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만 하더라도 삼성에 비판적인 학자, 언론이 많았다. 오히려 보수경제학자들이 삼성을 많이 비판했다. 중공업 등 한국산업에서의 최초라는 문을 게속 열어간 현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시장을 뚫어낸 대우와 달리 삼성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산업만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삼성의 규모에 비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이 지적은 90년대나 2010년대나 변한 것이 없는데, 이제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삼성이 대한민국 수출의 몇 %를 차지하고, 세금의 얼마를 담당하는지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삼성 산업의 특성상 국내산업 영향이이 적다. 한예를 들어보자면 삼성이 만드는 스마트폰의 국산화율은 30%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핵심기술, 부품은 전부 수입한다. 산업유발효과가 현기차 등에 비해 턱없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아무도 삼성을 비판하지 않는다.  


삼성만을 줄기차게 파온 저자는 삼성의 성장과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책에 따르면 삼성의 시작은 미약했다. 일제시대 허가받은 이만 할 수 있었던 양조업으로 돈을 벌었고, 일제 착취의 수단이었던 조선척식은행과의 친분으로 조선척식은행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며 땅장사로 돈을 벌었다. 


삼성상회의 자본금은 3만원이었다. .... 결코 적은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가장 성공을 거둔 금융자본가 민규식, 경성방직의 김연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과 비교하면 이병철의 삼성상회는 자본금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

이병철은 삼성상회가 있는 대구를 기반으로 권력을 확보해나갔다. 해방 직후부터 을유회라는 사업가 조직을 결성해 이익을 도모했다. 그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구 지방지 〈조선민보>를 인수해 <대구민보>로 개칭하고 언론 사업을 벌였다. 기업가의 조직화와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은 정치적 힘을 행사하고 정치적 커넥션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이병철은 이때 이미 간파 했던 것이다. 삼성은 기업가조직과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의 영향력을 앞세워 정치세력과 어렵지 않게 연계할수 있었다. ... 

한편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구의 10월 인민항쟁이 진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만이 대구를 방문했다. 이병철을 포함해 30명의 대구 기업가들은 왜관까지 나가 이승만을 환영했다. 이병철은 자신의 아버지와 이승만과의 인연을 내세워 이승만에게 접근했다. 이병철의 아버지와 이승만은 한때 기독교 청년 활동을 함께한 동갑내기였다. 이병철과 이승만의 정치적 연결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승만의 대구 방문을 계기로 이병철은 서울에서 이승만을 다시 만나면서 정치적 연줄을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급기야 이병철은 이승만의 권유로 삼성물산공사를 서울에 세우게 된다. 이는 지방 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이 중앙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세력과 커넥션을 형성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30-34쪽)


이병철은 이승만과의 관계를 통해 지금처럼 영향력 있는 대기업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쟁없이 원조물자 수입, 판매를 독접하면서.  


원조물자를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 무역 회사가 필요했다. 한국 시장경제의 출발점인 무역 회사는 성격상 상업자본이었고, 원조 물자가 상업자본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물산공사도 원조 물자를 매매하는 무역 회사였다. 1948년 서울에 세워진 삼성물산공사는 1년 반만에 당대 최고의 무역 회사가 되었다. 전쟁으로 산업 시설이 파괴돼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양조업의 이윤보전에 힘입어 1951년 삼성물산주식회사로 재건되었다. 전시에는 고철을 일본에 수출하고 비료와 설탕을 수입해 부 를 축적했다. 또한 회사 안에 제당사무소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훗 날 제일제당이 되었다. 삼성은 삼성물산을 발판 삼아제일제당, 제일제분, 제일모직 등 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들 삼성의 주력 산업은 수입 대체 산업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시장을 독점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다. 원조 물자를 수입해 간단히 가공한 뒤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기술보다는 원조 물자 배분 권한이 있는 정치권력과 의 커넥션이 필요했다. 이병철은 일찍이 그 방면의 선두주자였다 제일모직은 모방직산업의 시설과 시장 규모의 60%를 지배했고 제일제분을 포함한 3대 재벌은 제분업 시설 용량의 약 절반을 차 했다. 제당업은 삼성의 제일제당을 포함한 4대 재벌이 독점했다. 제일제당은 그중 2/3 이상의 원당을 처리했다. 제일이라는 기업 명칭처럼 삼성은 최고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다. 이 모든 것이 미국으로부터 쉽게 원조 물자를 제공받은 덕분이었고 원조 물자의 배분권을 소유한 정치권력과의 커넥션 덕분이었다. (39쪽)


