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점심으로  봉지에 한 조각씩 남은 라면들을 모아
넙적한 어묵을 한 장 잘라 넣고
양파를 듬뿍 썰어 넣어 라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고추장도 병에 여기저기 조금 붙은 걸 싹싹 긁었으니
알뜰한 주부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흡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맛은 또 어쩜 그리 훌륭하더란 말이냐.

제인 구달 여사의 책도 그렇고 몇 권의 환경밥상 관련 책을 읽은 여파가 있어
음식물 구입에도 신경을 좀 쓰게 됐다.
특히 혼자 먹는 아침과 점심은 남은 반찬과 채소를 이용하여
쌈밥이나 이리저리 비빔밥을 잘 만들어 먹는 편이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공기밥이나 반찬 등속, 풋고추를
비닐을 달라고 하여 싸오는 건 기본.

그런데 어떤 날은 그 맛에 깜짝 놀란다.
이건 잔반처리 수준이 아니다.
하나의 버젓한 새로운 메뉴로 손색이 없다.(제가 '자뻑파'인 것 다 아시죠?ㅎㅎ)
문제는, 남은 걸 활용하다 보니 음식 양이 좀 많아진 것.
음식국물이 흘러간 하수가 맑게 바뀌는 데 엄청난 양의 새 물이 필요하단 걸 알고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남은 국물도 홀라당 마셔  버릇을 했더니......

금요일 밤 모처럼(?) 동네 술집에 진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술이 기분좋게 올라서 생활 속에서의 구체적인 환경보호 실천사례로
최근 몇 달 간 달라진 나의 아침점심 식습관 내용 전말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책장수님과 남동생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정색을 하며 만류한다.
그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다.

"아니, 뭐야, 지금! 인격보다는 뱃살이란 말이야?"

"자기는, 인격은 너무너무 훌륭해. 지금도 충분해. 그런데 문제는 뱃살이야!"

책장수님의 말은 애원에 가까웠다. 
최근 나의 인격을 의심하기 시작한 남동생도 뱃살에 방점이 찍혀 매형의 말에 끄덕끄덕.

환경을 좀 보호하려고 했더니, 환경이 영 안 받쳐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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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5-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흐흐~

로드무비 2006-05-2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블루님, 모처럼 오셔서 김빠진 웃음만 남겨놓고 가다니. 흥=3

mong 2006-05-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데굴데굴~

라주미힌 2006-05-2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플라시보 2006-05-2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에 굴렀습니다. 환경을 좀 보호하려고 했더니 환경이 안 받쳐주네..하하

nada 2006-05-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전깃줄 접시다!

2006-05-22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06-05-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격보다 뱃살... (-.-)_b

로드무비 2006-05-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식집 떡볶이님, 그런 염려는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 완벽한 친환경 엄마가 될 자질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나중에 마이도러에게 잔소리 들으며 살까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아,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갖고 계시군요.^^*

꽃양배추님, 저 접시를 기억하시는구랴.^^

새벽별님, 님은 다요트 이후 어떠신가요?^^

플라시보님, 저 꽤 재치있죠?
님처럼?^^

라주미힌님, 헤헤~~

mong님,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도 뭔가 수상하죠?ㅎㅎ

blowup 2006-05-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앗쌀한 자뻑. 넘 귀엽습니다.
저는 잔반 처리에 신경 쓰다가 멀쩡한 야채를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우와 연우 2006-05-2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보다 뱃살...
대다수 아줌마들의 딜레마죠.
그래도 전 아직 지구의 환경을 포기 못해요...

물만두 2006-05-2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여주세요. 저희들이 판단해서 책장수님과 남동생분 응징해드리겠슴다=3=3=3

혜덕화 2006-05-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로 신나게 웃었네요. 사실은 아침부터 말과 글에 대해 참 생각이 많은 하루였거든요. 웃음을 주는 글, 참 좋네요.
저도 잔반 처리하다 보니 살 안쪄서 고민하던 옛날이 그립네요. 뱃살만 늘어나서리......

로드무비 2006-05-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을 웃게 했다니 오늘 밥값을 충분히
한 것 같은 기분이.ㅎㅎ

물만두님, 아니 책장수님과 울 남동생이 뭘 잘못했다고.=3=3=3
(사실을 말한 건데요, 뭐.^^)

건우와 연우님, 맞아요. 딜레마.
우짜면 좋지요?
계속 우리가 희생해야겠죠?^^

namu님, 잔반을 전부 제 뱃속에 처리하는 건 문제가 너무 커요.
묘안을 짜봐야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6-05-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막히고 구구절절 바른말이며 꼭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만...
전 이페이퍼를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단어는 `인간정화조'였습니다..^^
쓰고 보니 어감이 좀 거시기 하네요..^^ 사실은 집에서 저도 인간정화조 였습니다..^^

플레져 2006-05-2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매콤해!!! 눈으로 라볶이 시식중입니다...흐흐...
자기는 인격은 너무너무 훌륭해. 오늘의 밑줄 쫘악~! ^^ (동감이어요. 부비~)

chika 2006-05-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인간정화조... 메피스토님이 모든 걸 다 까먹고 저 말만 생각나게 해부러요! ㅠ.ㅠ

