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훈

사실 그런 것들이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라는 큰 성과를 낸 픽사 스튜디오를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픽사 스튜디오의 사장 에드 캐트멀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인터뷰한 기사가 기억납니다. "픽사 스튜디오에서 재미난 것을 많이 만드는 비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외로운 천재성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공동체 중심이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목적 혹은 산출물을 위해 차이를 극복하고 협업을 이루어 내게 하는 시스템의운용을 의미하고, 바로 이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본 것입니다.
사람들은 픽사를 굉장히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이 혁신적인 기업이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은 핵심인재 경영 혹은탁월한 몇몇 인재의 채용과 활용에 있다기보다는, 집단 구성원 간의 상이한 의견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즉,
개인 수준의 창의성 제고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히려 차이를 유지하고 협업하는 능력, 다른 사람과 의견을 달리하면 - P306

서도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트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기업문화와는 크게 대조된다고 봅니다.

김지현

여러 교수님 의견을 들어 보니 창의성을 함양하는 데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공동체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실험실 랩의 경우처럼요. 그렇다면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서 창의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원리도 파악하고 그것을 학생들이 배워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홍성욱

학생들이 졸업한 뒤 혼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조직에 속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육은 대개 혼자서일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룹 창의성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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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니 케이스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페르디난트 폰 쉬라흐 지음, 편영수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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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더 이상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사적제재 혹은 사적복수가 나타나지 않을까.


베를린에 있는 아들론 호텔 스위트룸 404호에서 한스 마이어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한스 마이어를 살해한 사람은 파브리치오 마리아 콜리니. 그는 마이어 회장을 총으로 쏘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발로 걷어차 뭉개버렸다. 잔인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콜리니는 자수했다.


라이넨은 변호사 자격증을 막 따낸 신참 변호사로 콜리니 사건을 맡게 되었다. 과거 마이어 회장과 친했던 그는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변호사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로 이 사건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절대 살해 동기를 말하지 않던 콜리니에게 지쳐가던 라이넨은 그가 범행도구로 사용한 발터 P38을 보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발터 P38은 루거를 대체한 나치의 총이었다.


우리나라도 친일매국노들을 다 처벌하지 못했다. 독일 역시 나치 부역자들을 다 처벌하지 못했다. '질서위반법 시행령' 때문이었다. 나치 범죄에서 나치 조력자들에겐 공소시효가 적용되었다. 콜리니는 한스 마이어를 법정에서 단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적 복수를 선택했다. 


콜리니는 아주 긴 세월을 기다렸다. 콜리니가 억울한 피해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한스 마이어는 대기업의 회장으로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많은 돈을 벌고 명예를 얻었다. 그의 명예를 추락시키기 위해서, 그의 죄를 온 세상에 밝히기 위해서 콜리니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손에 피를 묻혔다. 법은 이 사건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 법에 호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나치 부역자의 손자이기에 라이넨의 고뇌가 더 와닿았다. 이야기 속 라이넨은 한스 마이어의 손자는 아니지만 손자라고 해도 될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그가 한스 마이어의 죄상을 법정에서 낱낱이 밝히는 장면은 작가 본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작가는 나치가 저지른 범죄, 홀로코스트라는 죄를 안고 태어난 독일인들의 과거 청산 딜레마를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냈다. 그렇게 전범국들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는 잊히지 않고 전해진다.   

"드러 법은 사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을 위한 소름끼치는 사면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법을 간단하게 다시 폐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입니다. 범행이 공소 시효의 적용을 받으면, 그 판결은 절대 번복될 수 없습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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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27 0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이런 소설 쓰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썼네요 일본 사람이 쓴 소설에도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느낌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희선

꼬마요정 2024-09-30 00:11   좋아요 1 | URL
이 이야기가 실화 바탕이라는 게 놀라웠답니다. 그래서인지 더 비극적이었어요. 일본 사람이 쓴 소설에도 이런 느낌이 나는 게 있나 보네요. 일본 역시 전범 국가라 비슷할 수 있겠네요. 이런 소설 쓰기 힘들었을 거예요. ㅠㅠ

감은빛 2024-09-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나치 부역자의 손자이군요.

국가, 권력, 폭력, 복수, 정의 등 고민할 일들은 언제나 많죠.
법치국가에서도 황당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죠.

저는 경찰들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용역 깡패들에게 맞은 적이 많고,
제 동료 활동가들은 심지어 맞아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경찰이 용역깡패들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우리가 저 깡패들을 폭력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무대응, 무표정으로 일관하더라구요.
우리가 당신들 월급주는 시민이라고, 저들을 체포하라고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우리를 체포해서 가두더라구요.

