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소설은 물음표로 남는다. 그건 읽다가 만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때로 피로감을 느낀다. 서점가에서 독자에게 인기 있는 주제나 테마가 생기면 너도나도 그 테마를 따라잡는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 다 읽지 않았어도 비슷한 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새로운 소설은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더욱 좋다. 여기 세 권의 소설이 주는 기쁨도 같다.


제목 그대로 짧은 소설, 그리고 긴 소설이다. 김혜진의 짧은 소설 모음인 『완벽한 케이크의 맛』, 이제는 마음산책의 대표 시리즈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와 그림. 박혜진의 그림도 좋다. 김혜진의 단편, 장편을 만났기에 짧은 단편은 어떨까 궁금하다. 기존의 소설과 닮았을 것 같으면서도 약간은 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백수린의 첫 번째 장편 『눈부신 안부』는 백수린의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는 경장편이 있지만 문학동네에 연재한 이 소설이 백수린에게는 첫 장편인 것 같다. 김혜진과 백수린, 둘 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읽기 전에, 읽으면서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뀐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짧은 소설이자 가장 긴 소설인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100쪽 정도의 얇은 책이 주는 울림이 대단한다. 뭐라 할 말이 많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할까. 어떻게 이런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할 수 있을까. 꼭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며 가볍게 스치듯 포옹을 하는 마음이랄까. 아무튼 좋다. 이 소설은 영화 <말 없는 소녀>로 만들어졌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다. 검색해 보니 개봉일이 오늘이다.


읽기에 치진 마음이 있다면 이런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짧은 소설, 그리고 긴 소설. 세 명의 여성 작가가 보여주는 섬세한 아름다움, 여성 작가가 마주하는 사회의 모습,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한 꼭지 짧은 소설을 읽고 잠시 멈춰도 좋고 장편은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좋다. 어떻게 하든 좋은 소설은 우리와 만나게 되고 읽게 되니까. 그 좋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좋음은 누구나 같으니까. 6월엔 그 좋음을 즐겁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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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31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맡겨진 소녀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는데 너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ㅋ 더 많은 작품이 번역되길 바래봅니다~!!

자목련 2023-06-01 10: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짧아서 아쉬운데 그 아쉬움이 참 묘해요. 감 좋은 출판사가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요 ㅎ

그레이스 2023-05-31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작가는 좋았는데 다른 분들은 모르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06-01 10:37   좋아요 0 | URL
김혜진 작가도 좋습니다. 기회되면 만나보세요^^

독서괭 2023-05-3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부신 안부 좋으셨군요! 맡겨진 소녀가 저렇게 얇은 거 보니 혹하네요 ㅋㅋ

자목련 2023-06-01 10:38   좋아요 1 | URL
<눈부신 안부>, 곧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맡겨진 소녀는 단숨에 읽을 수 있어요. 더 혹하시죠?

은오 2023-05-3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북플 피드 쭉 보는데 맡겨진소녀가 계속 언급되는중.... 자목련님도 호평하시니 보관함에 담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목련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한국 작가들이 누군지 궁금해요!!

자목련 2023-06-01 10:42   좋아요 1 | URL
은오 님도 호평하시길~~
좋아하는 작가를 생각나는 대로 꼽자면 김연수, 권여선, 황정은, 김혜진, 김이설, 백수린, 조해진, 여성 작가가 많네요. 절필 선언한 윤이형이 소설을 써주면 좋겠어요. 한강은 초기 소설을 좋아하고요. 정용준도 좋아하고 최근엔 이주혜가 좋아요. 좋아하는 작가를 궁금해하는 은오 님도 좋고요!

은오 2023-06-01 18:19   좋아요 0 | URL
오오..!! 제가 번역을 거치지 않은 소설을 그러니까 한국 작가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거의 안 읽어본 터라 고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자목련님께 여쭤봐야지 했어요 😀 추천해주신 작가들 작품 검색해 보고 맘이 가는 걸로 읽어보겠습니다~! 넘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자목련님이 먼저 저 꼬셨어요?! 맞죠?! ㅋㅋㅋㅋㅋ🫶 제가 더 좋아합니당!!!!!