삼성은 자금확보에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일제시대에는 조선척식은행과의 관계로 해방후에는 정부지원하에 원조자금으로, 결국에는 금융업까지 손에 넣게 된다. 


기업의 물적 토대를 단단하게 해준 또 다른 요소는 특혜융자였다. 해방 뒤의 악성 인플레이션 아래서 특혜융자는 융자라기보다 무더기 돈을 공짜로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혜융자로 돈을 불리는 일은 아주 쉬었다. 이를테면 특혜융자를 받은 기업은 융자받은 돈으로 시설투자를 하기보다 원조 물자나 원자재를 사는 일에 몰두했다. 3년의 상환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올랐고 덕분에 사재기해둔 원조 물자나 원자재 일부만 처분 해도 충분히 융자금을 갚을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고스란히 수익으로 남았다. 삼성도 특혜융자를 받는 데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삼성은 이승만 정권의 도움으로 일찍이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인 소유에서 정부로 귀속된 은행 주식을 공매했다. 은행 주식 불하에서 이병철과 이승만의 개인적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최초 적산 기업 불하에서 큰 재미를 못 보았던 삼성은 은행 부문에서는 남달랐다.1954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한 은 행 민영화 결과 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 등이 이병철에게 넘어갔고 삼성은 금융 자원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병철은 은행에 대한 정부귀속주식 공매에 응찰해 한일은행으로 바뀐 흥업은행주의 83%를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또한 홍업은행이 상업은행주를 33% 가량 갖고 있었으므로 상업은행의 실제 최대 주주였다. 곧이어 그는 조흥은행주의 55%를 매입했다. 결국 주요 시중 은행 주식의 거의 절반이 이병철 소유가 되었다. 


이어 이병철은 한국화재보험을 인수했고 나아가 대주주가 된 은행이 관리하던 기업들을 인수했다. 호남비료의 45%, 한국타이어의 50%, 삼척시멘트의 70%에 해당하는 주식이 이병철에게 넘어 갔다. 금융 기관을 장악한 삼성은 거칠 것이 없었다.(44쪽)


최근 삼성의 행보를 보면서 해방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병철은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적 자본가였다. 원조 물자와 원조 자금에 의존해서 성장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상 기업가 정신 보다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기업 간 경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열쇠가 되었다. 원조 물자와 원조 자금을 배분하는 권한은 정치권력에게 있었고 정경유착은 필연이었다.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한 구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인물이 바로 이병철이었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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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읽지 않았던 제주에 대한 책들을 찾아봤다. 최근 나오는 여행책들은 그동안 잘 안 알려진 곳을 알려주며, '여기가 핫 한 곳이야', '여기는 몰랐지' 류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맛집에 대한 책도 나오고, 무크지 형식의 잡지 <섬데이 제주>나 <리얼 매거진 제주>도 있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드로잉 책이다. 물론 제주 드로잉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올드독의 제주일기>,<제주 로망 다이어리>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드로잉 책이 눈에 들어온 건 기존의 드로잉 책이 글에 대한 보조라면 <드로잉 제주>나 <제주를 그리다>는 그림이 주가 되고, 글을 거드는 느낌이다. 



<내 마음의 제주>가 보여주는 제주 채색드로잉이다. 

   


'나의 당신의 삶이 수국수국하기를'이라는 말로 유명한 <제주를 그리다>이다. 


  


<제주 드로잉>은 또 다른 스타일로 제주를 그려낸다. 



<제주 담다, 제주 닮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스케치로 담아내고, 문화를 담아낸다. 


