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보거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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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최근에 몇 권의 보물 같은 책들을 발견해서 내심 행복해 있는 와중에 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데샹보 거리'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읽기 전에는 제목만 보고 작가에 대한 빈약한 정보만으로 섣부른 선입견을 가지며 심각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하는 소설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첫 장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러한 모든 말도 안 되는 선입견은 저 멀리 사라지고 완전 반해버렸다. 작가가 들려주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고 많은 공감을 하게 하며 나에게 가장 큰 보물같은 책이 되었다.
대가족 속에서 자란 작가는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의 작은 거리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18편의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어린 소녀의 시선에서 십대 소녀의 시선으로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에 대해 추억하고 지금의 나를 되돌아본다. 병약했던 늦둥이 막내였던 주인공은 다 큰 형제들과의 추억과 항상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꿈 많고 모험심 가득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날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일터에서는 활기찼던 아버지였지만 집 안에서는 막중한 책임감에 눌러 우울해하셨던 아버지, 사랑을 향해, 주님을 향해 떠나야만 했던 자매들에 대한 기억과 소소한 이야기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18편의 주옥같은 에피소드 중에 가장 많이 웃고 기억에 남았던 일화는 '노란 리본 자락'과 ' 집 나온 여자들'이었다. '노란 리본 자락'은 집 안에 공주였던 언니 오데트 언니와의 추억이다. 원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은 조금은 우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좋은 것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다. 주인공 역시 언니가 출입을 금지시켰던 언니의 방과 보물 상자는 큰 매혹의 대상이 된다. 그러던 중 언니의 서랍에서 조금 삐죽 나와 있던 노란 리본 자락은 화자에게 황홀 그 자체가 되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 언니에게 그 노란 리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내보이지만 언니는 모른 척하며 오히려 방을 뒤진 것이 아니냐는 억울한 누명을 안겨 준다. 하지만 얼마 후 공주였던 언니가 주님을 모시기 위해 수녀원으로 떠나게 된다. 이별의 순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도 주인공 꼬마 소녀는 언니에게 끝까지 자신의 소망을 말한다. "데데트....... 데데트....... 언니 노란 리본 있잖아....... 언니가 괜찮다면......." 하면서 말이다. 그 장면에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찔려하면서도 즐거웠다.
나 역시 오빠 둘과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막내이자 외동딸인지라 오빠들의 숱한 장난과 심부름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특히 작은 오빠가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고 가끔 내가 눈물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치기도 했다. 그러면 억울한 나는 당연 아빠가 퇴근하시는 시간에 맞춰서 눈물 연기를 한바탕 할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을 눈치 챈 오빠는 아빠의 야단과 나의 오랜 눈물 연기가 두려워 막판 회유작전을 썼다. "너 뭐 갖고 싶은데?" 하고 말이다. 그럼 훌쩍거리며 그 동안 눈여겨보던 오빠 물건 중 하나를 고른다. "새로 산 파란 샤프, 나 줘" 하면서 말이다. 그럼 분해하는 표정과 에잇! 하는 심정이 담뿍 담긴 채 그 샤프를 나에게 쥐어 주었다. 울지 말라고.......
'집 나온 여자들'은 소녀의 감성과 모험에 대한 갈망 가득했던 작가의 엄마에 대한 추억이다. 읽으면서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따뜻하고 포근한 문체는 엄마와 닮은꼴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공무원에게 시집 와 캐나다 오지나 마찬가지인 '데샹보 거리'에 거주하게 되고 많은 자녀들을 키워가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마음에 품어왔던 소망과 꿈들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모험만은 작은 불씨처럼 마음속에 갖고 있던 엄마는 막내딸과 함께 짧은 모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저 엄마로만 바라보았던 엄마 역시 꿈많던 소녀였고 여인이었음을 종종 잊게 된다.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시기에 읽어서인지 더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해졌다.
그 밖에도 모든 이야기들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고 어린 시절 사물을 보며 혼자 상상했던 재미난 이야기와 소녀가 성장하여 밥벌이를 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까지 한 편, 한 편이 다 주옥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것만 같은 '데샹보 거리'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너무나 멋진 작가를 만나게 되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