자목련 2023-06-02 11:45   좋아요 1 | URL
어떤 작가의 글이 은오 님 마음에 닿을까요?
꼬셔서 넘어온 건가요? 아, 설레라~~

페넬로페 2023-05-3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책 다 읽고 싶어집니다.
전에는 한국 작가의 소설 많이 읽었는데 다시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자목련 2023-06-01 10:43   좋아요 1 | URL
페널로페 님도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어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시면 한 번 떠올려주세요^^

coolcat329 2023-05-3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맡겨진 소녀 좀전에 새파랑님 글에서도 봤는데 여기서도 보이네요.
짧은데 울림이 대단하다니 저도 급 끌립니다.
저는 올해 두 권 세 권짜리 장편을 좀 읽자 했는데 중간에 살짝 넣어야 겠습니다.

자목련 2023-06-01 10:44   좋아요 0 | URL
급 끌림, 좋아요 ㅎ
호흡이 긴 장편, 어떤 장편일까 궁금해지네요^^

책읽는나무 2023-05-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제가 좋아하는 김혜진 작가와 백수린 작가의 책이로군요?^^
<맡겨진 소녀>의 책표지의 뒷모습의 소녀는 혹시 앤은 아니겠죠? 돌아보면 왠지 앤일 것 같은??ㅋㅋㅋ
그런데 내용은 아름다우면서 슬픈 내용이라니...
괜스레 앤 이야기를 꺼낸 듯 합니다. 긁적긁적...

자목련 2023-06-01 10:45   좋아요 1 | URL
두 작가의 신작, 다 좋습니다. ㅎ
표지 보면 앤 생각하실 수 있어요. 초록 지붕의 앤.
나무 님의 긁적임을 제가 좋아합니다!
 

작약을 좋아한다. 원하는 게 아니라 좋아한다. 어제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걸 구분해야 한다는 출연자의 말을 들었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심리학자의 설명은 꽤 친절했다. 모두가 갖고 있어서 나도 가져야 하는 것, 그것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이라며 딸과 놀이공원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착각할 때가 많구나 싶었다. 원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있어야 삶이 풍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약과 책을 좋아하는 나는 풍요롭고 충만한다. 4월의 작약은 5월의 지금까지 나를 행복하게 만드니까. 꽃은 이미 다 졌지만 떨어진 작약 꽃잎은 따로 모아두었고 그것을 보는 시간이 나는 좋다. 좋아하는 것, 그게 무엇이든,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지탱한다.









올해 작약은 빨리 피고 빨리 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가장 먼저 핀 한 송이부터 꽃잎이 떨어지는데 그 순간 나는 어쩔줄 몰랐다.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씩 떨어지며 쌓이는 꽃잎을 보면서 언제 또 이런 모습을 지켜볼까 싶었다. 붉은 자주빛 작약 꽃잎이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기분이랄까. 어떤 의미에서 올해의 작약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작약에 이어 좋아하는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 권여선의 단편집 『각각의 계절』이 나왔다. 양장본으로 묵직하고 단단하게 느껴진다. 단편집이다. 5월의 빛과 색이 담긴 모양새라고 할까. 권여선의 유려하고 촘촘한 문장으로 보여줄 삶의 단면을 기대한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는 중고가 있어서 우선은 샀다. 나의 우선이라는 말에는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있다. 좋다는 말도 있고 별로라는 말도 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제 신형철의 글에 끌리지 않지만 시라서 샀다. 책장에서 잠들게 될지,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책은 예쁘다.





어쩌면 신형철의 책은 많이 언급되어서 한 번 읽어볼까 싶었는지도 모른다. 굳이 따지자면 원하는 것(타인의 시선)이 궁금했고 권여선의 단편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권여선의 단편에 대해 혹평이 있다고 해도 나는 읽을 것이다. 나는 권여선의 소설을 좋아하니까. 그 좋아함이 영원할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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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5-11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권여선을 좋아하네요. 장바구니 무조건 넣었으니까 그런거죠?
작약도 좋아해요~~
늦게 심은 작약이 이제 꽃을 피웠거든요~~
흠... 신형철의 책은 제 예상보단 그냥 소소~~했어요^^

자목련 2023-05-12 09:57   좋아요 2 | URL
무조건 넣고 구매하고, 즐겁게 읽고~
직접 심은 작약이라니요. 그 빛은 얼마나 고울까요!
신형철의 책에 대한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책먼지 2023-05-11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분하라는 이야기에는 익숙했는데 (물건을 살 때 필요한 것만 사라는 맥락에서요)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도 구분할 필요가 있군요!! 하지만 저는 자목련님의 글을 원하고 좋아하는데.. (이러면 구분할 줄 모르는 거죠?) 강렬한 색 때문인지 작약이 고혹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자목련님 글을 읽고 나니 책을 고를 때 제 마음은 어떤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어요!!!

