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보시'라는 것을 대학졸업반 축제 때 파트너로 소개받은 남자가 싸온 도시락에서 처음 집어먹었다. 장소는 송정 바닷가.  축제 끝난 지가 언젠데,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도 묻지 않고 하루하루 다음날 약속을 정하는 것으로 봉지쌀로 끼니를 잇듯 만남을 연장하고 있었다.

봉지쌀이 곧 바닥날까봐 내심 나는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다음날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식으로 만남이 아슬아슬 이어지는 것이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아무튼 송정 바닷가 소풍은 우리들의 일곱 번째 데이트였다.  그가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해서 좋다고 했다. 
누나가 싸준 도시락이라는데 보자기를 끌르고 찬합 뚜껑을 여니 일식풍의 색색가지 반찬이 호화찬란했다. 명란 같기도 한 처음 보는 둥그런 것이 있어서 통째로 입안에 홀랑 넣었더니 짜고 시금털털해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냐고 물었더니 우메보시란다. 매실장아찌라고. 일본에 유학간 적 있는 누나가 좋아해서 가끔 사먹는단다.  나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그 짜고 시큼한 것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우리는 안되겠구나,  이 사람이랑 계속 만나면 이렇게 오만상을 찡그리고 몰래 삼켜야 할 것이 너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7, 8년 후 어느 소설가의 집에서 여럿이 어울려 저녁을 먹는데 우메보시가 한 접시 나왔다.
술도 몇 잔 들어갔겠다, 나는 우메보시에 얽힌 나의 옛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나의 열등감과 깊이 닿아 있는 이야기였다. 소설가는 유독 나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표해 왔다.

다음달 모 문예지에 실린 그의 중편소설에 내 우메보시 이야기가 슬쩍 끼어들어가 있었다. 아니, 내 우메보시를 가로채다니!  소설가나 시인 앞에서는 아무리 술김이라도 아끼는 이야기는 털어놓으면 안된다.  안타깝긴 했지만 참 어여쁜 우메보시였는데 그의 소설 속의 우메보시는 수많은 우메보시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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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0-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헥헥~1등!!
뛰어오느라 숨차요

blowup 2005-10-3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이건 너무 궁금하잖아요? 너무해요.

비로그인 2005-10-3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몽님
앞으로 일등자리 드릴께요..^^

참 안타까운 우메보시(그렇게 먹고도 이름은 처음 압니다..ㅜㅜ)
그러게 말입니다 가끔은 어디에도 내놓지 말아야할 그런 이야기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조선인 2005-10-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소설가들 앞에서는 입조심~
그러고보면 우리가 서재에서 털어놓고 있는 페이퍼들이 벤치마킹 대상?

물만두 2005-10-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우메보시는 인생과 사랑이군요...

merryticket 2005-10-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 분이랑은 어떻게 되신거에요?
우메보시 남자 말여요..

로드무비 2005-10-3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렇게 거창하게 말씀하시다니!^^

조선인님, 조심해야 한다니까요.^,.~

사야님, 사실 저 이야기 품고 있어봤자 어디에 써먹겠습니까!
그런데 소설가들의 캐치 력(?)은 놀라워요.
전 말로도 뭐 그렇게 꾸미지 않았는데 덤덤하게 이야기했는데
소설 속에 절묘하게 들어앉았더군요.^^

namu님, 뭐시 그르케 궁금하시까요?^^

mong님, 왜 그렇게 급히?
아무튼 놀랐어요. 올리자 마자 동시에 세 분의 댓글이......^^

검둥개 2005-10-3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목이 뭐였어요? (갑지기 눈빛이 또랑또랑) ^ .^

瑚璉 2005-10-3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글쓰는 걸 업으로 삼는 분들에게는 참 이런 부분에 대한 originality가 애매해요.

플레져 2005-10-3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히야~~~
로드무비님의 입담은 천성이로군요~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다음달 중편 소설이라...꼭 읽어봐야지 ^^*

blowup 2005-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 님 하고 똑같은 게 궁금해요.

mong 2005-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는요 로드무비님 얼굴에 꽃피는거 (^^*)
보고 싶어서 그랬죠 ^^
맞아요 로드무비님 얘기는 너무 재미있어요

icaru 2005-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어떻게~ 이야기로 써먹었는지...그거 무척 궁금해져요~

진주 2005-10-31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티비 드라마 덕분에 매실의 인기가 상종가를 칠 때,
저도 레시피만 보고 매실을 다듬고 온갖 기대를 걸며 우메보시란 걸 맹그러 보았지요. 맛은? 우엑..

로드무비 2005-10-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입에 맞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이카루님, 제 이야기가 그대로 몇 줄 소설 속에 척하니 들어가 있더라니까요.^^

mong님, 이 얼굴 말입니까!^^*

namu님, 나중에 이벤트할 때 정식 문제로 낼까요?
분명 읽은 분들이 많을 텐데......^^

플레져님, 책으로 묶여 나온지도 10년 더 됐어요.^^

호정무진님, 남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소화시키는 것도 재능이죠, 뭐.^^

검둥개님, 궁금하셔도 좀만 참으셔유.^^

로드무비 2005-10-31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한 번 더 마지막으로 만나고 안 만났어요.
서로 연락처는 끝까지 주고받지 않고,,,,,
(만날 마음 있었으면 학교로 찾아왔겠지만.)

