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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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94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어느새 현대인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느낌을 주는 아주 독특한 소설입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조르바는 온갖 사회 규범과 따분한 일상에 갇혀 틀에 박힌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약한 현대인의 모습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에 있는 인물이며, 그 어떤 전통적인 도덕이나 가치관으로부터도 훌쩍 벗어나 있어서 마치 태초의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 유형'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은 1964년에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만든 「조르바의 춤」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곡이 되었지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두 차례나 올랐다가 아깝게 탈락했는데,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알베르 카뮈는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남겼었지요. 아마도 이 작가에 대한 문인들의 평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는 콜린 윌슨의 다음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콜린 윌슨의 이 평가는 어쩌면 절반쯤만 진실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예 탄생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지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너무나 그리스인 다웠고, 그런 실존 인물을 소설 속에서 재창조한 작가 또한 <그리스적인, 너무나 그리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그리스인 답다'라는 표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 하면 과연 어떤 이미지부터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인류가 남긴 영원불멸의 서사시로 칭송받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트로이아 전쟁?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숱한 비극을 쓴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들?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믿기지 않는 투혼을 보여준 스파르타의 300 전사들? 혹은 살라미스 해전? 4년 마다 올림픽 성화 채화식이 열리는 고대 그리스 신전?
제가 방금 주마간산격으로 대충 언급한 고대의 여러 인물들이나 사건들만 놓고 보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오롯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유별난 애착과 탐구열을 보였던 철학자 니체가 <비극의 탄생>이라는 작품에서 그리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모든 예술이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인들에게 내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그리스인들이 의미하는 바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의미했던 바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의 단계는 깊은 불만감에서 한번쯤은 그리스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본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 외면상 완전히 독창적으로 보이는 것, 진정으로 감탄할 만한 것들이 갑자기 색채와 생명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모사품으로, 회화로 오그라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묻곤 한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5장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했으면서도 가장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고, 그런 삶을 ‘인류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람들 또한 ‘그리스인‘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위로는 영웅시대 내지 호메로스 시대로부터, 내려와서는 4,5세기 후의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의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대에 걸치는 그리스의 역사 · 문학 · 예술 · 시가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느끼는 흥미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나가 몸소 그리스의 한 시기를 경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스적 상황이란 육체적 본성의 시대, 관능 완성의 시대이다. 정신적 본성이 육체와 엄밀하게 일치하여 나타난 시대이다. 거기에는 조각가에게 헤라클레스, 아폴론, 제우스의 모델을 제공한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의 육체가 있었다. 근대 도시의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막연히 이목구비가 뒤섞여 있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또렷이 윤곽이 잡힌 균형적인 용모로 이루어지고, 눈동자만 하더라도 이런 눈으론 곁눈질하거나 이쪽저쪽 흘겨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머리 전체를 돌려서 보아야만 되도록 틀이 잡혀 있었다.
이 시기의 몸가짐은 솔직하고 맹렬하다. 그러나 나타난 존경은 인간적 자질에 대한 것이다. 즉 용기 · 숙달 · 자제 · 공정 · 힘 · 민첩 · 고성(高聲) ·넓은 가슴 등에 대한 것이다. 사치와 우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구가 매우 적은 데다 부유하지도 않았으므로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이 시종(侍從)으로도, 요리인으로도, 도살자로도, 군인으로도 된다.
그리스인은 반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관능(官能)에 있어서, 건강에 있어서 완벽하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육체 조직을 가지고 있다. 어른은 애들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행동했다. 그들은 꽃병을 만들고, 비극을 쓰고 조상(彫像)을 만들었다. 그것도 건전한 관능으로 만들 수 있는, 즉 좋은 취미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것은 계속하여 어느 시대에나 만들어졌고, 어디에서나 건전한 육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 그들은 어른의 활력과 어린이들의 매력 있는 천진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린이와 같은 천재와 타고난 활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인인 셈이고, 그는 헬라스의 시신(詩神)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소생시킨다. 나는 저 필록테테스 극(劇)에 나타난 자연애를 찬탄한다. 그 잠과 별과 바위와 산과 파도에 대하여 호소하는 글을 읽을 때, 나는 시간이 썰물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을 느낀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자기신념의 철학』,〈역사란 무엇인가〉중에서
에머슨이 일찌감치 1849년에 발표한 <위인이란 무엇인가>에 실린 이 그리스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그가 100년쯤 후에나 세상에 등장할 어느 멋진 소설의 주인공(조르바)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만큼 <그리스인 조르바>는 철저히 그리스인이었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힘과 민첩함과 넓은 가슴을 지닌 어른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인간이었습니다.