최근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많아 드로잉 책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에세이를 읽는 기분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제주를 조금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단점은 있다. 본인들은 제주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관찰자, 제주이민자의 시각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를 여러번 다녀왔다면 제주의 다른 모습을 보기위해 읽어 봄직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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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14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국수국하기를....이 문장에 담긴 감상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우선 <제주를 그리다>부터 읽어야겠어요.ㅎ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雨香 2017-08-16 08:44   좋아요 0 | URL
저자분이 운영하시는 홈페이지 http://art-ye.com/ 에 가시면 일부 글도 올려져 있습니다. ^^
10여년전에는 사진 예세이를 종종 읽었는데, 요즘은 드로잉, 스케치에 눈길이 더 갑니다.
 

한 3년전부터는 대강의 제주 지도가 머리에 있다. 올해까지 해서 열번쯤 제주를 다녀왔다. 최근 3년간은 한여름에 제주를 찾았고, 그전에는 2년동안 네번 정도 제주를 찾은 덕이다. 


  어딘가를 가겠다고 계획하면 그 곳에 대한 책을 읽는데, 제주는 지금까지 다섯차레 정도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드로잉 중심의 제주책을 읽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제주를 갈때면 항상 들춰보는 책이 있다. <신정일의 새로쓰는 택리지 - 제주도>와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 <한반도 자연사기행> 그리고 <제주도 지질여행>이다. 

  

 이번에는 표선 근처에서 묵었는데, 아쉽게도 표선에 대해서는 <신정일의 새로쓰는 택리지>에서 별도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제주는 자체가 화산섬이라 지질을 공부하기에 그만이다. 특히 성산일출봉, 용머리해안 등은 지질을 공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2년전부터는 의식적으로 곶자왈을 찾고 있다. 개발열풍에 휩싸인 제주에서 곶자왈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는 우려때문이다. 

 

 아쉽게도 2년전에는 네비가 주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 덕에 건너뛰었지만, 작년에는 에코랜드에 있는 동쪽 곶자왈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엔 다시 화순곶자왈行을 했다. 

 

 처음엔 우리밖에 없어서 조금은 걱정스러웠는데, 결국엔 한커플만이 화순 곶자왈에 있었다.  



곶자왈은 '곶' 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로서, 곶은 숲을 뜻하 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 에 해당한다. 곶자왈은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거나, 숯을 만들고,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던 곳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불모지 혹은 토지이용 측 면에서 활용가치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낮은 땅으로 인식되었다. 

곶자왈내 용암이 만들어 낸 요철지형은 지하수 함양은 물론 다양 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이루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

지질학적으로 곶자왈지대는 제주도의 화산활동 중 최후기 단계인 약 10 만 년에서 3만년 전 화구로 부터 분출된 분석과 용암 그리고 분석구의 사면 붕괴로 인해 만들어 진 용암 지형으로, 지표 하로는 평균 3~10 m 두께를 갖는 용암층이 마치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여 있고, 용암층 사이 사 이에는 두께 1 m 내외의 고토양층이나 화산쇄설물 퇴적층이 분포하는 지 하 지질구조를 이루고 있다. 


곶자왈을 구성하는 용암류는 아아 용암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주도 북동부와 서부 해안가에서 흔히 관찰되는 파호이호이 용암류를 포함한다. 곶자왈은 용암류의 성질, 유동 형태 그리고 용암이 냉각되는 동안 형성된 다양한 절리 및 함몰 지형 형태, 그 이후 겪게 된 풍화 침식 그리고 식생의 발달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즉, 곶자왈은 외견상 '지형 지질 측면에서 보면 토양이 거의 없거나 그 토층의 심도가 낮으며, 화산 분화시 화구(오름)로부터 흘러 나와 굳어진 용암의 크고 작은 암괴가 요철 지형을 이루고 있고 , 식생 측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양치식물과 함께 나무(자연림)와 가시덩굴이 혼합 식생하고 있는 자연숲지'를 지칭한다.(111-113쪽, 제주도 지질여행) 


           

*제주 가기전 제주를 주제로 책을 읽고 있다.