자목련 2023-05-12 10:01   좋아요 0 | URL
필요목록은 중요합니다. 충동구매를 자제시켜주기도 하고요. 제 글을원하고 좋아하신다니, 이런 황홀한 댓글,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저도 이 색의 작약은 처음인데 묘한 분위기가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책먼지 님은 제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어주셔서 참 감사해요(슬쩍 전하는 마음,ㅎㅎ)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공쟝쟝 2023-05-11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 곰곰 읽어보니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세세하게 구분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들었어요. 그 구분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글쓰기가 필요하고 그런 종족에 바로 제가 위치해있다는 것도 읽고 쓰면서 알게 되었네요.(읽을 수록 눈이 눈만 높아져서 큰일예여ㅋㅋㅋㅋ 요즘 저의 고민)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해야할 것만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있어요. 약간은 희미한 자아감에 평소 생각이 많고 복잡해서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건 나에게도 좋다고 하면서 미끄러지듯 따라가곤 했던 것 같아요. 결국은 거기까지도 세세하게. 타인의 시선을 취하면서 나의 시선을 심문하는 것. 나에게 영향력을 지녔던 말들을 검토하면서 내 말을 내 몸에 새기는 글을 쓰는 것. (제가 어려워 보이는 푸코를 좋아하는 이유랍니다..ㅋㅋ 사실은 간단한데 그렇게 살기가 어려운 부분이랄까 긁적긁적.)

그나 저나 봄날의 작약은 저도 좋아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피어나는 것도 너무 극적인 식물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권여선은 저도 좋아합니다. 역시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쁨은 네배! 싫어하는 걸 함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쁨은 여덟배 ㅋㅋㅋ!!

2023-05-12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5-11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약은, 비싼 꽃, 큰 꽃....저는 딱 소비자 입장에서만 작약을 봐왔나봐요. 자목련님 닉넴과도 친한 걸 같은 작약을 대상으로 이렇게 생각하시다니^^

작약도 아름다운데 풍요로우시다니 그걸로 이미 OK^^

그런데, 작약 꽃이 커서, 꽃잎 떨어져도 클 줄 알았는데 떨어진 꽃잎은 분쇄기에 넣은 것 같은 모양새네요...그럼 그건 *술,*술 요 부분일까요?^^ 꽃알못이라 귀찮게 해드립니다 ㅎ

레삭매냐 2023-05-11 11:26   좋아요 1 | URL
저도 작약 사볼라고 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비싸더라구요 -

특히나 코랄 작약, 멋진 만큼
가격도. 그래서 치자나무로
퉁~쳤답니다.

자목련 2023-05-12 10:11   좋아요 1 | URL
일반 화원이나 꽃가게에서 작약을 구매한 적이 없어서 가격을 잘 모르겠어요. 온라인 생화 주문을 하는데 저는 만족하거든요. 말씀하신 부분은 수술이 많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데 잘 모르네요. ㅎ

레삭매냐 2023-05-11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에도 작약이 흐드러
지게 피었더라구요 :>

나중에 씨가 나면 받아 보려고
했는데, 구근이라고 하대요.

권여선 작가의 책은 저도 어제
주문해서 오늘 도착할 예정이
라고 하더군요.

자목련 2023-05-12 10: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작약은 튤립처럼 구근이라 한 번 심으면 매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비싸다고 말씀하신 건 화분일까요?
치자나무 들이셨군요, 기대됩니다.

