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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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문학의 4대 작가는? 해럴드 블룸에 따르면 코멕 맥카시, 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 그리고 필립 로스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왜 빠졌을까? 여자라서, 약간 미친년 같은 포스에??

 

필립 로스 책 중에서 가장 읽고 싶은 책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포트노이의 불평>인데 살 돈도 없고, 도서관에도 없길래 도서관에서 제일 얇은 책을 골랐다.

 

주인공 마커스의 십대 시절과 이십 대 초반 시절이 주된 시간적 배경인지라 여러 작품들이 연상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좀 더 하드 보일드한 버전? 코드웰 학생과장과의 대화에선 카뮈의 <이방인> 혹은 카프카가 연상되기도 하고,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역시. 허걱

그러고 보니 존 어빙은 왜 4대 작가에 빠졌을까? , 해럴드 블룸!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51년을 주로 해 1953년까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3부의 내용을 말해도 되는 걸까? (말하지 않을께요)

 

이 시대 미국 젊은이들의 불안은 주로 한국전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마커스의 아버지는 점점 비정상적으로 보일만큼 아들의 신변문제에 집착한다. 마커스는 아버지 곁에 있다간 아버지를 죽일 지도 모르겠다는 변명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하이오의 와인스버그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마커스에겐 어디를 가든 방해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첫 기숙사의 플러서는 새벽 네 시까지 베토벤을 틀고 연극 대사를 연습한답시고 큰 소리로 암송하기 일쑤다. 참지 못한 마커스는 플러서의 레코드를 부수고서 기숙사를 옮겨 엘윈의 방으로 옮기지만 마커스가 대학 시절 유일하게 데이트하고 유일하게 사랑한 올리비아를 엘린은 씨발년이라고 모욕한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기숙사로 옮겼더니 학생과장 코드웰이 잦은 이사를 이유로 꼬치꼬치 그의 사생활을 캐묻는다.

 

한쪽에 아버지, 플러서, 엘윈, 코드웰 같은 대립적 인물이 있다면 반대편엔 어머니, 올리비아, 서니 코틀러가 있지만 다른 소설들에서처럼 주인공에게 동조적인 인물들과 주인공과의 관계는 다소 느슨하다.

 

살갗이 투명하고 윗입술이 도톰한 올리비아와의 첫 데이트를 하고 나서 마커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올리비아는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기꺼이 그의 물건을 빨아주었기 때문이다. 왜지? ?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피한다. 자신이 피한다는 걸 느낀 올리비아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 였어.” 그러나,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마커스를 보고는 이번엔 올리비아가 마커스를 피하게 된다. 올리비아가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자 마커스는 올리비아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올리비아에게서의 답장은 금방 왔다. 올리비아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알코올 중독에 잦은 자살 미수 사건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마커스가 자신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과의 관계를 끝내길 요구한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밀당 중에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인 서니 코틀러는 올리비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 올리비아는 코틀러도 빨아줬다고. 첫 데이트이자 마지막 데이트 때. 올리비아는 실로 ‘1951년의 빨아주기 여왕일까?

 

그러나, 마커스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가장 먼저 면회를 온 사람은 올리비아였다. 올리비아는 매일 병원에 면회를 오고 그들의 관계는 나날이 발전하지만 병원에 면회를 온 마커스의 엄마와 올리비아의 만남으로 올리비아는 더 이상 면회를 오지 않는다. 마커스의 엄마는 팔뚝에 자살 흔적이 있는 여자와 만나지 말 것을 마커스에게 부탁하고 마커스는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만날 수 없었다. 마커스는 퇴원 후 올리비아를 찾지만 그녀는 마커스에게 알리지 않고 신경쇠약이라는 병명으로 학교를 떠난 후였다.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마커스와 학생과장 코드웰과의 첫 번째 면담 부분이다. 코드웰은 두 번의 기숙사 이사의 이유로 마커스를 타인과 타협할 줄 모르는 학생으로 몰아간다. 코드웰은 이어서 아버지가 코셔 정육점을 하는데 왜 코셔 정육점이라고 하지 않고 정육점 운영이라 적었는지 묻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흡사 카프카의 세계에 와 있거나, <이방인>의 뫼르소와 재판관들의 대화를 보는 것 같다. 결국 그러한 부조리함에 마커스는 울분을 터뜨린다.

 

 

저는 학위를 따려면 졸업을 하기 전에 채플에 마흔 번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과장님. 대학이 저에게 어떤 종교에 속한 사람이든 성직자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을 것을 강요하고, 기독교 신을 찬양하는 기독교 찬송가를 한 번이라도 들을 것을 강요할 권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체계화된 종교의 관행과 믿음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는 데 말입니다.

 

세계 최고의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이자 또 논리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논리로 논란의 여지 없이 제 1원인설, 자연법설, 신의 계획설, 신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설, 불의를 교정하기 위해 신을 옹호하는 설을 논파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겁니다.

 

두 가지 예만 들도록 하죠. 첫째, 1원인설이 왜 타당성이 없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러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 원인 없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신만이 아니라 세상도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신의 계획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당신의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큐클럭스클랜이나 파시스트보다 나은 것을 만들 수 없겠는가?

 

러셀은 또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결함을 논하면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가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러셀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도덕성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옥의 존재를 믿었다는 점입니다. 러셀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심오하게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영원한 벌은 믿지 않을 것 같다‘ .....러셀은 아주 솔직하게 교회가 인간의 진보를 방해했다는 점, 교회가 자기들의 도덕성을 고집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에게 부당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러셀은 종교가 일차적으로, 또 주로 공포에 기초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패배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거죠....러셀은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유로운 인간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채플에 대한 주인공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대학 시절 무신론자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채플을 강제적으로 들어야 하는 대학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를 강요하는 그런 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내겐 비굴함의 징표다. 채플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채플을 이수 안 했다는 이유로 그해에 졸업을 못했겠는가? 제발 대학들이여,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라.

 

필립 로스는 버트런드 러셀의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글들을 지금도 신봉하고 있는 듯하다. 니체에게 열광했듯, 이십대 때의 나라면 아마 러셀의 주장에 환호했을 것 같은데 나이가 먹어서일까? 지금은 러셀의 주장이 유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러셀의 비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초등학생들의 투정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유신론자이기 때문일까? 혹은 모든 종교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일까?

 

 

청춘은 그야말로 울분의 시기가 아닌가? <울분><호밀밭의 파수꾼>의 하드보일드한 외침이다. 마커스는 학생과장과의 두 번째 면담 때 결국 울분을 넘어 폭발한다.

 

좆까, 씨발

 

말죽거리 잔혹사의 명 대사,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 만큼 속 시원하다.

 

권위에, 부조리함에, 불평등에, 온갖 부당함에 순응하지 않고

좆까, 씨발이라 울분을 터뜨리며 행동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청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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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까 시발.. 이런 표현 좋죠. 문학에서 이런 말 쓰면 은근 쾌감이 전해진달까요 ? ㅎㅎ

시이소오 2016-02-07 20:06   좋아요 0 | URL
어우 이제야 댓글다는 법을 알았네요. 지송^^;;
욕하진 마세요 ㅋ

북깨비 2016-08-0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원작을 구경하러 왔다가 시이소오님 리뷰를 읽고 갑니다. 트레일러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해 보였는데 심각한 이야기군요. 음.. 일단 사놓은 에브리맨과 죽어가는 짐승을 먼저 읽고 도전해봐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8-01 19:30   좋아요 0 | URL
울분이 영화화 됐나요? 보고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