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해오던 기자 바타넨은 사는 게 지겹게 느껴진다. 기자생활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쳐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점차 그 의지는 사라지고 하루하루를 가십기사나 쓰면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타넨은 카메라멘과 함께 출장길에 돌아오다가 어린 산토끼를 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바타넨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면서 기상천외한 인생의 모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사라져 버리고 싶은 욕망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일상이 지루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이 떠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와 타협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소설이든, 실화든, 여행기이든가에 읽는 이는 가슴이 설렌다. 내가 직접해보기에는 여건이 만만치않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용기와 무모함에 같이 흥분도 하고 때론 안도를 하기도 한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에서 바타넨은 그 일을 어린 산토끼와의 운명적만남을 계기로 인생을 바꾸게 된다. 맥주 집 구석에서 김빠진 맥주를 놓고 한탄만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토끼와 함께 가본 적이 없는, 결코 상상해본 적도 없는 모험의 인생을 살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허나 작가는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거창하게 포장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 부분이 더 맘에 들어 더 집중해서 읽었다. 그는 그러한 중대한 결정을 사회에서, 일상 속에서 카메라맨이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안하는 것으로 결정을 해버린다. 그후 핀란드 전역을 일년에 걸쳐 가장 가까운 친구된 산토끼와 동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적응하며 자연에서의 삶을 즐기게 된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일지라도 바타넨처럼 "제발 나를 그냥 두시오. 바타넨." 하면서 일상을 벗어날 용기가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타넨은 생각한다. 지루하게 살던 시절보다 육체적으로 힘은 들지만 땀흘려 일하며 자연 속에서 사는 삶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글에는 엉뚱함, 치밀함이 함께하는 재미가 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듯이 하다가 그 기발한 착상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웃음도 나고 작가가 사랑하는 핀란드의 숲을 상상해보게 만든다. 그 어디쯤에 바타넨과 산토끼가 웃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스타더스트

스타더스트 ㅣ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스타더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꿈, 희망, 모험, 행복한 결말이 아름다운 판타지와 연결이 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기분좋은 간지러움을 느끼게 한다. 순수하지만 약간은 멍해보이는 청년이 운명의 실에 의해 모험을 떠나게되고 예사롭지 않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마녀와 요정, 정령들이 가득한 마법의  숲으로의 모험이 시작된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판타지 소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등장하기에 식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 닐 게이먼은 그러한 판단을 거부한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공간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이어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지 잔인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살짝 부끄러울 수 있는 장면에서도 거부감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스타더스트'는 특별한 악인이 없다는 점도 특이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마녀조차도 스톰홀드 권력을 잡기 위해 형제들끼리 서로 죽이는 자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악마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잔인한 사건들도 일어나지만 그들 모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선악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별히 누가 선한 자인가, 악한 자인가를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던 '스타더스트'였다.

영국의 작은 마을 월은 마법의 숲하고 연결이 되어있고 9년에 한번 숲에서 장이 열린다. 그날 단 하루만 요정들과 인간이 함께할 수 있고 신비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18년전 던스턴 쏜은 아름다운 요정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의 첫번째 아들과 첫손자에까지 마법의 기운이 남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후 세월이 흘러 던스턴 쏜과 요정사이에 태어난 트리스트란 쏜과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의 모험, 사랑이야기가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아름답게 동화같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구에 꼭 인간만이 사는 것은 아니라는 판타지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게는 걸맞는 재미난 소설이었다. 사는 게 삭막하고 너무 현실적이다 싶을 때 가끔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기왕이면 9년 한번 열리는 마법의 숲에도 가보고 싶고 말이다.
어쩌면 마법의 장에서 신비로운 부적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아파르트헤이트 - 아프리칸스 어로 '분리' 라는 뜻.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수 백인이 다수의 반투(순수한 아프리카 흑인)와 유색인(혼혈 인종)을 합법적으로 차별한 정책.
“백인이라 함은 겉모양으로 백인임이 분명한 자이거나 일반적으로 백인이라고 인정되는 자이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분명히 백인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혼혈인이라고 인정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데없는 법률문장이 그 오랜 세월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철저하게 행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청소년시절까지만해도 난 여전히 아프리카에는 흑인들만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뒤 나이가 들어서야 총,칼로 무장한 백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터전이 땅을 빼앗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그들의 미래를 짓밟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피부색만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기회를 앗아가버린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할지를 감히 짐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1948년부터 십년정도의 세월을 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서로를 의심과 불신으로 적대시하였던 사람들이, 아이들이 눈물어린 희망을 가지게 되는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2007년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피부색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모멸과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는 민주적이고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강대국에서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어느 정도의 묵인된 백인들의 의견에 따라 차별정책은 보이지않게 일어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뿐만아니라 다민족이 살고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도 사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흑인들이 의심을 받는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오로지 피부색만으로 판단이 되는 세상에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두렵고 화가난다. 이젠 정말 오랜된 불신과 편견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총칼을 넘어 장벽을 넘고 그들이 새로이 이루어내고 있는 세상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분노와 좌절을 넘어선 그들에게는 피부색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도와준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백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그들 모두에게는 아이들이 희망이다. 어른 세대들이 잘못된 판단과 정책으로 피눈물어린 삶을 살아왔다면 현재의, 미래의 아이들은 좀 더 밝은 희망으로 세상을 채울 것이라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그들에게는 피부색이 더이상 장벽이 아닐테니까...

