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예술가의 삶은 짧고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예술가의 일』에 이어 조성준의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오래 기억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언론에 주목받지 못한 삶, 생전에는 얻지 못한 작품의 가치, 재능만 탐할 뿐 예술가를 돌보지 않은 세상. 음악, 미술, 영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5명의 예술가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25명의 예술가를 5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목록을 살피고 끌리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먼저 읽어도 충분하다. <차별과 편견을 넘다>란 주제는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과거 정권에서 등장했던 블랙리스트. 예술이 전부인 그들은 소리 없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그러했다.




1950년대 초반 유대인이었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던 그도 정부의 사상 검증 대상이었다. 직접 심문 받지는 않았지만 방송국 출연 자리를 잃었고 이유 없이 여권 갱신도 거절당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에게 출국 금지라니. 너무도 치사하다. 번스타인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진술서를 쓴다. 아,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흑인 인권 운동 단체를 후원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로 인해 FBI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랫동안 감시당했다. 예술가 얼마나 깊고 강하게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감시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번스타인은 언제나 경청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자기가 하는 음악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존중했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야 할 때 떠났다. 그 이후로도 음악을 누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다. (47쪽)


<존 케이지와 굴다처럼>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는 천재 혹은 괴짜로 불리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 프리드리히 굴다, 완벽주의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한국의 거장 김기영 감독이 있다. 김기영 감독과 함께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이 생각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에 대해 몰랐다.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 의대에 진학하고 연극 활동을 했다.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부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부업으로 <대한 뉴스> 제작했다니. 그것을 계기로 의사는 관두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술도 하지 않고 영화인과의 교류도 없이 오직 영화만 생각한 감독. 완벽한 콘티 없이는 영화 촬영을 하지 않았다니.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은 김기영 감독 그 자체였다.


그는 사람들이 직면하기 싫은 주제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장하고, 뒤틀고, 기이하게 표현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상한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 안에 당시 사회 병폐를 집어넣었다. 기이한 영화로 흥행까지 거머쥔 김기영의 존재는 라이벌들과 비교해 독보적이었다. (101쪽)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란 주제에서 만난 예술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하나같이 애처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다. 대중은 천상의 노래, 매력적인 재능, 놀라운 연기력을 사랑하지만 무대와 공연장, 스크린 밖에서는 그들을 외면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를 보고 감탄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더러운 검둥이' 취급하며 차별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은 정말 가련하고 가여웠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했던 에이미를 세상이 알아봤다. 사랑에 빠진 남자로 인해 약물에 중독되고 그가 떠난 후 상처를 노래했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 재활원을 찾기도 한 에이미 곁에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타의 사생활을 깨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세상이 아니라 회복하기를 기다려주는 대중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노래하는 에이미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캡틴, 마이 캡틴>과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에서는 예술을 위해 전부를 던진 이들의 삶을 들려준다. 연기하는 인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히스 레저, 패션이고 명품이었던 코코 샤넬, 전 세계 영화감독이 이탈리아를 찾게 만든 모리코네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25명의 예술가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우리의 곁에 살아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볼 때 그들의 삶의 겹쳐 보일 것이다.


모리코네는 떠났다. 그래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위대한 영화는 계속 탄생할 테도, 아름다운 영화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석양이 저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역사가 하나의 책이라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297쪽)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예술가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월북화가 이쾌대, 김환기와 백남준의 생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떤 환경에 있었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난 후 작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려 노력할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한 예술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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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몇몇 쓸데없는 사건들, 그러니까 자동차 사고들이나 병원 신세를 진 일들이나, 사랑 때문에 가슴 앓이를 했던 일들은 피하면서 말입니다. 하나 저는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제 대외적인 이미지나 전설, 그 안에 거짓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바보 같은 짓들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과속을 좋아합니다. 물론 제게는 그것 말고도 위스키나 자동차들만큼이나 수많은 취향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음악이나 문학처럼 말이죠. (372쪽)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터뷰집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를 읽기 전 그동안 내가 읽은 그녀의 글을 검색해 보았다.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었다. 첫 소설이자 대표작인 『슬픔이여 안녕』은 읽지 않았다. 그 소설의 내용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열아홉의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정도만 알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궁금증과 기대를 생각하면 진도가 팍팍 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지는 않았다.


1954년부터 1992년 사이에 가졌던 인터뷰의 내용은 질문이 비슷한 것도 많았고(아, 당연한 것인가) 그러니 중복된 느낌의 답도 많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내 느낌으로 사강은 솔직하고 유머를 좋아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강의 소설과 에세이만 읽었던 나는 그가 희곡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드라마도 썼다는 건 몰랐다. 그는 희곡과 소설에 대해 소설은 작가 자신이 더 많이 개입되기에 어렵고 희곡은 바깥을 향하는 장르라서 훨씬 쓰기 쉽다고 설명한다. 연극은 재미를 주고 소설은 열정을 준다고 말한다. 기회가 되면 그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






독자는 착각한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의 일부라고 여기는 거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사강의 소설에서, 연애와 사랑에서 그것이 사강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결론지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사랑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확장된 것 같다. 친구를 좋아하고 함께 지내고 그들을 도와주는 사강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보인다.


