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대한 작품 속에서 만은 20세기의 사상을 주름잡아 온 십여 가지의 주제와 문제들, 가령 정신분석과 영성주의, 예술, 질병, 죽음을 서로 연결시키는 연결고리,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의 상대적 속성, 서구인 특히 중산층 서구인들의 정신 상태,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 제대로 된 인간 교육 등을 폭넓게 다룬다. 만의 특별한 재능은 이런 수준 높은 사상, 등장인물들의 창조, 소설 속 분위기의 설정을 잘 종합한다는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토마스 만의 대표작 『마의 산』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토마스 만은 1875년 독일의 북부도시 뤼벡에서 부유한 곡물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인 뤼벡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란 토마스 만은 자전적 소설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속의 이야기처럼, 아버지에게서는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시민적 기질을 물려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예술적인 기질을 이어받았습니다. 


독일 북동부에 위치한 뤼벡은 13세기 무렵만 하더라도 '한자동맹의 여왕'으로 불리며 독일무역의 중심지였던 곳이지요. 트라베 강 상류 연안에 위치한 이 도시는 토마스 만의 고향이자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긴 작품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배경으로도 유명합니다. 뤼벡 시내에는 아직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주무대이자 토마스 만 집안의 소유였던 대저택이 남아있다고 하지요.


저도 2014년 여름에 17일 동안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자동차를 몰고다니며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드레스덴에서 함부르크로 이동할 때 이 유명한 독일의 항구도시를 쏙 빼놓고 지나친 게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답니다. 아무튼 뤼벡에서 태어나 뮌헨으로 이주했던 토마스 만의 작품 속에는 독일 북부의 주요도시인 뤼벡과 함부르크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면서 그 도시들을 직접 방문하지 못한 독자들의 여행의욕을 자극하지요.


뤼벡의 시의원과 부시장을 지냈던 아버지 덕분에 금수저로 자란 토마스 만은 19세기 말의 군국주의적이고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를 싫어했던 탓에 학교공부 대신 음악과 시와 연극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일찍부터 작가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습작들을 썼다고 하지요. 1895년 이후에는 철학자인 니체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1899년에 읽은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토마스 만은 1905년에 카타리나 프링스하임과 결혼하는데, 1912년 결핵 증상을 보인 아내는 스위스 다보스의 요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작가는 1912년 5월과 6월 사이에 3주 예정으로 문병을 갔다가 요양원의 독특한 분위기와 손님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자신의 체험을 단편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이 점차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바로 그의 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마의 산』이었습니다. 1913년에 쓰기 시작한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5년에 중단되었다가 종전 후 다시 쓰기 시작하여 1924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의 서문에서 "철저한 탐구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준다."라고 밝혔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가 12년 동안이나 고심을 거듭하면서 그 당시 서구 세계가 안고 있던 온갖 병리적인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방대한 작품으로 녹여냈습니다.


『마의 산』은 제목에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고전 소설'로도 악명이 높은데, 그 까닭은 작가 자신이 깊이 고민했던 정신 탐구의 온갖 주제들이 작품의 전편에 걸쳐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사상적 특징이었던 정신분석과 영성주의,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의 상대적 속성, 질병과 죽음과의 관계,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 제대로 된 인간 교육, 보수와 진보와의 갈등 등이 그런 주제들이지요.


그래서 이 소설은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처럼 여러 세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들의 대하 드라마식 이야기와도 전혀 성격이 다르며, 획기적이거나 크나큰 사건 하나 없이 극히 좁은 공간과 인물들(베르크호프 요양원과 환자들)로 좁혀진 상태에서 기나긴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와는 거리가 먼 관념소설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지요.


아무튼 이 소설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설명하면 결국 작품의 겉껍데기만 다루는 셈이 되는 그런 작품이지만,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스위스의 고산 지대인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이지요. 다보스는 오늘날 <다보스 포럼>으로 더욱 유명해진 스위스의 휴양도시인데, 요양소, 의학연구소, 눈사태 연구소 등으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소설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중심지인 다보스플라츠의 해발고도는 1,575m이며, 베르크호프 요양원은 좀 더 위쪽에 자리잡고 있지요. 우리의 주인공인 23세의 젊은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는 바르 그곳에 입원해 있는 사촌 요아힘의 병문안을 위해 3주 예정으로 그곳을 찾아가지요. 그는 대학에서 조선 공학을 전공하고 이제 막 조선 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곧 함부르크의 조선소에 취직할 예정인 상태에서 잠시 여행을 떠나듯 그곳을 방문했던 셈이지요.


함부르크에서 그곳까지는 먼 여행길이다. 3주 동안 짧게 머물기에는 사실 참으로 멀고 먼 길이다. 여러 군주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지나, 수많은 산들을 오르내리고, 남독일의 고원에서 슈바벤의 호숫가로 가서는, 배를 타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며 그 옛날 깊이를 알 수 없던 심연을 건너가야 한다.(제13쪽)


소설 속 주인공 청년은 맨 처음엔 마치 아내의 병문안에 나섰던 작가처럼 그저 4촌 동생의 병문안을 위해 그 요양원에 임시로 방문했다가 결국 폐결핵에 감염되어 그곳에서 무려 7년을 더 머무르게 되지요.


소설 속의 이야기는 꽤나 오랫동안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기적으로 체온을 재고 식사를 하는 규칙적으로 산책을 다니는 등 요양병원의 따분한 일상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차츰 그곳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서로 알고 지내게 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사소한 언행들 때문에 언짢아 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이성에 끌려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점차 평지에서의 수평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해발 1600m에 위치한 고산지대 폐결핵 요양원만의 독특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지요.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관후보생이었던 사촌동생 요아힘 침센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어느새 그곳에서 요양중인 러시아 출신의 클라브디아 쇼샤 부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요. 그녀는 남편을 고향에 남겨 두고 유럽 각지의 요양원과 온천장을 전전하는 방종하고 퇴페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을 지닌 여성입니다.


요양원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가 젋은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의 '교육자'를 자처하는데, 그는 주인공 청년에게 '죽음'의 세계에 흘러 들어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저 아래'의 시민 세계로 복귀하라고 충고하지요. 그러나 청년은 쇼샤 부인에게 매혹되어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육제 날 저녁에 마침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날 밤 그녀에게 연필을 돌려주기 위해 그녀의 방을 찾아가지요. 그러나 하룻밤 사랑은 짧게 끝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말자 그녀는 요양원을 훌쩍 떠나고 말지요.


한스 카스토르프는 세템브리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온갖 정신적 수업을 받는 동안 요양원 아래 다보스 플라츠에서 지내는 유대인 나프타와도 알고 지내게 됩니다. 그는 한때 수도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던 예수회 회원이면서 테러를 긍정하며 공산주의적 이상향의 도래를 확신하는 급진주의자였는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합리적 진보주의자인 세템브리니와 자주 충돌하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요.


사촌 요아힘 침센은 호전되지 않는 병세에 지친 나머지 결국 완치하지 못한 상태로 하산하여 군복무를 시작하고, 혼자 요양원에 남은 카스토르프는 그곳에서 차츰 더 오래 머물 채비를 갖추는데 그런 방편의 하나로 스키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그는 스키를 타고 산으로 갔다가 눈보라 때문에 천지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오두막에 갇혀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인간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감에서 벗어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인간은 착한 마음씨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자, 이제 눈을 뜨기로 하자. 이것으로 나는 꿈을 끝까지 다 꾸고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 잠과 꿈에 빠지면 내 젊은 목숨이 치명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아, 일어나라! 눈을 뜨라! 너의 다리와 팔이 여기 눈 속에 빠져 있다! 다리를 끌어당기고 일어나라! 자, 보렴, 날씨가 얼마나 좋은가를!(293∼295쪽)


평지로 되돌아갔던 요아힘 침센은 병이 악화되어 다시 요양원으로 되돌아오는데, 씩씩한 군인이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끝내 접고 일찍 삶을 마감하는 청년의 죽음은 한스 카스토르프에게도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무렵 갑작스레 요양원을 떠났던 쇼샤 부인이 다시 되돌아오면서 주인공의 생활도 아연 긴장 관계에 접어듭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은퇴한 대사업가인 커피 왕 페퍼코른이라는 인물과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은 현실적인 삶에 충실하면서도 온갖 긍정적인 에너지와 힘을 갖춘 인물이었는데, 자신이 여행의 동반자로 데려온 쇼샤 부인이 한때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스 카스토르프와 심상찮은 관계였음을 간파하고 난 뒤 결국 '사랑의 패배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자살하고 말지요.


페퍼코른이 죽고 나자 쇼샤 부인은 또다시 요양원을 떠나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몹시 허탈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요양원에는 히스테리 환자가 속출하고,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어느 날 자유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서로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될 온갖 험악한 언사와 모욕을 주고받은 끝에 서로 결투를 하기에 이릅니다. 결투장에서 세템브리니가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자 나프타는 비겁자라고 흥분하며 자기 머르를 권총으로 쏘아 자살하고 말지요.


이처럼 과도한 흥분상태는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청천벽력으로 이어지고, 카스토르프는 마침내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마의 산」을 내려와 전쟁에 참전하게 되지요. 여기저기서 포탄이 터지고 흙덩이며 산산조각이 난 인체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와중에 커다란 흙덩이가 그의 정강이에 부딪힙니다. 그는 몸을 털고 일어서, 흙이 달라붙어 무거운 발을 이끌고 다리를 절며 갈지자로 계속 걸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보리수」를 흥얼거립니다.


가지가 살랑거리네,

나를 부르는 듯이 ㅡ


이리하여 그는 아비규환 속으로, 빗속으로, 어스름 속으로 우리의 눈에서 사라져 간다.


이 소설은 한편으로는 시간에 대한 소설이면서, 또다른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데도 건강한 사람들이 평지에서 수평생활을 바삐 영위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언제나 저멀리 동떨어진 문제로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평지에서 생활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병세가 깊은 환자들만 모여 있는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수평생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요양병원 환자들은 늘상 죽음과 대면하는 삶을 영위해 나갑니다. 그들의 일상은 오로지 건강을 회복하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고, 하루 다섯 차례의 푸짐한 식사와 디저트, 오전과 오후의 산책, 저녁 식사후의 오락 시간 등으로 촘촘히 짜여 있지만, 건강을 회복하여 요양병원을 빠져나가는 환자보다는 그곳에서 일찍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요양병원 생활 속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도 한때나마 잠시 죽음을 긍정하고 애착을 보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작가 토마스 만이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로부터 받은 영향이며, 죽음에 친근감을 느꼈던 주인공이 그것을 탈피하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로 전환하는 모습은 니체의 '생에 대한 긍정'의 영향 때문이지요.


『마의 산』은 흔히 시대 소설, 교양 소설, 철학 소설 등으로 일컬어지지만 딱히 어떤 소설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쓰여지고 나서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시대적 배경'은 차츰 뒷편으로 저만치 물러나고 작품 속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들만 앙금처럼 남기 마련이지요. 이 작품도 어느새 발표된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시대소설이나 교양소설로서보다는 철학소설로 보는 게 더 마땅하지 싶습니다. 토마스 만은 특히나 쇼펜하우어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이다 보니 몇몇 대목들에서는 이 작품이 소설인지 철학책인지 헷갈릴 정도이지요. 가령, 제6장의 첫 소절인 <변화들>에서 길게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묘사'는 얼마나 철학적인가요?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다. 실체가 없으면서 전능한 것이다. 현상계(現象界)의 하나의 조건으로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체와 그것의 운동과 결부되고 혼합된 하나의 운동이다. 그러면 운동이 없으면 시간도 없는 걸까? 뭐든 물어 보라! 시간은 공간이 행하는 기능의 하나인가? 또는 그 반대일까? 또는 두 개가 동일한 것일까? 얼마든지 물어 보라! 시간은 활동적이고, 동사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그것은 '낳는' 힘을 지닌다. 그러면 시간은 무엇을 낳을까? 변화를 낳는 것이다! 지금이 당시가 아니고, 이곳이 저곳이 아닌 것은, 이 두 개 사이에 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재는 운동은 순환적이고, 자체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운동과 변화는 거의 정지와 정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당시는 부단히 현재 속에, 저곳은 이곳 속에 쉬지 않고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한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필사적인 노력을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영원하고 무한하다고 '생각'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분명 이게 사리에 맞을 거리는 믿음에서, 딱히 옳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거라는 믿음에서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과 무한한 것을 확실하게 정한다는 것은 한정된 것과 유한한 것을 논리적으로나 수학적으로 부정하고, 상대적으로 그것을 영(零)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닐까? 거리, 운동, 변화 같은 개념들이나, 또는 우주 속의 한정된 물체라는 존재가 영원한 것과 무한한 것이라는 임시적인 가정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좌우간 얼마든지 물어 보라!


