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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권유 - 시골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2월
평점 :
자발적 가난이라. 안성 정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정도라면 과연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집도 없고 차도 없이 빚만 한없이 많은 나로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인이 부러울 따름. 어느새 시인은 스무 권 이상의 책을 내셨다니 그만큼 열심히 살아온 결과일터.
절망, 그것은 삶의 심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참으로 절망한 자들은 그 극한에 이르면 성자같이 겸허해진다. 그들은 결코 나태와 쾌락으로 도망가지 않는다. 서둘러 나태와 쾌락으로 도피하는 자들은 절망한 자들이 아니라 포기한 자들이다.
나르시시즘, 혹은 자기애의 헛구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쉽게 ‘절망’을 입에 올리지만, 진짜 절망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진짜 절망한 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절망’한 척할 뿐이다.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불철저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귀결된 참담한 실패 앞에서 그들은 비겁한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절망’을 이용한다. 그들은 ‘절망’속에 제 몸을 은신함으로써 타인들의 연민과 동정심을 자극한다. 그들은 다만 인생의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강한 자들의 정서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망했으나, 나태 속에도 (그럴 시간도) 쾌락 속에도(그럴 돈도 없었기에) 빠지지 않았고, (말할 사람도 없었기에) 타인들의 연민과 동정심에 전혀 기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강한 것일까?
나를 사로잡는 것은 새로워진다는 것, 끊임없는 자기 갱신에의 열정적 의지,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의식의 유연성, 본질을 꿰뚫는 천재적 직관, 늘 창조적인 것에 바쳐지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인식, 자기 성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 앎에의 욕구와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정신의 건강함,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미적 감각, 도덕적 균형, 이 모든 것을 수렴하여 자기의 것으로 감싸 안고 있는 타인의 시선에 붙잡히는 내 외관, 그 격동하는 내면을 감춘 가시적 실체가 표면으로 보여주는 고요함과 부드러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즐겁게 만드는 화술.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 왔는가? 나의 혈관을 흐르는 피와 근육들은 책의 자양분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다. 책은 나의 유일한 학교였다. 그것은 획일화된 규율과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학교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인격, 개성,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어떤 억압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탁월한 학교였다.
장석주는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소장한 책만 2만 3천권이라니.
시인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려면 방법이 없다.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절망할 시간이 없다.
-2014. 9.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