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 인간 지만지 고전선집 499
유카와 히데키 지음, 남정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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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과학은 과연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만 보여주고 있는가?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서 인간 본연의 모양과 색깔은 점점 퇴색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한편 우리는 더욱 과학의 일상에서 벗어난 삶을 생각하기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없다손 치더라도 우린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 이 책의 저자 유카와 히데키는 누구인가? 교토제국대학 이학부 물리학과 졸업. 도쿄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53년 이후 정년 퇴직할때까지 교토대학 기초물리학연구소 소장을 역임. 과학뿐 아니라 동양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중간자 이론을 제창해 원자핵과 소립자물리학 발전에 커다란 공적을 쌓음. 소립자이론으로 1949년 일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그는 또한 오랫동안 세계 평화를 둘러싼 운동에 헌신적으로 노력함. 


3. 저자에 따르면 현대과학은 우리 인간에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공했고, 그 가능성 중에는 인류를 행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것도 있지만 공포와 파멸로 이끄는 것도 있다고 한다. 또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의 문제라기보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4.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된다. 1부는 '과학과 인간', 2부는 '기초과학의 진흥'이다. 1부에서는 과학과 인간이라는 소주제와 별도로 과학과 도덕, 과학자의 책임, 문명사회와 인간의 역할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이어진다. 2부에선 시간의 문제, 소립자의 수수께끼, 소립자와 통일장, 기초과학의 현재와 미래, 과학의 분화와 종합 등의 글이 실려 있다.


5. 저자는 과학의 진보는 인간 밖에 있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와 함께 외부 세계에는 인간에게 미지인 것과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6. 우주 전체의 긴 역사로 볼 때, 또 인류 역사로 보아도, 짧은 시간에 과학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다. 그 중에서도 기계는 눈부시게 발달해왔다. 이미 기계가 인간의 두뇌 할동을 대신 해주고 있는지 오래되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이곳저곳에 붙지만,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 이름을 붙여주기에 손색없는 물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허황되지가 않다. 


7. 그렇다면 기계의 발달은 앞서 간다치고 인간의 내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저자는 자연과학과 그에 따른 기술의 진보로, 우리 인간을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새롭게 생겨나는 점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 저자가 언급한 여러 이야기 중 '인간의 세 가지 역할'에 주목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 세 가지 중 최소한 한 가지 역할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역할은 과학자와 관계된 것으로 '과학 연구'다. 두 번째로는 과학자 또는 그 그룹에서 새롭게 발명된 것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좀 막연한 표현이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역할'이 요구된다고 한다.


9.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을 담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근원적인 과학의 존재, 혹은 미래의 과학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과학개론서라고 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느낀 단상과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시절 독서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과학자인 저자는 문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이 있는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10. 중국문학인 [홍루몽]에 대해선 이런 평을 적었다. "구체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이상하리만치 강하다. 또한 시간적이고 음악적이라기 보다 공간적이며 회화적인 구성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홍루몽의 작가인 조설근(曺雪芹)이 화가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균형감있는 사유(思惟)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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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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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모두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마음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유한의 생명력'을 생각해본다.

 

2.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 지하철 속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65세의 여성이 마치 삼림 속 나무 한 그루처럼 묘사된다. 퇴근 길 평범한 그림 같지만 서장부터 사건이 일어난다. 여인의 이름은 조각(爪角)이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킬러이다. 그들끼리 통하는 언어로는 방역업 종사자이다.

 

3. 손톱 '조'(爪), 뿔 '각'(角). 가명이지만,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찌하다보니, 아니 운명처럼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하긴 평범하다면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 안 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는 핑계도 대지 않아. 개개인의 정의 실현이라면 그거야말로 웃다 숨넘어갈 소리지. 하지만 말이다,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4. 이 소설의 작가 구병모는 1976년 서울생이다. 제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은 필명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습작하면서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이름을 쓰고 싶었고, 소설의 분위기도 좀 남성적으로 가려고 필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와 분위기, 스토리 전개의 박진감에 잠시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여인인 '조각'의 섬세한 심리 상태 묘사에선 역시 여성 특유의 감각이 들어있다.

 

5. 주인공에게 '조각'이란 가명이 붙게 된 것은, 날카롭고 빈틈없으며 조금의 끈적거림이나 미적거림도 없이 깔끔한 뒷마무리에 이르기까지의 업무 처리 능력에 감탄한 팀매니저가 농담처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리 굳혀졌다고 한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이젠 그만 은퇴하시잖구.'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후에 뭔가 변화된 삶을 기대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6.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문득 냉장고 야채 박스를 열고 복숭아가 뭉그러진 채로 담겨 있는 것을 본다. 잊고 있었던 그 과일 봉지를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그것을 마저 치우다가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좀체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여인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7. 파과(破果)에서 그녀는 그녀의 몸과 마음이 이젠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가 당차게 달려온 삶의 시간들에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내가 뭉그러진 복숭아를 치우듯 결국 나의 몸도 그리 되고 말 것이라는 암시를 받게 된다.

