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
...안도현...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 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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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내버스 속에서 살기에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엿봅니다.저마다의 생활궤도에 충실하여 타야할 곳에서 타서 내려야 할 곳에 정확히 내립니다. 우리의 궤도가 언제쯤 교차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운 좋으면 당신과 제가 한 차에 동승하는 순간도 있겠지요.
때로는 아기를 등에 업고 손잡이에 간등간등 매달린 당신과,
때로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흥얼거리는 힙합옷을 입은 당신과,
때로는 피곤에 겨운 안경이 코끝에 걸쳐지고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당신과,
때로는 산사에서 오수까지 가며 30원쯤 모자라는 동전을 차르르르 쏟아 넣는 당신과만날 수도 있겠지요.
어떠한 모습이든지 열심히 살고 계시는 당신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2002.05.16. 찬미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께 쏟아 붓는 장면을 읽을 땐 속으로 "이런~싸가지!!"했었습니다.
그런데요, 안도현시인 참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 싸가지 운전사도, 철판 할머니도 "열심히 사는"모습으로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이 참 멋집니다./2005.2. 19.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