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 그리스도 이야기
루 월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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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도 원작이 있었다니! 대한극장 앞에 줄을 서서 영화 <벤허>를 봤던 게 거의 20여 년 전의 일이다.

 

요즘 왜 기독교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는 걸까?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다.) 불가지론을 시험하는 걸까? 제목이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 A tale of the christ. 그런데 그리스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로 치자면 단역급이다. 벤허가 몸통이라면 그리스도는 꼬리다. tale아니라 tail.

 

영화도 3시간을 넘더니 소설도 거의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성령을 입어서일까.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은 총 8부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1부는 다이그레이션이다. 본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없어도 무방하다. 예수를 찾아오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 이야기는 2부부터 시작한다.

 

메살라와 유다는 소꼽친구다. (가롯 유다가 아닌 벤허 유다) 하지만 메살라는 로마인이고 유다는 유대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다. 일제치하에 비유하자면 메살라가 일본인이라면 유다는 한국인인셈. 5년 동안 로마에서 유학 후 돌아온 메살라는 에로스는 죽고, 마르스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며 유대 민족을 무시하고 로마를 찬양한다. 유다는 메살라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로마 총독 그라투스가 이스라엘로 온다. 유다가 행진을 구경할 때 하필 그의 집 기와가 떨어진다. 떨어진 기왓장은 마치 던진 것처럼 총독을 정통으로 맞힌다. 로마군들이 유다의 집으로 밀어닥친다. 로마군 중의 한명인 친구 메살라는 유다가 범인이라 지목한다. 유다의 어머니와 동생은 잡혀간다. 유다는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형벌을 받는다. 나사렛을 지나다 한 젊은이로부터 유다는 물을 얻어 마신다. (물론 이 젊은이는 목수의 아들 예수였다.)

 

유다의 갤리선 사령관의 이름은 아리우스였다. 해전 중 유다는 사령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한다. 아리우스는 유다를 양아들로 삼는다.

 

유다는 안디옥에서 아버지의 노예였던 시모니데스를 만나 어머니와 동생의 행방을 물어보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네 마리 말을 몰고 가는 전차가 낙타위의 가마와 충돌하려 하자, 유다는 전차를 잡아 사고를 막는다. 네 마리 말을 모는 이는 다름 아닌 유다의 원수 메살라. 벤허는 메살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차 경주를 계획한다.

 

일데림 족장으로부터 명마를 인계받은 벤허는 전차 경주를 대비해 말들을 훈련시킨다. 족장의 집에서 벤허는 사고가 날 뻔했던 가마 주인과 그의 딸 이라스를 만난다. 가마 주인의 이름은 발타사르. 그는 세 명의 동박 박사 중 한 사람이었다. 벤허는 이라스에게 사랑을 느낀다.

 

시모니데스는 벤허에게 자신이 벤허의 노예라고 말한다. 대상인이었던 그는 전 재산과 자신의 딸 에스더를 벤허에게 바치려 한다. 에스더는 벤허를 사모한다.

 

시모니데스의 거금을 바탕으로 시모니데스, 일데림, 벤허는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을 조직한다. 전차경주에서 벤허는 메살라의 전차를 교묘히 부신다. 메살라는 경주에서 간신히 목숨만을 건진다.

 

로마의 총독이 그라투스에서 본디오 빌라도로 바뀐다. 총독의 지시에 따라 안토니아 성채에서 지하 감옥을 조사하던 중 비밀에 싸인 감옥에서 두 여성 나 환자가 발견된다.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인 티르자. 벤허의 어머니는 퇴색한 옛 집 앞에서 잠들어있는 벤허를 만나지만 나병이라는 이유로 아들에게 아는 체 하지 못하고 딸과 함께 나병촌으로 들어간다.

 

메시아의 소문을 듣고 벤허는 발타사르와 함께 세례 요한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벤허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을 만난다. 나사렛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던 중 두 문둥병자의 병을 고쳐준다. 벤허는 병으로부터 치유된 엄마와 동생과 재회하고 예수의 기적 앞에서 그가 구세주임을 믿는다. 한편 그가 사랑하던 이라스는 예수가 왕이 아니라 거지라며 예수를 비웃을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벤허와 유대인들을 비웃는다.

 

벤허는 예수를 구할 수 있었지만 예수는 벤허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끝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이 두꺼운 책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는 예수라기보다는 역자다. 만약 게으르고 나태한 역자가 번역했더라면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랬소, 저랬소가 남발했을테니. 심지어 한국 작가 중 손 모 작가처럼 대화문마저 번역체 문장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

토 나올 것 같아 못 읽는다.


내가 읽은 외국 소설 번역 중 가장 매끄럽다.

어디선가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산뜻한 번역이다.

역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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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dgling 2016-04-0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비딕>읽으면서 김석희 역자 책들은 다 보고 싶더군요~! 김진준씨 이후로 마음에 드는 역자 공감합니다!

시이소오 2016-04-01 12:54   좋아요 0 | URL
김석희 역은 마음놓고 읽겠어요 ^^

서니데이 2016-04-0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석희 역이네요.^^
시이소오님 ,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시이소오 2016-04-01 18: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불금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