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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은 어디로 갈까
[국민일보 2004.10.03 18:50:16]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수선스럽게 후둑대는 여름비와는 달리 낮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오늘따라 처연하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로 시끌벅적했을 마당도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이런 날이면 창 밖 풍경을 벗삼아 차를 마시는 것이 제격이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고요가 마치 폭풍전야처럼 느껴진다.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가 곧 시작된다는 소문이다. 맑은 날이면 삼삼오오 화단 앞에 모여 앉아 온통 그 얘기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그 많은 이야기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이야깃거리란 그일 밖에 없는 듯하다. 평소 같으면 몇 분에 한번씩 터졌을 웃음소리도 간 데 없고 모두들 낮은 목소리로 이사와 헤어짐과 돈걱정을 한다.

학생들이 있는 집은 이사에 따르는 아이들 전학문제로 고민하는 눈치이고 이사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한층 더 걱정스런 얼굴이다. 모두들 동병상련의 처지로 느껴지는지 평소 왕래가 없던 이웃과도 갑자기 가까워져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수면은 고요한데 정작 물밑 깊은 곳에서 거대한 해일이 다가오는 분위기이다.

비 내리는 마당에서 나무들을 올려다 본다. 물기 오른 나무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얘들은 어디로 가나. 흙 속에 발을 묻고 있는 나무들은 어떻게 하나. 십 년 혹은 이십 년 넘게 뿌리 내리고 살던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아니 사람들처럼 다른 곳으로 떠날 수가 있기나 한 걸까.

살아가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낡은 벤치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던 키 큰 미루나무의 잎들과 단지를 빙 둘러싼 아담한 키의 쥐똥나무들 그리고 색 고운 단풍나무와 또 이름 모를 수많은 나무 나무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나무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미풍이 일 때면 잎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고 바람 심한 날에는 꺾어질 듯한 가지를 흔들며 ‘괜찮아 곧 바람이 지나갈 거야. 나처럼 힘을 내’하고 말해 주는 듯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나무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던가.

고민하던 사람들은 때가 되면 어디로든 갈 것이다. 정 깊었던 이웃들을 조금씩 잊어가며 새로운 곳에서 이웃을 사귀고 다시 정을 붙이고 살 것이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편리하게 산다. 그러나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우직한 나무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밤낮없이 자기들 걱정뿐인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을 나무들,오늘밤은 어쩐지 쉬이 잠들 성싶지 않다.

이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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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을 지피며 2

                        

집 부서진 것들을 주워다 지폈는데

아궁이에서 재를 끄집어내니

한 됫박은 되게 못이 나왔다

어느 집 家系였을까

 

다시 불을 넣는다

마음에서 두꺼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잉걸로 깊어지는 동안

차갑게 일어서는 속의 못끝들

 

감히 살아온 생애를 다 넣을 수는 없고 나는

뜨거워진 정강이를 가슴으로 쓸어안는다

 

불이 휜다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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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0-14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보기만 해도 따뜻해라
이제 바람이 제법 차네요~

icaru 2005-10-1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뜻해라...
그러게요 오늘 유난히 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러나 해는 따뜻..

물만두 2005-10-1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불만 보면 질리는 우리는 좀 무서워요 ㅠ.ㅠ;;;

진주 2005-10-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그렇죠? 보기만 해도 온기가...아..춥당...

이카루님, 여긴 햇볕이 안 나네요. 대낮인데도 어둑어둑..

만두님, 안 좋은 추억이 있으시군요....

물만두 2005-10-1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개스 중독과 사기사건과 연탄갈기요...
 

 


      
      
      인생은 너와 나와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와의 헤어짐입니다. 
      이별 없는 인생이 없고 
      이별이 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정든 가족, 정든 애인, 정든 친구, 정든 고향, 
      정든 물건과 영원히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 실존의 한계 상황입니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고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이요 절대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죽음 앞에 서면 숙연해지고 진지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언제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언제 죽더라도 태연자약하게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언제 떠나더라도 조용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생사관을 확립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은 예고 없이 그리고 예의 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죽음의 차가운 손이 언제 나의 생명의 문을 두드릴지는 모릅니다.
      그때는 사랑하는 나의 모든 것을 두고 혼자 떠나야합니다. 
      
