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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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에는 8명의 작가들의 11편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급 변화하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의 영국사회를 문학 속에서 인물들의 변화된 삶과 가치관을 통해 잘 포착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가치관과 사회 속에서의 변화가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또한 남성들의 사회적, 가정적 위치의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에서 대응하는 방식들을 남녀의 모습에서 유심히 읽어보는 것도 영국 편 '가든파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특히 '가든파티'에 실린 작가 중에 로런스의 작품이 두 편이 실려 있어 반가웠는데, 남녀의 사랑과 성에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십대 후반에 몰래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도 로런스는 계급 갈등을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철저히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킨다. '가든파티'에 실린 '차표 주세요'와 '말장수의 딸'에서도 적극적이고 당찬 여성들의 모습과 변화되어 가는 남녀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차표 주세요'에서는 습관적인 행태를 보이면서도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남자 존을 향한 여성들의 당차다 못해 무시무시해지는 모습은 드라마적이다. 애니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애증이 실린 두려운 장면들은 후에 많은 소설, 영화에서 재생 반복된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하다. 여전히 그 장면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서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유품'에도 역시 모범적인 현모양처였던 아내가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품을 남편이 정리하면서 알게 되는 아내의 숨은 진실을 깨닫게 되고 경악하게 되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린다. 그림 같이 예쁘던 아내이자 동반자로서 무난했던 아내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삶의 변화된 모습에 눈치채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는 삶의 변화에 매료되고 다른 계층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피었던 그녀의 열정을 전혀 알지 못했고 무관심했다. 그녀가 남긴 유품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서 남편은 경악하게 된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정형화된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녀의 선택에 대해 여러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의 열정과 마음의 변화가 다 담겨 있던 일기장을 남편에게 유품으로 남긴 이유를 음미하게 된다.

도리싱 레씽의 소설은 읽다보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고 항상 날 선 곳에 서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장편소설 '다섯째 아이'로 인해 모성애, 책임감을 동반한 가치관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섬뜩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지붕 위의 여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날 지붕 위에서 작업을 해야만 하는 세 남자 인부들과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뜨거운 여름 날씨를 통해 최고조로 보여준다. 남자들의 벗은 여자들에 대한 이중적 시선과 인부들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자신만의 일광욕할 권리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숨 막히는 갈등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이자 이중 잣대에 담긴 무제들을 내포하고 있어 쉽사리 누구의 편을 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이 40여 년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임스의 조이스의 '구름 한 점'에서는 결혼과 아이로 인해 시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더블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인공 리틀 챈들러가 영국에서 성공한 옛 친구와의 만남에서 흥분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며 집으로 돌아와 우는 아이를 상대로 행동하는 유아적인 모습에서 그가 느끼는 좌절감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가든파티'를 읽으면 화창한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열리는 가든파티의 기대감과 화사함은 꽃향기와 어린 소녀의 아름다운 드레스와 모자에서, 들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든파티가 열리는 날에 이웃집 마부가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 사실을 어린 소녀 로라가 알게 되면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로라는 이웃마을에서 죽은 마부가 있는데도 가든파티를 강행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곧 파티의 흥겨움에 잊게 되고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마부의 집을 향해 바구니에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는 과정을 소녀의 심리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부의 죽은 시신 앞에서 소녀는 '이 모자, 용서해주세요' 라며 울먹이는 장면을 통해 혼란스럽고 삶과 죽음, 인생의 한 단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표현한다. 

영국사회의 변화된 사회상과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고 그러한 변화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제이기도해서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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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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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접하고 읽은 책들이 영미권 소설들이 아닐까한다. 그만큼 미국 문학은 친숙하고 익숙하다. 미국편에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실려 있어 더 반가웠다. 몇해 전 단편소설의 묘미와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던 시절에 우연히 읽게 된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를 읽고는 전율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남부를 배경으로 한 '에밀리에게 장미를'와 묘하게 닮은 듯 다른 남부를 배경으로 한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게 되었고  자존심이 걸린 치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그녀들의 사랑이 짙으면 짙을수록 고통이 느껴져 두 여주인공에게 남다른 애정이 생겼었다. 그래서 기억 속에,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에밀리에게 장미를'를 다시 읽어보며 그녀의 사랑을, 선택을 다시금 생각해보려 한다.   

