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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버킷 리스트 67 - 내 마음의 힐링
이담 글, 정가애 그림 / 대숲바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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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전에 올려져 있는 "제주 로망 다이어리"와 유사한 책이다. "제주 로망 다이어리"와 일러스트 여행북이라는 비슷한 구성에 제주에서 해볼만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제주를 두어번 방문했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제주 여행을 따라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 31은 '월정리 해변 맨발로 걷기'이다. 작년 9월 월정리에 아름다움에 빠져 바다를 한참이나 거닐었다. 애들도 좋아했던 그곳. 그리고 멀리 행원리 풍력발전이 보인다.

 

몇년 전 이곳에는 조그만 커피집이 생겼고 사람들은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월정리의 예쁜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월정리 해변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 넓은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봐야 한다.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그 진가를 알 수가 없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오른쪽을 보면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행원리 풍력발전단지다. (122쪽)

 

 

책을 읽다보면 제주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 야밤 1100고지에 올라 별을 보고 싶고, 눈 내린 다음날 멋진 설경에 빠지고 싶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지난 12월 제주 중산간 지역에서 숙박했던 나는 아침마다 체인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괜히 눈구경하자고 나갔다가는 큰 일 날 수도. 물론 지은이는 체인은 필수이고, 눈 내린 다음날 눈 정리가 끝난 다음 가보길 권한다.

 

제주의 가을은 억새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지은이는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제주도의 또 다른 단풍의 명소가 있다. 바로 사려니숲길.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에서부터 시작해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약 15킬로미터에 이르는 임도로 해발 500~600미터 정도의 평탄한 숲길이다. 그럼에도 사려니숲길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숲길에 들어서면 가을 같으면서도 겨울 같고, 겨울 같으면서도 봄 같고, 봄 같으면서도 여름 같고, 여름 같으면서도 가을 같은 신비로움을 알려준다. 이 길을 걷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고 건강해진다. 치유의 숲길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제주도 가을 단풍의 숨겨진 명소가 있다. 1100도로 검문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천아수원지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막다른 이 길 끝에 자리잡고 있는 계곡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는 곳이다.(169쪽)

 

이외에도 '한라산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사발면 먹기', '한여름 돈내코 원앙폭포에서 물 맞기','제주의 정글, 곡자왈 산책하기', '밤바다 바라보며 한치회 먹기', '조랑말들이 달리는 제주경마장에서 베팅해보기' 등 여행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다. 카페나, 식당정보도 있다는 점까지 들면 때론 돌아다니고, 때론 쉬기에 좋은 방법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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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카페 - 여유를 만나는 제주 힐링 여행
이승아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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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카페'는 제주에서의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선사한다. 이 책에 나오는 카페로만 여정을 짜 제주 카페 투어로 일정을 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다. 지난 9월 제주를 찾았을 때 이 책을 굳이 들고 가야 하는 생각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에 넣어 두었다. 와잎과 나 모두 늦은 퇴근을 하고 여행가방을 싸니 새벽 3시. 제주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잠시 낮잠을 잤다. 둘째날 여정을 짜면서 한적하면서도 제주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월정리로 잡았다. 그리고 '제주카페'를 집어 들었다.

담 너머로 그림 같은 바다풍경이 펼쳐지는 한 장의 사진.

제주를 여행오는 이들, 세 명중 한 명은 이 사진을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사진의 포토존은 월정리 ISLAND ZOBRA. 

(116쪽)

 

그렇게 나는 월정리 해변에 '고래가 될...'을 엮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야 말았다. 아쉽게도 두명의 아이와 함께하기에 자리가 없어 옆 카페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곳에서 보여준 제주 월정리 해변의 사진 하나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다음에는 꼭 가봐야지 하는 곳 중에 하나가 쇠소깍이다. 그리고 쇠소깍에 간다면 "쇠소깍 돌카페"에서 버거를, 요네주방+주방상회"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

 

이번 겨울에는 유기농 파이점 "올레파이"에서 파이맛에 빠졌다.

 

그리고 제주에 갈 때 들른 그리고 들르게 될 '테라 Terra". 아래 사진의 테라는 내 제주여행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렸다. 올 겨울에는 모닥불앞에서 젖은 딸래미의 발을 말리고 눈덮인 제주의 풍광을 누렸다.

