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 경제 위기, 중산층의 배반 그리고 권위주의의 귀환
조슈아 컬랜칙 지음, 노정태 옮김 / 들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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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의 말대로 유사 이래 폭력이 감소했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박영숙의 <유엔미래보고서>를 보고 가장 놀랐던 건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보 현상이었다. 프리덤하우스, 베텔스만,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민주주의 지표index democracy’ 등 모든 조사에서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쇠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 및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가파르게 증가했고, 심지어 쿠데타도 귀환했다. 기니, 온두라스, 모리타니, 니제르. 기니비사우, 방글라데시, 태국, 피지, 마다가스카르 등등.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하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역시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 민주화 전문가 박종민이 아시아 바로미터의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심지어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것으로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조차, 특정한 상황에 놓일 경우 권위주의적 정부가 더욱 적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응답자의 수가 1996년에 비해 2006년에 두 배가량 늘어났다.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주된 원인은 경제와 관련이 깊은 것처럼 보인다. 1990대 말 금융위기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룩한 경제적 성취를 뒤엎어버렸다. 구소련에서 볼 수 있듯 민영화는 구체제의 내부자들을 새로운 귀족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전 세계의 경제 성장을 종식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

 

유엔 인간개발 프로그램에 따르면 2000년 대 들어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부패 역시 심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성완종 리스트가 버젓이 나왔음에도 검찰은 유야무야 수사를 종결시켰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회의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금융위기, 민영화의 폐해를 겪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 보인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를 망친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폐해 때문이었다. 숱한 나라들이 신자유주의로 경제가 곤두박질 칠 때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저자의 처방.

 

선출된 독재자들이 성공할 수 없는 구조를 창출하라.

중국 모델을 이해할 것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라

 

고위 관료와 공직자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하는 방법과 함께 압력으로부터 헌법적으로 보호받는 독립적인 반부패 감시기구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반부패 감시기구는 독립적인 조사권을 반드시 가져야 하며, 국게 투명성 기구 같은 조직에서 파견된 외국 전문가를 포함하여 구성함으로써 보다 확실한 독립성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의 승자를 존중하라 선거가 공정했다면

그러나 선거는 오직 첫 단추임을 깨달을 것

다국적 민주주의 기구들과 협력하라

신흥 강국들을 끌어들이라.

 

이 책을 읽고 의외로 힐링을 경험했다. 나는 독재자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도, 단지 박정희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뽑아준 사람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엄청난 고통이다. (십년 넘도록 홧병, 자살시도라 말해도 무방할 교통사고)

 

필리핀에선 마르코스 딸이 주지사가 되었다. 필리핀국민 역시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대개 과거자체가 향수를 지니고 있다.(현상 유지 편향) 이 책을 읽었다고 색누리당을 지지하거나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민주주의 정권 (김대중, 노무현정권)은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와 똑같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경제는 파탄났다. 독재잔당과 재벌은 언론을 통해 수도 없이 경제파탄의 원인을 민주주의정권 때문이라 유포했고 생각지 않는 대중들은 세뇌되었다.

 

필립 코틀러는 부자들을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한 가지 원인은 언론에 의한 세뇌임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파멸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소득 불평등이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프리모 레비 책 제목을 비틀어 말하자면

 

저것이 인간인가

 

메모한 문장들

 

64. 특히 헌팅턴 같은 개발 이론가들은 중산층이 민주주의적 전환의 주된 원동력 노릇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그들은 중산층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구성원들의 국가의 통제 영역 바깥에서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관계망을 건설할 것으로 보았다. 중산층은 교육을 더 많이 받고, 민주적 사고방식이 통용되는 바깥 세계와 더 많이 관련을 맺으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에 대한 요구를 높여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경제 발전은 개인들이 서로 더 높은 신뢰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갈 것인데, 개인 간이 신뢰는 정치에서 토론을 하고 반대되는 견해가 있는 정당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137. 베네수엘라부터 볼리비아, 케냐, 태국, 대만에 이르기까지, 선거로 뽑힌 첫 번째 지도자들이 선출된 독재자로 돌변하는 일이 너무도 자주 일어났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성장해온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마련인 민주화 첫 세대들에게, 선거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국민 투표와도 같다. 선거로 뽑힌 독재자들은 헌법적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자들이 아니며, 법의 지배가 유지되고 개인의 자유 및 소수자의 권리가 보호될 것임을 보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비록 그들이 민주주의의 한 가지 요건, 즉 다수의 투표를 얻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자들은 민주주의의 형식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138.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급격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수많은 반정부 지도자들은 천수이볜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익혔던 습속을 떨쳐내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곤 했다. 1990대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환경 속에서는 기존의 반정부 운동가들이 과거의 실수와 범죄를 용서할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천수이볜의 부패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풍문으로 떠돌 뿐이었다. 민주진보당의 지지자들은 그보다 앞서, 천수이볜의 독선적이고 거만한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 더 큰 충격에 빠지고 있었다. 일단 대통령직에 오르고 나면 천수이볜은 자연스럽게 반정부 운동 시절의 비밀주의와 편집증적 성향 중 일부를 버릴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었지만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려 하는 주변인들을 분노에 가득 차 해임하였고, 자신의 정치적 이너서클에 가족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 가족들 중 적어도 11명은 훗날 대통령 본인의 혐의와 비슷한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그의 아들은 내부 거래 혐의로 기소된다.