 

8. 과연 그녀는 진실로 무엇을 없애고 싶었을까 묻고 싶다. 그녀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이었을까? 그 마음 안에서 끝도 없이 일어나던 차가운 기운이었을까? 소설이 전체적으로 흐름이 빠르지만, 특히 끝부분은 매우 스피디하면서도 리얼하다. 투우라고 불리우는 그 젊은 동역자와의 만남 역시 숙명이다.

 

9. 소설은 범죄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작가는 보다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의 생명력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무언가 버려야 될 것을 금지옥엽 움켜쥐고 있지는 않는가. 마지막 장면에 그녀가 네일 숍에서 손톱을 내맡기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평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손톱을 단정하게 자르고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부피와 질량을 감추는 수백 가지 소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철저하게 검박한 손톱은 고무찰흙에조차 상처를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여 손톱주인에게 내재한 공격성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이미 상실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녀의 최후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손톱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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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 - 쉽다, 맛있다, 남지 않는다
김민희 지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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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젊은 나이에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 노후대책을 이야기할 때 돈이면 다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진정한 노후대책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정답이다. 한 10년 전쯤 가족들과 떨어져서 2년 가까이 지방에서 혼자 지낸 적이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로 와서 가족들과 지내다가 일요일 밤 막차를 타고 갔다. 점점 꾀가 나자 집에 다녀가는 횟수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줄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에 제일 불편했던 것이 먹고 사는 문제였다.

 

2. 이 책은 '먹는 것'을 해결해주자고 나선 네이버 파워블로그 "천재 야옹양의 생활"의 운영자 김민희가 꾸민 책이다. 타이틀은 '쉽다, 맛있다, 남지 않는다'로 되어 있다. 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 페이스 북에서 한 싱글족 페북 친구가 본인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는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촛불과 꽃으로 장식한 테이블 세팅을 보며 '그래, 맞아 내겐 무엇보다 내가 소중해.'라는 생각을 했다.

 

3. '혼자서 하기 힘든 일'중 하나가 '혼자 밥먹기'라고 한다. 그렇다고 물 말아서 대충 먹거나 건너 뛰거나 하면 건강 전선에 문제가 생길 것은 불보듯 훤하다. 이 책은 아무래도 요즘 부쩍 늘어난 싱글족에게 도움이 많이 될 듯 하다. 그 다음엔 나처럼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겠다.

 

4. 일인분을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 까짓 4~5인분은 못 만드랴. 책은 7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푸짐하게 엄마밥 한 상, 10분 완성 밥반찬, 든든한 밥 한 그릇, 통조림으로 일품요리, 입맛 도는 반주 한잔, 마이 홈 카페 브런치, 가볍게 샐러드 1인분.

 

5. 우선 레시피가 간단하다. 왼쪽에는 완성된 요리의 사진. 오른쪽엔 준비물과 순서가 간략하지만 알차게 실려있다. 요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그냥 한번 쓱 읽어보고 원샷에 할 사람들도 있겠다. [보쌈]요리가 눈에 띈다. 육류 섭취를 하고 싶어도 요즘 잇몸이 약해져서 고기를 먹고 나면 며칠 힘들다. 보쌈은 괜찮을 것 같다. 돼지고기 삼겹살이나 목살을 통으로 준비하는 것이 시작이다. '고기는 전날 칼 집을 깊이 넣은 뒤 사이사이에 월계수 잎을 넣어두거나, 익힐 때 된장 대신 인스턴트 커피를 조금 넣어도 누린내가 나지 않아요.'라는 Tip이 붙어 있다.

 

6. 10분 완성 밥반찬에선 '소시지김치볶음'이 눈에 띈다. 칼칼한 맛을 선호하는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은 메뉴다. 소시지와 김치만 있으면 되니 준비도 간단하다. 덮밥처럼 밥에 올려 먹어도 되겠다. 프랭크 소세지, 비엔나소시지나 햄을 이용해도 된다 한다.

 

7. 혼자 있다보면 냉장고는 아무래도 보존 기간이 여유 있는 통조림 식품이 점령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내가 지방에 혼자 있을 때 그랬다. 통조림 아니면 밑반찬 빼면 없었다. '통조림으로 일품요리'라. 구미가 당긴다. 재고 정리 한 판 벌여도 되겠다. 스팸고추장 찌개를 보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 온다.