 첫번째는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돌배게의 한려수도와 제주도 그리고 새로쓰는 택리지 제주도 편이었고,

 두번째는 제주역사기행, 주강현의 제주기행 등이었고,

 세번째는 제주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책들이었고,

 네번째로 음식을 다룬 책들을 좀 들춰봤다. 

 이번에는 최근 나온 제주에 대한 책, 드로잉 관련 책들을 들어다봤다. 태그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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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너의 이름은> 더빙판이 개봉하면서,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 세편을 연달아 읽었다. (7월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설로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지만, 묘사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데 감탄하며 그 묘사를 읽기 위해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애니 <너의 이름은>은 많은 이들이 소개하고, 추천하였기 때문에 굳이 애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달 필요는 없다. 

커뮤니티 등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하면 신카이 마코토를 비하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우주, 세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가 분명 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신카이 마코토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을 보냈고, 70년대생인 신카이 마코토는 끝물을 잠깐 맛봤을 뿐, 잃어버린 20년을 실감한 세대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세상에 나온 청년세대와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다. 신카이 마코토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는 순간 동일본 대지진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지진 전 센다이를 다녀온 나는 지진 뉴스를 가슴아프게 봤고,기억속에 남아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잃은 이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 예술가로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한 신카이 마코토를 다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신카이 마코토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애니가 최선이다. 


소설과 영화는 스토리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화자는 조금 다르다. 소설은 타키와 미츠하의 1인칭, 즉 두 사람의 시점만으로 그려 진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할 수 없다. 한편 영화는 애초에 3인칭, 즉 카메라가 비추는 세계다. 그러므로 타키와 미츠하 이외의 인물도 포함해, 말 그대로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많다. 소설과 영화, 각각의 매력을 충분히 즐겨주기를 바라지만 이처럼 미디어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상호보완적이 되었다. 

소설은 혼자서 쓰지만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 쳐 완성되는 건축물이다. ...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형태가가 장 잘 어울린다'고 썼는데, 그것은 영화가 앞서 말한 수많은 분들의 재능이 모여 맺어진 화려한 결정체이기 때문이 다. 영화는 개인의 능력을 훨씬 넘어선 곳에 있다. 

그래도 나는 결국 이 소설을 썼다. 

어느 순간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어딘가에 타키나 미츠하와 같은 소년소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이야기는 물론 판타지지 만 그래도 어딘가에 그들과 비슷한 경험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다. 소중한 사람이나 장소를 잃고 말았지만 발버둥 치자고 결심한 사람 아직 만나지 못한 무엇 인기에,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라 믿으며 계속 손을 뻗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마음은 영화의 화려함과는 다른 절실함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느꼈기에 나는 이 책을 썼다. (287-289쪽 ,작자후기)


* 신카이 마코토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나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은 감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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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도쿄에 다녀왔다. 마지막날 숙소는 운좋게 도쿄도청 근처였다. 마지막날 아침 일찍 혼자 숙소를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초속5cm>와 <너의 이름은>의 장소를 산책겸 돌아다녔다. 성인이 된 타카키가 밤에 찾아든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아쉽게도 ampm이던 편의점은 패밀리마트로 바뀌어 있었다. 



  



<언어의 정원>이 비와 초록빛 나무, 호수를 아름답게 그려냈고, <너의 이름은>이 단풍을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초속5센티미터>는 단연 눈내리는 도시의 밤과 벚꽃내리는 광경이 압권이다. 

그리고 밤 눈길을 달리는 열차의 장면도. 



<언어의 정원>에서도 그랬지만, <초속5센티미터>역시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카이 마코토가 젊은 사토리 세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초속5센티미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십대 초반에서 십대 중반,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년


수평선 약간 위쪽에 걸려 있는 아침 태양 때문에 주위의 수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하늘은 흠잡을 곳 없이 푸르렀고 살갗을 적시는 물은 따뜻했으며 몸은 몹시 가벼웠다. 나는 지금 빛나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다. 이런 때는 내가 꼭 굉장히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져서 언제나 살짝 행복한 기분에 빠지고 만다. 사실은 지금 많은 문 제를 끌어안고 있음에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천하태평에 금세 행복하단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신나게 다음 파도를 향해 팔을 젓기 시작했다. 아침 바다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서서히 높아지는 파도의 매끄러운 움직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색채 나는 그것들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내 몸을 실은 보드를 파도의 페이스에 밀어 넣으려 했다. 몸이 들려 올라가는 부력을 느끼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느새 나는 균형을 잃고 파도 밑 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또 실패다 코에 바닷물 이 들어가눈안쪽이 찡했다. 


