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눈치 안 보고 빈둥거리기 가장 좋은 곳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나,
정신적 공간은 거의 무한하다.
깊은 바다를 어슬렁거리는 물고기처럼,
또는 막막한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모든 움직임이 무의미하고 자유롭고 또 아름답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서가(書架)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는 모습은
마치 해초들 사이를 하릴없이 헤집고 다니는 물고기 같다.
그곳에서 꼭 책을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책의 곰팡이 냄새를 맡아도 좋고,
높고 낮은 책의 키들과 그 색깔, 두께 등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또는 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책등의 제목들에서 흥미로운 단어들을 만날 수도 있다,
마치 자갈밭에서 예쁜 자갈들을 줍듯이.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이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