그녀는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던 노동자 출신의 호머 배런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비록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그' 일지라도   말이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그녀가 호머 베런과 데이트를 시작하고 사랑을 느끼던 모습과 호머 배런이 사라진 후 남은 세월을 몰락한 남부를 상징하듯 무너져 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녀의 외모와 머리카락의 색으로 표현해준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서 그녀의 변해가던 모습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악과 전율이 따르게 되고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경악스러웠고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이 떠오르게 하였다. 그저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사랑의 모습은 한 단면이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소름돋게 알려준다.  

과연 그녀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올렌카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욕이었을까? 하는 여러 상념들이 동시에 들게 해주는 작품이라 한동안 모든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에밀리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녀가 세월 속에 그녀의 사랑 속에 가두어 두었던 사랑은 무서우리만큼 그녀의 집념이 보이지만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다. 아마도 사랑은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밀리와 아멜리아 그녀들의 사랑처럼 말이다.

 
그밖에 너무나 기억하고 싶은 주옥같은 단편들이 가득한데, 헨리 제임스의 '진품'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처음 읽게 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필경사 바틀비'가 마음에 남는다. 그 외의 작품들도 미국 단편 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어 읽는 동안 즐거웠다. 작가 헨리 제임스의 '진품'은 자신들의 '진품'임을 강조하며 삽화가에 나타난 가련한 부분의 이야기를 다루며 진짜와 가짜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한계와 경계선을 보여주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모습과 진짜임을 강조하다보니, 스스로에 덫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스스로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제대로 공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 역시 남편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었다.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어린 시절 공포의 결정체가 되었던 작품이었고 '필경사 바틀비'는 다소의 짜증과 애정이 동시에 생기게 만든 작품이었다.  

사실 세계문학 미국편은 가장 많은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반가웠었다. 비록 작가들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단편을 통해서 작가들과 고전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나에겐 큰 수확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작품들도 단편의 함축된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오래도록 읽고 또 읽고 싶어졌고 이젠 단편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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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 프랑스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드니 디드로 외 지음, 이규현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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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단편 소설 14편이 수록되어 있고 각기 다른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묘한 단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작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처음 작품을 접해본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조금은 낯설기도 했고 프랑스 고전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현대문학과는 또 다른 색다른 단편 읽기의 묘미와 프랑스 단편 특유의 상상력을 맘껏 만날 수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14편 모두 독창적이고 놀라운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몇 편은 더 시선을 끌어 소개해본다. 발자끄의 '붉은 여인숙'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로 살인자가 참석한 만찬에서 이야기는 독일인 헤르만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로시작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과 실종으로 사건은 급 마무리되었음을 하소연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이 아니고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살인자를 알고 있는 화자는 순간순간 살인자로 지목된 자의 낯빛을 확인하며 조여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자는 심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살인자의 딸을 사랑하게 된 화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를 납득하고 합리화시키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맞게 된다.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알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야 했던 살인자와 끝까지 친구를 믿으려하며 죽어간 초급 군의관의 모습과 살인자를 알고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싶어 하면서도 그의 딸을 사랑하는 이유로 갈등하게 되는 화자의 모습 속에서 현실에 처한 인간들의 각기 다른 행동 유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고띠에의 '죽은 여인의 사랑'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순진한 시골사제 로뮈알드가 신비로운 미모의 여성 끌라리몽드의 유혹에 반하게 되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치명적인 사랑은 시작된다. 생시 같은 꿈과 비현실적인 현실 사이에서 사제 로뮈알드는 깊은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고 치명적인 그녀와 사제의 본분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예전부터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존재 흡혈귀와의 사랑을 작가는 그녀의 모습과 방을 표현하면서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한 보여주며 사제가 마음을 빼앗기는 심리를 보여준다. 또한 그녀와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깊고 깊은 숲을 달려 나오는 장면에서는 시각과 청각을 열리는 느낌을 들며 여전히 가슴 속에서 최고조의 갈등을 하는 사제의 심리를 섬세함과 역동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어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쥘리앙 그라끄의 '코프튀아 왕'은 깊은 친분을 가진 관계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친분을 유지하던 친구의 초대로 외딴 저택에 도착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낯설음과 호기심은 화자를 이끌게 되고 저택에서 안주인 같은 하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녀 자체가 흐릿한 그림자 속에 잠겨 있고 화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며 저택의 침묵 속으로 그녀의 침묵으로 가라앉게 된다. 하룻밤 동안 화자가 겪게 되는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의식의 흐름을 통해 깊은 침묵과 함께 초의 불꽃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어둠과 극렬하게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화자는 밖의 세상과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듯 느낌을 받으며 현실과 대비된다. 화자는 시종일관 안주인 같은 하녀에게 이끌리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게 된다. 하지만 선명하다 못해 거울 같은 현실의 아침은 오게 되고 화자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녀를, 저택을, 하룻밤의 허구의 세계를 떠나 밝은 세상으로 걸어나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묘하게 마음을 끄는 작품이기도 했고 읽고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는다. 빛과 그림자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오래된 저택에서 발걸음 소리가 묻히는 카펫, 늙은 왕과 어린 거지 소녀의 그림인 '코프튀아 왕'의 그림, 오지 않는 친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하녀가 주가 되는 이야기는 특별한 갈등도 사건도 없다. 그저 현실과는 괴리되어 있는 저택에서의 하룻밤이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큰 결정을 내리고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은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다음에 다시 꼭 읽어보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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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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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최근 작이다 라는 정보만 가진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작가 오에 겐자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왠지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들의 글들은 어렵고 난해할 거라는 생각에 더 나중에, 더 나중에 읽어볼래 했었던 것 같다.  

