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호와 소음 - 미래는 어떻게 당신 손에 잡히는가
네이트 실버 지음, 이경식 옮김 / 더퀘스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冊 이야기 2014-163
『신호와 소음』 네이트 실버 / 더퀘스트
1.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말장난 같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운명이고, 거센 반동의 액션을 취하는 것도 운명이 아닐까? 셰익스피어 연극의 테마는 운명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토록 비극적인 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과 운명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그 무렵에도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인공들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아야 했다.
2. 여전히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마음보다는 운명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늘날 '예언하다(predict)'와 '예측하다(forecast)'는 말은 별 차이 없이 쓰이지만, 셰익스피어 시대엔 두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전자는 예언자나 점쟁이가 쓰는 말이었고, 후자는 불확실성의 조건에서 계획을 세우는 일을 의미하기도 했다. 예측은 신중함, 지혜, 부지런함을 전제로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통찰(Insight or foresight)'이라는 단어와 뜻이 비슷했다.
3. 이 책의 키워드는 예측, 예상, 확률 등이다. 그렇다면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까? 이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 확률이 높다. 정보가 많을수록 최종적인 결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잘 못 된 판단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big data)'라는 용어는 첨단 유행어가 되었지만 과연 그 몫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4. 이 책의 저자 네이트 실버의 과제는 바로 이런 의문점에서 출발한다. 정보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1970년대에 컴퓨터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 만병통치약 또는 만능 칼이었다. 2008년 《와이어드 wired》지의 편집자 크리스 앤더슨은 엄청난 양의 자료는 이론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까지 지워버릴 것이라고 썼다.
5. 이 책 《신호와 소음》은 단호하게 기술과 과학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과 과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어떤 수치를 대신해서 말을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 역시 인간이다. 자료에 따른 예측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6. 네이트 실버는 이쪽 동네에선 꽤 알려진 사람이다. 자료와 통계 관련 일을 하고 또 그걸 이용해서 미래를 성공적으로 예측한 덕분이다. 2003년 네이트 실버는 하고 있던 컨설팅 업무가 시시해지자 ‘페코타(PECOTA)'라 이름 붙인 통계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의 통계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7. 페코타 프로그램의 예측은 확률적(probabilistic)이었다. 선수들의 성적에 대한 가능한 결과의 범위를 대체적으로 설정하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다른 경쟁 프로그램에겐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우수했다. 2008년엔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를 만들었다(여기서 538은 미국 대통령선거인단수를 의미한다. 미국 하원 435명과 상원 100명을 합친 수에, 행정수도 워싱턴에 있는 컬럼비아 선거구의 3명을 합친 수를 의미함).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는 사이트였다. 사이트는 대통령 선거 당시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누가 이길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미국 상원의원의 전체 35개 선거구 당선자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8. 미국인에게 새로운 천 년은 끔찍한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정보강국 미국에선 전혀 9.11사태를 감지 못했을까? 네이트 실버는 이 사건이 미국의 정보 부족에 있지 않다고 한다. 60년 전에 진주만이 일본에 기습 공격을 당할 때처럼,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온갖 신호가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일관성 있게 정리 대응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9. 이 책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스포츠, 게임 등에서 뽑은 사례로 채워져 있다. 등장하는 각 사례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1부에선 최근의 금융위기를 둘러싼 예측의 실패, 야구 분야의 예측 성공,접근방법론에 따라 예측의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정치 분야를 다룬다. 2부에선 몇 가지 역동적 체계를 다루고 있다. 날씨 변화를 초래하는 대기의 움직임, 미국 경제 동향을 결정하는 경제주체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전염병의 확산을 이야기한다. 3부에선 해결책에 주목한다. 스포츠 도박사가 등장한다. 체스와 포커 게임도 다룬다.
10. 책의 제목 《신호와 소음》에서 ‘소음’은 잡음으로 바꿀 수도 있다. 잡음은 밖에서도 들릴 수 있지만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소음(신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니 소음이 듣기 싫다고 신호조차 안 받고 ‘될 대로 되라지.’하는 막가파는 어떻게 다뤄야할까? 혼자만 그러다 말면 모를까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만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