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다방
그 다방은 이전에도 다방이었고
지금도 다방이다.
정겨운 이름 다방,
티켓다방 말고 아직도 다방이라니.
오래 산 것이 자랑이 아니듯
다방이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오래된 것으로 치면
그 다방이 있는 건물이 더 오래되었다.
그 다방은 일본식 이층건물 일층에 있다.
그래도 자랑할 만한 것은
다방 양옆으로 지금은 인쇄소와 갈비집이 있는데
그 인쇄소와 갈비집이
우리가 오래된 사진을 꺼내볼 때
양옆으로 선 사람이 사진마다 다르듯
여러 번 주인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 다방에서 만난 내 친구 중에는
둘이나 벌써 저 세상에 가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커피를 끓여 마시고
자판기에서도 커피를 빼 마신다.
그런 동안에도 여전히 그 다방은 커피를 끓여 내오고
오래된 음반으로 고전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다방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는지
얼마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매일 아침
삐꺽거리는 관절의 목제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던 화가 주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피아노를 치는 둘째딸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늙은 화가 주인이 떠난 뒤로 머리 위에서
무겁게 발 끄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목제 건물의 관절마다 박힌 못이 녹슬어
스러지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했고
그때마다 그 다방은 치통을 앓듯, 관절염을 앓듯 신음 소리를 내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골다공증을 앓고 있을
정겨운 이름 흑백다방
詩 김승강 - 시집 <흑백다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