우선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을 끈다. 포의 아름다웠던 여인 하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아내를 그리워하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했고 포와 그녀의 삶의 전체적인 비극적인 요소가 제목에서 감지되어 궁금증을 더했다. 이야기는 화자 자신으로 등장하는 노년의 작가가 30년 만에 나타난 대학 시절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고모리가 찾아와 30년 전에 무산되어버린 영화제작과 그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가를 30년 전으로 이끈다.  

30년 전 은사의 죽음으로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던 작가에게 고모리는 왕년의 아역 스타 사쿠라와 함께 찾아와 전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작가는 사쿠라를 본 순간 자신의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영화 '애너벨 리'를 떠올리게 되고 하얀 관의를 입고 누워있던 그녀를 기억해냈다. 영화제작과정에 적극적이던 사쿠라를 알게 되면 될수록 그녀가 억눌린 과거의 기억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와 사쿠라는 그 고통의 원인을 근대 이후 일본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한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작품을 통해 치유의 길을 걷게 된다.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에서 녹녹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했던 여배우 사쿠라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사쿠라의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기억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고 그녀가 받을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분노의 마음에 읽는 동안에도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그녀 사쿠라는 나약하지 않았다. 30년 전에 꿈꾸었던 작가의 시나리오를 통해, 그녀가 겪어야 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날들의 진실의 고통을 그 시절 또한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연극 '메이스케 어머니'로 강하고 당당하게 '환생'한다.  

사쿠라, 그녀의 치유의 과정은 길고 모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시간과 기억에서 벗어난 그녀를 통해 고통의 애너벨 리는 싸늘하게 죽었었지만 또 다른 애너벨 리는 새롭게 강하게 태어났음을 느끼게 해준다. 오에 겐자부로의 담담한 어조로 듣게 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그리 쉽게 다가온 글은 아니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애너벨 리를 통해 바라 본 사쿠라와 일본 전후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고 노작가 자신을 통해 문학의 길을 통해 보여 준 주제가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후에 시간이 더 지나 다시 읽어보고 그 함축된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게 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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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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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았고 그 결핍을 느끼지 못한 채, 스물 아홉의 된 주인공은 갑자기 아니, 서서히 그의 마음 속에 '아버지'의 존재는 커져가기 시작했고 그의 부재와 단절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역할을 철저히 해낸 어머니 보호아래 별다른 갈등없이 자라 온 한명재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핵에 걸리게 되어 요양차 서울근교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은퇴한 심리학 노교수에 의해 자신이 가진 결핍의 감정과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그후 그는 무작정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인구 3만의 도시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게 된다. 아버지를 만나면 어쩌겠다는 어떠한 계획도 없이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인 '그'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거부'는 예상했던 거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 한명재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했고 항상 철저한 부재일 때조차 그를 억압했던 아버지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로 나아가는 글쓰기 행위로 나타나게 되고 객혈로 확인받게 된다. 

작가 이승우의 글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받은 첫 느낌은 날 선 서늘한 느낌이라고 할까...길지 않은 글 속에 담긴 무거운 주제는 잘 읽히는 글 읽기에 비해 묵직함을 주면서도 서늘한 바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중반부부터는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말이다. 결국 난 '한 낮의 시선'에서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느낀 셈인데, 사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나 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냥 내가 느낀 만큼의 작가 이승우를 만난 것으로 우선은 만족하고 싶다. 주인공인 아들이 아버지의 거부의 시선에서 느꼈을 그 뜨거운 한 낮의 시선을 칼 날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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