 

제주여행중에 커피한잔이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이다. 앞으로 한동안 제주에 같이 가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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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로망 다이어리
문수민 글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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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그려러니 했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그리고 알라딘에서 여러차례 제주를 찾을 때 같이 보이던 책. '제주 로망 다이어리' 멋진 제목이 오히려 속빈 강정일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일러스트들 때문에 갖게 된 또 하나의 선입견. 그래서 옆에 두고도 한 참을 안 보던... 오히려 석달새 제주를 두 차례(총 다섯차례) 다녀오고서야 이 책을 들었다.

 

'제주 로망 다이어리'를 들고는 한마디로 제주 관광에서 여행으로 옮겨가는데 필요한 책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가리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다음에는 하가리에서 제주의 돌담길을 즐기고 싶어졌다.

"하가리 돌담길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마치 부드러운 음률을 따라 걷는 것 처럼 편하고 즐겁기 이를데 없다.

돌담은 자로 잰 듯 반듯한 모양새를 고집하지 않았다. 굽이굽이 곡선이고 자유로웠다. 주변의 여러환경과 땅의 모양새에 맞추어지고 다듬어져, 일부인 양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돌담은 넉넉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대지에 안겨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있었다"(93쪽)

 

제주를 여러번 방문했지만, 한번도 오름을 가지 못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관광지를 방문하다 제주의 참맛을 알게 될 쯤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를 찾았기에 오름에 가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요즘은 제주를 하루 이틀 만에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린 이들이 늘어나면서, 하나둘 천편일률적이던 동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오름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97쪽)

 

그리고 '제주 로망다이어리'를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제주지 방문지 목록에 '돈내코 계곡', '차귀도'를 적게 된다. 그리고 맛집목록에 적어둔 '교래리 토종닭'과 서귀포 용이식당 '두루치기', 올래국수에서 '고기국수', 산방식당에서 '밀면과 돔베고기'를 주문하게 될 것이다.

 

'제주 로망 다이어리'가 가벼운 에세이 형태이지만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제주의 재미있는 풍속을 알려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이를 '신구간(新舊間)'이라고 한다. 제주의 풍속 중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다. 통상 신구간은 24절기의 하나인 대한후 5일째 되는 날 부터 입춘 전 3일까지다. 양력으로 치면 1월 25일부터 약 1주일 정도의 기간에 해당한다.

 신구간은 산과 바다, 마을과 가정, 목축과 농경을 관장하던 온갖 신들이 서로 임무를 교대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제주의 1만 8천의 신이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머무르기 때문에 집을 옮기거나 수리해도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신구간이 되면 이사하려는 사람들로 제주 전체가 들썩거린다. 제주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 기간에 이사를 하기 때문에, 전화 이동이나 쓰레기 발생량이 크게 늘어난다. 그래서 관련 기관들도 이 기간에는 비상근무에 들어간다."(198쪽)  

 

지난 12월 제주도를 찾았었다. 2014년 1월 중순까지 아직까지도 큰 눈이 안내린 서울인데, 12월 중산간 지역에는 함박눈을 맞았다. 아침마다 체인을 채워야만 숙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제주해변과 서귀포에서도 눈을 맞았는데 그 눈은 싸리눈이었다. 심지어는 아침에 눈을 맞는데 자갈을 맞는 느낌이었다.

"창 밖에 내리는 첫눈에 우리는 "와! 첫눈이다"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인 감상도 잠시, 모두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제주의 눈은 서울에서처럼 하늘거리며 펄럭이는 함박눈이 아니었다.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와 비비탄처럼 꽂히는 싸리눈이었다.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하고 하니 겁이 나서 어찌 나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210쪽)

 

한 손에 들기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내용이지만 놓치기 싫은 내용들로 채워진 제주이야기이다. 처음의 선입견과는 달리 다음 제주행에는 꼭 동행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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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사 - 적응과 변화의 긴 여정, 1700~1922 서울대학교 중앙유라시아연구소 교양 총서 1
도널드 쿼터트 지음, 이은정 옮김 / 사계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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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제국중의 하나이고 지중해 전체를 손에 넣었던 나라임에도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만큼 역사속에서 홀대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대표적인 오스만역사가인 도널드 쿼터트의 이 책 '오스만제국사'를 보면 본인도 오스만제국사를 강의할만한 개설서가 없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오스만 역사가 이렇게 홀대받는 것은 아마도 서양사, 동양사로 구분되는 역사 구분속에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중동의 역사는 어느 쪽에도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게다가 상당기간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무슬림의 기억을 유럽은 지워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오스만제국이 번영하고, 문명화가 더디었던 16~18세기에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모범이었다. 안정된 정치체계 및 효율적인 국가관리를 본받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커피, 튤립 등 문화생활과 천연두 접종과 같은 획기적인 의학적 혜택을 모두 오스만제국에서 얻어왔다. 현재의 군악대 미국 미식축가 경기시 고적대 등의 문화역시 오스만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유럽과 오스만의 상황이 역전이 되고 나서 서구 유럽은 오스만을 야만스럽고 방탕한 존재로 왜곡하였다. 그러한 인식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동서양사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오스만제국은 서아나톨리아 지방에서 1300년대에 모습을 갖추며 다른 투르크 국가들과의 경쟁을 거치면서 점차 터키지역의 패권을 차지한다. 마호메드 2세기 제위시절 1453년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비로소 터기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비잔틴제국을 1453년에 정복하긴 했지만 사실 비잔틴은 1200년 초 부터 그 힘을 갖지 못했고, 콘스탄티노플 역시 제대로된 수도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1024년의 제4차 십자군전쟁당시 십자군에 의한 약탈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4차 십자군원정은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비잔틴제국에 대한 침략이었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계속적으로 영토를 넓혀가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1450년대 오스만 제국의 영토