야클 2006-05-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참치뱃살로 만든 초밥이 생각 났다는...ㅋㅋㅋ

로드무비 2006-05-2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메피스토님, 그리고 치카님,
이, 이, 개구쟁이 어른들 같으니라고!
인간정화조가 어떻고 참치뱃살이 어떻다고라?ㅎㅎㅎ

플레져님, 전 사진 찍어놓고 음식이 맛없으면
페이퍼 안 올리거등요.
역시 매콤한 라볶이 알아보시는군요.^^*

싸이런스 2006-05-2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로드무비님 참 맛깔나는 글들...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하고 때론 엄청 쓸쓸해지기도 하고 분노도 느끼고.. 그래요. 전 님 무쟈게 말랐을꺼라고 이상하게도... 서재에서 제가 유일하게 로드무비님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하는 상이 있는 분이랍니다.
그나저나 저거 진짜 맛나겠네요. 아 먹고파!

waits 2006-05-2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몇 달 전인데요, 꿈에 로드무비님이라면서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었어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몸집이 큰 아줌마였는데... 좀 무서웠어요...;;
이 글을 보니 잊었던 꿈 생각이, 영상은 완전 가물가물한데...
오늘 제가 마음이 왔다갔다해서 겁도 없이 이런 댓글을 남기네요, 미쳤나봐요..^^;;;

로드무비 2006-05-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제가 님의 꿈속에 왜 찾아갔을까요?ㅎㅎ
그 부리부리하고 뚱뚱한 아줌마 인상착의가 딱 저네요, 뭐.
저도 제가 무서워요.^^

싸이런스님, 요즘 제 글 잘 안 읽으시죠? 흥=3
뚱여사로 불린다고 그토록 나발을 불었건만.....
라볶이, 쉽고 맛있잖아요.
가끔 해서 드시길......^^
(어묵 대신 햄 조금 넣어줘도 맛납니다.)

니르바나 2006-05-2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살만한 환경이 어디 있다고 무시하남유.ㅎㅎ
환경이란 것을 저만치쯤의 심리적 거리에 두고 에둘러 싸고 있다고 보는 견처에
그 문제가 있다고 일찍이 김시인은 한 말씀 하셨답니다.
요컨대 인격과 환경과 뱃살을 구분않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릴케 현상 2006-05-2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전 뱃살을 인격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비로그인 2006-05-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 키로 늘었어요. 호호홍^^ 제 인격도 좋아지는 중이에요^^

날개 2006-05-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옆지기에게 잔반처리를 맡깁니다..강제로..흐흐~

로드무비 2006-05-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책장수님은 막내로 자라 그런 면이 살짝 아쉬워요.
그의 뱃살도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캐서린님, 3킬로그램 정도라면 춤추겠습니다.
전 나날이 사납고 황폐해지는 걸 느껴요.;;

자명한산책 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잖아욧.

니르바나님, 그러게, 모든 분별과 경계가 무의미한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김 시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랑가요?^^

rainy 2006-05-2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서 놀고 있는중인데 여전히 앗쌀한 로드무비님 덕분에 조용한 새벽에 소리내어 웃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6-05-23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님, 제가 앗쌀하다니 기분좋은데요?
웃고 가신다니 또 좋고요.^^

하루(春) 2006-05-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라뽁이 맛있겠어요. 하는 방법 좀... ^^

로드무비 2006-05-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고추장 반큰술, 고춧가루 반큰술, 누런설탕 한큰술,
다진마늘 조금, 멸치가루를 한 컵의 물에 넣고 잘 저어서
라면사리와 어묵, 양파를 넣은 냄비에 붓고 끓여주면 됩니다.
흥건한 것 좋아하면 물을 좀 더 넣어주시고요.
대파는 맨 나중에.
양배추, 깻잎 같은 것 채썰어 넣어주면 더 좋아요.^^

하루(春) 2006-05-2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조만간 해먹어야 겠어요. 군침 도네요. 벌써... ^^

로드무비 2006-05-2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운 게 좋으면 고춧가루 좀더 넣어주시고요.
멸치가루 조금 넣어줘야 구수합니다.^^

반딧불,, 2006-05-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역시나!

검둥개 2006-05-28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하. 전 로드무비님의 잔반처리 메뉴 사진만 보아도 분명 눈이 튀어나오고 말 거여요. ^______^

로드무비 2006-05-29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사실 잔반이 더 맛나다는 건
알뜰주부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요. 음화화=3=3
(오랜만입니다!^^*)

반딧불님, 전 최소한의 재료와 최소한의 요리시간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허름한 밥상'.^^

기인 2006-06-06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10여년 전 쯤에는 환경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는데, 요즘은 어딜가도 밥을 다 못 먹고 남기고 있습니다. 환경보다는 뱃살이 ㅜㅠ 우선 과제가 되어서요 ^^;

로드무비 2006-06-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님은 요즘 운동 플러스 다이어트 중이시죠?
환경도 중요하지만 저도 좀 살아야 할 것 같긴 해요.;;
뱃살부터 어떻게 좀 하고 환경을 생각할까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