어쩌면 이 소설은 문학과 예술의 본질이 늘 그러하듯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의 체험을 통해 '평지에서의 삶'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에서 카스토르프가 7년 동안 머무르는 스위스 고산지대 폐결핵 요양원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암시, 은유, 비유, 지시, 인용을 통하여 마치 마법에 걸린 산이 되기도 하고, 고대 신화 세계의 저승인 하데스가 되기도 하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 밤」의 마녀 산이 되기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시간 감각을 상실한 채 의무를 잊어버린 반시민적인 세계가 되기도 합니다.


베르크호프 요양원이라는 무대는 지리적으로 고산 지대일 뿐만 아니라 밀폐되고 외부와 차단된 세계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국적의 환자들은 과거의 직업이나 신분 혹은 재산상태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똑같은 시설에서 똑같은 식사와 똑같은 진료를 받으며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길 염원하지만, 정상적인 삶에서 궤도이탈한 요양병원 생활은 이미 신화 속의 하데스처럼 신비한 분위기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요양병원을 총괄하는 베렌스 고문관은 염라대왕인 라다만토스로 군림하는 존재이며, 카스토르프는 3주간의 일정으로 요양원을 방문할 때만 하더라도 저승세계를 잠시 방문하는 오뒷세우스로 자신을 비유하며, 아둔한 슈퇴어 부인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요양병원 생활을 시시포스와 탄탈로스 이야기를 꺼내며 요양원 생활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신화적인 숫자 7이 일관된 흐름으로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마의 산』은 모두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체온계를 입에 무는 시간도 7분이며, 카스토르프는 일곱 개의 식탁에 일년에 한 번씩 바꿔 앉아 보며 7년간 그곳에 머무르게 되지요. 카스토르프의 방번호도 34호실이며, 소설의 정점인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 또한 주인공이 요양원에 도착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에 벌어지며, 페퍼코른이 자살을 결심할 때에도 일곱 명이 함께하지요. 여기서 다시 재미삼아 이 방대한 소설의 서문으로 잠시 되돌아갈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를 금방 끝내 버리지 않을 작정이다. 일주일의 7일은 부족할 것이고, 7개월로도 모자랄 것이다. 작가인 내가 이야기에 휩쓸려 가는 동안 지상의 시간이 얼마나 지나가는지를 미리 정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그렇다고 설마 7년이나 걸리지는 않겠지!


소설 『마의 산』에는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온갖 명문장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으로도 꽤나 유명하지요. 그 문장들은 굳이 『마의 산』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지 않더라도 다른 데서 가끔씩 마주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방대한 작품 속에서 이런 명문장들을 직접 마주치노라면 그 감흥이 훨씬 더 배가되는 걸 부정하긴 힘들지요. 그런 문장들을 몇몇 덧붙이면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 …… 장례식에는 사람을 고양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어.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이 되려면 옛날부터 교회에 가지 말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어. 사람들은 다들 멋있는 검은 복장을 하고 모자를 손에 벗어 들고는 관을 바라보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취하지. 평소 때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어. ……"


시간에는 사실 눈금이 없고, 새로운 달이나 해가 시작될 때 천둥이 치는 것도 아니고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예포를 쏘거나 종을 치는 것도 인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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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4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 오랜만에 포스팅 반갑습니다 ^^
토마스 만은 늘 숙제인데 “부덴브로크가 사람들” 민음사 두 권 사두고 읽다 말고 영화는 봤네요. 오래전이지만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오랜만에 오렌 님 유튜브로 가 봐야겠어요.

oren 2021-10-14 21:29   좋아요 2 | URL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도 영화로 나온 게 있는 모양이군요! 그 작품도 언젠가는 ‘유튜브 영상‘으로 꼭 만들고 싶은데, 영화가 있다니 영상을 만들고픈 의욕이 갑자기 불쑥 생겨납니다.

『마의 산』과 같은 작품은 도저히 영화로 만들어졌을 것 같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뒤져보니까 1982년에 만든 영화가 있더라고요. 어찌나 반갑던지 그 영화 덕분에 『마의 산』을 (올해 여름 내내 또다시 붙잡고서) 두 번째로 읽고 어렵사리 ‘유튜브 영상‘까지 만들게 되었답니다.

이 영상을 만들면서, 2014년에 독일 여행을 갔을 때 ‘뤼벡‘을 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금 절절하게 느꼈답니다. 사전에 짜놓은 여행계획에는 분명(!) 뤼벡에 들러서 ‘부덴브로크 하우스‘에도 들를 참이었던데 말이죠. 토마스 만의 생가이자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주무대인 그 멋진 저택이 왜 그리 중요한지를 그때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 멋진 도시를 덜컥 빼먹을 일은 결코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게 다 토마스 만의 소설을 너무 늦게 읽은 탓이려니 합니다...

프레이야 2021-10-14 22:27   좋아요 3 | URL
그랬군요. 뤼백을 뛰어넘어 버려 무척 아쉬우시겠어요. 저도 못 가 본 도시에요.
부덴브로크가 사람들 영화는 이곳 지금은 사라진 예술관에서 우리나라 최초 개봉으로 보았어요. 찾아보시면 있을지 모르겠어요. ^^

oren 2021-10-14 22:43   좋아요 2 | URL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아날로그 필름으로 만든 영화로 보셨군요. 예술관에서 상영한 영화였으면 어디엔가 틀림없이 파일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겠군요. 귀중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mini74 2021-10-15 1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게 이 책은 정말 마의 산 ㅠㅠ 오렌님 반가워서 댓글 달아요. 오렌님 글 읽어보니 이해도 좀 되는 것 같고. 줄거리만 따라가려 하다 실패한 건가 싶기도 하고 ㅎㅎ 어떻게든 올해는 읽단 만 책들을 다 읽을 목표를 가지고는 있는데, 요양원에서 좀 더 진도를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

oren 2021-10-15 12:08   좋아요 3 | URL
mini 님 오랜만이고 참 반갑습니다.^^ 만의 <마의 산>을 두 번 읽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올해 여름에 이 책을 붙잡고 낑낑거리면서 기어이 <마의 산>을 두 번 다녀오고 말았네요. 사실 제가 이 소설을 다시 읽은 까닭이 따로 있긴 했답니다. 40년지기 대학친구가 2년쯤 전에 췌장암 판정을 받고 힘겹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올해 봄부터 홀로 ‘깊은 산 속 요양원‘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올해 5월쯤에 요양원 근처 숲속에서 반나절 가량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꼭 <마의 산>에 나오는 베르크호프 요양원 생활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친구 얘기가 그렇더라구요.. 시설도 좋고, 식사도 좋고, 사람들도 다 좋다, 비용은 꽤나 비싸지만 부족한 건 조금도 없다.. 다만 환자들의 건강 상태만 위중할 뿐... 25년전쯤 싱가포르로 이민을 가서 꽤나 잘 살아왔던 친군데... 사업도 번창해서 돈도 많이 벌고... 해마다 몇 번씩 한국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만나 함께 운동도 즐기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고 지내왔는데.. 몇 해 전 함께 휴가차 제주도에서 신나게 놀고 먹고 떠들고 했던 게 그 친구와 보낸 ‘마지막 한 때‘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마의 산>으로 다시 찾아갔지요.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은 과연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가, 그 소설을 다시 읽으면 친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 친구는 지금까지 항암만 11차까지 받고도 비교적 잘 견뎌내고 있는데, 경과를 봐서 그 요양원에 계속 머물지 ‘바깥 세계‘로 다시 나올지 고민중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젊은 나이에 요양원 등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한텐 너무나 절박한 문제들이 그 소설 속에 아주 잘 담겨 있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듯해요. 토마스 만의 책들을 꾸역꾸역 다 읽어내시길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mini74 2021-10-15 12:13   좋아요 2 | URL
아이고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친구분 쾌차를 정말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응원 고맙습니다 *^^*

oren 2021-10-15 12:22   좋아요 2 | URL
mini 님의 응원 정말 고마워요.^^

잠자냥 2021-10-15 12:49   좋아요 3 | URL
전 을유문화사판으로 1권만 읽기를 두 번.... ㅠㅠ
앞의 내용 다 잊혀서 다시 읽고 했는데 올핸 그냥 2권으로 갈까봐요.

oren 2021-10-15 13:13   좋아요 3 | URL
1권에는 그나마 이야기의 줄거리가 비교적 잘 잡히지만 2권으로 넘어가면 거의 철학책 수준의 장광설이 너무 자주 등장하여 이야기의 줄거리는 온데간데 없고, 담론들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도 토마스 만의 명문장들의 2권에 훨씬 더 많이 담겨 있으니, 그걸 읽는 재미로 쭉 밀고 나가다 보면 결말까지 다다를 수 있을 듯합니다.^^ 암튼 <마의 산>을 정복하는 기쁨은 남다른 데가 있긴 합니다.^^

중독자 2021-10-17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섹시 스타!

그레이스 2021-11-05 16: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의산 도전
그리고 당선작 축하드려요

oren 2021-11-10 21:56   좋아요 2 | URL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
축하해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mini74 2021-11-05 17: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포기한 마의 산. 리뷰 넘 잘 쓰셔서 부러웠던 ㅎㅎㅎ 축하드리옵니다 *^^*

oren 2021-11-10 21:57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두 번씩이나 읽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문득 이 작품을 소개하고픈 마음이 생겨나는 바람에,
기어코 두 번째로 붙잡고 또(!) 읽었네요.
mini 님께서도 나중에 문득 마음이 동하실 때, 꼭 완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초딩 2021-11-07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Oren님 잘 지내셨죠~?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oren 2021-11-10 21:58   좋아요 2 | URL
초딩 님~ 무척 오랜만이네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1968년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 반체제 인사로 내몰려 출판금지 등의 탄압을 받은 끝에 1975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작가이지요.


그는 아버지가 저명한 음악학자였던 덕분에 보헤미아 전통 음악과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학뿐 아니라 영화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연극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감독 수업을 받은 뒤 이 학교의 강사와 교수로 지냈는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그의 제자였다고 하지요. 그는 나찌 독일에 대한 반발심으로 젊어서 일찌감치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체제 활동' 죄목을 뒤집어쓰고 공산당에서 추방당했고(1950년), 1956년에 재입당했지만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이후 1970년 또다시 공산당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말지요.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체험은 그의 첫 번째 소설 『농담』(1967)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는데, 사소한 농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채 뒤바뀌고 마는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경멸에 가까운 조소가 담겨있지요. 작가가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1984년에 출간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또한 『농담』에서처럼 전체주의 공산체제가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억압하고 뒤틀리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만 봐도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1988년에 필립 카우프만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덕분에 더욱 유명해집니다. 1989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놀랍게도 《프라하의 봄》이었습니다. 뛰어난 제작진과 인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영화를 본 뒤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걸 몹시 후회했다고 하지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지닌 고유의 색깔이나 의미가 왜곡되는 걸 싫어하기 마련인데, 밀란 쿤데라야말로 그런 점에 관해 유난히 예민한 작가이지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번역 출간될 때 작가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물론 「작품 해설」조차 싣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대략적인 설명은 이쯤으로 그치고 이제부터는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지요. 이 작품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원제목이 있는데도 굳이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다소 별난 제목을 달았는데, 아무래도 원제목이 지나치게 철학적이어서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된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을《프라하의 봄》으로 바꾼 탓에 정치적인 색깔이 너무 도드라져 자칫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반체제 민주화 운동을 그려낸 정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오해도 생겼습니다. 물론 영화가 원작보다 '프라하의 봄'을 좀 더 부각시킨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몹시 철학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꽤나 정치적인 소설이 맞습니다. 어쨌든 작가는 1968년에 일어났던 체코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반작용으로 초래된 소련군의 무참한 무력침공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억눌리고 파괴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소설은 네 명의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유별난 애정행각 때문에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듯이' 에로틱한 장면들이 가득한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 각본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요. 더구나 등장인물들이 정사를 벌이는 장소들 또한 체코의 프라하뿐 아니라 스위스의 제네바나 취리히 등지였으니 그런 분위기가 더해졌지요.