다소 형이상학적인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이제부터는 그리스인 조르바 못지않게 뼛속까지 속속들이 그리스인이었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해서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그는 그리스의 여러 섬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섬인 크레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출생지 하나만으로도 예민한 독자들로 하여금 온갖 신화적 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작가였습니다.
크레타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문명이 개화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1700년경부터 고대문명이 꽃핀 곳이지요. 크레타 문명의 황금기에 중심도시 크노소스에는 인구가 8만 명에 육박했으며 크노소스 궁전은 사방으로 8백 개 이상의 방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건축물이었다고 하지요. 장구한 세월 동안 잊혀졌던 이 크레타 문명은 19세기 말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었습니다.
이 크레타 문명의 전성기를 다스린 인물은 미노스 왕이었는데,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는 제우스가 황소로 둔갑해 에우로페를 유혹하여 낳은 아들이었지요.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고, 분노한 포세이돈은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지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괴물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습니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은 가두기 위해 기술 장인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미궁을 짓게 하고, 그 속에 갇힌 괴물은 9년마다 한 번씩 왕국의 속국 아테네로부터 선남선녀 각 일곱 명씩을 공물로 받아 먹었습니다.
이런 비극을 참다 못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세 번째로 공물을 바치던 해에 열네 명의 희생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여 크레타로 건너갑니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맞장을 뜨기 위해서였지요. 마침 이 용감무쌍한 아테네의 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크레타 처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미노스 왕의 공주 아리아드네였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공주의 실타래 덕분에 미궁 속에서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맞아 함께 조국 아테네로 향합니다. 그런데 일행을 태운 태운 배가 도중에 낙소스 섬에 들렀다가 그만 테세우스가 사고를 치고 맙니다. 테세우스가 딴 여자에 눈이 멀어 아리아드네를 헌신짝처럼 팽개쳤던 것이지요. 이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기꺼이 맞아들인 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였습니다.
아리아드네 공주를 버리고 낙소스 섬을 떠난 테세우스는 무사히 아테네로 되돌아오지만 항구에 도착하자말자 뜻밖의 비보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크레타 섬에서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돌아오는 경우에는 흰 돛을 달고, 실패하면 출발할 때 달았던 검은 돛을 그대로 달고 오겠노라 약속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흰 돛으로 바꿔달지 못했던 탓에 테세우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틀림없이 변고가 생긴 줄 알고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그리스 앞바다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의 이름을 따서 에게 해로 불리고 있지요.
이처럼 크레타 섬은 이미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찬란한 고대문명이 싹튼 곳이자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 등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전설적인 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테세우스의 영웅담은 단지 신화로만 전해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도 전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일까요?
여러 시인이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배가 크레테에 닿았을 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미궁에 들어갈 때 삼으로 만든 실타래를 주면서 길을 찾아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테세우스는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소년 소녀들은 물론 아리아드네까지 데리고 무사히 아테네로 돌아왔다.
이 사건과 아리아드네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서 버림받아 목을 매 죽었다고도 하고, 테세우스의 배를 타고 낙소스 섬으로 가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오이나루스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그곳에 버려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 중에서
제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하면서 엉뚱하게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소개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도 얼마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섬에 얽힌 테세우스의 모험담을 현재진행형으로 되살린 『크노소스 궁전』을 출간했는데, 자신의 조국 아테네를 해방시키기 위해 괴물과 맞서 싸우는 테세우스의 영웅적인 모험이야말로 카잔차키스 문학의 핵심 주제인 '인간의 삶이란 자유를 갈구하는 영원한 투쟁'임을 표상했기 때문이지요.
카잔차키스의 작가 정신이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영혼의 자서전』에 담긴 다음의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
1883년에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평생 동안 말 그대로 수많은 대륙과 도시들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이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닮아가고 있었던 셈이지요. 현대판 오뒷세우스라 불리는 그는 아토스 산을 비롯한 그리스의 여러 지방은 물론, 파리, 빈, 취리히, 카프카스, 나움부르크, 폼페이,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스페인, 로마, 이집트, 시나이, 키예프, 모스크바, 베를린, 니스,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등을 두루 떠돌아다녔는데,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였지요.