사강의 말대로 그는 운이 좋았다. 물론 소설에 대한 비평가의 혹독한 비평이나 문학의 진정성에 대한 비하는 있었지만 사강은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았고 돈에 대한 부분에서도 풍족함을 누렸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좋아하고 스피드를 즐긴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차분한 분위기를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독자가 안다고 느끼는 사강은 진짜 사강은 아닌 것이다.







저는 차분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 제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제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도함 속에 빠져드는 일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피로함의 극단에서만 쉴 수 있고, 불안함의 극단에서만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심연에서만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할 수 있지요. (171쪽)


이 인터뷰집에서 가장 중점적인 분야인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게 느껴진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분명 있을진대, 그것에 대한 구질구질한 변명 같은 것 찾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명확하게 말한다. 좋아서 쓴다는 것, 얼마나 당당한가. 글에 대한 사강의 생각과 정의는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글 쓰는 게 좋아서입니다. 그것은 악덕인 동시에 미덕이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쾌락으로 바뀌는 미덕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내밀한 일입니다. (250쪽)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창조해 내기… 우리들의 모든 약점들, 지성과 기억력의 약점들, 마음과 취향과 본능의 약점들, 그것들이 마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한 군데로 모으기… 그렇게 모은 무기들을 돌격해 오는 ‘무’를 향해 우리 자신의 상상력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백지의 힘의 돌격을 향해 집어던지기. (285쪽)


사강이 좋아하는 프루스트와 생일이 같았던 사르트르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사르트르와 보낸 시간, 그들은 서로의 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바보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실명이 된 사르트르와 식사를 하는 부분에서 사강은 그의 어머니가 된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매력적이고 지적이고 유머가 많은 사르트르와의 관계, 사강은 그것을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한다.


앞으로 사강의 소설을 읽을 때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다는 사강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어쩌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사강,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당돌할 정도로 직진한 사강, 산책을 학 사람을 보고 멍하게 있기도 하는 사강, 그리고 항상 담배 연기와 함께 한 사강을. 그러면서 소설 속 이런 문장이 사강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짐작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휘바람을 불며 하루를 시작할 것 같은 사강,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서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코 심연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늘 아침에 짧은 사냥 노래를 휘파람을 불면서 잠에서 깨어날 거야. (『잃어버린 옆모습』, 94쪽)






아직 읽지 못한 사강의 소설이 더 궁금해진다. 지난 삶에 대해 후회는커녕 단호하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껴안고 살아가는 당당하고 멋진 사강이 들려줄 사랑과 삶의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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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참 좋네요!
그런데 피로의 극단에서만 쉴 수 있고 불안의 극단에서만 안정을 취하다니.. 게다가 절망의 심연에서만 새 책을?? 책이 꽤 많던데..

자목련 2024-03-04 15:00   좋아요 1 | URL
사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신만의 가치나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쓰는 일은 사강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읽는나무 2024-03-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
막 좋진 않아도 왠지 끌리는 작가로 다가옵니다. 인터뷰집은 작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겠군요?^^

자목련 2024-03-04 15:0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꽂히는 작가는 아닌데 또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 인터뷰집은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게 만들고요,

coolcat329 2024-03-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여자들은 참으로 당당하고 솔직하고 자신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저돌적이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모습이 저는 좀 부담스러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작가지만 그 자신의 캐릭터만으로도 문학계의 스타가 되기 충분한 사람인 건 확실하네요.

자목련 2024-03-04 15:03   좋아요 1 | URL
저돌적이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딱 사강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걸 보면 스타는 스타였구나 싶어요.
 

연휴에 책을 읽으려고 했다. 아예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독을 하거나 집중을 해서 읽지는 못했다. 역시 연휴에는 뒹굴뒹굴이 최고다. 2월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벌써 절반이다. 올해 2월은 29일까지 있으니 하루를 번 셈인가. 아무튼 명절도 지나고 연휴도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2월이다.


2월의 책은 단출하다. 단출하다고 해서 2월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장담을 하지 않겠다. 아무튼 2월에는 이런 책을 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벌써 50번째다. 꼬박꼬박 챙겨 읽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일까 눈여겨보는 시리즈다. 이장욱의 소설은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구매했다. 그러니까 이장욱의 소설은 오랜만이다.