이 영상을 보시는 시청자분들은 아마도(!) 이 작품을 다들 한 번쯤은 읽어보셨겠지요? 혹은 줄리엣 비노쉬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프라하의 봄」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혹시 이 둘을 모두 놓치셨더라도 체코의 프라하를 가 보신 적은 있으시겠지요? 이마저도 아니라구요? 아무튼 좋습니다. 우연히 클릭한 이 영상 덕분에 저와 함께 이 세 가지를 한 방에 모두 체험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 또한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기 전까지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못 봤습니다. 또한 프라하를 직접 찾아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이 작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조차 없었더랬습니다. 물론 프라하가 배출한 천재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서도 새까맣게 몰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늦봄에 덜컥 프라하로 날라갔습니다. 무슨 특별한 문학기행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흔해빠진 '동유럽 여행'의 첫 번째 기착지로 프라하에 닿았던 셈이지요.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지루한 비행 끝에 말입니다.


사실 갑작스레 결정된 동유럽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나름대로의 여행 준비작업으로 마음이 몹시나 분주했더랬습니다. 동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인 프라하 방문을 목전에 두고도 그때까지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의 책 한 권조차 읽은 게 없었으니 그 가운데 한 두 권쯤은 반드시 읽어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렀고, 프라하에 도착할 때까지 뒤적거린 책이라고는 고작 몇 권의 여행 안내서와 음악 및 미술에 관한 안내서 몇 권이 전부였고, 프라하 올로케로 찍었다는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를 밀린 숙제하듯 간신히 다운받아 감상한 게 전부였습니다. 아, 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구경을 놓칠세라 빈에 머무는 날짜에 맞춰 음악 공연 티켓을 예매하느라 낑낑댔던 기억도 있긴 있었군요.


아무튼, 체코의 역사와 쿤데라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상태로 저녁 무렵에 도착한 프라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우리 일행들이 묵을 숙소가 카를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우리 일행은 도착한 첫날부터 밤늦게까지 블타바 강가에 자리잡은 야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프라하의 고성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 밑에' 숙소를 잡았던 게 정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이처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기 훨씬 전부터 우연한(!) 기회에 미리 샅샅이 다녀본 프라하 관광 체험은 훗날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더랬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이며, 시계탑이며 , 얀 후스의 동상이며, 바츨라프 광장 등등을 직접 걸어다니며 카메라에 쏙쏙 담아냈던 기억들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 속에서 그 장소들을 다시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멋진 도시를 전혀 가 보지 못한 독자들조차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기 쉬운데, 그의 문학의 고향과도 같은 그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사흘씩이나 보낸 제가 이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외면하기란 어려웠지요.


그런데도 이 작품은 생각보다는 읽기가 조금 까다로운 책이었습니다. 적잖은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지요. 그건 바로 밀란 쿤데라가 이 작품 속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소설의 도입부에 덜컥 내밀면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처럼 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소설의 도입부에 배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지요. 작가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는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고, 그 반대로 우리의 삶이 단 한 번만 주어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고대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반대되는 한 쌍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했지요. 작가는 그의 말이 맞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고 규정합니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소설 속 이야기는 '존재의 무게'를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쪽으로, 혹은 그 반대쪽으로 끊임없이 옮기려는 등장 인물들의 삶의 궤적들을 잔잔하게 그려나가고 있지요. 


남자 주인공인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로 일하는 바람둥이이자 이혼남입니다. 그는 여러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는 에로틱한 우정을 모토로 삼아,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말자고 단단히 못을 박지요. 그는 얼마 전에 우연히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테레자를 만납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열흘이 지난 뒤 그녀는 대뜸 프라하에 있는 토마시를 찾아가지요.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일주일을 지냈으면서도 그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게 나을까를 고민하던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이지요.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시는 테레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그녀가 역에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토마시는 선약이 있어서 다음날 저녁에나 찾아오라고 하지요.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번보다 훨씬 우아해 보였고,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있었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용건 때문에 프라하에 왔다가 우연히 들렀음을 애써 강조했지만, 사실은 이미 무거운 트렁크를 수화물 보관소에 맡겨둔 참이었지요.


그녀는 토마시가 전날까지도 염려했던 그대로, 인생 전체를 이 남자에게 헌납하기 위해 프라하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녀와 그녀의 트렁크를 그의 아파트에 들여놓습니다. 그는 스스로 놀랍니다. 10년 전 첫 번째 부인과 헤어질 때 거의 환호성을 지를 뻔했던 그는 오로지 독신일 경우에만 자신답다는 걸 깨달은 터였고, 비록 여자와 동침하더라도 자정 이후에는 모든 여자를 내쫓았는데 테레자 때문에 그런 원칙을 어긴 때문이었지요.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테레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다시 한번 테레자가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수많은 고대 신화의 도입부에는 버려진 아기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폴리보스가 아기 오이디푸스를 줍지 않았다면, 소포클레스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도 쓰지 않았을 것을! (21쪽)


이렇게 해서 토마시와 테레자와의 운명은 차츰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이른바 '운명적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의 '성격적 비극'이 기묘하게 뒤섞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토마시와 테레자와의 사랑은 결국 따지고 보면 거듭된 여러 우연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엮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처럼 '운명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이고, 남자의 타고난 바람기 때문에 아내와 끊없는 갈등을 지속한 끝에 결국 유능한 외과 의사에서 시골의 트럭 운전사로 점점 추락한 끝에 끝내 부부가 함께 시골 언덕의 커브길에서 동반 추락사하고 말기 때문이지요.


여주인공인 시골 처녀 테레사는 토마시와 동거하게 되면서 토마시의 애인인 사비나의 도움을 받아 프라하에서 잡지사 사진기자 일자리를 얻어 차츰 정착하게 되지만, 토마시의 끝없는 애정행각 때문에 매일밤 악몽을 꾸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토마시의 잠재적 애인이었고, 그녀의 악몽은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반복되지요. 토마시는 테레자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그녀와 결혼하고, 작은 강아지까지 사 줍니다. 강아지의 이름은 『안나 카레니나』의 남편이었던 카레닌으로 짓습니댜.


테레자는 충직한 카레닌이 늘 곁에 있어도 행복하진 못합니다. 소련 탱크가 전국을 점령하고 난 뒤로 차츰 토마시의 일자리가 불안해졌기 때문이지요. 테레자도 소련군이 진주한 후 일주일 동안은 거의 행복과 유사한 일종의 전율 상태에 빠져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섰지만, 너무 대담해져 시위 군중에게 권총을 겨누는 한 장교의 사진을 찍다가 체포된 적도 있었지요. 그녀가 찍은 사진이 빌미가 되어 많은 시민들이 구금되고 체포되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국민들의 행복한 도취는 점령 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체코 정치인들은 잡범처럼 소련군에게 끌려갔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소련군에 대한 증오는 술기운처럼 치밀어 올랐다. 증오감에 도취된 축제였다. …… (47∼48쪽)


토마시와 테레자와 카레닌은 결국 체코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건너가지요. "사비나도 스위스로 망명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라는 토마시의 걱정어린 물음에도 테레자는 개의치 않지요. 이제 사비나는 토마시를 만나기 위해 제네바를 떠나 취리히의 호텔에 더욱 자주 머물게 되고, 토마시는 그녀와 헤어져 취리히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지요. 테레자와 사비나는 그의 삶에 있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아름다운 두 극점 같았습니다.


테레자는 취리히에서도 밤마다 악몽을 꾸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프라하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그녀는 토마시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고,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텅 빈 집에서 테레자의 이별 편지를 발견한 토마시는 모든 상황을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테레자를 되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닿고 좌절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차츰 생각이 바뀌지요.


그는 그녀와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고 그들의 관계가 이보다 더 잘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달리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테레자는 예고도 없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떠났다.그녀는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떠났다.(53∼54쪽)


테레자가 떠난 뒤 우울에 빠져 홀로 거리를 산책하는 동안에 토마시는 뜻밖의 자유를 느낍니다. 거리 모퉁이마다 연애 가능성이 널려 있었고, 오로지 독신으로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테레자에게 얽매여 칠 년을 살았는데, 마침내 그의 발목에 채워 놓은 방울을 벗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합니다.


나흘 때 되던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테레자가 이별의 편지를 쓰며 겪었던 쓰라린 감정을 느낀 것이지요. 한 손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카레닌을 묶은 줄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홀로 된 그녀의 슬픔이 그의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미래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월요일, 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중압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


그는 동정심에 굴복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테레자가 떠난 지 닷새 후 그는 취리히의 병원 원장에게 당장 프라하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언하지요. 원장은 정말 화를 냈지만, 토마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Es muss sein. Es muss sein."


이 말은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가운데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말이었지요. 베토벤은 필연성과 무거움과 가치가 내면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토마시는 스위스 국경을 향해 차를 몰았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표정은 침울한 베토벤은 이민 생활에 작별을 고하는 그를 위해 'Es muss sein!'을 기꺼이 연주해준 셈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록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63∼64쪽)


그러나 프라하로 되돌아온 토마시는 잠든 테레자 곁에서 뒤척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테레자가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칠 년 전 테레자가 살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시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시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자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시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64쪽)


토마시는 테레자 때문에 보헤미아로 되돌아왔지만 지금 그의 곁에 누워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우연의 화신인 그 여자'에게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지요. 그가 느낀 유일한 감각은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소설 속에서 '우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땅바닥으로부터 높이 들어올립니다. 만약에,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87쪽)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93쪽)


프라하를 떠나 제네바에서 살게 된 사비나에게 어느 날 멋진 남자친구가 나타납니다. 프란츠는 그녀의 아뜰리에에 자주 들렀지만 결코 그곳에서 정사를 나누지는 않지요. 불과 몇 시간 만에 한 여자의 침대에서 다른 여자의 침대로 가는 것은 애인과 부인을 모욕하는 짓이며 결국 자신도 모욕하는 짓으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몇 달 전에 프란츠가 반한 이 여인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소중해서 그는 자신의 삶 속에 그녀만을 위한 독자적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고심합니다. 외국 대학으로부터의 강연 초청은 100% 받아들였고 여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없는 세미나까지 만들어내지요. 


그는 미남이며 학계에서도 출세가도의 정상에 서 있는 인물이었지만 늘상 사비나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여 지냅니다. 그런데 사비나는 이 진지한 남자와 만날 때에도 (토마시와 만날 때처럼) 중산모자를 쓰지요. 그것은 사비나 아버지의 기념품이자 토마시와의 에로틱한 게임에 사용하는 엑세서리였지만, 프란츠는 그 모자를 보는 순간 마치 누군가가 '미지의 언어'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고 몹시 당혹해 하지요. 사비나와 프란츠 사이엔 '이해할 수 없는 어휘들'의 목록이 너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시와 사비나가 중산모자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 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152쪽)


언제나 삶에 진지했던 프란츠는 결국 아내에게 사비나의 존재를 당당히 밝히고 아내와의 결별을 선언하지요. 하루 아침에 멀쩡한 아내와 결별하고 자신과의 공개적인 사랑을 선언하는 이 남자는 어느덧 사비나에게 점점 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날 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흥분한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동시에 이미 그곳에서 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또다시 멀리에서 배반의 황금 나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이부름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 앞에 아직도 광활한 자유의 공간이 열려 있으며 그 공간의 넒이가 그녀를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프란츠를 미친 듯 거칠게 사랑했다.(194쪽)


프란츠는 그녀의 몸 위에서 흐느꼈고, 그녀의 몸짓을 통해 모든 걸 깨달았다고 확신하지요. 식사 시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사비나가 마침내 그와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가 사비나와 함께 살리라 결심한 바로 그 순간, 사비나는 제네바에서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201쪽)


이렇듯 소설은 작품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하는 두 인물 토마시와 사비나,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대척점에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 받는 테레자와 프란츠를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길게 이어지지요.  


사비나가 제네바를 떠나 파리로 온 지 삼 년이 지난 뒤 그녀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지요. 편지에 따르면 그들은 죽기 전 몇 해 동안 시골 마을에서 살았으며,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자주 인근 마을로 가서 항상 조그만 호텔에서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언덕을 타고 넘는 도로에는 꼬불꼬불한 구간이 많았는데, 트럭이 그만 계곡 아래로 떨어져 즉사하고 만 것이었지요. 이처럼 두 주인공의 죽음은 소설의 앞부분에서 너무 빨리 노출되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지요.


스위스를 떠나 프라하로 되돌아온 토마시와 테레자는 차츰 밑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유능한 외과의사였던 그가 점점 더 변방의 끄트머리로 밀려난 까닭은 범죄적이고 야만스런 정치체제에 대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소련 점령군 체제에 협력한 비양심적인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잡지에 발표하는데, 당국은 반공주의를 조장하는 그의 글을 철회하도록 끈질기게 회유하고 압박하지요. 그는 결국 외과과장으로 승진하는 대신 현직에서 물러나 시골 병원으로, 다시 무료 진료원으로, 거기서 다시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전락한 끝에 맨 나중엔 시골마을에서 트럭운전사로 살아갑니다.


