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도쿄에 다녀왔다. 마지막날 숙소는 운좋게 도쿄도청 근처였다. 마지막날 아침 일찍 혼자 숙소를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초속5cm>와 <너의 이름은>의 장소를 산책겸 돌아다녔다. 성인이 된 타카키가 밤에 찾아든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아쉽게도 ampm이던 편의점은 패밀리마트로 바뀌어 있었다. 



  



<언어의 정원>이 비와 초록빛 나무, 호수를 아름답게 그려냈고, <너의 이름은>이 단풍을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초속5센티미터>는 단연 눈내리는 도시의 밤과 벚꽃내리는 광경이 압권이다. 

그리고 밤 눈길을 달리는 열차의 장면도. 



<언어의 정원>에서도 그랬지만, <초속5센티미터>역시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카이 마코토가 젊은 사토리 세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초속5센티미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십대 초반에서 십대 중반,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년


수평선 약간 위쪽에 걸려 있는 아침 태양 때문에 주위의 수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하늘은 흠잡을 곳 없이 푸르렀고 살갗을 적시는 물은 따뜻했으며 몸은 몹시 가벼웠다. 나는 지금 빛나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다. 이런 때는 내가 꼭 굉장히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져서 언제나 살짝 행복한 기분에 빠지고 만다. 사실은 지금 많은 문 제를 끌어안고 있음에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천하태평에 금세 행복하단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신나게 다음 파도를 향해 팔을 젓기 시작했다. 아침 바다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서서히 높아지는 파도의 매끄러운 움직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색채 나는 그것들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내 몸을 실은 보드를 파도의 페이스에 밀어 넣으려 했다. 몸이 들려 올라가는 부력을 느끼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느새 나는 균형을 잃고 파도 밑 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또 실패다 코에 바닷물 이 들어가눈안쪽이 찡했다. 


첫번째 문제, 지난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파도 위에 서지 못했다. (73쪽)


하늘도 바다도 같은 색이라 나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바다 쪽으로 더 나가기 위해 패들링과 돌핀 스루를 반복하는 사이에 점점 마음과 몸의 경계, 몸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져 간다. 바다를 향해 패들링을 하면서 다가오는 파도의 모양과 거리 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계산해보고 안 될 것 같다는 생 각이 들면 보드를 잡고 몸을 \으로 밀어 넣어 파도를통과했다. 될 것 같은 파도가 오면 턴해서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보드가 파도에 들려 올라가는 부력이 느껴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서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파도의 페이스를 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두 발로 보드를 디딘 후 중심을 올린다 일어서려 한다. 눈높이가 확 올라가 면서 세상이 그 비밀스러운 광채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딱 한순간뿐이다. 다음 순간, 나는 어김없이 파도에 빠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님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가령 언니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이 빛나는 바다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바다를 항해 패들링해나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날 아침, 마침내 나는 파도 위에 섰다. 거짓 말처럼 갑작스럽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120-121쪽, 코스모너트)


-눈이다 

'적어도 한마디라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한마디만을 절실하게 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 한마디뿐이건만 어째서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염치없는 바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본 눈이 가슴속 아주 깊은 곳에 있던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그것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지금껏 줄곧 그 말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애가 해줬던 말 

'타카키, 너는 분명 괜찮을 거야” 라는 그 말을. (200쪽, 초속5센티미터) 


한번도 서보지 못했던 그리고 마침내 서냈던 십대중반.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신카이 마코토는 꿈이 있던, 없던, 건강했던 십대를 상기시키고, "괜찮아"라고 속삭인다.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있잖아, 꼭 눈 같지 않아?” 

아카리는 나보다 두 걸음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가? 글쎄…….” 

"흥. 됐어.” 아카리는 새침하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빙글 돌아섰 다. 밤색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아 카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 래." 

“뭐가?"

 "무엇일 것 같아?" 

“모 르겠어.” 

"스스로 생각 좀 해봐, 타카키.” 

그래도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 답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래." 

(10-11쪽, 벚꽃이야기)



4월, 도쿄 거리는 벚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틀 때까지 일을 한 탓에 그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해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커튼을 열자 창밖은 햇살로 가득했다. 봄 안개에 가려져 흐릿한 고층 빌 딩의 창문들 하나하나가 태양 빛에 기분 좋게 빛나고 있다. 주상복합 빌딩 사이로 군데군데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도쿄에는 정말로 벚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한다. 
...
회사를 나온 이후 그는 거리에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냄새가 있다는 사실을 몇 년 만에 기억해냈다. 이른 아침에는 그날 하루를 예감케 하는 이른 아침만의 냄새가 있고, 저녁에는 하루의 마지막을 상냥하게 감싸주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다. 별밤에는 별밤만의 냄새가 있고 흐린 날에는 흐린 날만의 냄새가 있다. 그것은 인간과 도시와 자연의 작업이 하나로 뒤섞인 냄새였다 상당히 많은 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주택가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공원에서 마셨고, 교문 밖으로 뛰어나와 그를 추월해 달려가는 초등학생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으며, 육교 위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을 구경하기도 했다. 주택과 주상 복합 빌딩 너머로 신주쿠의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사라 지곤 했다. 그 뒤로는 마치 파란색 물감을 듬뿍 풀어놓 은물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흰 구름 몇 개가 바람 결에 흘러가고 있다. 
그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철도 건널목 옆 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서 있었고, 그 근방 아스팔트는 떨어진 벚꽃 잎으로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문득,

초속5센티미터다 

(224쪽, 초속5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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