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많은 나날, 청춘.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던 모퉁이, 청춘.
청춘에 관한 시 세 편이 오늘 일용할 양식이다.
....................
청춘
바바리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나야 할 그는 오지 않았다
타르 같은 애정을 내게 주던
여자는 지칠 줄 몰랐다
식물보다 식물을 닮은 단어를 더 사랑했고
요리법과 안전 지침은
아무리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대롱거리는 단추처럼
달려있다가
꾼 돈이 생각나
졸면서 매달려 있다가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별들이 거기 있었다
詩 이성미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
청춘 1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
절여진 생선도 조려놓은 과일도 아니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
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언제나 가뭄이었다
물속에서 젖지 않고
불속에서도 타오르지 않는 자
짙은 어둠에 잠겨 누우면
온몸은 하나의 커다란 귓바퀴가 되었다
쓰다 버린 종이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소리를
밤새 들었다
청춘2
맞아 죽고 싶습니다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
붉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
떨어집니다
가을날의 중심으로
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詩 진은영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청춘
지나간 날들 지나칠 정도로 모두 어디 가고
나뭇잎 흩어지는 저녁에 만났던 그대 역시 흩어졌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남겨진 하나의 얼굴
그것은 희미한 미움, 삶의 근원을 묻는 철천지원수의 고통
이해할 수 있을까, 꽃이 피면 어두워지는 마음
아련한 봄날 자살이 들끓고 11월 촛불 아래서의 짧은 행복
어머니는 나의 도망을 저주하며 빈방이 있는 집을 지었으나
내 청춘은 휘발유로 이루어진 항구였다
닻을 내린 정신, 그것은 한국이란 말처럼 욕되었다
기댈 수 있는 여자의 몸, 그것은 지겨움과 회한의 상징이었다
학교, 그것은 상상력의 종말을 뜻했다
도착할 곳 여의치 않던 시절 비는 나의 강의실이었고
바람은 가장 멀리서 오던 그대 머리칼, 진눈깨비는 머나먼 단절
그리고 이제 남에게 남겨진 하나의 미래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추억, 너에겐 없는 설원
바람에 흩어졌다 밞에 뭉치는 고립, 그것이 나의 인류였다
폭풍과 미풍이 교차하던 계곡, 당신이 쉬기에는 너무나 빠른 변덕
오후 4시면 죽고 싶고 오후 4시면 살고 싶던 감각,
그것이 나의 지구였다
나는 기후를 먹고 배불렀고 그대는 비바람을 질투하며 흩어졌다
눈 내리는 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꽃피면 현기증나는 연애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마음엔 푸른 우울이 숨쉬고
20세기가 끝나도 희망은 희망이고 절망은 절망이다
인간은 인간이고 식물은 식물이다
내가 마신 적막의 술이 달빛에 젖고 햇살은 찢어졌다
매연과 피로, 대양의 자본, 그리고 망각의 선신들
그토록 오랜 날들을 파도와 파탄 속을 헤맸으나
남은 건 비의 유적, 비의 막사, 비의 수용소, 비의 감옥, 비의 호텔......
청춘의 탄식이 오만 개의 세월을 남겼노라
詩 박용하 - 시집 "영혼의 북쪽" 중에서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