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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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젖어 있는 저 강물을 좀 보라지. 그는 늘 젖어 있기에 비가 와도 더 이상 젖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두려움이 없는 거지.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갈 시간,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 옮겨 가는 시간" 역시 비에 젖지 않는다.
젖지 않는 그들 속에서 비만 오면 젖어버리는 나는, 그들을 사모하기 그지없지만 비만 오면 추녀 밑으로 숨어버린다. 나무, 사랑, 짐승의 이름으로 얼마간 쉰다면 나도 더 이상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까. /050715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