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 T.S. 엘리어트, 『황무지』


 * * *

 

안녕하세요? 오늘은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봄이 시작되는 사월을 일년 중 가장 잔인한 달로 영원히 각인시켜버린『황무지』는 현대시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지요. 사월은 비단 영국의 시인에게만 잔인한 달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4.19 학생 운동과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바로 라일락 꽃향기가 아른거리는 사월에 일어났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이 발표된 1922년은 문학사에서도 참으로 유별난 한 해였습니다.


1920년대에 나온 사상과 중요한 문학 작품은 거의 다 1차 대전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즉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반응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 1922년이 되자 새 지평을 여는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아홉 번째 권 『소돔과 고모라』, 버지니아 울프의 첫 실험소설 『제이콥의 방』,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엔리코 4세』 등등 20세기 문학의 주춧돌이 모두 놓였다.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이 무렵에 등장한 '문학의 새로운 형식'이 소위 모더니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쏟아져 나온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들이 비판하는 것은 특히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황폐한 사회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란 곧 소유에 모든 가치를 두는 '탐욕으로 점철된 사회'였습니다. 바야흐로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해 마지 않는 LH 투기 사태 또한 그 근원을 따져보자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기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악취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일 테지요.


엘리엇은 1888년 신심이 돈독한 미국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14년에는 철학 연구를 계속할 요량으로 영국의 옥스퍼드로 건너갔습니다. 바로 그 무렵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엘리엇은 유럽 대륙에서 평생을 함께 할 두 사람을 만납니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첫 번째 아내인 비비엔 헤이우드였지요.


엘리엇은 미국에서 건너온 선배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덕분에 실로 엄청난 도움을 받게 됩니다. 『황무지』라는 시는 에즈라 파운드에 의해 거듭 났으며, 엘리엇은 이 특별한 시의 제사에 기꺼이 파운드의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보다 훌륭한 예술가'라는 존경의 표현을 덧붙여서 말이지요. 


이 어렵고도 난해한 현대시의 주요 관심사는 전후 세계에 있어서 삶의 핵심으로 간주된 불모성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엘리엇은 우리가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가차 없는 추락일 수 있는지를 『황무지』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이 시는 <제사(題辭)>,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수사>, <천둥이 한 말>의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소제목들은 한결같이 그저 어렴풋하기만 합니다. 시에 담긴 다양한 목소리는 여러 사람이 어우러진 합창으로 들리다가도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또 어떤 때는 다양한 문화권의 고전에서 따온 구절로 말을 걸어옵니다. 어느 대목에서는 타로 카드 점쟁이한테 갔다가, 어느 순간 문 닫을 시간이 된 런던의 선술집에 들어와 있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 신화 속으로 곧장 무대가 옮겨지는 등 장소와 시간의 급작스럽고도 예고없는 변화를 특징으로 삼아 방대한 문화의 문학작품들을 건너뛰어 다닙니다.


이렇듯 황무지는 여러 시공간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면서 인간의 정신적 메마름,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을 노래합니다.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계절의 순환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도 이어지는데, 고대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와 철학을 깊이 연구했던 엘리엇의 여러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중요한 모티프가 바로 '죽음을 통한 재생'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시는 덜렁 한 번 읽는다고 해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은 아니지요. 또한 이 시에는 시인이 직접 달아놓은 각주가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달려 있어서 마치 학술 논문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흔히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징이나 구체적인 대상 같은 것들만 알아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비로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는 대가의 그림 같다고 말이지요.


비록 우리가 434행이나 되는 이 유명한 장시의 전체 그림을 두루 살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분은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영상의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싯구절의 바로 앞에 놓인 제사부터 잠깐 살펴볼까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

 


이토록 갈피를 잡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황무지』라는 난해한 시에 대해 제가 비로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 덕분이었습니다. 그 책 속에는 어렵기로 소문난 『황무지』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우선 『황무지』와 에즈라 파운드에 얽힌 이야기부터 조금 살펴보지요.

『황무지』의 재발견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 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rn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도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는 『황무지』가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고 미국에서 엘리엇의 출판권을 대리하고 있던 유능한 에이전트 존 퀸(John Quinn)에게 초고를 선물로 보냈다. 퀸은 원고를 받은 이듬해에 사망했고,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초고가 분실되었다.엘리엇은 아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즉, 우호적이면서도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02-403쪽

 

엘리엇은 책을 좋아하고 문예에 밝고 기지가 풍부한 사람으로서 모든 면에서 '하버드 맨'으로 합당했던 인물이었지만, 결국 하버드의 무미건조한 분위기와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꼈더랬습니다.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점차 소외감이 커지는 것을 느낀 엘리엇은 차츰 보스턴과 세인트루이스와 미국을 벗어날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훨씬 오랜 역사와 더 위대한 문학 유산을 가진 나라, 종교와 영혼의 문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아이러니의 깊은 의미를 아는 땅인 프랑스와 영국에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철학 공부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10쪽