 

8. 부록으론 '알아두면 좋은 15가지 드레싱과 1인분 요리를 위한 미니정보가 실려 있다. 요리의 기본인 '파, 마늘,고추 등 자주 쓰는 재료'의 보관법을 머릿속에 입력시킨다. "파, 마늘, 고추 등은 늘 구비해놓는 것이 좋아요. 사용하기 편하게 썰어서 지퍼백이나 밀폐 용기에 담아 냉동시키면 편리합니다.파는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 한 뒤 송송 썰어 지퍼백에 넣고 냉동실에 보관하세요. 마늘은 껍질을 까서 곱게 다진 뒤 얼음통에 담아 얼리면 조금씩 꺼내 쓰기 편해요."

 

9. 그러나 내가 제일 하기 싫고, 못 하는 것이 요리이다. 재미도 재주도 없지만,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 그러나 내 아내에게 차마 시간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돌아올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 시간은 남아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이 들어서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 시켜먹는 모습처럼 쓸쓸하다 못해 궁상맞은 그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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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지음 / 예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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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집에서 삽니다. 집이란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저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잊고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가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다'라고 느낍니다."


2. 오늘은 '집'에 대한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립니다. 사람이 살만한 집, 사람이 살아나는 집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작업에 옮기는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가보겠습니다.


3.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소 원초적인 질문일 수 도 있는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한가?'로 시작합니다. 1부의 타이틀은 "나에게 묻는다"입니다.  2부에서는 안방, 거실, 빛과 바람 등 집의 요소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3부에서는 아파트와 친환경건축 등 오해하기 쉬운 삶의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4부에선 '살리는 집'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대해 풀어보고 있군요.


4. 요즘의 트렌드가 의식주(衣食住)의 순서대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의(衣)와 식(食)의 관심에서 주(住)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지요.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군요. 문학, 철학, 예술 등 그 자신의 관심사를 넣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집'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달리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램이 녹아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살인적인 도시의 땅값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결국 개인들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들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들에 의해 주택정책이 좌우되고, 사람들은 살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아 불편한 마음으로 늘 떠돌아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네를 없애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모순적인 '주택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싶은 장소에 자연스럽게 모여 살면서 원하는 대로 집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주택정책이 펼쳐지면 더 할 나위 없겠지요.


6. 건축의 가장 좋은 재료는 '빛'이라고 합니다. 빛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또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빛을 집안에 어떻게 끌여들이고, 반영하느냐에 따라 집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지요. "동쪽 창으로 온 방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은 사람을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하고 희망을 줍니다. 남쪽 창으로 종일 비추는 겨울나절의 빛은 따스함과 노곤함과 생에 대한 신뢰를 주고 긍정을 줍니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며 황금빛으로 울컥이게 하는 석양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7. '사람을 살리는 집'의 개념을 어디서 잡아야 할까요? 요즘 많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생태적이라는 것 혹은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은 자연의 소재를 사용하고 자연을 위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런 막연하고 소극적인 생활의 자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다시 생산되는 자연의 순환체계의 고리를 중간에 끊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8. 집을 지을 때는 단열 못지 않게 환기에도 그 만큼 관심을 갖기를 권유하고 있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열에만 신경쓰다보면 자연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지요. 


9. 책에는 부부가 건축의뢰를 받아서 짓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직접 그린 수채화 그림,집의 안과 밖을 찍은 사진이 제법 많이 실려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사는 집 같은 집들을 보면서 만들어진 집이 아닌 내 뜻과 생각이 담긴 집을 짓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10. 어느 덧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이 사는(生)곳이 아니라, 투자 수단으로 사는(買)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집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만큼 나를 키워주고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몸을 누이는 공간으로만 생각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돌아보게 해주고 형편이 허락되어 나의 집에 나의 생각을 넣어 줄 때 참고를 했으면 하는 저자의 생각이 잔잔하게 녹아들어 있군요. 그 때를 소망하며 읽어 두실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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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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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은식 선생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 집필해 온 [한국통사(韓國痛史), 지만지]는 1915년 상해의 대동편역국에서 순한문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국내로 반입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한국통사]는 간행 직후 중국, 러시아 등지에 있는 한국인 동포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비밀리에 대량 보급되어,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 투쟁 정신을 크게 고취했습니다. 일제가 이에 당황해 1916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조선사] 37권을 편찬해서 식민사관에 의한 한국역사의 왜곡을 시도했습니다.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일제가 우리 민족의 뿌리까지도 뒤흔들어놓는 작업을 순수히 일본인들의 손으로만 마쳤겠는가?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 작업엔 분명히 한국인들이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 보상으로 적당한 지위와 땅이 주어졌으리라 짐작이됩니다. 그 왜곡된 역사의 장본인들이 아직도 한국사에 뿌리깊이 관여하고 있고, 그 아류들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2. 이 책의 제목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를 보면 두 가지 반응이 예상됩니다. '그래? 그럼 도대체 명성황후가 어떻게 된거야?' 또 하나의 반응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구먼.' 그대는 어느 쪽이신가요?