플라스틱 피플

플라스틱 피플
파브리스 카로 지음, 강현주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7월

'플라스틱 피플'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가능한 일이고 어쩌면 실제로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진 세상이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해졌기때문이다.
작가는 우리가 익숙해져있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고 있는 세상이 진실된 진짜 세상이라고 믿고 있냐고'...
외롭고 비참한 현실보다는 따듯하고 정겨운 모습을 가진 거짓과 가식을 믿고 싶어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초라한 생일파티, 외로운 크리스마스, 조문객이 없는 장례식을 원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럼 그 외로움을 거짓된 포근함으로 감싸 줄 인간파견업체 '피귀렉'을 만나보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이 30이 되었지만 별다른 직업도 없이 한살어린 잘난 남동생과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살고 있는 주인공은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가족들과 주위에는 희곡을 쓰고 있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있지만 그의 희곡은 1막1장에서 더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상태이다.
그런 그에게 일년 전 벼룩시장에서 만난 부부와 진정한 친구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그런대로 삶은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여전히 신문 부고란에 난 장례식마다 찾아다니며 공연을 보듯이 품평을 하는 남모르는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장례식장마다 마주치는 한 남자를 인식하게 되고 그에게서 친밀한 몸짓의 신호와 함께 건넨 말은 주인공의 지루하고 평온했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진실과 거짓이 혼동되기 시작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고,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가며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게 되고 더이상 어느 것을 믿어야할지, 또는 의심해야할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독자들 역시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그를 둘러싼 세상은 진짜 세상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세상은 진실된 모습인가? 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거짓된 아름다움과 따듯함으로 포장된 삶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아파트 지쿠세이소에는 1,2층에 아홉명의 간세대학 학생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젊은이들로 서로 각자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때론 지쿠세이소 주민답게 모여 술파티를 하기도 한다. 몇년째 대학을 다니고 있기도 하고, 만화수집가이기도 하고, 사법고시에 일찌감치 패스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인물군단인 지쿠세이소의 실질적인 방장인 기요세는 남다른 꿈을 마음 속에 키우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마라톤 선수였으나 다리를 다친 후 꿈을 접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은 채 그에게 달리기를 열망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리기 그 자체의 기쁨을 느끼듯이 순수하게 달리는 가케루를 만나게 되고 지쿠세이소 열번째 주민으로 들이게 된다.
드디어 열명이 된 지쿠세이소 주민을 향해 기요세는 하코네 역전경주를 목표를 훈련을하고 출전해보자고 제의하게 된다. 기요세의 열정에 반신반의하던 아홉명의 주민들은 점차 한번 달려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본격적인 훈련을 들어가게 된다. 육상경기의 백미인 하코네 역전 경주는 열명이 한팀이 되어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경기를 끝마쳐야 한다. 후보선수가 없는 열명의 선수들이 무모한 도전을 강행하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그들 각각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게 된다. 

'취향도 살아온 환경도, 달리는 속도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달린다는 고독한 행위를 통해 한순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이어지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2권 296쪽-

미우라 시온작가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몰입의 힘을 가졌다. 책을 읽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쿠세이소 열명의 간세대학생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때론 낙담을 하기도 하고 순수한 달리기의 기쁨을 알게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달리기를 보여주는 가케루의 모습에서 부러움과 시기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개구쟁이 쌍둥이 형제들에게서는 유쾌한 미소가 그들 모두를 부모처럼, 형처럼 감싸안는 기요세에게는 듬직함을 느끼게 한다.
원체 운동에는 소질이 희박한 나에게도 왠지 달려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저 티비에서 방영되면 그 과정은 제대로 보지않고 경기승자에게만 관심을 가졌던 나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조금만 실수하면 가차없이 서슴치않고 비판을 하면서 정작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걸쳤는지는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아무리 잘하고자하는 열망을 품고 있어도 신체가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수두룩하게 나타나고 감독과 동료들과 화합하지 못해 운동을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비단 운동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생길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경쟁도 하지만 서로에게 희망과 기쁨을 느끼면서 감싸안으며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건 스포츠 소설이기보다는 따뜻한 인간애에 중점을 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