이 소설은 희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우연으로 시작된 주인공들의 삶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정치적인 격랑에 휘말리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때로는 우수에 찬 선율로, 때로는 감성 넘치는 철학 에세이의 필치로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의미심장한 문장들의 행간을 자꾸만 반복해서 읽게 되는 아주 독특한 작품이지요.


인생의 고비마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필연성은 우연성과 어떻게 교차하면서 삶에 희비쌍곡선을 그려나가는지, 소련군 탱크의 무게만큼이나 강한 압력으로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 개인의 자유와 소신은 얼마만큼 부당하고 또 나약하게 침해당하는지, 참으로 생각할 게 많은 작품입니다.


망명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이 작품 속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프라하의 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당시의 정치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작가는 '범죄적 정치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유일하게 옳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이런 비난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았어!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백한 거야!'라고 외칠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주인공 토마시는 바로 이 논쟁에서 핵심을 포착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지 않다고 말이지요.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토마시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라이코스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했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고 나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었지요.


토마시는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289쪽)


토마시는 이 비유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체코 작가 동맹이 발간하는 주간지에 글을 투고하지요. 토마시의 글이 발표되고 불과 두세 달 후 '프라하의 봄'은 끝장이 납니다.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감히 우리 눈을 뽑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써 대다니! 소련은 그들의 변방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될 수 없다고 결정했고, 그들 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토마시의 나라인 체코를 점령하고 맙니다. 토마시는 결국 '프라하의 오이디푸스'였던 셈이었습니다. 자신이 우연히 투고했던 글 때문에 그는 결국 외과의사의 옷을 벗어야 했고 프라하를 떠나야 했으니까요.


끔찍한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 토마시 부부는 우연한 일로 기분이 좋아진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인근 호텔로 춤을 추러 가지요.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밞는 동안 테레자는 토마시의 어깨에 기대면서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 슬픔은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암시였지요. 작가는 말합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라고 말이지요.


이것으로 작품 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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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1 2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르메니데스‘가 모든 것이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을 증명했고, 저는 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논리로 영혼과 불멸을 수긍할 수 있게 증명할까라고 탄식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쿤데라는 그 쌍이라는 것이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결국에는 모순을 가진다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보면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 증명을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키치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
제 인생의 책을 반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21-06-02 00:17   좋아요 2 | URL
한 권의 소설 속에 이렇게 다양한 철학이 녹아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에요. 가벼움과 무거움, 영원과 순간, 우연과 필연, 단 한 번과 영원한 반복 등등 말이죠. 거기다가 키치를 뿌리고, 오이디푸스의 눈알까지 빼는 이야기가 더해지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읽기 힘든 책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랜만에 두 번째로 읽으니, 훨씬 더 깊은 맛이 느껴지고, 영화를 앞뒤로 돌려가면서 동영상을 만들다보니 참으로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초딩 님의 인생책으로서도 안성맞춤인 듯하고요.^^

모나리자 2021-06-02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oren님~ 너무나 잘 보았습니다~ 이 책 오래전에 읽었고 19년 9월에 프라하도 다녀왔지만 이 작품에 카를교의 풍경이 나오는 줄 몰랐네요.ㅎ 니체의 사상 등 여러 철학사상이 들어 있어서 그렇게 어려웠군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다시 읽으면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튜브 영상 해설도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마치 빨려들듯이..ㅎㅎ 안나카레니나도 2권까지 읽다 말고 오래되었는데 새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다시 보고 싶네요. 여행하는 기분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멋진 글과 영상 올려주세요.^^!

oren 2021-06-02 22:01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 님, 반갑습니다.^^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으시고, 프라하에도 2년 전에(!) 다녀오셨군요! 그 멋진 ‘카를교의 풍경‘은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에도 나오고, 영화 <프라하의 봄>에도 나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도 나오지요. 저는 지금까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4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불멸, 배신당한 유언들) 읽었는데, 그 작품들 모두에서(?) 프라하의 인상적인 장소들이 매번 등장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이라도 프라하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 인상적인 장소들이 오래도록 머리속에 남아 영영 떠나지 않을 듯한데, 밀란 쿤데라의 작품 속에서 그 장소들을 다시 마주치는 기쁨이 상상 이상으로 크더군요.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아무리 뒤져봐도 프라하의 ‘프‘자도 등장하지 않는데 말이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2권까지만 읽으셨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멋진 작품을 다시 한번 완독하시는 건 어떨까요? 카레닌도 만나보고, 브론스키도 만나보고, 카레니나, 레빈, 키티 등등도 두루 ‘다시‘ 만나보시길 바래요.^^

초딩 2021-07-07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oren 2021-07-08 21:55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에 오랜만에 접속했다가 초딩 님의 댓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이 당선작으로 뽑혀 있었군요!
하마터면 여러 날 지나서 이 댓글을 확인할 뻔했네요.
늘 챙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벅~

모나리자 2021-07-08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 축하드립니다~^^
역시 정성과 배경지식이 듬뿍 담긴 리뷰 잘 읽었는데 선정되셨네요!
7월도 화이팅 하세요~^_^

oren 2021-07-08 21:57   좋아요 1 | URL
오늘에야 이 댓글을 발견했네요.^^
요즘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붙들고 한 달째 헤매고 있어서,
알라딘에 접속하는 일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에요.
모나리자 님께서 남겨주신 축하 댓글, 너무 고맙습니다.^^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였어요. 그 책이 있는데 과연 앞으로 쓸 게 뭐가 남아 있을까요? 어떻게 어떤 사람이 내 손에서는 언제나 빠져나갔던 것을 확고하게 담아내서 이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하게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군요.”

- 버지니아 울프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편인 <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볼까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7편에 이르는 엄청난 길이의 연작소설이지요. 민음사에서 총 열세 권을 목표로 2012년부터 새롭게 번역 출간중인 이 작품은 어느새 제5편인 <갇힌 여인>(9,10권)까지 출간되었고, 앞으로 완간까지는 딸랑 세 권만 남겨두고 있지요.

 

이 소설은 작품의 길이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의 만연체 문장으로도 독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 악명 높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때때로 독자가 미리 만나본 몇몇 친숙한 철학자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철학자들이야말로 이 방대한 작품의 독서 탐험에 더없이 소중한 안내자가 될 테니까요. 마치 어두컴컴한 지옥을 여행하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게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꼭 그런 존재였던 것처럼 말이지요.

 

총 13권 가운데 지금까지 딸랑 네 권밖에 읽지 못한 저같은 독자라면, 마치 수십 년에 걸쳐 정교하게 축조된 고딕 양식의 거대한 대성당 안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처럼 자주 길을 잃고 당황스러워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무리는 아니겠지요. 그런데도 잠깐씩, 이토록 생소하고도 복잡한 건축물 속을 두리번거리면서도, 다시 말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낯설고도 빽빽한 문장들의 숲속을 헤쳐 가면서도 잠깐씩이나마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과 같은 철학자들이 예전에 어디선가 미리 언급했던 내용들이 이 작품 속에서도 자주 엿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몇몇 철학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프루스트(1871∼1922)와는 동시대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가까운 친인척 사이였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흥미를 끕니다. 베르그송은 1892년에 프루스트의 사촌누이인 루이즈 뇌부르주와 결혼했는데 매형이 될 새신랑보다 열두 살이나 어렸던 프루스트도 그 결혼식에 화동으로 참석했다고 하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했던 베르그송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무려 2,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인데, 마침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베르그송이 직접 영역했던 책의 제목은 『시간과 자유의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담겨 있어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가령 내가 [앞으로] 살 도시를 처음으로 산책할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나에게, 지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상과 끊임없이 수정될 인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나는 매일 같은 집들을 보며, 또 그것들이 동일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것들을 끊임없이 동일한 이름으로 부르고,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나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후 처음 몇 해 동안 느낀 인상을 돌이켜 보면, 그 속에서 일어난 독특하며 설명할 수 없고, 특히 표현할 길 없는 변화에 놀란다.122) 내가 계속 지각했고 나의 정신 속에서 끊임없이 그려지던 그 대상들이 결국에는 나로부터 나의 의식적 존재의 무엇인가를 빌린 것처럼 보인다. 나처럼 그것들도 살았고, 나처럼 그것들도 늙었다.(166쪽)

122)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가령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커서 가 볼 경우이다. 그 길이, 그 집이 그렇게 좁고 작았던가 하고 놀라게 된다. 이 경우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므로 쉽사리 말로 표현되지만, 그 느낌의 차이는 사실 단지 좁다든지 작다든지 하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무한히 복잡한 감정의 복합체이다. 이것이 가령 20대에(키가 다 자란 다음) 살던 곳을 40대 정도에 가보는 경우라면 훨씬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분명히 느낌의 차이는 있다. 어쨌든 이러한 현상은 그 집, 그 동네에 관한 인상이 항상 동일한 것이 아니라 변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 앙리 베르그송,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이처럼 '질적인 시간과 양적인 시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제기한 베르그송의 철학은 곧바로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닮았습니다. 그런데 베르그송의 상상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마치 한참 뒤에나 세상에 등장할 프루스트의 소설을 미리 정확하게 내다보기나 한 듯이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어떤 과감한 소설가가 우리의 상투적인 자아의 교묘하게 짜인 직물을 찢고 그러한 외견적 논리 아래에서 근본적인 부조리를 보여주고, 단순한 상태들의 그와 같은 병치 아래에서, 명명하는 순간 이미 존재하기를 멈추어 버렸던 수만의 다양한 인상들의 한없는 침투를 보여주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우리의 감정을 동질적 시간 속에 펼쳐 놓고, 그 요소들을 말로 표현한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그 역시 그의 차례가 되어 우리에게 그 감정의 그림자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단,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 그림자를 투사한 대상의 특별하면서도 비논리적인 본성을 의심케 하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표현된 요소들의 본질 자체를 이루는 그런 모순, 그런 상호 침투의 뭔가를 외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를 반성으로 초대했다. 그에 의해 고무되어 우리는 잠시 우리와 우리 의식 사이에 개입시킨 막을 걷어 제쳤다. 그는 우리를 우리 자신 앞에 다시 세운 것[뿐]이다.(170쪽)

 

 - 앙리 베르그송,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베르그송이 이 논문을 발표한 해는 1889년이었고,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으로 출간한 해는 1913년이었습니다. 프루스트가 자신의 소설 속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직접 거명하고,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들을 은연중에 자주 드러낸 점들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사촌누이와 결혼한 매형이자 당대 프랑스 지성계에서도 가장 우뚝한 인물로 인정받던 베르그송의 책들을 읽지 않았다고 단정기는 어렵겠지요.

 

또한 프루스트의 소설 자체가 굳이 '시간에 관한 소설'임을 따로 고려하지 않더라도, 프루스트는 이미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간' 말고도 '지속'이라는 베르그송 철학의 핵심 단어를 끊임없이 자주 불러내고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베르그송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특히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깊이 연구되었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베르그송 작품의 번역본(작품 해설)에서도 그런 영향의 일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적 자아, 심층 자아와 내적 지속에 대한 그의 이론은, 외적 조형미의 부각에 힘쓰던 문학으로 하여금 자기 내부의 무의식 세계로 그 시선을 돌리게 하여 상징주의의 개화와 함께 내면문학의 붐을 촉진시켰고, 그의 직관주의는 방대한 반지성적 경향의 움직임을 태동하게 하였는데, 그 대표가 시인 페리(Charles Peguy)였다. 문학비평에서도 티보데(Thibaudet)를 통하여 그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났으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프루스트(Proust)에 대한 영향이라고 하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은 바로 그의 지속을 가리키고 있고, 끊일 줄 모르고 무한히 계속되는 그의 문장은, 끊임없이 생동하는 내면세계의 지속을 포용하는 문장으로서 베르그송적인 문체를 대변하고 있다.(750쪽)

 

베르그송의 철학이 프루스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그치고, 이제부터는 프루스트의 문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요. 어쨌든 저는 '프루스트의 문장'을 읽는 동안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철학자들' 혹은 '작가와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런 작품들이 이 책을 읽는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하는지를 밝히는 게 주목적이니까요.

