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느린 작별
정추위 지음, 오하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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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느린 작별

_정추위 (지은이), 오하나 (옮긴이) 다산책방(2025)

 

 

 

일상생활을 돌보는 일이 날로 어려워지리라는 사실 정도는 일찍이 예상했지만, 몸은 그대로인 채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큼은 정말이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었다.”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주목한다. 치매환자를 표현하는 리얼한 표현이기도 하다. 책의 지은이 정추위(鄭秋豫)는 대만의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다. 특히 음성운율(Speech Prosody)연구 방면에서 독창적인 연구 방법으로 풍부한 성과를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덧 68세의 노학자가 되어 정년을 2년 앞두었을 때 남편인 푸보가 알츠하이머(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진행하면서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을 동반하게 되다가 결국에는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진단을 받았다. 지은이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푸보를 돌보기 위해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연구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발병 전 푸보는 커피 드립핑에 진심이었다. 발병 후에도 한 동안 커피 드립을 했는데, 문제는 커피를 컵이란 컵, 그릇이란 그릇에 담은 후 집 이곳저곳에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책장 틈새에 감춰놓기도 한다. 커피를 내리긴 내렸는데 그 다음에 할 일은 잊은 탓이다.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3시간 동안 물을 틀어놓는다. 욕조에 물을 받긴 했는데 그 다음에 할 일이 진행이 안 되다 보니 물만 소비한다. 그러나 이 과정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커피 드립은 멈추고, 씻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지은이는 푸보가 일을 저지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나마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익숙하던 동작들마저 지워져가고 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새로운 기억은 입력될 여지가 없고, 기존의 기억들만 강제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증상들은 꾸준히 생산되고 있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 치매 증상이 날로 변화되고 심해지는 남편 푸보를 간호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담담하게 적었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다. 마음도 힘든데 노년에 접어든 지은이의 몸도 협조를 잘 안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한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언어란 인간의 영혼으로 통하는 창이라고 표현했다. 치매환자는 영혼의 창을 닫은 채 점차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지은이의 친구인 류슈즈 교수가 쓴 책 혼자 사는 연습을 합니다를 읽고 자신이 독거인생과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돌보는 일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류슈즈 교수가 신간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축사까지 하게 된다. 아마도 치매남편을 간병하는 이야기를 언급했을 것이다. 그것이 뜻밖에도 출판사와의 인연이 되어 글을 쓰기 전에 출판계약을 먼저 했다고 한다. 그 후 4개월 만에 초고가 나오고 결국 이 책이 출간되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대만 전역을 눈물과 감동으로 물들였다고 한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의료진, 사회복지사나 상담사, 요양기관 종사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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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9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게 치매예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나가 아니게 되는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게 되는걸 보는 것도 다 어려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