1908년 아테네에서 대학을 마치고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그곳에서 생(生)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을 만납니다. 때마침 그 철학자는 자신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1907)를 막 출간한 직후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창조적인 힘에 따라 생명의 약동으로 부단히 진화하는 존재였습니다. 베르그송의 생철학은 카잔차키스가 베르그송 다음으로 만난 니체의 위버멘쉬(超人) 철학과 절묘하게 결부됩니다.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초인을 인류의 희망이라고 부를 정도였지요.
<구원의 문은 우리 손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에게 《초인》은 희망이다. 《초인》은 대지의 종자이며, 해방은 그 종자 속에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우리를 심연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인간은 마땅히 저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
니체에 뒤이어 카잔차키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실존 인물인 게르기오스 조르바였습니다. 1917년, 1차 대전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카잔차키스는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꾼으로 고용한 인물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카잔차키스는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공공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어 카프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 15만 명의 그리스인들을 송환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는데, 이때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팀에 조르바를 합류시켰습니다.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은 대략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제부터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소설 속 이야기보다 이 작품을 둘러싼 배경 이야기를 구구절절 펼쳐놓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정작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해봐야 탄탄한 구성을 갖춘 짜임새 있는 서사라기보다는 화자인 나와 주인공 조르바가 허구헌 날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마치 『돈키호테』의 핵심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화자인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항구 도시 카페에서 우연히 조르바를 만납니다.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지식인인 나는 이제부터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아 크레타 해안을 찾아가는 중이지요. 그곳엔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키카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인 조르바는 한 눈에 보기에도 먹물인 '나'와는 영 딴판이지요.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대뜸 어디로 여행하느냐고 묻고, 크레타로 가는 길이라는 화자의 대답을 듣자 말자 조르바는 '날 데려가시겠소?' 라고 도발적으로 묻지요.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한 조르바의 모습을 보자 그 헌털뱅이 같은 친구를 섬으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기꺼이 그와 동행합니다. 마침 조르바는 광산에서 십장으로 일한 경력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량한 크레타의 해안에 오두막을 짓고 갈탄광을 채광하는 사업을 함께 시작한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출신 배경과 나이임에도 서로 기가 막힌 케미를 보인 끝에 끝내 '영혼의 단짝'이 됩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둘이서 크레타 섬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나'는 단테의 시행을 찾아 읽으며, 붓다에 대한 원고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 골몰하지요. 그러나 조르바는 책 속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서 펄떡이는 야생의 자유로운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의 자그마한 마을 해안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갈탄광 사업을 함께 꾸려가는 동안, 화자는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조르바를 점점 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조르바는 세상만사에 도무지 거칠 것이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나간 건,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손가락이 녹로 돌리는데 자꾸 거치적거려 손도끼로 잘라버렸기 때문이었고, 젋은 시절 마케도니아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잡화를 팔고 다닐 때면 어둑해진 마을마다 과부들 집만 찾아다니고 묵었으며, 터키의 지배를 받던 크레타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땐 행상 대신 총을 집어들고 크레타 독립군에 가담해 숱한 터키인들의 목과 귀를 잘랐던 이력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자는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요.
조르바는 크레타의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며 지내는 퇴물 카바레 가수 오르탕스 부인과도 이내 연인 사이가 되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또다른 젊은 과부에게 몹시 이끌리지만 차마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대는 화자와 대비되지요. 조르바의 지극히 남성우월적인 독특한 여성관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이루는데, 적잖은 독자들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하지요. 조르바의 여성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많은 어록(?) 가운데 한둘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사내가 오겠지요……. 」
「두목, 당신은 여자가 별것인줄 아는데……. 하기야 별것은 별것이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데 뭣하러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률과 종교가 들고 나서 봐야 여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요.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걸 쓰면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한 짓이에요. 공정하지 못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는 십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내는 사내니까…… 계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킬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 필요한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
남녀평등 사상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조르바식 여성관은 페미니즘이 날로 강조되는 요즘 세태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온갖 속박이나 굴레로부터 벗어나 본능적인 욕구에 오롯이 충실하고자 했던 디오니소스적 인간 조르바로서는 여성을 달리 생각할 다른 까닭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을 쓴 작가가「디오니소스 찬가」를 지어바친 철학자 니체를 끔찍히 숭앙하는 인물이었으니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여기서 잠깐 니체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문장 하나만 인용하고 넘어가지요.