 

그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부 격인 <꽃핀 처녀들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아! 슬프게도 더없이 싱싱한 꽃 속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미세한 점을 알아볼 수 있으니, 이 점은 정통한 정신에게 오늘 꽃핀 육체마저도 건조하고 열매를 맺어 씨앗이라는 예정된 불변의 형태가 되리라는 걸 벌써부터 그려 보인다. 아침 바다를 감미롭게 부풀리며, 조수가 밀려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토록 고요한 바다이기에 움직이지 않아, 그린 듯 보이는 잔물결과도 흡사한 코를 우리는 기쁘게 쫓아간다. 인간의 얼굴은 우리가 바라보는 동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눈으로 지각하기에는 얼굴 변화가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들 곁에서는 소녀들의 어머니나 아주머니만 보아도 그들 모습이 관통한 거리를 충분히 측정할 수 있으며, 내면의 인력 작용에 따라 대개는 끔찍한 형태로 바뀌는 그 모습은, 삼십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눈매가 처지고 얼굴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더 이상 빛을 받지 못한다. 자기 종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줄로 믿고 있던 사람들 안에 감추어진 유대인 애국주의나 그리스도교인의 유전적 특징처럼 그렇게도 깊숙이 피할 수 없는 채로, 난 알베르틴이나 로즈몽드와 앙드레의 장미 꽃송이 아래서 그녀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을 위해 보존한 듯한 커다란 코나 튀어나온 입, 통통한 몸집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테지만, 실은 무대 뒤에 있어 언제라도 무대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어떤 상황의 부름을 받아 개인 자체를 앞선 본성에서 갑자기 발생한, 예기치 않은 운명적인 드레퓌스주의나 교권주의, 또는 민족적이고 봉건적인 영웅주의 같은 것들이다. 개인은 이러한 본성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본성이라고 여기는 것을 개인적인 동기와 구별하지도 못한 채 생각하고 살고 진화하고 확고히 하며 또는 죽어간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연계 법칙에 의존하므로, 우리 정신은 어느 은화식물이나 이런저런 벼과 식물마냥 우리 스스로 선택한 줄로만 여기는 여러 특징들을 미리 소유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차적 원인을(유대인 혈통이나 프랑스 가문 등) 인식하지 못하고 이차적 관념만을 포착하는데, 실은 이 일차 원인이 이차 원인을 필연적으로 생산해 냈으며, 그것이 때가 오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어떤 관념은 심사숙고의 결과처럼 보이며, 또 다른 관념은 건강상 부주의의 결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마치 콩과식물이 종자로부터 그 형태를 이어받듯이, 실은 우리도 우리 가족으로부터 사는 데 필요한 관념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이어받는다.

 

마치 모종관 하나에서 꽃들이 저마다 다른 시기에 무르익어 가듯, 나는 발베크 해변의 노부인들에게서 언젠가는 내 친구들도 닮을 그 단단한 씨앗과 무른 덩이줄기를 보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때는 꽃들의 계절이었으니. ……(411­∼413쪽)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중에서

 

 

저는 이 복잡미묘한 구절을 읽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잇따라 머릿속에 나타났다가 재빠르게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은 때로는 극히 느린 움직임으로 포착한 미세한 떨림들의 연속처럼 느껴지는데, 이 대목에서는 마치 오늘날의 카메라 기술이 자주 보여주듯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매우 빠르게 재생시킨 듯한 느낌을 줍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불과 1,2초 만에 빠르게 지나가고, 태양과 별들이 뜨고 지는 것도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것처럼 만들어진 영상을 우리는 이미 유튜브에서도 너무나 쉽게 목격하고 있지요.

 

꽃핀 풍경들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 꽃들이 다 스러지고 난 다음의 풍경들은 또 얼마나 서늘하고 쓸쓸한가! 시인들은 또 얼마나 자주 꽃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던가! 또한 꽃들이 '사랑'과 자연스레 연결될 때 '꽃이 피고 지는 일'은 그 얼마나 상징적인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언제나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던 그 황량한 언덕에도 어김없이 피어났던 히스 꽃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토록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싱그럽게 피어났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미친 듯한 사랑은 또 얼마나 빨리 시들어 광기어린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가요.

 

두 번째로 떠오른 작품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까지 밀어부친 소설 『율리시스』였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또한 '꽃'을 '애정'과 결코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율리시스』를 읽은 독자들은 그 난해한 책 속에서도 '호우드 언덕'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을 테지요. 꽃이 흐드러지게 핀 호우드 언덕에서 주인공인 블룸과 몰리가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장면은 얼마나 농밀하면서도 해독하기 쉬웠던가요! 이번 기회에 일부러 시간을 들여 그 두툼한 책 속에서 간신히 다시 찾은 그 부분을 여기서 인용해 보지요.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포도주가 그의 입천장에서 맴돌다가 꿀꺽 넘어갔다. 버건디 포도를 기계에 넣고 짜는 것이다. 그건 태양열이지. 마치 비밀의 촉감이 내게 기억을 되살려 주는 듯. 그의 감각에 감촉되어 촉촉하게 기억났다. 호우드 언덕의 야생 고사리 아래 숨겨진 채 우리들 아래 잠자는 만(灣) : 하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하늘, 라이온 곶(串) 옆의 자색의 만(灣). 드럼레크 곁에는 녹색. 서턴 쪽으론 황록색. 바다 밑의 들판, 희미한 갈색의 선(線)들, 매몰된 도시. 그녀는 나의 코트를 베개 삼아 머리를 괴고 있었지. 헤더 숲속의 가위 벌레가 그녀의 목덜미 밑에 있던 나의 손을 간질이고, 이러다가 저를 뒹굴게 하겠어요. 오 얼마나 근사하랴! 연고(軟膏)로 차고 부드러워진 그녀의 손이 나를 어루만지며, 애무했다: 내게 쏟은 그녀의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릴 줄 몰랐지. 황홀한 채 나는 그녀 위에 덮쳐 누워 있었지. 풍만하게 벌린 풍만한 입술,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냠. 따뜻하게 씹혀진 시드케이크(씨 과자)를 그녀는 나의 입에다 살며시 넣어 주었지. 메스꺼운 과육을 그녀의 입은 따뜻한 신 침과 얼버무렸다. 환희: 나는 그걸 먹었지: 환희. 싱싱한 생기. 뾰족하니 내게 내민 그녀의 입술. 부드럽고 따뜻하고 끈적끈적한 고무 젤리 같은 입술. 그녀의 눈은 꽃이었어, 저를 안아 줘요, 욕망에 찬 눈. 자갈이 굴렀다. 그녀는 잠자코 누워 있었지. 산양 한 마리. 아무도 없고. 만병초 꽃 우거진 호우드 언덕에 한 마리 암 산양이 발 디딤을 든든히 하면서 걷고 있었다. 까치밥나무 열매(똥)를 떨어뜨리며. 고사리 숲 아래 가려져 따뜻하게 안긴 채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그녀 위에 마구 덮쳐 누워, 그녀에게 키스했다: 눈, 그녀의 입술, 혈관이 뛰는 그녀의 뻗친 목, 얇은 망사의 블라우스 속에 부푼 여인의 앞가슴, 그녀의 위로 솟은 도톰한 젖꼭지에. 뜨거운 혀를 나는 그녀에게 내밀었지. 그녀는 내게 키스했지. 나는 키스 받았지. 몸을 온통 맡기며 그녀는 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흔들었지. 키스를 받고, 그녀는 내게 키스했지.*(144쪽)

 

* 몰리에게 한 구애가 절정을 이루는, 호우드 언덕에서의 블룸의 숨가쁜 기억(제18장, 몰리의 최후의 독백 참조). 무성한 만병초꽃과 고사리 숲에는 어느 관광객이 꽂아 놓은 '블룸을 방해하지 말라(No disturbing Bloom)'라는 푯말이 있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 <제8장 더블린 시 한복판(레스트리고니언즈)> 중에서

 

 

만병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호우드 언덕의 추억은 '역자의 주석'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율리시스』에서도 가장 유명한 제18장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지요. 이번에는 블룸이 아닌 몰리의 회상을 통해서 말이죠.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몰리의 독백은 Yes에서 시작해서 Yes로 끝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문장이지요. 그녀의 독백에는 쉼표와 마침표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엔 쉼표나 마침표가 없으니까요.) 


그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나는 가능한 한 그이를 흥분시키기 위해 앞가슴이 터진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어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유방이 막 통통하게 살찌기 시작하고 있었지 전 피곤해요 하고 나는 말했지 우리들은 전나무 동굴 위에 누워 있었지 황량한 곳이었어 세상에서 제일 높은 바위임에 틀림없을 거야 회랑이랑 포곽(砲郭) 및 저 무시무시한 바위들 그리고 고드름인지 뭔지는 모르나 늘어져서 사다리를 이루고 있는 성 미가엘 동굴 진흙이 온통 내 구두를 더럽히고 원숭이가 죽으면 저 길을 통해 바다 밑으로 해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것임에 틀림없어요 저 멀리 배들은 마치 나뭇조각 같았어 그것은 몰타를 향해 지나가는 보트였지 그렇지 바다와 하늘 누구든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 누워 영원토록 말이야 그이는 옷 위로 유방을 애무했어 남자들이란 그런 짓을 좋아하지요 거기가 동그랗기 때문이야 나는 그이에게 기대고 있었어 하얀 밀짚모자를 쓰고 너무 새것이 되어서 조금 햇볕을 쬘 양으로 말이야 내 얼굴은 왼쪽에서 보는 것이 제일 예쁘지 나는 블라우스를 그와 헤어지는 날을 위해서 터놓았어 살이 다 들여다뵈는 셔츠를 그이는 입고 있었지 나는 그의 가슴이 분홍빛임을 볼 수 있었어요 그이는 한동안 자기 것을 내 것에다 터치시키려고 했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도록 두지는 않았어 정말 후련해졌어 처음에 그는 몹시 당황했지 두려운 것은 폐병인지도 모르는데다가 혹시 임신될지도 모르잖아 저 늙은 하녀 아이네스가 내게 가르쳐줬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나중에 바나나를 가지고 시험해 보았지 그러나 그것이 부러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딘가 몸속에 토막이 남아 있지나 않을까 걱정했어 왜냐하면 한때 의사들이 여자의 몸에서 무엇을 꺼낸 적이 있었으니까 고놈의 것이 수년 동안 석탄염에 덮인 채 그곳에 숨어 있다나 남자들이란 자기들이 나온 곳으로 도로 들어가고 싶어서 죽고 못 살지 그들은 결코 속 깊이까지 도달할 수 없는 것 같아 그리고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일을 다 치러 버리거든 다음번까지 그렇지 왜냐하면 거기는 참 근사한 너무나 부드러운 기분이 들지 그동안 내내 정말로 보드라운 감촉 어떻게 하여 우리들은 끝나 버렸는지도 몰라 그래 오 그렇고 말고 나는 그이 것을 내 손수건에다 빼게 했지 나는 흥분하지 않은 척 하려 하고 있었지만 내 두 다리를 벌렸지 그가 내 패티코트 속을 터치하지 못하도록 했어 나는 옆이 벌어지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어 그이에게서 억지로 생명을 짜냈던 거야 처음엔 그이를 간질이고 있었지 나는 호텔에 있던 그놈의 개를 흥분시키는 것을 좋아했어 르르스스트 그르르릉 그이는 눈을 감고 그리고 새 한 마리가 우리들의 아래쪽을 날고 있었지 그이는 부끄러워했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저 아침의 기분처럼 그이가 좋았어 내가 그런 식으로 그이를 덮쳤을 때 그이는 약간 얼굴을 붉혔지 내가 그이의 단추를 풀고 그것을 꺼내 살갗을 벗겼을 때 그 끝이 일종의 눈(眼) 모양을 하고 있었어 남자들은 안쪽으로 아랫배 밑까지 단추 투성이야 내 사랑 몰리 하고 그는 나를 불렀지 ……(626∼627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 <제18장 침실(페넬로페)>

 

 

한편, 우리의 성격이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핋연적으로 - 프루스트가 말한 대로 '언제라도 무대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던 상태로' - 때가 되면 저절로 나타난다는 생각은 오늘날의 진화심리학자들이나 뇌신경과학자들의 주장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서 특히 놀랍습니다. 『빈 서판』과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스티븐 핑커야말로 이런 프루스트의 주장들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해온 진영의 주역이었지요. 물론 이런 생각은 앙리 베르그송이 1907년에 발표한 『칭조적 진화』에서도 뚜렷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두뇌의 운동기작은, 거의 모든 기억을 무의식 속에 억압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식 속에서 현재 상황을 조명하고 행동이 준비되는 것을 도와 결국에는 유용한 일을 낳을 수 있는 것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잉여의 기억들은 기껏해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몰래 통과할 뿐이다. 그것들은 무의식의 전달자로서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우리 뒤에서 이끌고 가는 것을 알도록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에 대한 명백한 생각을 갖지 않을 때라도 우리는 모호하게 과거가 우리에게 현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출생 이후부터 살아온 역사를 응축한 것이고, 심지어 출생 이전의 역사를 응축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출생 이전의 성향들도 더불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 과거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욕망하고 의지하고 행위하는 것은 우리의 원초적 영혼의 만곡(彎曲)을 포함하는 과거 전체와 더불어서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거는, 비록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 표상으로 된다 하더라도, 전체가 그 추진력에 의해 그리고 경향의 형태로 남김없이 우리에게 나타난다.(24∼26쪽)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중에서

 

프루스트의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담긴 7편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프루스트는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하지요. 바야흐로 지금이야말로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니만큼,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가운데 특히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과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담긴 생각들을 거의 동시에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화려한 문장을 한 대목만 더 인용해 보지요.


