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보적이다

 

 ㅡ 내 작품 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보적이다. 이 책으로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수천 년간을 퍼져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것 중 최고의 책이며, 진정 높은 공기의 책이다 ㅡ 인간의 만사가 그것의 에 아득하게 놓여 있다 ㅡ 그뿐 아니라 이 책은 가장 심오한 책으로서, 진리의 가장 깊숙한 보고에서 탄생했고, 두레박을 내리면 황금과 선의가 담겨 올라오지 않을 수 없는 고갈되지 않는 샘이다. 거기서는 어떤 '선지자'도, 종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병과 권력의지의 섬뜩한 자웅동체도 말하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의 지혜의 뜻에 불쌍하게도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평온한 음조를 제대로 들어야만 한다. "폭풍을 일으키는 것, 그것은 더없이 잔잔한 말들이다. 비둘기처럼 조용히 찾아오는 사상, 그것이 세계를 이끌어간다" ㅡ

 

(중략)

 

여기서는 광신자가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설교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믿음이 요구되지 않는다 : 무한히 풍부한 빛과 무한히 깊은 행복에서 한 방울 한 방울, 한마디 한마디가 떨어진다 ㅡ 그 말은 부드럽고도 완만한 속도를 갖는다. 그 말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들린다 ; 이때 그 말을 듣는 자가 된다는 것은 비할 바 없는 특권이다 ;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를 들을 귀를 아무나 마음대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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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낄 뿐

 

 ㅡ 내 책들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자는 그것이 높은 곳의 공기이며 강렬한 공기임을 안다. 이 공기의 찬 기운으로 인해 병이 나게 될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공기에 알맞게,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게끔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얼음이 가까이에 있고, 고독은 엄청나다 ㅡ 그런데도 모든 것이 어찌나 유유자적하게 태양빛 아래 있는지! 어찌나 자유롭게 사람들은 숨쉬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사람들은 자기 발 아래 두고 있다고 느끼는지! ㅡ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철학, 내가 지금까지 실행하고 있는 철학은 얼음과 높은 산에서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ㅡ 삶의 낯설고 의문스러운 모든 것을, 이제껏 도덕에 의해 추방당해왔던 모든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금지된 것들 사이에서 그렇게 방랑했던 내 오랜 경험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도덕화와 이상화를 행했던 원인들을 그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 철학의 숨겨진 역사, 철학이라는 위대한 이름의 심리가 내게 분명해졌다. ㅡ 어떤 정신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뎌내는가? 얼마나 많은 진리를 감행하는가? 이것이 나에게는 점점 진정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오류(ㅡ이상에 대한 밑음ㅡ)는 맹목이 아니다. 오류는 비겁이다 ······ 인식의 모든 성과와 발전은 용기에서,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순수함에서 나온다 ······ 나는 이상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것들 앞에서 장갑을 낄 뿐이다 ······ 우리는 금지된 것일수록 애쓴다Nitimur in vetitum : 이런 표지 아래 나의 철학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진리만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서문>, 제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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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폴란드 정통 귀족이다

 

 ㅡ 그런데 여기서 나는 혈통 문제를 언급하려 한다. 나는 나쁜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고 독일 피는 거의 섞여 있지 않은 폴란드 정통 귀족이다. 나와 가장 철저하게 대립하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스러운 본능을 찾아보게 되면, 언제나 나는 내 어머니와 여동생을 발견한다 ㅡ 이런 천민들과 내가 친족이라고 믿는 것은 나의 신성함에 대한 하나의 불경이리라. 내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를 대했던 것에 관한 내 경험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를 내게 불러일으킨다 : 이럴 때, 하나의 완벽한 시한폭탄이 작동을 시작한다. (중략) ㅡ 하지만 폴란드인으로서 나는 엄청난 격세유전질이다. 지상에 존재했던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이 혈통을, 내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순수한 본능을 대중 속에서 발견하려면,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 귀족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르다는 무제한적인 느낌을 갖는다 ㅡ 나는 독일의 젊은 황제에게도 내 마부일 수 있는 명예마저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가장 적게 닮는다 : 자기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비천함을 표현해주는 가장 강력한 표시이다. 좀 더 고귀한 본성의 소유자들은 그들에게로 가장 오랫동안 모아지고 아껴지고 축적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근원을 무한히 계속 소급해간다. 위대한 개인들은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다 : 내가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울리우스 카이사르가 내 아버지일 수도 있으리라 ㅡ 아니면 알렉산더, 이 육화된 디오니소스가 ······ 이것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우편배달부가 내게 디오니소스의 머리를 배달한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제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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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

 

나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것은 싸움이다. 나는 기질상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이다. 적수일 수 있다는 것, 적수라는 것 ㅡ 이것은 아마도 강한 본성을 전제할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모든 강한 본성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저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저항을 찾는다 :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예를 들면 여자에게는 복수욕이 있다 : 이것은 그녀가 약해서 그렇고, 그녀가 타자의 곤경에 대해 민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ㅡ 공격자가 어떤 적수를 필요로 하는지는 그의 힘을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이다 : 성장한다는 것은 좀더 강력한 적수를 찾는다는 데서 ㅡ 또는 좀더 강력한 문제를 찾는다는 데서 드러난다 : 호전적인 철학자는 또한 문제들에 결투를 신청하지만, 그의 과제는 정녕 적수들을 다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전 역량과 유연함과 싸움 기술을 힘껏 발휘하면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ㅡ 대등한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등함 ㅡ 정직한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적을 경멸한다면 싸움을 할 수 없다 ; 명령을 하거나, 어떤 것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다. ㅡ 내 싸움 방식은 네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 나는 승리하고 있는 것들만 공격한다 ㅡ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승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둘째 : 나는 내 우군이 없을 만한 것, 나 홀로 싸우는 것 ㅡ 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태롭게 하는 것만을 공격한다 ······ 나는 위태롭게 하지 않는 일은 한 번도 공공연하게 해본 적이 없다 : 이것이 옳은 행위에 대한 기준이다. 셋째 : 나는 결코 개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ㅡ 다만 개인을 강력한 확대경처럼 사용할 뿐이다. 이 확대경은 일반적이지만 살금살금 기어다니면서 잘 잡히지 않는 비상사태를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공격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낡아빠진 책 한 권이 독일적 '교양'에서 거둔 성공을 ㅡ 그 교양이란 것을 현장에서 급습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바그너도 공격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교활한 자를 풍요로운 자로, 뒤처진 자를 위대한 자로 혼동하는 우리 '문명'의 허위와 본능의 불완전함을. 넷째 : 온갖 개인적 차이가 배제되고, 그 배후에서 나쁜 경험을 하게 될 것이 없는 것만을 공격한다. 내게서 공격이란 거꾸로 호의에 대한 증거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감사함에 대한 증거이다. 내 이름을 특정 일이나 특정 개인과 연관시킴으로써 나는 그것에 경의를 표하고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 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ㅡ 내게는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내가 그리스도교와 싸움을 한다면, 내게 그럴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교 쪽으로부터 어떤 숙명이나 심적 압박도 체험하지 않는다 ㅡ 가장 진지한 그리스도교인들은 내게 항상 호의적이었다. 그리스도교에 꼭 필요한 적인 나 자신은 수천 년간의 숙명을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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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니체가 폴란드 정통 귀족이었다니..@_@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고 갑니다~~

oren 2016-03-10 0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니체가 저토록 `고귀한` `폴란드 귀족`이었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