‘남성과 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여기에 있는 헤아릴 길 없는 대립과 그 영원히 적대적인 긴장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여기에서 아마 평등한 권리와 교육, 평등한 요구와 의무를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시이다. 이러한 위험한 장소에서 스스로 천박하다는 것을 ㅡ 본능에서의 천박함을! ㅡ 드러내는 사상가는 대체로 의심스러운 존재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내고 폭로된 것으로 여겨도 될 것이다 : 아마 그는 미래의 삶을 포함한 삶의 모든 근본 문제에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결코 어떤 심연으로도 내려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정신에서나 욕망에서도 깊이가 있고, 엄격하고 혹독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것들과 쉽게 바꾸는 호의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 남성은 여성을 언제나 동양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는 여성을 소유물로서, 열쇠로 잠가둘 수 있는 사유 재산으로, 봉사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고 봉사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ㅡ 그는 이 점에서는 아시아의 거대한 이성의 편, 아시아적 본능의 탁월함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찍이 이러한 아시아를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자이며 제자였던 그리스인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힘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여성에 대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더욱 엄격해지고 간략히 말해 동양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얼마나 필연적이며, 논리적이고, 그 자체로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었던가!
- 니체, 『선악의 저편』, <제7장 우리의 덕>, 제238절
소설 속의 이야기는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과의 사이에 피어났던 때늦은 로맨스, 요부 같은 젊은 과수댁 소멜리나를 향한 연정이 좌절된 마을 청년의 자살과 그걸 앙갚음하는 복수극이 차츰 마무리되고 나면 서서히 종반부로 접어들지요. 한편, 나날이 기울어가던 갈탄광 사업을 단번에 반전시키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고가 케이블 선로 작업은 개통식 당일에 파국을 맞고 말지요. 케이블에 매단 통나무에 악령 같은 가속도가 붙어 철탑들이 모조리 쓰러져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졸지에 닥친 파국을 마주하면서도 두 사람은 절망 대신 도리어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합니다. 개업식을 위해 마련한 양고기와 빵과 포도주로 잔뜩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이내 구두와 양말을 벗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 유명한 조르바의 춤이지요.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같았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이러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오?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애지중지해 오던 모든 것이 수포로 끝난 순간 뜻밖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갈탄광 사업을 완전히 말아먹은 두 사람은 그 길로 영영 헤어지지만 그 후로도 7년 가까이 엽서를 주고받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던 조르바의 유언은 세르비아의 스코플리예 가까운 마을로부터 온 편지 속에 담겨있었습니다.다.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전해주시오.”
조르바가 남긴 최후의 유언이야말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조르바는 까마득한 옛날 자신의 선조들이 외족의 침략이나 지배에 대항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듯이 '자유'를 향해 끝까지 투쟁하는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결혼이나 가정은 물론 조국이나 하느님한테 얽매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처럼, 그는 타고난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매순간을 기적처럼 바라보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원숭이 껍질을 처음으로 벗어 던진 원시인처럼, 아니면 위대한 철학자처럼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에 지배당한다. 조르바는 이들 문제를 목전의 급한 필요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비록 현대소설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나 신화에 얽힌 미묘한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아주 독특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까마득한 옛날 미궁에 갇힌 괴물과 싸우기 위해 크레타로 건너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분에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삶이 미궁처럼 복잡하게만 보이고 도무지 출구조차 보이지 않을 때, 에게 해의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크레타 섬으로 조르바를 만나러 독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갈탄광 사업이 쫄딱 망한 날 크레타 섬의 어느 해안가에서 기뻐 날뛰며 춤을 추던 조르바가 우리 인생의 '실마리'를 건네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러니 그대들 자신을 뛰어넘어 웃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그대 멋진 춤꾼들이여, 활짝, 더욱 활짝 가슴을 펴라! 건강한 웃음 또한 잊지 말고!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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