소녀들의 얼굴은 대부분 어렴풋한 붉은 빛 여명에 섞여 확실한 특징들이 아직 솟아나지 않은 상태였다. 몇 해가 지나서야 분명해질 그 구별되지 않는 윤곽 아래로 매혹적인 빛깔만이 보일 뿐이었다. 지금의 윤곽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으며, 그저 자연이, 가족 가운데 고인이 된 분에게 추모 인사를 드리는 정도의 일시적인 유사성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우리 몸이 어떤 놀라움도 약속하지 않는 부동성 속에 고정되는 순간은 너무도 빨리 오는 법이어서 그때 가면 한여름에도 벌써 죽은 잎이 보이는 나무들처럼 아직은 젊은 얼굴 둘레에 머리칼이 빠지고 희끗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든 희망을 상실한다. 이 찬란한 아침은 그토록 짧기에 우리는 소중한 밀가루 반죽마냥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 살갗을 가진 어린 소녀들만을 특히 사랑한다. 소녀들은 매 순간 그녀들을 지배하는 일시적인 인상들로 응고된 유연한 물질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소녀들 저마다가 차례차례로 솔직하고 완벽하며 그러나 덧없는 표현으로 주조되어 쾌활함과 진지한 젊음, 응석과 놀람을 담고 있는 작은 조각상인 듯하다. 그러나 가소성(可塑性) 덕분에 우리는 한 소녀가 보여 주는 상냥한 배려에 다양한 모습과 매력을 느낀다. 물론 이런 상냥함은 성숙한 여인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 여인들은 우리 마음에 들지 않으며, 또는 우리가 마음에 든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아 뭔가 따분하게도 획일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냥함 자체도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더 이상 얼굴에 유연한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여, 생존경쟁이 영원히 투사의 얼굴 또는 종교적 황홀에 사로잡힌 얼굴로 만들고 굳어지게 한다. 어떤 얼굴은 ㅡ 남편이 아내를 복종하게 하는 그 지속적인 지배력 탓에 ㅡ 여성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병사의 얼굴로 보이며, 어떤 얼굴은 어머니가 자식들 때문에 날마다 견디어 온 희생이 새겨져 사도(使徒)의 얼굴로 보인다. 또 어떤 얼굴은 수년간의 항해와 폭풍우가 늙은 뱃사공을 연상시켜 단지 복장에서만 여성이란 성별이 드러난다. 물론 우리에 대한 한 여인의 관심은 우리가 그 여인을 사랑할 때면 그녀 곁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새로운 매력의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에게 연달아 다른 여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쾌활하든 쾌활하지 않든 여인의 겉모습은 항상 똑같다. 그러나 청소년기는 완전한 응고가 진행되기 전이라, 소녀들 곁에 있을 때면 그 불안정한 대립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희하는 형태가 주는 광경에 상쾌함을 느끼게 되고, 이 대립은 우리가 바다 앞에서 관조하듯, 자연의 기본 원소들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434∼436쪽)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중에서

 

 

어떤가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그가 여느 과학자 못지 않은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녔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루스트의 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이 철학자 베르그송의 작품 속 문장들과 긴밀히 조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분열의 진정한 심층적 원인은 생명이 자신 안에 보유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생명은 경향이며 경향의 본질은 다발의 형태로 발달하는 것인데, 생명은 단지 커진다는 사실로 인해 자신의 약동을 공유한 채로 갈라지는 방향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관찰할 때 성격이라는 특수한 경향의 전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역사를 잠시 돌아보기만 해도 어린 시절의 인격이 비록 불가분적이지만 다양한 인물들을 그 안에 결합하고 있었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발생 상태에 있음으로 해서 전체가 혼합되어 있을 수 있었다. 이러한 약속으로 충만한 불확실성이야말로 유년기의 최대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상호침투하는 인격들은 성장하면서 양립 불가능하게 되고 우리 각자는 하나의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있으며 또한 끊임없이 많은 것을 버리고 있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거쳐가는 길은 우리 자신이 처음에 그러했던 상태, 또 될 수 있었음에 틀림없는 상태들 전체의 잔해들로 덮여 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결코 그러한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자연은 성장하면서 분기된 다양한 경향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것은 따로따로 진화하는 종들의 분기하는 계열들을 그 경향들과 함께 창조한다.(161∼162쪽)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중에서


이것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와 앙리 베르그송의 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에 대한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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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5-10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도 만나게 되었네요.ㅎ
영상을 보고 한눈에 알았습니다.^^

oren 2021-05-10 19:42   좋아요 1 | URL
아... 모나리자 님이 알라딘에도 계셨었군요!!
정말 깜놀이고, 또 반갑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94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어느새 현대인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느낌을 주는 아주 독특한 소설입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조르바는 온갖 사회 규범과 따분한 일상에 갇혀 틀에 박힌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약한 현대인의 모습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에 있는 인물이며, 그 어떤 전통적인 도덕이나 가치관으로부터도 훌쩍 벗어나 있어서 마치 태초의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 유형'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은 1964년에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만든 「조르바의 춤」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곡이 되었지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두 차례나 올랐다가 아깝게 탈락했는데,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알베르 카뮈는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남겼었지요. 아마도 이 작가에 대한 문인들의 평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는 콜린 윌슨의 다음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콜린 윌슨의 이 평가는 어쩌면 절반쯤만 진실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예 탄생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지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너무나 그리스인 다웠고, 그런 실존 인물을 소설 속에서 재창조한 작가 또한 <그리스적인, 너무나 그리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그리스인 답다'라는 표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 하면 과연 어떤 이미지부터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인류가 남긴 영원불멸의 서사시로 칭송받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트로이아 전쟁?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숱한 비극을 쓴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들?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믿기지 않는 투혼을 보여준 스파르타의 300 전사들? 혹은 살라미스 해전? 4년 마다 올림픽 성화 채화식이 열리는 고대 그리스 신전?


제가 방금 주마간산격으로 대충 언급한 고대의 여러 인물들이나 사건들만 놓고 보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오롯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유별난 애착과 탐구열을 보였던 철학자 니체가 <비극의 탄생>이라는 작품에서 그리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모든 예술이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인들에게 내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그리스인들이 의미하는 바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의미했던 바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의 단계는 깊은 불만감에서 한번쯤은 그리스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본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 외면상 완전히 독창적으로 보이는 것, 진정으로 감탄할 만한 것들이 갑자기 색채와 생명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모사품으로, 회화로 오그라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묻곤 한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5장


독일 철학자 니체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고대 그리스를 깊이 연구했던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도 ‘그리스인의 남다른 특징들‘에 대해 인상적인 언급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했으면서도 가장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고, 그런 삶을 ‘인류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람들 또한 ‘그리스인‘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위로는 영웅시대 내지 호메로스 시대로부터, 내려와서는 4,5세기 후의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의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대에 걸치는 그리스의 역사 · 문학 · 예술 · 시가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느끼는 흥미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나가 몸소 그리스의 한 시기를 경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스적 상황이란 육체적 본성의 시대, 관능 완성의 시대이다. 정신적 본성이 육체와 엄밀하게 일치하여 나타난 시대이다. 거기에는 조각가에게 헤라클레스, 아폴론, 제우스의 모델을 제공한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의 육체가 있었다. 근대 도시의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막연히 이목구비가 뒤섞여 있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또렷이 윤곽이 잡힌 균형적인 용모로 이루어지고, 눈동자만 하더라도 이런 눈으론 곁눈질하거나 이쪽저쪽 흘겨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머리 전체를 돌려서 보아야만 되도록 틀이 잡혀 있었다.

이 시기의 몸가짐은 솔직하고 맹렬하다. 그러나 나타난 존경은 인간적 자질에 대한 것이다. 즉 용기 · 숙달 · 자제 · 공정 · 힘 · 민첩 · 고성(高聲) ·넓은 가슴 등에 대한 것이다. 사치와 우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구가 매우 적은 데다 부유하지도 않았으므로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이 시종(侍從)으로도, 요리인으로도, 도살자로도, 군인으로도 된다.

그리스인은 반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관능(官能)에 있어서, 건강에 있어서 완벽하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육체 조직을 가지고 있다. 어른은 애들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행동했다. 그들은 꽃병을 만들고, 비극을 쓰고 조상(彫像)을 만들었다. 그것도 건전한 관능으로 만들 수 있는, 즉 좋은 취미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것은 계속하여 어느 시대에나 만들어졌고, 어디에서나 건전한 육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 그들은 어른의 활력과 어린이들의 매력 있는 천진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린이와 같은 천재와 타고난 활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인인 셈이고, 그는 헬라스의 시신(詩神)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소생시킨다. 나는 저 필록테테스 극(劇)에 나타난 자연애를 찬탄한다. 그 잠과 별과 바위와 산과 파도에 대하여 호소하는 글을 읽을 때, 나는 시간이 썰물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을 느낀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자기신념의 철학』,〈역사란 무엇인가〉중에서


에머슨이 일찌감치 1849년에 발표한 <위인이란 무엇인가>에 실린 이 그리스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그가 100년쯤 후에나 세상에 등장할 어느 멋진 소설의 주인공(조르바)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만큼 <그리스인 조르바>는 철저히 그리스인이었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힘과 민첩함과 넓은 가슴을 지닌 어른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인간이었습니다.


다소 형이상학적인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이제부터는 그리스인 조르바 못지않게 뼛속까지 속속들이 그리스인이었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해서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그는 그리스의 여러 섬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섬인 크레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출생지 하나만으로도 예민한 독자들로 하여금 온갖 신화적 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작가였습니다.


크레타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문명이 개화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1700년경부터 고대문명이 꽃핀 곳이지요. 크레타 문명의 황금기에 중심도시 크노소스에는 인구가 8만 명에 육박했으며 크노소스 궁전은 사방으로 8백 개 이상의 방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건축물이었다고 하지요. 장구한 세월 동안 잊혀졌던 이 크레타 문명은 19세기 말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었습니다.


이 크레타 문명의 전성기를 다스린 인물은 미노스 왕이었는데,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는 제우스가 황소로 둔갑해 에우로페를 유혹하여 낳은 아들이었지요.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고, 분노한 포세이돈은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지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괴물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습니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은 가두기 위해 기술 장인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미궁을 짓게 하고, 그 속에 갇힌 괴물은 9년마다 한 번씩 왕국의 속국 아테네로부터 선남선녀 각 일곱 명씩을 공물로 받아 먹었습니다.


이런 비극을 참다 못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세 번째로 공물을 바치던 해에 열네 명의 희생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여 크레타로 건너갑니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맞장을 뜨기 위해서였지요. 마침 이 용감무쌍한 아테네의 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크레타 처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미노스 왕의 공주 아리아드네였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공주의 실타래 덕분에 미궁 속에서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맞아 함께 조국 아테네로 향합니다. 그런데 일행을 태운 태운 배가 도중에 낙소스 섬에 들렀다가 그만 테세우스가 사고를 치고 맙니다. 테세우스가 딴 여자에 눈이 멀어 아리아드네를 헌신짝처럼 팽개쳤던 것이지요. 이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기꺼이 맞아들인 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였습니다.


아리아드네 공주를 버리고 낙소스 섬을 떠난 테세우스는 무사히 아테네로 되돌아오지만 항구에 도착하자말자 뜻밖의 비보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크레타 섬에서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돌아오는 경우에는 흰 돛을 달고, 실패하면 출발할 때 달았던 검은 돛을 그대로 달고 오겠노라 약속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흰 돛으로 바꿔달지 못했던 탓에 테세우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틀림없이 변고가 생긴 줄 알고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그리스 앞바다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의 이름을 따서 에게 해로 불리고 있지요.


이처럼 크레타 섬은 이미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찬란한 고대문명이 싹튼 곳이자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 등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전설적인 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테세우스의 영웅담은 단지 신화로만 전해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도 전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일까요?