졸업 후에 결국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프랑스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에밀 뒤르켐과 같은 석학들의 강의를 들었고, 점점 더 유럽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는 외국에 계속 남아 시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1911년에 하버드로 되돌아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게 되지요.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주제라고 하지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듯합니다. 에즈라 파운드가 이 시를 가차없이 편집함으로써 원작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품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사실 말이지요. 엘리엇 연구자들은 이제 엘리엇이 수정한 흔적뿐만 아니라 파운드의 제안대로 개고한 흔적까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가 담긴 시

오랫동안, 특히 1921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엘리엇은 온갖 다양한 상황을 묘사한 장면과 에피소드를 탈고했다. 현대 런던에서 하층계급이 영위하는 삶, 신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장면, 겨울과 뼈, 사막 등 환기력 강한 이미지가 특징인 자연 현상 묘사,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 고급 문학(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에서 따 온 구절, 평판 높은 작가(포프)의 패러디, 찬미의 송가, 뜨거운 설법, 페니키아 수부(水夫) 이야기, 산스크리트 구절 등이 그것이다. 독자는 이제 곤혹스러운 중년 남자의 언어만이 아니라,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27쪽

 

『황무지』라는 작품에 대한 문학계의 반응과 평가는 실로 막대했습니다. 비록 만년의 엘리엇이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걸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는 건 분명하지요.


엘리엇은 한때는 통합된 전체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점차 조각나고 해체되어 무력화된 유럽 문명의 묵시록적 종말, 유럽 문명에 만연되어 있는 병적인 불안감을 시라는 언어 예술에 담아냈다. 그는 몇 년 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t Spengler, 1880∼1936)의『서구의 몰락』에서 직설적으로 표명된 메시지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황무지』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양 문명이나 인간의 분열 혹은 가치의 몰락이나 부재를 명백하게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이러한 감수성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다. ······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 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엘리엇은 개별 시행의 의미가 애매하고 상호 연결이 어색한 5부로 시를 나누어 구성했음에도 시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다른 현대의 문학작품처럼 재독, 삼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부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엘리엇의 비감한 정서를 더욱 뚜렷하고 힘차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혹은 『봄의 제전』과 『결혼』에 유사한 점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1∼432쪽


대략 이 정도로 살펴봤으면 그토록 난해하다는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어림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걸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천재 연구의 전문가>인 하워드 가드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지요.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당대의 다른 어느 시작품보다 동시대 교양층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기분과 주제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500행에서 다소 모자라는 시행에서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시행 하나하나 연(聯) 하나하나가 의미로 가득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룬 독립적인 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굉장한 특성으로 인해, 독자는 하나의 거대한 시세계를 음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관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분마다 장면마다 구어체 언어와 생생한 희화(戱畵), 한결같은 자연 묘사, 신화적인 이미지, 재기 넘치는 대화, 애상적인 도시 장면, 이야기체의 소품(小品), 음가(音價)를 이용한 언어 유희, 붉은 빛이 강렬한 스냅사진과 같은 이미지 등 수많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현대의 또 다른 걸작, 가령『율리시스』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처음에는 한 쪽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변주된 다양한 주제들 역시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비록 정연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는 마치 고대의 모험담을 읽을 때처럼 하나의 완결된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4∼435쪽


하워드 가드너의 설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쯤에서 다시 그 유명한 시의 '잘 알려진' 첫부분으로 되돌아가 보지요.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현대시에 얼마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엘리엇의『황무지』를 여기까지는 다들 읽었지 싶습니다. 저 또한 이 유명한 시를 까마득한 옛날 그 언젠가 한번쯤 읽어봤지만, 그때 제가 이 어려운 시를 도대체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시가 너무나 어려워서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봤던 그 시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대목 하나는 바로 페트로니우스의 작품 《사티리콘》(Satyricon)에서 인용했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묘비명이었습니다. 특히 '쿠마에 무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더랬습니다.


도대체 그 무녀는 왜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며, 그녀는 왜 그토록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쿠마에는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이며, 그 무녀는 도대체 어떤 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화'를 조금씩 찾아 읽게 되면서 그 무녀의 정체가 저에게도 차츰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몹시 힘겹게 읽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이윤기의『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비디우스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저는 마침내 그녀가 그토록 멀게만 떨어져 있지는 않은 듯한 착각마저 느꼈습니다.
 

어느날 문득 쿠마에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아뿔싸! 그곳은 놀랍게도 나폴리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곳이라면 제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어쩌면 슬쩍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곳이 아닌가. 우리 일행이 파리와 런던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되는 날이었지 싶습니다. 그 전날만 하더라도 난생 처음 찾아간 로마의 유적지들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바쁜 걸음을 재촉했던 터여서 녹초가 되다시피 했던 우리 일행은 정작 그 다음날 훨씬 더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만 했더랬습니다.

