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늘 젖어 있는 저 강물을 좀 보라지. 그는 늘 젖어 있기에 비가 와도 더 이상 젖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두려움이 없는 거지.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갈 시간,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 옮겨 가는 시간" 역시 비에 젖지 않는다.

젖지 않는 그들 속에서 비만 오면 젖어버리는 나는, 그들을 사모하기 그지없지만 비만 오면 추녀 밑으로 숨어버린다. 나무, 사랑, 짐승의 이름으로 얼마간 쉰다면 나도 더 이상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까. /050715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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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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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7-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고... 마르고... 젖고... 마르고...
젖는 것이 두려워 계속 젖어있기보다는... 젖고 마르고....그렇게 살아가는 삶인가 봅니다.

돌바람 2005-07-1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은 이제 '비가 와도 그림자는 젖지 않는다'로 옮겨간 듯 합니다. 근데 그 그림자가 젖은 자에게 가 붙지 않고 바람에게 가버리면 어쩐다지요. 그 사내는...

부리 2005-07-1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런 거죠? 비맞으면서 "내일 뭐입지?'라며 걱정하는 거...

진주 2005-07-1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해한 시에 난해한 감상, 게다가 난해한 댓글들....^^;
부리님 거 꼭꼭 확인하지 마시고 저마다 수용하는 만큼만 이해하자구요 히히

부리 2005-07-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제야 알았습니다. 방수가 되는 옷을 입자는 거죠?

진주 2005-07-1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은 젖기를 거부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