권여선의 단편집은 도착헸겠네요. 실물이 더 예쁘죠?
즐겁게 읽는 일만 남았네요, 매냐 님도 저도^^

망고 2023-05-1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권여선 작가 좋아해요ㅎㅎㅎ아껴 읽으려고 그래서 사놓고 아직 들춰보지도 않았어요ㅋㅋㅋㅋㅋ책 안 읽고 있는 핑계가 거창하죠?ㅋㅋㅋ작약도 좋아해요 오늘 저희집에도 한송이 폈어요^^커다란 얼굴이 방글방글 웃고 있는거 같아서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요😄

자목련 2023-05-12 10:14   좋아요 1 | URL
아껴 읽는 마음, 저도 알아요!
망고 님 마당에 핀 작약은 얼마나 고울까요. 환하게 웃는 작약 보여주실꺼죠?

물감 2023-05-11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여선은 <레몬>,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 이렇게 한 권씩만 읽었는데 사실 좋다고는 느끼지 못했어요. 다른 작품을 읽었어야 했나봐요. 원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싶었는데 <인생의 역사>를 읽고보니 저랑 안맞는 작가더라고요.. ㅎㅎ

자목련 2023-05-12 10:18   좋아요 1 | URL
물감 님이 읽으신 <레몬>은 기존의 권여선의 느낌과는 달랐어요. 단편집을 강력 추천합니다. 도서관에서 한 번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을 듯해요. <인생의 역사>만나셨군요. 안맞는(?) 작가, 기억하고 참고하겠습니다. ㅎ

책읽는나무 2023-05-1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약 참 좋아합니다^^
저도 원해서 몇 년 전부터 봄에 작약을 한 송이 정도 샀었는데 넘 비싸고 귀해서 아예 작약 꽃을 그려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그림 속 작약은 지지 않으나, 생동감이 없더군요.
그래서 작년부터 다시 작약 꽃을!! ㅋㅋ
코랄 작약은 아찔하더군요. 사가지고 들고 온 순간부터 꽃이 피고 있었던지 꽃병에 꽂자마자 화알짝! 하루 사이에 색이 옅어지고 또 자고 나면 꽃잎이 떨어지고...ㅜ
꽃잎이 떨어질 때 어쩔 줄 모르는 안타까운 자목련 님의 모습이 저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는 게 안타까워 올 해는 작약을 세 번이나 사서 감상 중입니다ㅋㅋㅋ
작약 꽃 처음 산 녀석들은 꽃이 안 피고 시들기도 했구요. 며칠 전에 산 녀석들은 이제 피려고 합니다. 코랄 작약은 삼 일만에...ㅜㅜ
동네에 좀 저렴하게 판매하는 무인 꽃가게 덕분에 늘 눈이 호강하고 있어요.
권여선 작가님 신간 내셨군요?
저는 책 제목도 <작약의 계절>로 읽었네요ㅋㅋㅋ
신형철 작가님 책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만 읽었는데 넘 좋았어요. 그래서 <인생의 역사>도 읽어보려 생각 중인데 반응들이 호불호가 있군요?

자목련 2023-05-12 10:39   좋아요 1 | URL
작약을 좋아하는 우리가 되어 좋습니다!
작약을 세 번이나, 매년 의식처럼 한 번만 구매하는 저는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수국으로 넘어가겠습니다. ㅋ (수채화로 수국을 그리면 좋을 거 같아는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무인 꽃가게가 있다면 꽃을 보는 재미를 맘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좋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인생의 역사>를 읽은 지인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좋았다고 해서 우선은 곁에 두었는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어요.

blanca 2023-05-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약 정말 이쁜 붉음이네요. 권여선 작가 단편집 다 읽으셨나요? 저 가슴이 찡 울렸어요. <분홍 리본~>도 찾아 읽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말로 정리하지 못했던 청춘, 젊음을 권여선 작가의 언어로 다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자목련 2023-05-23 10:45   좋아요 0 | URL
올해는 평소와 다른 색을 주문했는데 참 예뻤어요. 내년에는 코랄 작약을 주문할까 싶어요.
권여선의 단편집은 아껴서 읽고 있어요. <분홍 리본의 시절> 강렬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쓴 리뷰를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ㅎ

하리 2023-06-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약을 합천 핫들공원에서 보고나서 반했어요 어마어마한 작약밭이었거든요 꽃은 언제든 기분좋게 해요. 저도 이번에 권여선작가님 책을 다 읽었습니다. 공감가지 못하는 단편도 있었지만 역시 좋았습니다. 플래그 덕지덕지라 필사하고 있어요🤭