바로 그날, 우리 일행들은 아마도 거의 새벽 4시쯤에 모닝콜을 들어야 했습니다. 미리 호텔에서 준비해 놓은 '빵 도시락' 비슷한 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난 뒤에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타고 로마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화산재로 뒤덮여 하루 아침에 '황무지'보다 더한 폐허로 뒤바뀐 폼페이를 빠트리지 않고 둘러본 우리는 쏘렌토 항에 도착하자말자 곧바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큰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건너 갔습니다.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한가한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또다시 작은 배에 옮겨 타고 '카프리의 푸른 동굴'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배를 타고 지중해의 잔잔한 바다를 건너 다니고, '푸른 동굴' 속에서 이탈리아 남자 뱃사공이 불러주는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생생한 이탈리아어로 듣는 순간들은 정말로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카프리 섬을 떠나 우리가 나폴리 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 나폴리에서 우리가 어딜 더 구경했는지는 이젠 기억조차도 희미합니다. 아마도 서둘러서 예약된 식당으로 찾아가 저녁을 때우고는 또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먼 길에 오르느라 버스에 서둘러 올라탄 기억밖에 남지 않은 듯합니다. 그 뒤에 우리들에게 무섭게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죽음보다 깊은 잠'이었습니다. 일행 모두가 무거운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무심코 지나쳤던 도시가 바로 쿠마에였습니다.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시뷜라라는 무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마에 무녀는 도대체 얼마나 예뻤으면 아폴론이 그토록 큰 소원까지 들어주며 사랑을 애원했던 걸까요. 그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면서 "죽고 싶어"라고 애원하던 괴퍅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저는 비로소 그 무녀의 실물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토록 죽기를 갈망했던 그 무녀가 과연 맞는지 제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미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쿠마에 무녀가 이토록 예쁜 모습으로만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그림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여자답지 못한 모습인가요.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면서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하는 바람에 끝없이 늙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겪지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린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이왕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지요. 그 천재화가가 교황의 명을 받들어 매우 고된 작업 끝에 1512년에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 그림은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거대한 천장에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그림은 모두 아홉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고, 그 그림 주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일곱 명과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다섯 명도 함께 그려졌습니다. 그 가운데 이방의 무녀는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라고 하지요. 천장의 다섯 번째 그림에 '쿠마에 무녀'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유독 시스티나 천장 그림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펼치면 '쿠마이의 시뷜레'가 마치 여럿 있었던 것처럼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대목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함께 '쿠마에 무녀' 이야기를 매우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어서 저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의 '혼동스러운 설명' 때문에 뭔가가 좀 아리송했습니다. 다음의 인용문부터 우선 살펴보지요.

 

시뷜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지만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가 말하는 '쿠마이의 시뷜레(Cumaean Sibyl)'가 가장 유명하다. 오비디우스는 시뷜레가 천 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뷜레의 수가 많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동일 인물이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태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다섯 명의 시뷜레를 그린 바 있다.

 - 이윤기,『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3』제4장〈소원 성취, 그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이런 설명과 함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렸던 그림 두 장을 함께 실어 놓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 하나는 '쿠마에 무녀'이고 또 다른 그림은 '델포이 무녀' 였습니다. 그런데 이윤기 작가는 그 그림 둘을 한 테두리에 묶어서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시뷜레』'라는 제목을 붙였고, 제목 바로 아래에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다섯 시뷜레의 일부'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그 설명과 그림을 함께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저와 비슷한 궁금증이나 오해를 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도대체 '쿠마이의 시뷜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으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무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따로 따로 그려 넣었을까?" 혹은 "'쿠마이의 시뷜레'는 정말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무녀로구나..."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엘리엇의 시로 넘어가지요. 어쨌든 엘리엇의 작품『황무지』에 등장하는 쿠마에 무녀는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은 탓에 몸이 쪼그라들어 항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변해 있습니다. 비록 목숨은 살아 있지만 몸은 이미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니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진짜로 죽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고대 신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늘상 그러하듯 모든 존재들은 꼭 한 번은 죽어야만 새로운 삶으로의 재탄생을 기약할 수 있었으니, 시뷜라 또한 그런 희망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죽음을 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 또한 쿠마에의 무녀처럼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상태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무지』의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죽은 자들의 행렬을 꼭 빼닮은, 매일 아무런 생각없이 아침 9시에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출근하느라 바삐 런던 브릿지를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을 그렸습니다. 제2부 '체스 한 판'과 제3부 '불의 설교'에서는 공허한 일상과 육체적 욕구만을 채우기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권태롭고 공허한 욕정만 오갈 뿐 생명력이 넘치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래서 불모(不毛)의 '황무지'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찾아오는 봄비와 꽃향기 가득한 사월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황무지처럼 '잔인'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던 쿠마에의 무녀 시뷜라가 결국 신의 사랑을 외면한 댓가로 얻은 건 '죽음같은 삶의 오랜 지속'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왜 하필이면 쿠마에의 무녀를 맨 앞에 등장시켰는지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쿠마에의 무녀가 그토록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이유는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엇이『황무지』에 담고자 했던 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음울하고, 아무런 가망도 없이, 노쇠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런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내던져진 게 아니라는 느낌은 쿠마에 무녀의 '죽고 싶어'라는 말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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