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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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는 전장에서 양쪽이 대치 상태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의해서도 점령되지 않은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넘치는 무인 지대를 말한다라고 한다. 그러한 점은 주인공들이 겪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삶에 있어서 부딪치는 문제들은 항상 선택을 강요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실 결정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고 마음의 짐이 된다. 여기 17살의 제이콥 토드는 바로 그 자리 노 맨스 랜드 중심에 서 있게 되고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서서 새로운 환경, 사람들, 다양한 가치관들에 흔들리게 되고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때론 담담하게 여러 인물들과 시공간을 넘어 풀어내고 있다. 

소설은 두 명의 제이콥과 헤르트라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 명의 제이콥은 현재를, 또 다른 제이콥은 1944년을 이야기한다. 그 둘과 깊게 연관된 여인 헤르트라위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시각과 관념의 차이, 변해진 가치관의 차이를 그들을 통해 보여준다. 현재의 제이콥은 17살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할머니 대신 영국의 집을 떠나 며칠 동안 네덜란드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제이콥 할아버지가 2차 세계 대전 중 부상을 당했을 때 그를 성심성의껏 돌보아주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께 유품을 전해주고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지내는 분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헤르트라위 할머니는 불치병에 걸려 안락사를 앞두고 있고 다른 가족들은 제이콥이 오는 것 조차 모르고 있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제이콥은 당황스럽고 어찌해할지 모르게 된다. 그런 와중에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고 점점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곧 묘한 신비한 분위기의 톤을 만나게 되고 친절한 알마 할머니,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손자 단, 매력적이고 당찬 소녀 힐레를 만나게 되면서 안개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던 진짜 암스테르담을 만나게 되고 제이콥은 자신다움을 차츰차츰 찾아간다.

'노 맨스 랜드'는 은근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청아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어 그 매력을 더 해주고  있다.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에 한 곳인 네덜란드에서도 동성애자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바람의 영혼을 닮은 톤, 그런 톤을 사랑하고 또 여자친구를 동시에 사랑하고 자신이 정한 삶의 가치관에 확고한 확신을 갖고 있는 단, 어리숙한 제이콥을 이끌어주는 똑똑한 소녀 힐레의 모습, 혼란과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갈등을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믿고자하는 제이콥을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삶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의견과 가치관의 충돌을 겪는 문제들을 주 인물들의 다양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고 거기에 담긴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노 맨스 랜드'는 청춘이 머무는 곳이자 사랑과 영혼이 머무는 곳이고 과거와 미래가 담긴 현재가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노 맨스 랜드'는 나에게 청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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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셀러브리티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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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다. 특별히 아름답거나 크나큰 재능이 비록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욕망을 작가는 주인공 백이현을 통해서 감칠 맛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셀러브리티' 책을 처음 접했을때 또 하나의 많고 많은 칙릿 소설이구나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여자들의 어린시절부터 길고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욕망을 재미나게,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어 금방 읽을 수 있다.  

'셀러브리티'의 주인공들인 백이현은 공주가 나오는 숱한 그림책을 읽고 자란 아이답게 아름다운 공주님을 꿈꾸며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자라왔다. 하지만 자신이 공주가 될 가능성도 왕자님이 나타날 가능성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함을 깨닫기 시작한 27살의 가십잡지 기자가 되었고 그 대신 셀러브리티를 꿈꾸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 유상현 한류스타로 숱한 스캔들 메이커로 알려진 까칠한 남자이고 셀러브리티를 꿈꾸는 모든 여성들에게 멋진 왕자님이다. 그런 그에게 감추었던 과거가 있고 백이현 기자와 얽히게 되면서 그들의 사랑도 일도 로맨틱하게 때론 현실적으로 전개가 된다. 

'셀러브리티'는 한 편의 로맨틱한 드라마를 본 것 같기도 하고 학창시절 가슴 설레며 읽었던 순정만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공주를 꿈꾸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성이 어느 날 멋진 왕자님을 만나 인생역전을 해서 멋지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그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남이 만들어 준 인생은 온전한 자신의 인생이 아님을 많은 셀러브리티를 예로 들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셀러브리티를 꿈꾼다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영리하게 이야기해준다. 그 점에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아 안도가 된다고나 할까. 아직까지도 상대를 잘 만나 인생이 확 바뀌고 싶은 많은 공주, 왕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작가는 꿈은 꾸되 스스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동안 재미있었다. 모든 소설이 다 문학적이고 심각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이렇게 가볍게 봄바람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셀러브리티'도 좋다. 재미있고 유쾌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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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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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그래서 사실 중간쯤에 그만 읽고 싶기도 했었다. 천지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아이들의 악의 없는 호응에 진짜 악의적인 행동까지 망설이지 않고 저질렀던 화연이가 미워서 속이 상해 울었고 천지의 고통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엄마와 언니 만지의 슬픔이 느껴져 울었다.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한데 어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고 묻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천지가 하루하루를 겪었을 마음 고생을 생각하니, 참고 견디라고만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무섭게 다가왔다. 아이들은 하루를 거의 학교에서 지내다시피해야 하는데, 믿고 의지해야 할 친구들이 적이 되어 다가 온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버티라고만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막막해서 한숨이 나왔고 어떤 뚜렷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아직도 수많은 천지가 학교 외진 곳에서 마음을 다치고 또 다치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숨이 답답해져온다. 