과일이 좋아님, 그런 기분은 잠시이고, 재밌었어요.^^

urblue 2005-10-3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아는 소설가 하나도 없으니 입조심 할 일도 없군요. ㅎㅎ
로드무비님 얘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다니까.

국경을넘어 2005-10-3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메보시는 무슨 맛일까? 새꼼짭짜름한가요? 갑자기 입안에 고인 침때문에 호흡 곤란... 으으으... 로드무비님, 살려주세요

비로그인 2005-10-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은 로드무비님이 싸가신 거데요?

로드무비 2005-10-3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밥 따로 반찬 따로 싸는 도시락이 어딨어요.ㅎㅎㅎ

폐인촌님, 제 입엔 안 맞아요. 신 거 싫어해서.
너무 짜고.(이제 됐죠?^^)

블루님, 뭐 저도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마음놓고 떠들어도 됩니다.^^

야클 2005-10-3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도시락데이트라...부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도시락데이트는 못해봤네요.

서연사랑 2005-10-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 연락처도 묻지 않고 약속을 잡는 데이트라...
얼마나 설레이셨을까요^^
저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연애를 해서 너무 부럽다는...흑흑...

울보 2005-10-3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메보시,..로드무비님에게는 정말러 나에게 없는 추억이 너무너무 많아요,,

2005-10-31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룸 2005-10-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메보시를 먹어본적도 없건만 왜 입안에 침이...침이...^^;;;;;;;;

날개 2005-10-3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것이 그 유명한 매실장아찌란 말이죠? 일본 만화 읽다보면 하도 많이 등장해서 넘넘 궁금했더랬어요...(근데, 시고 짜다니... 맛없을 것 같아~ 윽~)

로드무비 2005-10-3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맞아요. 일본 만화에 잘 나오죠.
문어빵과 함께......^^

투풀님, 시고 떫다는 말만 들어도 침이 고입니다.;;
그런데 저거 좋아하는 이들도 꽤 있더라고요.

울보님, 저에겐 울보님이 갖고 있는 추억 없는 게 너무 많을 겁니다.^^

서연사랑님, 겨우겨우 하루하루 연명하는 기분이었어요.
연애랍시고 처음 꽤 멋(마음의)을 부리며 놀았던 것 같은...
(전 그 오래된 연인들의 사랑이 을매나 부러웠던지...)

야클님, 도시락을 남자에게 싸오게 했으니 저도 참 알아볼 쪼 있죠?
아무튼 도시락도 맛있고 너무 좋았어요.^^

2005-10-31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31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5-10-3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제목이 뭡니까? ㅋㅋ
봉지쌀 같은 연애라니 낭만적이네요. 지금 옆지기님도 아세요?호호

로드무비 2005-10-3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봉지쌀, 연탄 한 장!ㅎㅎ
책장수님도 앱니다.^^

페일레스 2005-10-3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으하하하.
역시 로드무비님 인생의 깊이는 해저 2만리! -_-)b

로드무비 2005-10-3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집앞 웅덩이보다 얕은 사람 보고......
페일레스님, 아무튼 잘봐주셔서 고맙습니다요.^^

2005-10-31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어울리는 밤입니다. 쌀이 떨어졌는데 봉지쌀이란 단어를 보니 느낌이 화악~오네요^^ 저녁은 라면, 낼 아침엔 스프..그럭저럭 인생은 흘러가겠지요.

sudan 2005-10-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 참에 산문집을 하나 내시라니까요.

panda78 2005-10-3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정말 책을 한 권 내셔야...

로드무비 2005-11-01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언젠가는 꼭 한 권!^^

수단님, 산문집으로 꼭 한 권!^^

참나님, 쌀이 떨어졌다고요?ㅎㅎ
라면, 수프, 아이들은 철 모르고 좋아하겠네요.
(아니 주부가 쌀을 떨어뜨리다니!^^ 저도 지난 주말 그랬죠.)

2005-11-01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1-0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님께 엽서나 한 통 써볼까요?
그동안 받기만 했는데.^^

수퍼겜보이 2005-11-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속으로 우리는 안되겠구나, 이 사람이랑 계속 만나면 이렇게 오만상을 찡그리고 몰래 삼켜야 할 것이 너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

로드무비 2005-11-0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퍼겜보이님이 흰돌님이세요?ㅎㅎ

마태우스 2005-11-0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과일 못먹습니다. 우메보시가 뭔지는 모르지만 사진을 보니 꽂감 비슷한 무엇이 아닌가 싶습니다. 꽂감을 못먹는 저는 아마도 우메보시도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도 참 가리는 게 많아요, 그죠?

마태우스 2005-11-0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찾아보니 우메보시는 일본 음식이군요. 으...더더욱 못먹습니다. 제가 일본음식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글구 님이 사연 말 안해주기에 소설가가 누군지 찾아봤습니다. 모르겠습니다....네이버에선 찾을 수가 없네요. 혹시 윤기라는 소설가인가요?

로드무비 2005-11-0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만 특별히 갈쳐드릴까요?
안되겠다.
님은 이미 명사이시니... 게다가 소설가 친구도 있잖아요.
우메보시는 제 입에도 안 맞더이다. 토할 것 같은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