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 이야기 2014-165
『줄리아나 1997』 용감한 자매 / 네오픽션
1. 글을 쓰기 위해 파일함을 뒤지던 중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던 일기노트가 툭 튀어나왔다.출가 후 이제 곧 첫돌을 앞둔 딸 육아에 정신없는 딸이 집에 다니러 오면 챙겨 보내줘야겠다 생각하고 한 쪽으로 잘 꽂아 놨다. 그러다 다시 뽑았다. 궁금했다. 그 때 그 시절 딸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일기장이 아니라 일기공책이다. 그러니까 담임선생님한테 검사 도장을 맡아야하는 공식 일기노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게 되었다. 주로 친구들이야기, 시험이나 특별활동이야기 등이 실려 있었다. 떠들다가 야단맞은 이야기 등. 그러다 아빠, 엄마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선 ‘우선멈춤’했다. 집에서 교회까지 거리가 먼지라 주일날이면 나, 아내, 딸 이렇게 세 식구가 늘 함께 움직였다. 찬양대 봉사를 하다 보니 예배 외에도 모임이나 행사가 많은 편이다. 그 때마다 혼자 집에 두느니 데리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놓여 시간이 늦더라도 같이 움직였다. 딸은 그것이 못내 못 마땅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담겨 있었다. ‘굳이 왜 나를 그곳까지, 늦게까지 끌고 다니는지 이해불가’라는 표현이다. 그때는 딸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데리고 다녔다. 아니, 딸의 표현대로 끌고 다녔다. 진작 딸아이의 마음을 읽었으면 두고 다녔을까? 잘 모르겠다. 딸은 자신의 일기를 다시 보게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2. 일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책 ‘줄리아나 1997/ 용감한 자매 / 네오픽션’이 마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형식이 일기장은 아니지만, 신예 소설가인 주인공 송지연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40대 초반의 현시점에서 20년 전 20대 초반 시절을 오간다.
3. 사랑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그 시작과 끝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사랑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을 쓴다면 어떻게 쓰고 어떻게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제대로 사랑다운 사랑을 못 해본 사람에겐 더욱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4. 아름다운 일탈에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맥없이 주저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느니 차라리 위를 보고 하늘을 보고 어깨를 펼 일이다. 핑계는 대지 말일이다. 특히 상대방 탓은 하지말자. 일시적으로 마음이 조금 편해질는지 몰라도 결국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나의 것이다. 모두가 ‘나’를 만들어주는 소재들이다. 때로 불현 듯 다가오는 감성과 감정의 토네이도에 그저 몸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5. 결혼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예고편이라도 미리 보면 다행일 텐데 우린 모두 제목만 보고, 겉표지만 보고 DVD를 빌려보는 것과 같다. 처음엔 등장인물이 단지 두 사람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오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오히려 주인공들이 밀리고 카메오들이 주연 행세를 한다. 결국 처음을 장식했던 주인공들은 동서로 남북으로 갈라진다. 누구를 탓하랴. 그저 내 운명이려니 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잊지 말 것은 ‘숨 쉬는 일’은 멈추지 말일이다. 가는 길에 무엇을 만나게 될지. 다음 밀물 때 어떤 선물이 내게로 올지 기대해보자. 더 이상 밑질 일도 없잖은가.
6. 주인공 송지연과 그 멤버들(5인의 여인들)의 주변 이야기가 궁금하면 읽어볼 만하다. 톡톡 튀는 감성적 언어와 재치, 솔직함이 도드라진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용감한 자매’는 ‘재능 있는 자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