열네 살 평범한 소녀라고 믿었던 천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얌전하고 말이 없던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던 언니 만지는 동생의 학교생활을 역 추적하면서 천지의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화연이가 근래 몇 년 동안 천지를 지능적으로 괴롭혀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악하게 된다. 그저 말이 없고 꼼꼼했던 동생이라고만 생각했었던 천지가 때론 귀찮기도 해서 무심히 대했던 만지는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자신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천지가 야속하기도 하고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자신에게 크나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엄마와 만지는 우연히 천지가 남긴 다섯 개의 붉은 색 털실뭉치에 적힌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다섯 개의 털실 뭉치가 있음을 알게 되고 찾아 나서게 된다. 화연 역시 죄책감과 친구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난에 방황하게 되고 마음의 길을 잃게 된다. 천지가 남긴 단서를 찾아 천지의 심리 상태와 생활을 이제야 퍼즐 맞추듯이 알게 된 만지는 천지의 고통을 깨닫게 되고 우아한 거짓말 속에 감추어진 슬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우아한 거짓말'은 너무나 빨리 떠나 버린 열네 살 소녀의 자살로 인해 삶 속에 감추어진 우아한 거짓말들과 우아한 거짓말 속에 너무나 깊게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저 무심하게 보고 지나쳤던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빨리 알아주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전하는 슬픈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이야기의 몰입을 돕고 아이들의 방황과 마음 상태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작가의 전작 '완득이'에서 희망을 보았다면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아픔을 느꼈다. 천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고 미처 알지 못해서 더 미안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가지 붉은 털실뭉치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천지가 남긴 이야기들과 만지와 화연이가 새롭게 시작할 현재와 미래가 그리 어둡다고만은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따뜻한 안부를 묻고 안색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마음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무모한 기대와 희망을 걸게 한다. 많이 울고 가슴 아팠지만 마음의 끈을 결코 놓고 싶지 않게 만들었던 '우아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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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 송
질 르루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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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픽션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인물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일 수밖에 없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실제 인물들인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불리는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영원한 뮤즈 아내 젤다 세이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그들의 삶을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모습은 겹쳐 보이고 또 동시에 소설 속 먼 그 곳의 삶을 사는 종이인형처럼 보인다. 

피츠제럴드는 소설가의 야망을 지닌 멋진 청년이었고 그의 뮤즈 젤다 세이어는 남부 명문가문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와 그녀는 20년대를 주름잡던 멋진 커플이었고 최초의 셀러브리티였다. 최고의 인기와 스캔들로 시대를 풍미했고 그들의 멋지고 화려한 시대는 최고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던 모든 화려한 모습 뒤에는 빛과 그림자처럼 우울함과 냉대, 질투심, 경쟁심으로 인한 어둠이 있었고 그들은 최고점에서 점차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자로 젤다는 정신병으로 함께 파국의 길을 걷게 된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몰락은 성공의 정점 뒤에 찾아 왔기에 더 큰 시련을 다가왔고 그들의 관계 또한 흔들리게 된다.  