첫번째 문제, 지난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파도 위에 서지 못했다. (73쪽)


하늘도 바다도 같은 색이라 나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바다 쪽으로 더 나가기 위해 패들링과 돌핀 스루를 반복하는 사이에 점점 마음과 몸의 경계, 몸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져 간다. 바다를 향해 패들링을 하면서 다가오는 파도의 모양과 거리 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계산해보고 안 될 것 같다는 생 각이 들면 보드를 잡고 몸을 \으로 밀어 넣어 파도를통과했다. 될 것 같은 파도가 오면 턴해서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보드가 파도에 들려 올라가는 부력이 느껴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서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파도의 페이스를 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두 발로 보드를 디딘 후 중심을 올린다 일어서려 한다. 눈높이가 확 올라가 면서 세상이 그 비밀스러운 광채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딱 한순간뿐이다. 다음 순간, 나는 어김없이 파도에 빠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님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가령 언니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이 빛나는 바다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바다를 항해 패들링해나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날 아침, 마침내 나는 파도 위에 섰다. 거짓 말처럼 갑작스럽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120-121쪽, 코스모너트)


-눈이다 

'적어도 한마디라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한마디만을 절실하게 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 한마디뿐이건만 어째서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염치없는 바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본 눈이 가슴속 아주 깊은 곳에 있던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그것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지금껏 줄곧 그 말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애가 해줬던 말 

'타카키, 너는 분명 괜찮을 거야” 라는 그 말을. (200쪽, 초속5센티미터) 


한번도 서보지 못했던 그리고 마침내 서냈던 십대중반.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신카이 마코토는 꿈이 있던, 없던, 건강했던 십대를 상기시키고, "괜찮아"라고 속삭인다.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있잖아, 꼭 눈 같지 않아?” 

아카리는 나보다 두 걸음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가? 글쎄…….” 

"흥. 됐어.” 아카리는 새침하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빙글 돌아섰 다. 밤색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아 카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 래." 

“뭐가?"

 "무엇일 것 같아?" 

“모 르겠어.” 

"스스로 생각 좀 해봐, 타카키.” 

그래도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 답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래." 

(10-11쪽, 벚꽃이야기)



4월, 도쿄 거리는 벚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틀 때까지 일을 한 탓에 그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해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커튼을 열자 창밖은 햇살로 가득했다. 봄 안개에 가려져 흐릿한 고층 빌 딩의 창문들 하나하나가 태양 빛에 기분 좋게 빛나고 있다. 주상복합 빌딩 사이로 군데군데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도쿄에는 정말로 벚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한다. 
...
회사를 나온 이후 그는 거리에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냄새가 있다는 사실을 몇 년 만에 기억해냈다. 이른 아침에는 그날 하루를 예감케 하는 이른 아침만의 냄새가 있고, 저녁에는 하루의 마지막을 상냥하게 감싸주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다. 별밤에는 별밤만의 냄새가 있고 흐린 날에는 흐린 날만의 냄새가 있다. 그것은 인간과 도시와 자연의 작업이 하나로 뒤섞인 냄새였다 상당히 많은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주택가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공원에서 마셨고, 교문 밖으로 뛰어나와 그를 추월해 달려가는 초등학생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으며, 육교 위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을 구경하기도 했다. 주택과 주상 복합 빌딩 너머로 신주쿠의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사라 지곤 했다. 그 뒤로는 마치 파란색 물감을 듬뿍 풀어놓 은물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흰 구름 몇 개가 바람 결에 흘러가고 있다. 
그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철도 건널목 옆 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서 있었고, 그 근방 아스팔트는 떨어진 벚꽃 잎으로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문득,

초속5센티미터다 

(224쪽, 초속5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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