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잡다한 종류를 다독하는 것은 내 독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영양 섭취의 선택 ; 풍토와 장소의 선택 ; ㅡ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결코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선택은 자기 자신의 휴양을 취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도 특정한 정신이 얼마나 독특한지에 따라, 그에게 허락되는 것, 즉 그에게 유용한 것의 범위는 좁고도 좁다. 내 경우에 독서 전반은 휴양의 일종이다 : 따라서 독서라는 것은 나를 내게서 떠나게 하고, 나를 낯선 학문과 영혼들 안으로 산책하게 하는 것의 일종이지만 ㅡ 나는 더 이상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독서는 나로 하여금 나의 진지함으로부터 휴식을 취하게 한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나는 어떤 책도 곁에 두지 않는다 : 누군가를 내 곁에서 말하게 한다든가 생각하게 한다든가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라고 불릴 만한 것이리라 ······ 잉태 시에 정신과 모든 기관은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데, 여기에 우연과 온갖 종류의 외적인 자극이 격렬하게 영향을 미치고,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을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우연이나 외적인 자극은 가능한 한 많이 없애버려야만 한다 ; 즉 일종의 자기의 성을 쌓는 일은 정신적인 잉태에서 본능이 취하는 첫째가는 현명한 일이다. 어떤 낯선 생각이 은밀하게 그 성벽을 올라타는 것을 내가 허락할 성싶은가? ㅡ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독서라고 불릴 만한 것이리라 ······ 일하고 산출해내는 시간이 지나면 휴양의 시간이 그 뒤를 따른다 : 내게 오라, 너희 편안하고 영민하며 수줍어하는 책들이여! ㅡ 이런 책들이 과연 독일 책일 것인가? ······ 내가 손에 책을 들고 있다고 느꼈던 것은 반년 전의 일이다. 무슨 책이었던가? ㅡ 그것은 빅토르 브로차드V.Brochard의 《그리스 회의론자들》이라는 탁월한 연구서였는데, 내 라에티아나 논문들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이중적이고 심지어는 오중적이기도 한 철학자 대중들 사이에서 회의주의자는 유일하게 존경할 만한 유형인 것이다! ······ 이런 책 외에는 나는 거의 항상 몇 권 안 되는 똑같은 책들로 도피하는데, 이 책들은 내게 합당하다고 입증된 것들이다. 잡다한 종류를 다독하는 것은 내 독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열람실은 나를 병들게 한다. 새 책들에 대한 신중함과 심지어는 적개심도 '관용'이나 '아량'이나 여타의 '이웃 사랑'보다는 내 본능에 더 적합하다. ······ 실제로 내가 항상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옛 프랑스인들이다 : 나는 오로지 프랑스적 교양만을 믿고 다른 유럽적 '교양'은 전부 오해라고 간주한다. 물론 독일적 교양은 말할 것도 없다 ······ 내가 독일에서 발견했던 몇 경우의 고급한 교양은 모두 프랑스적 연원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는 취향의 문제에 관한 한, 내가 들어본 중에서 단연 최고의 소리였다 ······ 파스칼의 책을 읽지는 않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스도교가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다음에는 심리적으로 서서히 죽여간 그리스도교의 가장 교훈적인 희생물로서의 그를, 가장 전율스러운 형태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의 논리 전체가 죽여간 그를 사랑한다는 것 ; 내가 몽테뉴의 변덕을 내 정신에 갖고 있다는 것, 또는 누가 알랴만은 내 육체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 내 예술가적 취향은 셰익스피어와 같은 황량한 천재에 대해 통분하면서 몰리에르나 코르네유, 라신 등의 이름을 옹호한다는 것 : 그렇다고 최근의 프랑스인들이 나에게는 매력적인 교제 상대가 아니라고 결국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어느 세기에서 현재의 파리처럼 그렇게도 호기심 넘치는 동시에 섬세하기도 한 심리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 것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 시험 삼아 그 이름을 열거해보면 ㅡ 그 수가 결코 적지 않기에 ㅡ 폴 부르제, 비에르 로티, 지프, 메일락, 아나톨 프랑스, 쥐르 르메트르 등이다. 또한 강한 종족 중 한 사람이자 진정한 라틴인이며 내가 각별히 호감을 갖고 있는 기 드 모파상을 들 수 있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나는 세대를 심지어는 독일 철학이 몽땅 망쳐버렸던 그들의 위대한 스승들보다 선호한다 : 예를 들자면 친애하는 텐은 헤겔이 망쳐버렸다. 텐은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시기를 오해했는데, 이 오해는 헤겔 탓이다. 독일이 닿으면 문화가 부패한다. 전쟁이 비로소 프랑스에서 정신을 '구제'해냈다 ······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연에 속하는 스탕달은 ㅡ 그를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 삶에서 신기원을 이루는 모든 것은 우연이 내게 몰아댄 것이지, 결코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ㅡ 앞을 내다보는 심리학자의 눈과, 가장 위대한 사실적인 인물이 곁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사실에 대한 파악력을 지닌 진정 귀중한 존재다. (손톱을 보고 나폴레옹을 알아차린다) ; 마지막으로 그가 프랑스에서는 드물고 거의 발견되지 않는 유형인 정직한 무신론자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ㅡ 프로스페르 메리메를 기리면서 ······ 아마도 나 자신 스탕달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바로 내가 할 수 있었을 그 최고의 무신론자 위트를 내게서 빼앗아가버렸다 : "신의 유일한 사과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3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