 

지중해 전반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당시 주변지역에 강한 제국이 없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은 정복한 국가와 가신의 관계를 맺으며 그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속국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 오히려 오스만제국에 편입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이슬람 뿐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가 함께 공존하여 상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인재를 활용하기에도 유리했다. (오스만정부의 이슬람법은 강제로 개종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데브시르메라는 소년 공납제도 있었다. 농촌의 사내아이 중 훌륭한 아이들을 선발해 수도 혹은 중심도시에서 교육을 받게 해 이들이 오스만제국의 행정을 관장하거나 군대의 핵심인재가 되었다. 데브시르메라는 제도를 통해 훌륭한 인재들이 등용되는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런 오스만제국은 1683년 합스부르크제국과의 전투에서 패배이후 유럽과 지중해의 패권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1683년의 패전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후로 오스만 제국은 예전만큼 강성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유럽세계가 절대왕정기를 거쳐 중앙집권화되면서 국력이 급작스럽게 강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오스만제국은 뒤쳐진 국가체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전쟁에서의 방어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처럼 쉽게 함락할 수 있지 않게 되었다. 이는 공격에 엄청난 전비가 소비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역시 오스만제국의 힘을 약화시킨 요인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국제정세의 중심에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흑해 대부분의 권리를 상실했지만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불안을 느낀 서구 유럽의 개입으로 러시아에 빼앗긴 땅의 상당부분이 독립 혹은 나눠먹기식 분리가 시행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세계제1차대전시 독일,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오스만제국은 전후 거의 대부분의 땅을 잃어버린다. 승전국인 영국은 이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얻었고,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했다. 그리고 1922년 오스만제국은 터키 공화국이 된다.

 

오스만제국과 더불어 생각해 볼 몇가지가 있다.

오스만제국이 힘이 최고조에 달한 16세기 말 17세기 초 오히려 오스만제국의 경제적 중요성은 감소하는데 이는 서유럽의 신대륙 정복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중심의 경제가 오스만제국이 지중해의 패권을 가져가면서 대서양으로 경제의 축이 옮기는 자극이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코소보학살과 관련하여 배경이 되기도 한다. (원인이 아니라) 17세기~18세기에 있었던 오스만제국과 합스부르크 왕조와의 전쟁과정에서 세르비아 정교회신도들은 코소보를 떠나 보스니아 동부로 이주하고, 그 자리에 알바니아인들이 들어서게 된다. 민족적 갈등의 배경이 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쿼터트의 오스만제국사에서는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1915~6년에 수도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이다. (최소 50만) 이에 대해 저자는 비단 오스만제국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님을 주장한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아메리카, 유럽에서 그러한 국가에 의한 탄압이 부지기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굉장히 악화되었음을 반증한다고 설명한다.

 

후기의 오스만제국의 통치방식은 그다지 반갑지 않지만 서양의 역사를 바꾼 오스만제국과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동양과 서양의 가교역할을 한 오스만제국은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스만제국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스만 제국을 연구하고, 그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부여해야 하는 보다 더 명확한 이유는 오스만 제국이 그 역사의 거의 대부분에서 보여준 관용적인 통치 모범 때문이다. ... 오스만제국은 수세기 동안 피지배자들을 크게 압박하지 않고 통치해왔다. 오스만 정치 체제에서는 위정자들과 군사령관들이 피지배자들의 종교활동을 - 순니파, 시아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카톨릭 등 어떤 형태의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이는간에- 보호하도록 규정해놓았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경전의 사람들',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슬람의 관용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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