자목련 2023-06-08 09:41   좋아요 1 | URL
공원에 작약밭이라니. 정말 근사할 것 같아요. 기분 좋은 꽃과 소설, 참 좋은 조합입니다. 권여선 단편집도 넘 좋고요^^
 

커피와 시는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시는 어렵고, 커피는 쓰다. 둘 다 뭔가 첨가하면 달콤해진다. 시에는 무얼 첨가해야 달콤해질까. 커피에 대해 모르지만 로스팅의 단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는 어떤 단계를 거쳐야 조금 더 친근하고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알라딘 택배비 인상으로 책을 구매할 때,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을 사고 싶을 때 주문을 고민하고 신중하게 생각한다. 박소란의 시집을 고르면서(고른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커피 쿠폰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알라딘에서 지급하는 커피 쿠폰과 영화 쿠폰.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는걸. 코로나 이후로 영화관에 갈 용기를 내지 않으므로 커피를 주문하기로 했다. 현대문학 PIN 시리즈 시집과 드립 백 커피를 말이다.





커피는 아직 마시기 전이고 시집은 조금 읽었다. 슬픔, 그림자, 어두움, 우울이 있다. 시집의 제목인 있다는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시의 제목마다 아는 있다를 붙여 읽었다. 어렵지만 내 마음을 더하면 시는 조금 더 친절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제 비가 온 탓으로 이런 시를 골라본다.


움푹 팬 곳에 생긴 웅덩이,

거기 사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그럴 리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벽을 만든다

벽 뒤편 얼기설기 이어진 골목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벽돌 하나가 쫓아온다 어깨를 툭툭 치더니

금세 앞질러 가버린다 보란 듯 멀리 날아가버린다


이상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풀이 말을 건다


풀과 말을 한다

요즘은 좀 어때? 물으면 그냥 그렇지 뭐, 적당히 얼버무린다


얼버무린 게 나인지 풀인지

풀은 자란다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날이면 벌써 바싹 시들어 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들, 거기 사는 누군가


문 앞에 서 있다

새까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건을 들고 달려갈 나를 기디라고 있다


기다리지 마

심통 부리듯 나는 괜히 동네 마트나 기웃거리고

늦게

되도록 늦게


문을 연다


눈을 감고 조용히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들

그러나 아무것도 불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어느 날부턴가

불이 말을 건다 (「비 온 뒤」, 전문)


비 온 뒤, 당신의 아침은 어떤가 궁금하다. 봄이라고 꽃들은 지고 연두가 가득한데 날씨는 심란하다. 춥다고 쌀쌀하다고 말하는 이들.이상한 게 어디 날씨뿐일까. 그래도 봄이니 봄비가 내렸으니 뭐든 그 비를 맞고 더 쑥쑥 자라겠지. 나도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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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즐거움에 이어 아는 즐거움이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니, 한국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요즘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나 소재가 비슷(돌봄, 여성, 연대) 하지만 읽는 일은 즐겁다. 작가마다 선택한 주제는 닮았어도 표현이나 인물의 환경 설정은 다르니까.


곧 세계 책의 날도 다가오니 아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드는 일도 좋다. 안다고 했지만 아는 즐거움은 크지 않다. 한국 문학의 젊은 작가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그 소설을 이해하는 일은 버겁다. 그래도 소설은 좋고 이런 작가는 더욱 반갑다.


우선 오랜만에 만나는 김이설의 단편집이다. 연작이 아니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는 단편 10개가 수록된 작품이다. 오늘 출간 기념 북토크가 있다고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색다른 북토크인 듯하다. 누군가의 참석 후기를 기다린다.






올해도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을 곁에 두었다. 이미상, 이서수, 김멜라의 이름이 반갑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이름으로 채워진 『소설 보다 : 봄 2023』, 묘하게 끌리는 시집 『소멸하는 밤』를 읽는 밤을 기대한다. 소설과 시를 읽는 것으로 4월을 마지막을 보낼 것 같다.














4월인데, 내가 좋아하는 4월이 이렇게 흐른다. 언제부터인가 4월에는 노영심의 『4월이 울고있네』를 듣는다. 발매 당시에는 몰랐던 노래. 세월이 흘러 이제야 듣게 되는 노래. 가사를 따라 읽으면 흥얼거린다. 봄비가 내리는 4월, 청벚꽃을 바라보며 그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봄을 생각한다.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4월이 흐른다.



