푸딩이다. 활동가들은 라이스 푸딩 파티를 개최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즉, 몰디브 민주화 운동은 결정적으로 ‘비전’이 없었다. 이집트 민주화 운동도 그러한 예이다. 독재자 무바라크를 축출한 이집트인들은 너무 일찍 샴폐인을 터트렸다. 박정희 도살자만큼이나 악랄한 전두환 살인마가 정권을 장악한 것처럼 이집트에서도 무바라크가 축출된 뒤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도살자를 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즉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더 큰 대의를 목적으로 삼아야 했었다.
문제는 단결.
<비상경보기>에서 강신주는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숱한 선배들의 민주화운동으로 1987년 6.29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1988년, 국민들은 또 다른 악마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 당시 만일 야권이 단일 후보를 냈다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절대로 불가능했다. 이 당시 나는 투표권이 없는 십대였지만 선배들은 얼마나 통탄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측면으로 보자면 김영삼, 김대중도 역사 앞에, 국민 앞에 죄인이다.
여기서 퀴즈? 올해 20대 총선, 안산 단원 갑, 단원을, 서울 중, 성동을, 동작 을의 공통점이 뭘까? ......맞다. 새누리당이 당선된 지역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야권에서 단일 후보가 나갔더라면 새누리당은 절대 당선될 수 없었던 지역구다. 야권이 단결했다면 안산 시민들이 세월호 아이들을 외면한 파렴치한으로 몰릴 이유도 없었고, 동작구 구민은 ‘쌍놈의 국민’으로 욕먹을 필요도 없었고, ‘국민 쌍년’ 나경원같은 버러지가 국회의원이 될 수 없었단 말이다. (왜 이년아, 주어 없는데. 어쩔거냐, 이 쌍년아. 목적어도 없다. 개 같은 년아.)
20대 총선, 이런 투표구가 서른 곳이 넘었다.
2010년 벨라루스에서 우리나라 1988년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독재자 루카셴코에 대항한 후보가 아홉명이었다. 결국 독재자인 루카셴코가 당선됐다. 밀로셰비치를 축출하기 위해선 다양한 이익집단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된 슬로건이 필요했다. 오트포르!가 내세운 슬로건은 '그는 끝났다'였다.
포포비치는 뉴욕 월가의 오큐파이 운동의 실패에 대해 잘못된 슬로건을 이유로 뽑는다.
‘월가를 점령하자’가 아니라 ‘99퍼센트’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비폭력보단 폭력 시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날의 네루다나 게바라처럼. 히친스는 그의 책 <논쟁>에서 세 사람에게 헌사를 바친다. 모하메드 부아지지, 아부압델 모남 하메데, 알리 메흐디 제우. 이들은 튀니지의 노점상, 이집트의 식당 주인, 리비아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의 이름이다. 튀니지 노점상은 소인배 관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자스민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이집트의 식당 주인은 정권의 부당성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알리 메흐디 제우는 카다피 정권에 맞서 자신의 차에 석유와 폭탄을 싣고 바스티유 감옥같은 카디바 기지의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기까지 숱한 선배들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분들의 순교에 힘입어 수많은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여, 폭력 시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을 읽고 포포비치에게 완전히 설득 당했다. 비폭력 시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도 유쾌하게. 자세한 이유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책의 피날레는 감동적이다.
포포비치에게 영웅은 그의 형 이고르였다고 한다. 포포비치가 10대 일 때, 이고르는 영국 록 뮤지션 피터 개브리엘의 음반 한 장을 건네며 <비코>를 들어보라고 권했다. 비코는 아파르트헤이트 저항 운동에 일생을 바치다 살해된 남아공의 활동가를 기린 곡이다. 이후 개브리엘은 포포비치의 영웅이 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밀로셰비치를 쓰러뜨린 세르비아 혁명 기념일인 2013년 10월 5일, 피터 개브리엘이 베오그라드 무대에 섰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개브리엘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13년 전 오늘, 이 나라에는 국민의 권리를 위해 용기를 내어 일어선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젊은이들은 그들이 배운 것을, 그들의 지식을 캔바스와 함께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전달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의 많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믿는 것을 위해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됐다고 믿는 것과 싸울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그러한 용기 말입니다. 한 젊은이가 남아공에서 바로 그렇게 용기를 내어 행동했고,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 비코입니다. ”
멤버들이 다시 무대로 되돌아왔고, <비코>가 울려 퍼졌다. 포포비치의 무릎이 후들거렸다. “그리고 세상의 눈이 지금 지켜보고 있다”라는 가사에 이르렀을 때, 개브리엘은 불끈 쥔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리며 관중들을 향해 오트포르!식 인사를 했다. 오천명의 관중들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비코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개브리엘이 마지막 메시지를 던졌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개브리엘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마이크를 관객에게 돌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