여러 시인이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배가 크레테에 닿았을 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미궁에 들어갈 때 삼으로 만든 실타래를 주면서 길을 찾아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테세우스는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소년 소녀들은 물론 아리아드네까지 데리고 무사히 아테네로 돌아왔다.


이 사건과 아리아드네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서 버림받아 목을 매 죽었다고도 하고, 테세우스의 배를 타고 낙소스 섬으로 가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오이나루스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그곳에 버려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 중에서


제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하면서 엉뚱하게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소개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도 얼마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섬에 얽힌 테세우스의 모험담을 현재진행형으로 되살린 『크노소스 궁전』을 출간했는데, 자신의 조국 아테네를 해방시키기 위해 괴물과 맞서 싸우는 테세우스의 영웅적인 모험이야말로 카잔차키스 문학의 핵심 주제인 '인간의 삶이란 자유를 갈구하는 영원한 투쟁'임을 표상했기 때문이지요.


카잔차키스의 작가 정신이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영혼의 자서전』에 담긴 다음의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


1883년에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평생 동안 말 그대로 수많은 대륙과 도시들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이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닮아가고 있었던 셈이지요. 현대판 오뒷세우스라 불리는 그는 아토스 산을 비롯한 그리스의 여러 지방은 물론, 파리, 빈, 취리히, 카프카스, 나움부르크, 폼페이,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스페인, 로마, 이집트, 시나이, 키예프, 모스크바, 베를린, 니스,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등을 두루 떠돌아다녔는데,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였지요.


1908년 아테네에서 대학을 마치고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그곳에서 생()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을 만납니다. 때마침 그 철학자는 자신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1907)를 막 출간한 직후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창조적인 힘에 따라 생명의 약동으로 부단히 진화하는 존재였습니다. 베르그송의 생철학은 카잔차키스가 베르그송 다음으로 만난 니체의 위버멘쉬() 철학과 절묘하게 결부됩니다.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초인을 인류의 희망이라고 부를 정도였지요.


<구원의 문은 우리 손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에게 《초인》은 희망이다. 《초인》은 대지의 종자이며, 해방은 그 종자 속에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우리를 심연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인간은 마땅히 저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


니체에 뒤이어 카잔차키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실존 인물인 게르기오스 조르바였습니다. 1917년, 1차 대전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카잔차키스는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꾼으로 고용한 인물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카잔차키스는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공공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어 카프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 15만 명의 그리스인들을 송환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는데, 이때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팀에 조르바를 합류시켰습니다.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은 대략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제부터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소설 속 이야기보다 이 작품을 둘러싼 배경 이야기를 구구절절 펼쳐놓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정작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해봐야 탄탄한 구성을 갖춘 짜임새 있는 서사라기보다는 화자인 나와 주인공 조르바가 허구헌 날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마치 『돈키호테』의 핵심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화자인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항구 도시 카페에서 우연히 조르바를 만납니다.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지식인인 나는 이제부터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아 크레타 해안을 찾아가는 중이지요. 그곳엔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키카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인 조르바는 한 눈에 보기에도 먹물인 '나'와는 영 딴판이지요.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대뜸 어디로 여행하느냐고 묻고, 크레타로 가는 길이라는 화자의 대답을 듣자 말자 조르바는 '날 데려가시겠소?' 라고 도발적으로 묻지요.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한 조르바의 모습을 보자 그 헌털뱅이 같은 친구를 섬으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기꺼이 그와 동행합니다. 마침 조르바는 광산에서 십장으로 일한 경력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량한 크레타의 해안에 오두막을 짓고 갈탄광을 채광하는 사업을 함께 시작한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출신 배경과 나이임에도 서로 기가 막힌 케미를 보인 끝에 끝내 '영혼의 단짝'이 됩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둘이서 크레타 섬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나'는 단테의 시행을 찾아 읽으며, 붓다에 대한 원고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 골몰하지요. 그러나 조르바는 책 속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서 펄떡이는 야생의 자유로운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의 자그마한 마을 해안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갈탄광 사업을 함께 꾸려가는 동안, 화자는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조르바를 점점 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조르바는 세상만사에 도무지 거칠 것이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나간 건,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손가락이 녹로 돌리는데 자꾸 거치적거려 손도끼로 잘라버렸기 때문이었고, 젋은 시절 마케도니아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잡화를 팔고 다닐 때면 어둑해진 마을마다 과부들 집만 찾아다니고 묵었으며, 터키의 지배를 받던 크레타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땐 행상 대신 총을 집어들고 크레타 독립군에 가담해 숱한 터키인들의 목과 귀를 잘랐던 이력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자는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요. 


조르바는 크레타의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며 지내는 퇴물 카바레 가수 오르탕스 부인과도 이내 연인 사이가 되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또다른 젊은 과부에게 몹시 이끌리지만 차마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대는 화자와 대비되지요. 조르바의 지극히 남성우월적인 독특한 여성관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이루는데, 적잖은 독자들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하지요. 조르바의 여성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많은 어록(?) 가운데 한둘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사내가 오겠지요……. 」


「두목, 당신은 여자가 별것인줄 아는데……. 하기야 별것은 별것이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데 뭣하러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률과 종교가 들고 나서 봐야 여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요.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걸 쓰면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한 짓이에요. 공정하지 못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는 십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내는 사내니까…… 계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킬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 필요한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


남녀평등 사상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조르바식 여성관은 페미니즘이 날로 강조되는 요즘 세태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온갖 속박이나 굴레로부터 벗어나 본능적인 욕구에 오롯이 충실하고자 했던 디오니소스적 인간 조르바로서는 여성을 달리 생각할 다른 까닭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을 쓴 작가가「디오니소스 찬가」를 지어바친 철학자 니체를 끔찍히 숭앙하는 인물이었으니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여기서 잠깐 니체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문장 하나만 인용하고 넘어가지요.


‘남성과 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여기에 있는 헤아릴 길 없는 대립과 그 영원히 적대적인 긴장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여기에서 아마 평등한 권리와 교육, 평등한 요구와 의무를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시이다. 이러한 위험한 장소에서 스스로 천박하다는 것을 ㅡ 본능에서의 천박함을! ㅡ 드러내는 사상가는 대체로 의심스러운 존재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내고 폭로된 것으로 여겨도 될 것이다 : 아마 그는 미래의 삶을 포함한 삶의 모든 근본 문제에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결코 어떤 심연으로도 내려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정신에서나 욕망에서도 깊이가 있고, 엄격하고 혹독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것들과 쉽게 바꾸는 호의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 남성은 여성을 언제나 동양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는 여성을 소유물로서, 열쇠로 잠가둘 수 있는 사유 재산으로, 봉사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고 봉사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ㅡ 그는 이 점에서는 아시아의 거대한 이성의 편, 아시아적 본능의 탁월함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찍이 이러한 아시아를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자이며 제자였던 그리스인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힘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여성에 대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더욱 엄격해지고 간략히 말해 동양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얼마나 필연적이며, 논리적이고, 그 자체로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었던가!
 
- 니체, 『선악의 저편』, <제7장 우리의 덕>, 제238절


소설 속의 이야기는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과의 사이에 피어났던 때늦은 로맨스, 요부 같은 젊은 과수댁 소멜리나를 향한 연정이 좌절된 마을 청년의 자살과 그걸 앙갚음하는 복수극이 차츰 마무리되고 나면 서서히 종반부로 접어들지요. 한편, 나날이 기울어가던 갈탄광 사업을 단번에 반전시키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고가 케이블 선로 작업은 개통식 당일에 파국을 맞고 말지요. 케이블에 매단 통나무에 악령 같은 가속도가 붙어 철탑들이 모조리 쓰러져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졸지에 닥친 파국을 마주하면서도 두 사람은 절망 대신 도리어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합니다. 개업식을 위해 마련한 양고기와 빵과 포도주로 잔뜩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이내 구두와 양말을 벗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 유명한 조르바의 춤이지요.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같았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이러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오?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애지중지해 오던 모든 것이 수포로 끝난 순간 뜻밖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갈탄광 사업을 완전히 말아먹은 두 사람은 그 길로 영영 헤어지지만 그 후로도 7년 가까이 엽서를 주고받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던 조르바의 유언은 세르비아의 스코플리예 가까운 마을로부터 온 편지 속에 담겨있었습니다.다.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전해주시오.


조르바가 남긴 최후의 유언이야말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조르바는 까마득한 옛날 자신의 선조들이 외족의 침략이나 지배에 대항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듯이 '자유'를 향해 끝까지 투쟁하는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결혼이나 가정은 물론 조국이나 하느님한테 얽매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처럼, 그는 타고난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매순간을 기적처럼 바라보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원숭이 껍질을 처음으로 벗어 던진 원시인처럼, 아니면 위대한 철학자처럼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에 지배당한다. 조르바는 이들 문제를 목전의 급한 필요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비록 현대소설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나 신화에 얽힌 미묘한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아주 독특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까마득한 옛날 미궁에 갇힌 괴물과 싸우기 위해 크레타로 건너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분에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삶이 미궁처럼 복잡하게만 보이고 도무지 출구조차 보이지 않을 때, 에게 해의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크레타 섬으로 조르바를 만나러 독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갈탄광 사업이 쫄딱 망한 날 크레타 섬의 어느 해안가에서 기뻐 날뛰며  춤을 추던 조르바가 우리 인생의 '실마리'를 건네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러니 그대들 자신을 뛰어넘어 웃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그대 멋진 춤꾼들이여, 활짝, 더욱 활짝 가슴을 펴라! 건강한 웃음 또한 잊지 말고!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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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5-01 0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튜브 활동을 하시느라 oren님 글이 서재에 자주 올라오지 않아 아쉽네요. 대신 더 깊이있는 글을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다행이라 여겨지네요. 오랜만에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oren 2021-05-01 15:00   좋아요 1 | URL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일이 여간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가끔씩은 ‘고된 유튜브 영상 만들기‘에서 벗어나서 한가로운 ‘알라딘 글쓰기‘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마음도 들 때가 있고요. 그래도 알라딘 서재보다는 유튜브 채널이 훨씬 더 역동적이라, 그 넓은 무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겨울호랑이님을 비롯한 훌륭한 알라디너분들의 좋은 글들을 예전처럼 꼼꼼히 읽고, 감사의 표시와 댓글을 남기는 것조차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아무쪼록 겨울호랑이님께서는 오래도록~~ 알라딘 서재를 풍성하게 꾸며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유튜브 영상 작업에 쓰이는 대본만이라도 꾸준히 올려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 T.S. 엘리어트, 『황무지』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봄이 시작되는 사월을 일년 중 가장 잔인한 달로 영원히 각인시켜버린『황무지』는 현대시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지요. 사월은 비단 영국의 시인에게만 잔인한 달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4.19 학생 운동과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바로 라일락 꽃향기가 아른거리는 사월에 일어났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이 발표된 1922년은 문학사에서도 참으로 유별난 한 해였습니다.


1920년대에 나온 사상과 중요한 문학 작품은 거의 다 1차 대전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즉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반응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 1922년이 되자 새 지평을 여는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아홉 번째 권 『소돔과 고모라』, 버지니아 울프의 첫 실험소설 『제이콥의 방』,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엔리코 4세』 등등 20세기 문학의 주춧돌이 모두 놓였다.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이 무렵에 등장한 '문학의 새로운 형식'이 소위 모더니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쏟아져 나온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들이 비판하는 것은 특히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황폐한 사회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란 곧 소유에 모든 가치를 두는 '탐욕으로 점철된 사회'였습니다. 바야흐로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해 마지 않는 LH 투기 사태 또한 그 근원을 따져보자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기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악취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일 테지요.


엘리엇은 1888년 신심이 돈독한 미국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14년에는 철학 연구를 계속할 요량으로 영국의 옥스퍼드로 건너갔습니다. 바로 그 무렵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엘리엇은 유럽 대륙에서 평생을 함께 할 두 사람을 만납니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첫 번째 아내인 비비엔 헤이우드였지요.


엘리엇은 미국에서 건너온 선배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덕분에 실로 엄청난 도움을 받게 됩니다. 『황무지』라는 시는 에즈라 파운드에 의해 거듭 났으며, 엘리엇은 이 특별한 시의 제사에 기꺼이 파운드의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보다 훌륭한 예술가'라는 존경의 표현을 덧붙여서 말이지요. 


