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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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말하기가 난감한 소설들이 있다. 나 자신이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 읽어서일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줄거리를 모른 채 읽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 차마 말을 못하겠다. 매튜 퀵은 웃다가 울리는 덴 가히 천재적인 작가다. (이에 비견할 작가가 누가 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난히도 나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정신연령으로는 아직 성장기라서?) 샐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등등. 매튜 퀵의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도 성장 소설일텐데, 사실 퀵 소설은 주인공 나이와 상관없이 전부 성장소설이다.

 

하루키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스토리가 더 좋다고 말했다. 퀵 소설 주인공들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죄다 비정상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주인공인 팻과 티파니는 심지어 정신병원 출신이다. 그래서일까.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비교적 정상이 되었을 때 감동을 받는 걸까? 나는 정상인이라 안도하면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포샤 케인이다.

  

포샤 케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선생님에게 공식 인류 회원증’을 받는다. 이 선생님은 수업 첫날 이런 말을 했다.

 

때로는 그냥 믿어야 할 때가 있단다, 얘들아. 그게 바로 여기서 내가 너희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야. 앞으로 세상이 너희들을 짓밟아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빼앗아갈 거야. 세상은 그러기 위해 끝내주게 노력할 거야.

 

만약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용기를 가져온다면 세상은 그들을 꺽기 위해 죽여야 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세상은 모두를 부러뜨리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러진 곳이 다시 강해진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는 사람들은 죽고 만다. 세상은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든, 아주 온화한 사람들이든,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든 아무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죽인다. 네가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해도 세상은 너 역시 죽이고 말 것이다. 다만 천천히 죽일 것이다

 

부러진 곳이 다시 강해진다’. 이 대사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예시한다. 주인공들은 세상 앞에서 부러지지만 그들은 다시 강해질 것이다. 불교의 고해라는 표현보다 인생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다. 알렉셰에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할머니처럼 나 역시 가끔은 나도 불쌍하고 모든 사람들이 불쌍하다.

 

<오이디푸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구절은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이 욕망이 충족되기 전에 2500전 그리스인들은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방인이 와도 무슨 일로 오셨소라고 묻지 않는다. 일단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나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밥벌이의 고달픔과 지겨움.

 

인간은 이 욕망의 전장터에 내던저져 무슨 영화를 얻겠다고 아귀다툼일까.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퀵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 때문에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한다. 또한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지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고안된 신이 만든 수정 구슬 같은 것인가. 고해, 고통의 바다다.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등대를 바라보고, 서로를 믿으며, 끊임없이 노를 젓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포샤 케인이 부러웠다. 나도 공식 인류 회원증을 받고 싶다.

 

그러니 대담한 꿈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기억해라.

뭐가 되건 네가 선택한 대로 된다는 걸.



밑줄 그은 문장

 

2부는 매 페이지마다 웃느라 미처 체크를 못했다.

 

p170. “남편과 하면서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꼈던 적이 없어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마치 내가 물건이 된 기분이에요. 그냥 그이의 물건을 품어주는 따뜻한 벙어리장갑이 된 기분이랄까.”

 

p353. 도켄스 디스키무스 (라틴어로 우리는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입니다.)

 

p358. “ 전 이 카드를 20년 넘게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카드는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거든요. 그때는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드리지 않았죠. 그때 전 아무 철없는 10대였거든요. 하지만 이 카드는 제게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결국 재활원에 들어가게 됐을 때 거기서 상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센 폭풍에 발이 묶인 보트를 타고 있는 존재, 라고 하면서 우리 인생에 있어 등대처럼 멀리서 반짝이고 있는 하나의 빛에 정신을 집중해서 천천히, 계속 노를 저어 폭풍을 뚫고 그 빛을 향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빛이 바닷물을 쓸고 갈 때마다 거기에만 정신을 집중하면서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하는 무섭고 거대한 파도 밑, 진짜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바닷속은 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

 

   당신께 드립니다. 공식 인류 회원증!!  

 

 

공식 인류 회원증! 이 회원증을 받는 사람은 인생의 추함과 아름다움, 인생의 크나큰 기복인 고뇌와 횐희,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일을 경험할 자격이 생긴다. 또한 이 회원증은 미래를 향해 꿈꾸고 노력하면,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니 대담한 꿈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기억해라. 뭐가 되건 네가 선택한 대로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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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0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벙어리장갑 ㅋㅋㅋㅋㅋ 완전 공감해요 동의해요!! 벙어리장갑 ㅋㅋㅋㅋㅋ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4-06 13:5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저 부분 읽다가 웃겨서 거의 자지러졌어요.ㅋㅋㅋ

깊이에의강요 2016-04-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시이소오 2016-04-06 14:13   좋아요 0 | URL
무슨 뜻이에요? ㅋ ^^:

깊이에의강요 2016-04-06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한 척이요~
*^^* ㅋ
죄송ㅋ

시이소오 2016-04-06 14:29   좋아요 0 | URL
벙어리 장갑 대신 공식인류 회원증 드릴게요 ^^

깊이에의강요 2016-04-06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갖고 싶었어요~~~ㅎ

다락방 2016-04-0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이소오님께 땡투하고 이 책 주문했어요. 이게 다 벙어리장갑 때문이에요.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4-06 14: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벙어리장갑 때문에 한 건 했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4-0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장 소설은 옳지요^^
항상은 아닐지라도~~

시이소오 2016-04-06 14:58   좋아요 0 | URL
댓글이 또 사라졌네요. 사라진 댓글들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요? 센트럴파크의 오리들이 떠오르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4-0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단 댓글이요???

시이소오 2016-04-06 15:0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제가 단 댓글이요. 간혹 사라져요 ^^:;

peepingtom 2016-04-0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님 서재에서 피핑톰하다가 건너왔습니다 ^^

시이소오 2016-04-06 15:44   좋아요 0 | URL
ㅋㅋ 반갑습니다. 피핑톰님. 제 서재에서도 생기발랄한 피핑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