봄비가 내려오는데 꽃잎이 흩날리는데

나의 눈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봄비가 내리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나의 귀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내 눈물이 그칠까(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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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는 일은 진부하지만 그것만큼 인생의 시기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게 획일적인 계절을 대입하는 건 좋지 않다. 나만의 시간이 있고 나만의 계절이 있으니까. 지금 어떤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상을 살아가는 일, 그게 인생이라는 걸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을 아는 일은 어렵고 꿋꿋하게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늙는다고 여겼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뭐든 막힘없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깨닫는다. 최근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사는 게 참 어려운데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할머니들이 대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70대 중반에 그림을 그리리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통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인생의 비밀과 감사를 만난다.


역사의 기록에서나 만날 시대, 1860년에 태어나 결혼해서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다섯 명만 키우고 70세 이후에 그림을 그리면서 유명해진 그녀는 93세에 <타임> 표지 장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100세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까지 받았다. 그런 할머니의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기사, 인터뷰, 구술, 편지를 통해 모은 할머니의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을 때 솔직하고 평범해서 놀라고 긍정적인 태도에 위로를 받는다. 인생의 질문에 해답 책처럼 아무 곳이나 펼쳐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고 할까. 아마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과 시도는 대단한 결심 이후에 시작되어야 할 과정 같지만 “일단 해보면 되겠지요”란 할머니 말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내세우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까짓것, 해보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면 그 힘으로 또다시 살아갑니다”란 말은 왠지 호통과도 같이 들린다.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거다.


모든 삶이 그렇듯 언제나 좋은 시절, 좋은 기억으로 생을 채울 수는 없다.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시절에 머물곤 하다. 그냥 지나간 대로 두지 못해서 안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 이런 할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 아이를 잃은 상실과 함께 101세까지 살아온 할머니도 있는데 고작 나의 슬픔에 매몰되어 상처에 전착하다니.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흘러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27쪽)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3년 전의 봄은 마스크 한 장에 울고 자가격리와 코로나 확진에 대한 공포로 무너진 일상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봄을 맞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튀르키예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어려운 살림살이로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지만 할머니의 말처럼 감사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감사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슬픔에 잠기는 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할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과 풍요로움에 감사해야겠지요. (210쪽)


이렇게 귀한 말을 읽고 그것을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것도. 101살이라는 나이,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은 아름답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지만 잘 살아야지 싶다.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할머니가 있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101세까지 산 실존 인물이 아닌 일흔넷의 소설 속 할머니. 젊은 할머니라고 해야 할까. 와카타케 치사코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일흔넷 모모코 할머니. 남편은 죽고 자식은 분가했다. 말 그대로 홀가분하게 산다. 자식과 즐겁게 소통하지 않는다. 조금은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고 스스로와 대화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자신과 닮은 이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모지스 할머니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모습은 곧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누군나 늦은 나이에도 뭔가 시작하고 하루하루 신 나게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할머니들, 그 나이가 거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주변의 어르신을 통해 느낀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모모코 할머니처럼 혼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이들도 많다. 어떤 삶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삶이란 각자의 못이니까. 정반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누구 하나의 삶을 응원하는 쪽 아니라 모든 삶을 응원한다. 나 역시 그 삶 가운데 하나로 살아갈 테니까.


수많은 모모코 씨가 있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간다. 모모코 씨가 모모코 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끌어당기며, 등을 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138쪽)


주어진 하루가 버겁고 다가올 내일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를 맞았고 주어진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도달할 계절을 그려본다.아직은 봄이라고 우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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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4-14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 읽으면서 노년의 삶을 기록한 또 다른 여성작가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봤는데 소노 아야코도 있네요!! 이 할머니는 조금 까칠하신 편!! 인용해주신 부분을 그냥 읽었으면 제가 좀 삐뚤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미리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을 설명해주셔서 모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곱씹어보게 됩니다!! 인생의 계절이 봄부터 시작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제겐 겨울부터 온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이 봄입니다❤️

자목련 2023-04-17 09:54   좋아요 1 | URL
소노 아야코 검색해 보고 알았어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만난 작가였는데 1931년생인 줄 몰랐어요. 책먼지 님의 봄을 응원합니다. 활기차고 환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