나머지 두 권은 계속 리스트에 읽던 책이다. 록산 게이의 『헝거(Hunger)』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 받기를 신청했지만 매번 구매에 실패했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은 영화로 먼저 만났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일부 장면은 기억에 담아 두었다. 소설로 읽고 싶었고 소설을 다 읽으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지금 읽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감탄하는 중이다. 작가가 생태학자라 그런 걸까. 지나친 비유가 아닌 꼭 맞는 적절한 비유와 묘사, 주인공 카야의 심리를 솔직하면서도 풍부하게 그려냈다. 습지에 흐르는 빛과 바다, 그 안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호흡과 성장이 눈부시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는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에서)


영화를 보았기에 사건의 전개나 결말에 대한 기대를 갖기는 어렵지만 영상이 아닌 소설을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이 있다. 소설의 감각이라고 하면 맞을까.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문장을 읽는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그 문장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싹을 틔우거나 준비하는 2월, 시골에서 2월은 아직 여유가 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할까. 어쩌면 숨 고르기 중인지도 모른다. 2월은 그런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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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2-14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영화보다 소설이 훠얼씬 좋았어요 저는 소설 먼저 읽고 영화 봤는데 영화가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자목련 2024-02-15 11:55   좋아요 0 | URL
그러니 영화를 먼저 본 저는 이 소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stella.K 2024-02-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설 연휴 마지막은 저도 암것도 안하게 되더군요. 뭐 평소 때랑 다름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ᆢㅋ 이왕 아무 것도 못할 거 영화나 보자했죠.
가재가...는 좋다는 사람 참 많았는데 여기서 보니 정말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24-02-15 11:54   좋아요 0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 좋았습니다. 기회 되시면 읽어보세요.
남은 2월 활기차게 보내시고요^^

coolcat329 2024-02-15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서정적인 작품이죠. 작가가 생태학자 출신이라 자연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구요. 저는 영화는 안봤는데 책이 더 좋을 거 같긴 해요.

자목련 2024-02-15 11:53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어보니 영화를 먼저 본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해요. 좋은 소설이었어요^^

은오 2024-02-1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헝거 저도 이번달에 읽었는데 자목련님 페이퍼에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역시 자목련님이랑 저는 통하는 사이~! 💕 2월 3일에 읽었네요. 저도 전부터 담아놨다가 절판된 바람에 중고로....🤣🤣
저도 어쩐지 연휴가 지나니까 더 잘 읽히는 느낌이에요. ㅋㅋㅋ 연휴는 싱숭생숭....

자목련 2024-02-16 08:50   좋아요 1 | URL
은오 님 헝거 읽으셨군요. 그것도 최근에. 근데 왜 백자평, 리뷰, 페이퍼 없죠?
뭐가 그리 바쁜가요? 잠자냥 님 흠모하느라 바쁜가요? 글도 써주면 안 되나요?

은오 2024-02-16 21:11   좋아요 0 | URL
계속 글 안쓰는 은바오에게 점점 단호해지시는 자목련님ㅠ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요즘 읽느라 바빠서 쓰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다 읽고서 빨리 또 다음 책 읽고 싶은 다급한 마음......인데 이제 정말 써야 할 시기인가봐요? ㅠㅠ
 

힘겹게 읽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힘겹게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 이야기다. 11편의 단편을 다 읽으면서 이전에 읽은 단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제목을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몰랐는데 그 결말이 생각난 것이다. 나머지 10편은 처음 읽었고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한 건 역시나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였다. 이 단편집에서 레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아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정체성과 자신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여성에게 말이다.


소설 속 1960년대가 아닌 현재와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과 공간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지만 현실에서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누군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이는 결혼 생활을 하는 「19호실로 가다」 속 수전에게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뭐가 부족하냐고. 당신은 넓은 저택에 건강한 아이들과 든든한 남편과 살고 있지 않냐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수전과 매슈에겐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라고 말할만한 것이 없었다.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권태로운 결혼 생활의 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남편의 외도를 확인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수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정원을 가꾸고 집안일을 하는 기쁨을 얻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찾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야 한다. 우리는 수전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수전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녀가 가족들이 엄마의 방을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쉬라고 배려했을 때 그녀가 왜 그곳에서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수전의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내가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돈을 지불하면 된다고, 설령 외도를 해도 눈감아주겠다는 식의 남편의 태도는 그녀의 감정이 별게 아니라는 무관심과 뻔뻔함이다. 수전은 아무렇지 않게 외도를 인정한다. 가상의 남자를 만들고 직업을 정한다. 호텔에서 아내도 엄마도 아닌 익명의 존재로 충분했던 수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9호실에서 보내는 그 시간이 수전에겐 필요했다.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수전의 말에 나도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겹쳐들린다. 40대인 수전이 느끼는 그 감정은 뭐라 불러야 할까. 고독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그것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죽음.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그래, 난 지금 여기에 있어. 만약 다시는 식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난 여기에 있을 거야…….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그러나 나는 수전의 선택은 존중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방법만이 그녀가 만족하는 유일한 것,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밖에. 다만 수전에게 공감하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거리 두기, 상담, 같은 것.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수전도 몰랐을 리 없다. 60년이 흐른 지금도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사회와 문화가 여전할 걸 보면 말이다. 차별, 편견, 위선과 싸우며 고통받는 여성의 삶이 이어진다는 게 화가 날 뿐이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가 생각났다.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만의 방을 갖는 일은 말이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주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어도 필요할 때마다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고 격려할 이도 있어야 한다. 수전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고 연대할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40대의 수전은 50대, 50대의 멋지고 당당한 수전으로 살지 않았을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의 중년 여성 조앤도 다르지 않다. 조앤이 느낀 공허. 어쩌면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여행 중 의도하지 않게 사막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그녀는 달라질 것을 결심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돌아가는 거라고.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소설 밖 현실에서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을 위해 다시 공부를 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제도적 보완과 정책이 간절하다. 소설은 그저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19호실로 가다』 속 수전, 『봄에 나는 없었다』의 조앤은 그렇게 거울이 된다. 여성만 비추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