 

3. 책 내용을 소개하지 전에 [한국통사]에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에 간략하게 옮겨봅니다. 아마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리라 생각듭니다. "을미년(1895) 8월 20일 일본인이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하니, 그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다음과 같다. 당시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귀국하고, 후임으로 미우라 고로가 왔다. 그는 스기무라 후카시, 오카모토 류노스케 등과 함께 비밀리에 황후 제거를 모의했으며, 대원군을 허수아비로 이용하기 위해 오카모토를 보냈다. (....) 새벽녘에 서문에 이르러 훈련대와 일본군이 서로를 앞뒤로 호위하며 행군했다. 날이 샐 무렵 광화문에 도착해 바로 근정전으로 들어가니, 우리 호위병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대장 홍계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궁궐로 난입한 훈련대를 큰 소리로 꾸짖다가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 궁내부대신 이경직 또한 일본 병사의 칼에 죽었다. 일본인들은 다시 옥호루에 돌입해 황후를 시해했는데, 이때 평복에 단검, 장검을 휴대하고 입궐한 일본인은 자객과 고문관 및 순사 등 60여명에 이르렀다."

 

4. 자,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 신용우는 어떤 근거와 맥락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지 않았다'는 주제를 갖고 책을 썼을까요? 지은이는 일본과 중국에 의해 찢기고 왜곡된 우리나라 역사 바로세우기와 요동수복, 통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이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무엇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전개했음을 밝혀둔다고 썼군요.

 

5. "나는 지금 3류 소설만도 못한 [에조 보고서]('이즈키와 에조'라는 일본 낭인이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일본 법제국 장관 스에마스 가네즈미에게 보냈다는 보고서. 일본 국회도서관 보관 중 발견)때문에 명성황후께서 시해 당했다는 오류를 범하는 현실을 바로잡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6. 소설의 도입부분은 모두 시해당한 줄만 알고 있던 중전(명성황후)이 1896년 병신년 정월 대보름을 향해 밤마다 달이 커져가던 어느 날, 궁녀 옥분을 데리고 연해주의 어느 민가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집엔 옥분의 오라비 준서가 아내와 아이들과 거처하고 있습니다.

 

7. 다시 시계를 뒤로 돌려서 1895년 8월로 가봅니다. 러시아 건축기사인 동시에 궁궐을 경비하기 위해 특별히 초빙된 세레딘 사바틴이 고종과 중전을 급히 독대할 일이 있다고 전해옵니다. 그는 고종에게 일본이 중전마마를 시해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전하는군요. 고종과 중전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앞서도 한밤중에 왕의 침전 바로 앞까지 무례하게 쳐들어온 일본군을 생각하며 대책을 세웁니다. 중전과 얼굴(옅은 마마자국까지)은 물론 몸매도 빼어 닮은 홍 상궁을 대신 중전의 자리에 두는 것으로 계획합니다. 홍상궁으로 변장한 중전은 사바틴과 함께 러시아 공관으로 갑니다.

 

8. 일본의 계획대로 '여우사냥'은 성공리에 끝난 것 같지만, 오카모토는 진짜 중전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점을 갖고 있군요. 이미 일본 본토엔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보고된 상황에도 오카모토 만큼은 의구심을 풀고 있지 않는 것이 중전의 앞날을 염려하게 만듭니다.

 

9. 프롤로그에서 지은이는 웬 노인 한 분과 만난 사연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 노인은 고려인 4세로 연해주에 사는데 지은이와 꼭 만나고 싶다는 말을 출판사를 통해 전했다는군요. 그 노인은 대대로 집안에서 보관 해 오다가 사라진 일기장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일기장은 노인의 3대조 할아버님이 쓰셨다고 전해 오던 '황후마마를 모시면서'라는 것이지요. 그 황후마마는 명성황후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노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 며느리가 일본인에게 그 일기장을 집 한채 가격의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일기를 수없이 읽었던지라 기억을 되살려 필사본을 남겨 놓았다고 하는군요. 그 이야기를 지은이에게 해준 것입니다.

 

10. 모름지기 역사는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사가(史家)가 어떤 관점에서 쓰느냐가 중요하지요. 한국의 역사가 바로 쓰여져 있기나 한가요? 특히 근세사는 더욱 아리송한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세(勢)를 유지하고 있는 일제시대 사가들은 아마도 일제시대의 역사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다 못해 기피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명성황후의 그 이 후 자취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젠 지나간 역사를 재조명해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소설이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면 쓰여진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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