젤다는 열정을 가슴에 품은 멋진 여성이었음에도 지금까지도 그녀의 진가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피츠제럴드의 영감을 주는 뮤즈로서만 인정받고 있고 있으며 그를 궁지에 몰고 간 여성으로 남게 되었다. 후대에 와서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은 복권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는 점에 비하면 그녀의 삶은 아직까지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부분에 작가는 촛점을 맞추고 젤다 세이어를 세상에 다시 소개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있었던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둘은 함께 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더 빛났고 화려했던 별들이었다. 또한 그 둘은 함께였기에 지독한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다보면 금발 머리의 남부 명문가의 딸이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젤다 세이어를 알고 있다면 단박에 알 수 있으리만큼 여러 작품 속에 젤다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과연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의 삶을 소설 속에,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야기 속에 등장시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일을 말이다. 아마도 젤다였기에 버티었고 젤다였기에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라 갈수 있게 만들었고 그녀였기에 파멸의 길을 함께 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앨라배마 송'은 작가가 강조했다시피 픽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숨겨진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결코 인정받지 못했던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젤다 세이어 모습에서, 거의 모든 작품 속 뮤즈로 아내 젤다를 등장시킴로서 그녀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냉혹한 면을 지닌 모습을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천재 작가 뒤에서 뮤즈로만 남아야 했고 말년에는 그를 궁지에 몬 여자로 낙인 찍혔던 여자 젤다 세이어의 시각에서 바라본 그들의 삶을 다룬 소설 '앨라배마 송'은 지독히도 아름답고 지독히도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세월에 가려진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당대를 뒤흔들었던 그들의 삶에 조금은 늦은 그래서 슬픈 찬사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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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보거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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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몇 권의 보물 같은 책들을 발견해서 내심 행복해 있는 와중에 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데샹보 거리'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읽기 전에는 제목만 보고 작가에 대한 빈약한 정보만으로 섣부른 선입견을 가지며 심각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하는 소설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첫 장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러한 모든 말도 안 되는 선입견은 저 멀리 사라지고 완전 반해버렸다. 작가가 들려주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고 많은 공감을 하게 하며 나에게 가장 큰 보물같은 책이 되었다.

대가족 속에서 자란 작가는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의 작은 거리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18편의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어린 소녀의 시선에서 십대 소녀의 시선으로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에 대해 추억하고 지금의 나를 되돌아본다. 병약했던 늦둥이 막내였던 주인공은 다 큰 형제들과의 추억과 항상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꿈 많고 모험심 가득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날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일터에서는 활기찼던 아버지였지만 집 안에서는 막중한 책임감에 눌러 우울해하셨던 아버지, 사랑을 향해, 주님을 향해 떠나야만 했던 자매들에 대한 기억과 소소한 이야기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18편의 주옥같은 에피소드 중에 가장 많이 웃고 기억에 남았던 일화는 '노란 리본 자락'과 ' 집 나온 여자들'이었다. '노란 리본 자락'은 집 안에 공주였던 언니 오데트 언니와의 추억이다. 원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은 조금은 우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좋은 것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다. 주인공 역시 언니가 출입을 금지시켰던 언니의 방과 보물 상자는 큰 매혹의 대상이 된다. 그러던 중 언니의 서랍에서 조금 삐죽 나와 있던 노란 리본 자락은 화자에게 황홀 그 자체가 되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 언니에게 그 노란 리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내보이지만 언니는 모른 척하며 오히려 방을 뒤진 것이 아니냐는 억울한 누명을 안겨 준다. 하지만 얼마 후 공주였던 언니가 주님을 모시기 위해 수녀원으로 떠나게 된다. 이별의 순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도 주인공 꼬마 소녀는 언니에게 끝까지 자신의 소망을 말한다. "데데트....... 데데트....... 언니 노란 리본 있잖아....... 언니가 괜찮다면......." 하면서 말이다. 그 장면에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찔려하면서도 즐거웠다.  

나 역시 오빠 둘과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막내이자 외동딸인지라 오빠들의 숱한 장난과 심부름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특히 작은 오빠가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고 가끔 내가 눈물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치기도 했다. 그러면 억울한 나는 당연 아빠가 퇴근하시는 시간에 맞춰서 눈물 연기를 한바탕 할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을 눈치 챈 오빠는 아빠의 야단과 나의 오랜 눈물 연기가 두려워 막판 회유작전을 썼다. "너 뭐 갖고 싶은데?" 하고 말이다. 그럼 훌쩍거리며 그 동안 눈여겨보던 오빠 물건 중 하나를 고른다. "새로 산 파란 샤프, 나 줘" 하면서 말이다. 그럼 분해하는 표정과 에잇! 하는 심정이 담뿍 담긴 채 그 샤프를 나에게 쥐어 주었다. 울지 말라고.......

'집 나온 여자들'은 소녀의 감성과 모험에 대한 갈망 가득했던 작가의 엄마에 대한 추억이다. 읽으면서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따뜻하고 포근한 문체는 엄마와 닮은꼴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공무원에게 시집 와 캐나다 오지나 마찬가지인 '데샹보 거리'에 거주하게 되고 많은 자녀들을 키워가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마음에 품어왔던 소망과 꿈들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모험만은 작은 불씨처럼 마음속에 갖고 있던 엄마는 막내딸과 함께 짧은 모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저 엄마로만 바라보았던 엄마 역시 꿈많던 소녀였고 여인이었음을 종종 잊게 된다.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시기에 읽어서인지 더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해졌다.  

그 밖에도 모든 이야기들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고 어린 시절 사물을 보며 혼자 상상했던 재미난 이야기와 소녀가 성장하여 밥벌이를 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까지 한 편, 한 편이 다 주옥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것만 같은 '데샹보 거리'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너무나 멋진 작가를 만나게 되어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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