우리에게 저마다의 19호실이 필요하다. 산다는 건 궁극적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를위해 사는 삶,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인 삶이 가장 행복하고 완벽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만의 방을 위해 비상금을 모으고 가족이 아닌 절 처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애써도 괜찮다. 나를 아는 일, 나를 돌보고 알아가는 시간은 필요하니까. 나와 만나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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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한 주가 지났다. 맹렬한 추위로 주말을 보냈다. 연말에 이어 연초에도 눈이 많다. 주말에 이동할 일이 있었는데 도로가 하얗다. 눈이 아니라 제설작업의 흔적이었다. 추위 때문인지 평소보다 차가 없었다. 그래도 속력을 낼 수는 없으니 천천히 이동했다. 운전자는 아니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마트에도 사람이 없었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대신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것일까, 혼자 생각했다. 영수증을 살펴보다 가격 차이를 확인하고 나도 온라인에서 주문했어야 했나 혼자 생각했다. 장단점이 있으니까. 바로 먹을 수 있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읽고 있는 단편에 대해 쓰려고 시작한 글이니 단편 이야기를 해보자. 읽어야지 하면서 읽다 멈추다 하는 책들이 있다. 좋아하는 소설임에도 그렇다. 작년에 시작했지만 올해로 넘어온 단편, 그리고 올해 첫 단편이다. '단편 VS 단편'이라는 제목을 쓰고 보니 뭔가 대단한 대결 구도 같다. 두 권의 단편집을 읽고 있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 장류진 단편집 『연수』다. 둘 다 여성 작가다. 도리스 레싱은 2013년 사망했다.





누군가 예상했겠지만 자꾸 멈추는 단편은 도리스 레싱의 소설이다. 이상하게 속도가 나지 않는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니 오랜만에 읽은 것도 아니다. 『다섯째 아이』만 읽고 처음이다. 그래서 이렇게 속도가 더딘 걸까.





반대로 장류진의 단편집은 술술 읽힌다. 이미 만난 단편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 해설도 없구나. 도리스 레싱의 책은 리커버로 만듦새가 예쁘다. 리커버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장류진의 단편집도 나쁘지 않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을 읽고 나면 뿌듯할 것 같다. 왠지 그럴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나를 독려해야지, 그래야 끝까지 읽을 수 있겠지. 그래도 자꾸 멈춤이 계속되면 장류진의 남은 단편을 읽을 것 같다. 아마도 장류진의 단편집을 먼저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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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1-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연수> 단편집 라디오
소개에서 듣고 읽어 보려고 했는데...

신간이라 그런지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더라구요.

문득 생각나네요.

도리스 레싱의 책도 보유하고 있으나
미처 읽지는 못했더라는.

자목련 2024-01-10 10:32   좋아요 1 | URL
<연수>, 지금은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요?
레싱의 단편은 좋은 것도 있고 지루(지루~~)한 것도 있고...

꼬마요정 2024-01-08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류진 작가의 책이 계속 눈에 띄더라구요. 신기하게 읽은 책이 없더라구요. 소설 보다 시리즈도 몇 권 읽었는데 거기도 없었고...
올해는 꼭 읽어봐야겠어요. 자꾸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납니다. 좋은 거죠? ㅎㅎㅎ

자목련 2024-01-10 10:33   좋아요 1 | URL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건, 마구 좋은 거!!!

blanca 2024-01-1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류진 단편집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혼자 읽다 너무 웃겨서 큰소리로 웃었네요. ^^

자목련 2024-01-15 12:22   좋아요 0 | URL
어느 단편에서 웃었는지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