      
      인생에 대한 집착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지상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을 버려야합니다. 
      오늘이 어쩌면 나의 삶이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안병욱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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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3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언니...

진주 2005-09-3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2005-09-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진주 2005-09-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꽁치를 굽든 돼지갈비를 굽든간에
꽁치보다 돼지갈비보다
석쇠가 먼저 달아야 한다
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꽁치인데
석쇠는 억울하지도 않게 먼저 달아오른다
너를 사랑하기에 숯불 위에
내가 아프다 너를 죽도록 미워하기에
너를 안고 뒹구는 나는 벌겋게 앓는다
과열된 내 가슴에 너의 살점이 눌어붙어도
끝내 아무와도 아무 것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고독하게 알고 있다
노릇노릇 구워져 네가 내 곁을 떠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차갑게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너의 흔적조차 남겨서는 아니 되기에
석쇠는 식어서도 아프다
더구나
꽁치도 아닌 갈빗살도 아닌 그대여
어쩌겠는가 사랑은 떠난 뒤에도
나는 석쇠여서 달아올라서
마음은 석쇠여서 마음만 달아올라서
내 늑골은 이렇게 아프다

 

석쇠의 비유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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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9-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안 보이며 말씀해 주세요.

진주 2005-09-2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따우님, 추석 잘 쇠셨어요?

물만두 2005-09-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여요. 언니 몸은 좀 어떠세요?

파란여우 2005-09-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쇠 아픈건 저 몰라요
노릇한 꽁치나 먹어 봤으면...^^

icaru 2005-09-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하...역시 복 자 들어간 시인의 시란~ 참...

진주 2005-09-20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전 괜찮아요, 순 엄살쟁이라니까요 제가 ㅎㅎ

파란여우님, 저는 이제 꽁치든 갈비든 못 먹을래요, 저도 늑골이 아파요.으흑...

이카루님, 제가 요즘 복시인에게 필이 딱 꽂혀서리~^^;질릴 때까정 볼 요량입니다.

검둥개 2005-09-2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도 시도 넘 멋있음다. 우예 추천이 하나도 없음? 그래서 제가 한 방! ^____^

진주 2005-09-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이 그말이어요 흑흑..검둥개님, 저는 이 시를 보고 맘으로 추천을 한 열번은 눌렀건만...(고마버영)

잉크냄새 2005-09-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효근 시인은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싯구들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그래서 좋아라 합니다.

진주 2006-04-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너무 늦은 눈인사..)
 

 꽃잎 기도  



새벽 강둑에서 마주친 들꽃은 한결같이  

꽃잎 끝에 양수 같은 눈물을 매달고 있다

한 석 달 울어본 기억이 없는 나는

고요히 그 앞에 무릎 꿇고 싶다

한 종지 눈물로

기쁜 날 굽이굽이 낀 기름때가 가실 수 있으랴만

시드는 꽃의 저무는 빛깔만큼이라도 꽃을 흉내낼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사소한 슬픔에게도 

없는 슬픔에게마저도 손을 모아야 하리라

내 한 순간의 환한 웃음을 위하여도

곡비처럼 울다가 져간 꽃잎도 있었을 터이니

한 방울 눈물의 양수 속에서

다시 처음 맞는 아침은 있어야 하리라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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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2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강둑에서 들꽃을 보며,,,읽으면 참 좋은 시...베스트 텐에 들거 같은 시입니다...

진주 2005-09-2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강둑에서 들꽃 보며 읽을만한 시가 또 뭐가 있을까요? ^^;
저, 요즘 너무 많이 우는데/양수 같은 눈물일런지....

icaru 2005-09-2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베스트텐 정정합니다...
"넘버원"입니다!!

진주 2005-09-2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게 아닌데..
난 정말 새벽강둑에서 읽을만한 다른 시들이 궁금했단 말이어요.
제가 새벽을 자주 만나잖아요?
이카루님, 새벽 강둑에서 어떤 시들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