 

140. 조지 차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능력한 정부를 바라보며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거간꾼 중 한 사람이 정부 자금 가운데 거의 3천만 달러를 빼돌린 사건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바깥세상에서 보면 그저 농담처럼 보일 것이다. 어떻게 정부가 이런 사기를 칠 수 있단 말인가?” 한때 천수이볜을 지지했던 부시 행정부는,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는 그의 무능함과 부패에 학을 뗀 나머지, 천수이볜이 그저 미국에서 하룻밤 머물고자 하는 것도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141. 젊은 민주주의 국가의 첫 번째 지도자들은 때로 오래도록 정부와 맞서온 운동가가 아니라, 구 정권의 내부자들 중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그들은 민주적 규범에 대해 그리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151. 푸틴에서 차베스와 탁신에 이르기까지, 선거로 뽑힌 독재자들은 대체로 영악한 정치인 노릇을 한다. 법의 지배를 무시하면서, 대체로 빈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펴거나, 국가주의를 부추기거나, 두 가지를 함께 구사하는 방식으로 자국 인구 중 다수 집단 속에서 큼지막한 규모의 인기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이 잘 버티며 생존해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중산층은 그저 점점 더 화가 날 뿐이기에,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여 선거로 뽑힌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폭력시위부터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게 된다.

 

155. 실제로,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노동계급 구성원들은 경제 성장이 끝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중산층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폐기 처분하려 들고 있기에, 결국 노동계급은 더욱 소외될 뿐이다. “왜 그들에게는 자기들 마음대로 우리의 정당을 불법화할 권리가 있는 겁니까?” 속한 정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후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노파돈 파타마의 말이다. 그는 탁신 친나왓의 포퓰리즘적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162. 국가가 민주화됨에 따라,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고 뇌물을 주고받던 기존의 경로가 사라지고, 더 많은 행위자들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정부 정보에 접근 가능하게 되므로, 지역 정치 지도자, 정부 관료 조직 구성원, 국회의원 등 더 많은 이들이 뇌물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패가 자유화되면 모든 이들의 사업 비용이 늘어난다. 오늘날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기업에서 가장 작은 길거리 상인까지, 누구든 자카르타 같은 도시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딱지 떼는 경찰부터 교통경찰 및 해당 지역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 꼬박꼬박 벌금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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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 이 책이 잠깐 언급되었어요. 신기하게도 컬랜칙의 책이 2015년 4월에 먼저 나왔고, 튜더의 책이 두 달 뒤에 나왔어요.

시이소오 2016-03-22 18:56   좋아요 0 | URL
다니엘 튜더 책은 아직 못 읽었어요 ^^; 읽고 싶었는데 ...

룰루라떼 2016-03-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님...책상위에 저 노트...뭘 쓰신건지 궁금합니다^^
(제트스트림이 필기감이 좋긴하죠^^)
혹시 실례라면 죄송합니다.

시이소오 2016-03-22 23:23   좋아요 1 | URL
아, 무언가를 써보겠다고 고시원에 있을 때 썼었죠. 한 4년 전이라 저도 제가 뭘 썼는지 궁금하네요 ^^
젯스트림 초창기엔 정말 좋았는데 요즘은 품질이 예전같지 않네요 ^^;

csp 2016-03-2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후퇴가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네요. 민주주의의 후퇴를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요즘 일독해 볼 만한 책인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3-23 00: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한국만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줄 알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