이 어렵고도 난해한 현대시의 주요 관심사는 전후 세계에 있어서 삶의 핵심으로 간주된 불모성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엘리엇은 우리가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가차 없는 추락일 수 있는지를 『황무지』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이 시는 <제사(題辭)>,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수사>, <천둥이 한 말>의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소제목들은 한결같이 그저 어렴풋하기만 합니다. 시에 담긴 다양한 목소리는 여러 사람이 어우러진 합창으로 들리다가도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또 어떤 때는 다양한 문화권의 고전에서 따온 구절로 말을 걸어옵니다. 어느 대목에서는 타로 카드 점쟁이한테 갔다가, 어느 순간 문 닫을 시간이 된 런던의 선술집에 들어와 있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 신화 속으로 곧장 무대가 옮겨지는 등 장소와 시간의 급작스럽고도 예고없는 변화를 특징으로 삼아 방대한 문화의 문학작품들을 건너뛰어 다닙니다.


이렇듯 황무지는 여러 시공간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면서 인간의 정신적 메마름,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을 노래합니다.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계절의 순환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도 이어지는데, 고대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와 철학을 깊이 연구했던 엘리엇의 여러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중요한 모티프가 바로 '죽음을 통한 재생'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시는 덜렁 한 번 읽는다고 해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은 아니지요. 또한 이 시에는 시인이 직접 달아놓은 각주가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달려 있어서 마치 학술 논문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흔히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징이나 구체적인 대상 같은 것들만 알아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비로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는 대가의 그림 같다고 말이지요.


비록 우리가 434행이나 되는 이 유명한 장시의 전체 그림을 두루 살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분은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영상의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싯구절의 바로 앞에 놓인 제사부터 잠깐 살펴볼까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

 


이토록 갈피를 잡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황무지』라는 난해한 시에 대해 제가 비로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 덕분이었습니다. 그 책 속에는 어렵기로 소문난 『황무지』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우선 『황무지』와 에즈라 파운드에 얽힌 이야기부터 조금 살펴보지요.

『황무지』의 재발견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 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rn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도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는 『황무지』가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고 미국에서 엘리엇의 출판권을 대리하고 있던 유능한 에이전트 존 퀸(John Quinn)에게 초고를 선물로 보냈다. 퀸은 원고를 받은 이듬해에 사망했고,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초고가 분실되었다.엘리엇은 아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즉, 우호적이면서도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02-403쪽

 

엘리엇은 책을 좋아하고 문예에 밝고 기지가 풍부한 사람으로서 모든 면에서 '하버드 맨'으로 합당했던 인물이었지만, 결국 하버드의 무미건조한 분위기와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꼈더랬습니다.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점차 소외감이 커지는 것을 느낀 엘리엇은 차츰 보스턴과 세인트루이스와 미국을 벗어날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훨씬 오랜 역사와 더 위대한 문학 유산을 가진 나라, 종교와 영혼의 문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아이러니의 깊은 의미를 아는 땅인 프랑스와 영국에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철학 공부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10쪽


졸업 후에 결국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프랑스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에밀 뒤르켐과 같은 석학들의 강의를 들었고, 점점 더 유럽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는 외국에 계속 남아 시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1911년에 하버드로 되돌아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게 되지요.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주제라고 하지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듯합니다. 에즈라 파운드가 이 시를 가차없이 편집함으로써 원작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품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사실 말이지요. 엘리엇 연구자들은 이제 엘리엇이 수정한 흔적뿐만 아니라 파운드의 제안대로 개고한 흔적까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가 담긴 시

오랫동안, 특히 1921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엘리엇은 온갖 다양한 상황을 묘사한 장면과 에피소드를 탈고했다. 현대 런던에서 하층계급이 영위하는 삶, 신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장면, 겨울과 뼈, 사막 등 환기력 강한 이미지가 특징인 자연 현상 묘사,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 고급 문학(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에서 따 온 구절, 평판 높은 작가(포프)의 패러디, 찬미의 송가, 뜨거운 설법, 페니키아 수부(水夫) 이야기, 산스크리트 구절 등이 그것이다. 독자는 이제 곤혹스러운 중년 남자의 언어만이 아니라,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27쪽

 

『황무지』라는 작품에 대한 문학계의 반응과 평가는 실로 막대했습니다. 비록 만년의 엘리엇이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걸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는 건 분명하지요.


엘리엇은 한때는 통합된 전체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점차 조각나고 해체되어 무력화된 유럽 문명의 묵시록적 종말, 유럽 문명에 만연되어 있는 병적인 불안감을 시라는 언어 예술에 담아냈다. 그는 몇 년 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t Spengler, 1880∼1936)의『서구의 몰락』에서 직설적으로 표명된 메시지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황무지』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양 문명이나 인간의 분열 혹은 가치의 몰락이나 부재를 명백하게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이러한 감수성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다. ······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 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엘리엇은 개별 시행의 의미가 애매하고 상호 연결이 어색한 5부로 시를 나누어 구성했음에도 시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다른 현대의 문학작품처럼 재독, 삼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부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엘리엇의 비감한 정서를 더욱 뚜렷하고 힘차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혹은 『봄의 제전』과 『결혼』에 유사한 점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1∼432쪽


대략 이 정도로 살펴봤으면 그토록 난해하다는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어림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걸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천재 연구의 전문가>인 하워드 가드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지요.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당대의 다른 어느 시작품보다 동시대 교양층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기분과 주제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500행에서 다소 모자라는 시행에서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시행 하나하나 연(聯) 하나하나가 의미로 가득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룬 독립적인 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굉장한 특성으로 인해, 독자는 하나의 거대한 시세계를 음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관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분마다 장면마다 구어체 언어와 생생한 희화(戱畵), 한결같은 자연 묘사, 신화적인 이미지, 재기 넘치는 대화, 애상적인 도시 장면, 이야기체의 소품(小品), 음가(音價)를 이용한 언어 유희, 붉은 빛이 강렬한 스냅사진과 같은 이미지 등 수많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현대의 또 다른 걸작, 가령『율리시스』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처음에는 한 쪽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변주된 다양한 주제들 역시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비록 정연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는 마치 고대의 모험담을 읽을 때처럼 하나의 완결된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4∼435쪽


하워드 가드너의 설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쯤에서 다시 그 유명한 시의 '잘 알려진' 첫부분으로 되돌아가 보지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현대시에 얼마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엘리엇의『황무지』를 여기까지는 다들 읽었지 싶습니다. 저 또한 이 유명한 시를 까마득한 옛날 그 언젠가 한번쯤 읽어봤지만, 그때 제가 이 어려운 시를 도대체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시가 너무나 어려워서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봤던 그 시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대목 하나는 바로 페트로니우스의 작품 《사티리콘》(Satyricon)에서 인용했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묘비명이었습니다. 특히 '쿠마에 무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더랬습니다.


도대체 그 무녀는 왜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며, 그녀는 왜 그토록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쿠마에는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이며, 그 무녀는 도대체 어떤 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화'를 조금씩 찾아 읽게 되면서 그 무녀의 정체가 저에게도 차츰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몹시 힘겹게 읽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이윤기의『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비디우스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저는 마침내 그녀가 그토록 멀게만 떨어져 있지는 않은 듯한 착각마저 느꼈습니다.
 

어느날 문득 쿠마에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아뿔싸! 그곳은 놀랍게도 나폴리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곳이라면 제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어쩌면 슬쩍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곳이 아닌가. 우리 일행이 파리와 런던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되는 날이었지 싶습니다. 그 전날만 하더라도 난생 처음 찾아간 로마의 유적지들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바쁜 걸음을 재촉했던 터여서 녹초가 되다시피 했던 우리 일행은 정작 그 다음날 훨씬 더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만 했더랬습니다.

바로 그날, 우리 일행들은 아마도 거의 새벽 4시쯤에 모닝콜을 들어야 했습니다. 미리 호텔에서 준비해 놓은 '빵 도시락' 비슷한 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난 뒤에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타고 로마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화산재로 뒤덮여 하루 아침에 '황무지'보다 더한 폐허로 뒤바뀐 폼페이를 빠트리지 않고 둘러본 우리는 쏘렌토 항에 도착하자말자 곧바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큰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건너 갔습니다.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한가한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또다시 작은 배에 옮겨 타고 '카프리의 푸른 동굴'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배를 타고 지중해의 잔잔한 바다를 건너 다니고, '푸른 동굴' 속에서 이탈리아 남자 뱃사공이 불러주는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생생한 이탈리아어로 듣는 순간들은 정말로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카프리 섬을 떠나 우리가 나폴리 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 나폴리에서 우리가 어딜 더 구경했는지는 이젠 기억조차도 희미합니다. 아마도 서둘러서 예약된 식당으로 찾아가 저녁을 때우고는 또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먼 길에 오르느라 버스에 서둘러 올라탄 기억밖에 남지 않은 듯합니다. 그 뒤에 우리들에게 무섭게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죽음보다 깊은 잠'이었습니다. 일행 모두가 무거운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무심코 지나쳤던 도시가 바로 쿠마에였습니다.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시뷜라라는 무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마에 무녀는 도대체 얼마나 예뻤으면 아폴론이 그토록 큰 소원까지 들어주며 사랑을 애원했던 걸까요. 그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면서 "죽고 싶어"라고 애원하던 괴퍅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저는 비로소 그 무녀의 실물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토록 죽기를 갈망했던 그 무녀가 과연 맞는지 제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미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쿠마에 무녀가 이토록 예쁜 모습으로만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그림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여자답지 못한 모습인가요.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면서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하는 바람에 끝없이 늙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겪지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린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이왕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지요. 그 천재화가가 교황의 명을 받들어 매우 고된 작업 끝에 1512년에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 그림은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거대한 천장에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그림은 모두 아홉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고, 그 그림 주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일곱 명과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다섯 명도 함께 그려졌습니다. 그 가운데 이방의 무녀는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라고 하지요. 천장의 다섯 번째 그림에 '쿠마에 무녀'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유독 시스티나 천장 그림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펼치면 '쿠마이의 시뷜레'가 마치 여럿 있었던 것처럼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대목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함께 '쿠마에 무녀' 이야기를 매우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어서 저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의 '혼동스러운 설명' 때문에 뭔가가 좀 아리송했습니다. 다음의 인용문부터 우선 살펴보지요.

 

시뷜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지만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가 말하는 '쿠마이의 시뷜레(Cumaean Sibyl)'가 가장 유명하다. 오비디우스는 시뷜레가 천 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뷜레의 수가 많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동일 인물이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태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다섯 명의 시뷜레를 그린 바 있다.

 - 이윤기,『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3』제4장〈소원 성취, 그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이런 설명과 함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렸던 그림 두 장을 함께 실어 놓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 하나는 '쿠마에 무녀'이고 또 다른 그림은 '델포이 무녀' 였습니다. 그런데 이윤기 작가는 그 그림 둘을 한 테두리에 묶어서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시뷜레』'라는 제목을 붙였고, 제목 바로 아래에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다섯 시뷜레의 일부'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그 설명과 그림을 함께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저와 비슷한 궁금증이나 오해를 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도대체 '쿠마이의 시뷜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으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무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따로 따로 그려 넣었을까?" 혹은 "'쿠마이의 시뷜레'는 정말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무녀로구나..."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엘리엇의 시로 넘어가지요. 어쨌든 엘리엇의 작품『황무지』에 등장하는 쿠마에 무녀는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은 탓에 몸이 쪼그라들어 항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변해 있습니다. 비록 목숨은 살아 있지만 몸은 이미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니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진짜로 죽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고대 신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늘상 그러하듯 모든 존재들은 꼭 한 번은 죽어야만 새로운 삶으로의 재탄생을 기약할 수 있었으니, 시뷜라 또한 그런 희망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죽음을 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 또한 쿠마에의 무녀처럼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상태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무지』의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죽은 자들의 행렬을 꼭 빼닮은, 매일 아무런 생각없이 아침 9시에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출근하느라 바삐 런던 브릿지를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을 그렸습니다. 제2부 '체스 한 판'과 제3부 '불의 설교'에서는 공허한 일상과 육체적 욕구만을 채우기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권태롭고 공허한 욕정만 오갈 뿐 생명력이 넘치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래서 불모(不毛)의 '황무지'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찾아오는 봄비와 꽃향기 가득한 사월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황무지처럼 '잔인'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던 쿠마에의 무녀 시뷜라가 결국 신의 사랑을 외면한 댓가로 얻은 건 '죽음같은 삶의 오랜 지속'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왜 하필이면 쿠마에의 무녀를 맨 앞에 등장시켰는지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쿠마에의 무녀가 그토록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이유는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에 담고자 했던 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음울하고, 아무런 가망도 없이, 노쇠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런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내던져진 게 아니라는 느낌은 쿠마에 무녀의 '죽고 싶어'라는 말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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