꼬마요정 2024-09-30 00:18   좋아요 0 | URL
법치국가에서도 어이없고 억울한 일들이 많네요ㅜㅜ 용역 깡패는 저 유신 시대나 군부 독재 시대에나 있을 것 같지만 언제나 권력이 편하게 쓰는 도구가 된 것 같습니다. 감은빛 님 고생 많으셨어요ㅠㅠ

예전에 집회 나갔을 때 버스가 차벽 만드니까 정말 무섭던데 감은빛 님 존경합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거 어려워요ㅠㅠ

언제쯤 저런 용역 깡패나 권력의 시녀들이 사라지고 시민들이 정부나 기업과 평화롭게 대화할 수 있게 될까요ㅜㅜ
 
박해로 오컬트 포크 호러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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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호러'는 호러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이다. 민속이나 지역 전통문화를 광신적으로 믿는 폐쇄적인 집단이 광기로 극을 이끌어 간다고 한다. 거기에 오컬트까지 가미되면 민속 신앙의 주술이나 유령 같은 영적 현상은 그 광신적인 집단을 휘두르는 무기가 된다. 그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영적 현상에 매달려 살아가게 된다. 


여기, 섭주가 그런 곳이다. 작가가 창조한 도시인 이 곳은 마천루가 즐비하고 야경이 사라지지 않으며 빠르게 돌아가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이 곳에는 늘 지켜보는 눈이 있고, 조용하면서 음침한 이웃이 있고, 알 수 없는 규칙들이 있다. 


이 곳 섭주에는 터주신이 있다. 그 신은 악신일까. 그 신은 자신이 숭배받기 위해 사람들을 외부와 단절시킨다. 폐쇄적인 곳에서는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 간혹 의문을 표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어느새 생을 마감하게 되거나 악귀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까.


조선시대 때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내, 며느리의 삶은 얼마나 척박했을까. 정조를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싸운 것은 어느새 독하고 못된 행실로 변해 버린다. 그저 며느리 배에서 아이가 나오면 되는 것일까. 핏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질 즈음이면, 저주 받은 그 별당이 가진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부모와 시부모에게 휘둘리던 그녀는 얼마나 갑갑하고 억울했을까. 그래서 서양에서 마녀로 재판 받고 억울하게 죽은 그녀와 감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은 뒤 열녀비가 무슨 소용인가. 심지어 열녀비는 열녀 본인에게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저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당에게 찍혀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형과 형의 희생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동생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염전이나 어딘가에서 진짜 있을 법하기도 한 이 이야기를 보다보면 저 악독한 무당에게 얼른 신벌이든 천벌이든 내리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왜곡된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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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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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고민할 때 나는 누구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가. 내가 죽음의 순간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마중나올 이는 누구일까. 삶이 지루하다 여겼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지루하지 않을 선택을 하겠지, 맨발로 손을 잡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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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9-25 2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분 죽음에 뭔가 집착하나요? 저는 <아침 그리고 저녁> 읽었는데 이것도 죽음 이후의 상황이 책 전체 내용이더라구요. 책은 나쁘진 않았는데 또 엄청 취향인건 아니어서 지금 살짝 밀어놨는데 볼까요? ㅎㅎ <샤이닝>은 딸이 사서 집에 있걸랑요.

꼬마요정 2024-09-25 22:29   좋아요 1 | URL
저는 보는데 살짝 사후세계 가기 전에 죽은 사람들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할아버지가 너는 아직 올 때가 아니다 이러면서 쫓아낼 것만 같은 그런 상황이요. 그런데 읽을수록 뭔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안개 낀 숲 속을 헤매는 느낌이구요. 짧은데 강렬합니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 본 인터넷 짤이 하나 있다. 인간의 뇌 사진에 "이봐, 당신 주머니에서 방금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 것 같은데"라는 말이 적혀 있고, 아래쪽에는 "농담이야. 당신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있지도 않아, 멍청아"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휴대전화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은 21세기만의 독특한 위협이다.
다리의 순간적인 경련이나 떨림, 또는 무엇이 닿는 감각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이 떨림의 주파수와 지속 시간이 휴대전화의 진동과조금이라도 비슷할 때면 뇌는 누가 전화를 걸어온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만약 30년 전이라면 다리가 움찔거리는 것을 파리가 내려앉은 탓이거나, 옷의 천이 움직인 탓이거나, 누가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스치고 지나간 탓이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해석도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다양한 움찔거림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바로 휴대전화이기 때문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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