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블로거의 글을 보고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 블로거는 복지가 늘어난다고 해서 출산율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데이터들을 늘어놨다.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 여자들은 복지 수준에 상관없이 출산율이 줄어들었으므로 복지와 출산율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치 부력의 비밀을 밝혀낸 아르키메데스처럼 엄청난 진리를 알아냈다는 듯 호들갑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가 늘어나서 출산율이 줄어든 건가? 그렇다고 복지가 줄어들면 출산율이 올라가나? 프랑스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복지정책으로 출산율이 떨어졌나? 그 블로거는 파워블로거에 최근에 환율에 관한 책을 쓸 만큼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똑똑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터무니없이 멍청하고 사악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작정하고 덤빈다면 난 저 블로거의 글에 반박할 만한 데이터를 수천 개는 수집할 자신이 있다.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 하나는 선의의 거짓말이고 또 하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통계다. 


- 마크 트웨인 

 

서로 모순되고 상반되는 데이터들을 수집하는 건 이제는 일도 아니다. 최근에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의 결과와 반대되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또한 같은 데이터로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1990년대 미국의 모든 전문가들은 범죄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범죄율은 1990년대 접어들어 갑자기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끊임없이 감소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말콤 글래드웰은 뉴욕시 낙서와의 전쟁을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았다. 반면 <괴짜 경제학>의 스티븐 레빗은 낙태의 합법화때문이라 주장했다. 두 사람에겐 같은 데이터가 주어졌지만 결론은 달랐다.

 

이 사례에 대한 가설은 실은 무수히 많다. 언론에 자주 노출된 가설들만 7개 정도 된다. 혁신적 치안 정책, 징역형 증가, 마약시장 변화, 인구 고령화,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 건실한 경제, 경찰 인원 증가 등등.

 

위 블로거의 주장은 명백한 기본적 귀인오류다. 기본적 귀인 오류란 타인의 행동 또는 문제 상황에 대한 이유를 환경적 요인이나 특수한 외부 요인에서 찾지 않고, 성향이나 성격 등 내적 요인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 , 아시아계 여성들이 애를 낳기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계 여성들이 애를 낳기 힘든 환경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면 경제학자, 이코노미스트들은 왜 저렇게 사악하고 멍청한 짓거리를 일삼는가?

 

카너먼에 따르면 이론에 따른 맹목이라는 고질병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에게 생겨났다.

 

이 같은 이론에 따른 맹목의 병폐는 오늘날 경제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모든 학자들에게 스며들어 있다. 그들이 받았던 경제학적 훈련은 이콘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엄청난 통찰력을 선사했지만, 그 대가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상식적인 직관을 모두 잃어버리도록 만들었다. 이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그들이 인간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리처드 탈러,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이론에 대한 맹목은 이제 비단 경제학자들의 문제라 할 수 없다. 거의 모든 학문에 스며들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인간과 인간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루고 있음을 망각한다. 피와 살과 생명을 지닌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시키려는 것. 심지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 이것은 악이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유사 이래로 폭력이 감소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인간의 죽음을 데이터로 환원시켰다. 물론 그는 자신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망각했다. 하여 국가에 의한 살인으로 고작 1억 명이 죽었을 뿐이라고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는다.

 

...... 이런 자에게는 통계가 실제 인간의 삶보다 더 중요하며, 설령 그가 인류를 위해 발언한다 해도 그에게는 한 국가의 크기와 정치, 경제적 권력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개인적인 것은 없으며 그저 사업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유동적 근대의 새로운 사탄이다.

 

악이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던 시대는 운이 좋았다. 오늘날 우리는 악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보고 느끼는 능력을 상실할 때 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타자를 일부러 잊는 것, 우리 곁에서 살아 있고 실재하며 무언가 옳은 것을 하거나 말하는 사람을 물리침으로써 우리와 다른 종류의 인간을 인지하고 인정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새로운 정신적 장벽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도덕적 불감증>

 

신은 죽었다. 하지만 악마는 아니다. ‘힘 있는 자들에 들러붙어 인간의 얼굴을 외면하고 오히려 인간을 착취하기 앞장서는 너희 학자들.


너희들이 악마다. 너희들이 사탄이다.

 

학자여, 이 무정한 자여!

너희 뱀 같은 혓바닥과 손가락으로 말미암아

고통의 나락에 빠진 인간들의 신음 소리와 피눈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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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6-04-1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데이터를 내세우며 뼈와 살과 삶이 있는 인간들을 잊어버린 이들을 만날 때의 두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이소오 2016-04-15 13:20   좋아요 0 | URL
신자유주의가 낳은 새로운 악마들이죠 ^^;

cyrus 2016-04-1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블로거의 글을 보고 너무너무 화가 났다’라는 문장만 봤을 뿐인데, 마음이 뜨끔거렸습니다. 어제 저를 말한 줄 알았어요.. ㅎㅎㅎ 이제 알라딘의 악마가 되지 말고,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4-15 13:18   좋아요 0 | URL
어제 무슨일이 있었나요? ㅎㅎ

cyrus 2016-04-15 13:2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좀 실수를 했습니다. ^^;;

시이소오 2016-04-15 13:24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 서재에 가봐야겠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