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사이의 학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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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6월, 연산군은 이계동과 임숭재를 전라도와 경상도 채홍준사(採紅駿使)로 각각 임명하였다. 그들은 아름다운 여인과 좋은 말을 강제로 징발하였다. 그 뒤 연산군은 채청여사 등을 전국 각지에 파견하여 외모가 뛰어난 여자들을 잡아들였다. 채홍사, 채청사들은 실적이 좋을수록 작위와 전답, 노비 등을 받았으므로 어떻게든 여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잡혀 온 여자들 중 예쁘고 춤을 잘 추는 이들을 뽑아 '흥청'이라고 했다. '흥청망청'이란 말은 연산군이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1506년 7월, 이슬은 자신 때문에 채홍사에게 잡혀 간 언니를 찾기 위해 한양으로 갔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왕의 사냥터를 지나야 했는데, 사냥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기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한양으로 간 터였다. 금산(禁山)이 되어버린 사냥터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참혹했다. 왕의 행차만 보이면 여자들은 숨기 바빴고, 저마다 무엇이든 뺏기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슬은 그렇게 주막의 율을 만났다. 


1504년 연산군은 두 번째 사화(士禍)인 갑자사화를 일으켰다.(사림파가 화를 입었다고 사화지만, 갑자사화 때는 훈구파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연산군은 앞선 무오사화 때 삼사의 대간들을 철저히 눌렀는데, 갑자사화 때는 폐비 윤씨를 빌미로 대신들과 대간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그 때 성종의 후궁이었던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아들인 안양군과 봉안군 손에 죽게 했고, 이복동생인 안양군과 봉안군마저 사사했다. 그 뒤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연산군은 그 권력을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해 휘둘렀다.  


대현은 갑자사화에서도 살아남은 왕자였다. 왕의 비위를 맞추고 왕의 명령을 따르며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슬을 만났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며 세상을 배우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잘못을 뉘우치며 살아가려 한다. 물론 그 잘못을 뉘우치는 방법이 잘못되거나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이들도 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나가려는 이들과 낮가죽이 뻔뻔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맞서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말을 빌리러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저들을 따라 아차산으로 가다니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둘러싸여 침묵하고 앉아 있느니 목숨을 거는 편이 더 쉬웠다. 달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돌진하지 않는다면 자기혐오가 나를 구석에 가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p.145)"


도성이든 어디든 왕이 총애하는 자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장소 혹은 시체에 꽃이 있어 범인은 무명화라 불렸다. 두 번째 사건 이후 무명화는 피로 왕의 잘못을 쓰기 시작했다. 왕은 범인을 잡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했고, 이슬은 그 범인을 잡아 왕에게 언니를 돌려달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슬에게는 협력자 내지는 친구가 필요했다.


이슬은 일단 언니를 만나야 했다. 광대패의 일원인 영호의 도움으로 여인들을 모아 둔 곳인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제나 떼를 쓰고 언니에게 의지하던 이슬은 이제 언니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자신 때문에 잡혀 온 언니를, 질투도 하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를 그 끔찍한 곳에 둘 수 없었다. 아직 스물도 안 된 이슬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가슴이 벅차면서도 아팠다. 이슬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고 죽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대현 왕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야사에서는 월산 대군의 부인이자 박원종의 누이인 승평부부인이 조카인 연산군의 아이를 가져 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나이가 50이 넘은 여인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연산군 일기>에도 그런 내용은 없기에 헛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대현은 반정을 꾸밀 때 박원종을 끌어들이기 위해 승평부부인의 사인(死因)이 병사가 아니라 자결이며 자결을 한 이유가 연산군 때문이라고 했다. 


연산군에게 원한이 깊은 이들과 권세를 탐하는 이들이 규합했다. 하지만 이슬이 원하는 것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달랐다. 이슬은 잡혀간 여인들을 풀어주기를 원했고, 반정을 꾀하는 자들은 그 여인들을 골고루 나눠갖기를 원했다. 결국 저 위정자들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반정을 꾸민 것이다. 연산군이 언제 어떤 꼬투리를 잡아 자신들을 죽일 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신들마저 쉽게 죽일 수 있는 왕은 백성들은 더 쉽게 죽일 수 있었고, 더 참혹하게 괴롭힐 수 있었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저 왕보다는 다른 왕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반정으로 왕이 된다면 겉으로나마 백성을 위한다 선정을 베푼다 할테니 말이다.


대현 왕자와 혁진은 이를 알았다. 이슬 역시 알았다. 하지만 이슬은 눈 감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언니의 자유와 행복이니 대의를 위한답시고 언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이슬의 용기와 그 용기를 무시하지 않은 대현의 용기가 좋았다. 둘은 결국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대현이나 혁진, 영호, 이슬, 율 등은 이름을 남긴 반정공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백성과도 같았고, 그림자처럼 숨어서 활약해야 했다. 그렇다. 작가는 화려한 주인공이 아니라 아프고 지친 이들이 상처를 그러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니까 말이다. 역사에 이름 석 자 새기지 못해도 그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있었고 역사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 말이다. 

말을 빌리러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저들을 따라 아차산으로 가다니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둘러싸여 침묵하고 앉아 있느니 목숨을 거는 편이 더 쉬웠다. 달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돌진하지 않는다면 자기혐오가 나를 구석에 가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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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20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청망청에서부터 흥미진진하네요.
허주은 작가가 기대만땅 촉망받는 작가였네요. 연산군의 폭정 말고도 읽을 거리가 많이 있을 거 같아요.

꼬마요정 2025-01-20 16:37   좋아요 1 | URL
허주은 작가가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 민초들의 이야기를 잘 쓰는 것 같아요. 역사적 인물들은 결말이 정해져 있지만 그들은 아니라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희선 2025-01-21 0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를 있게 하는 건 거기에 사는 백성이죠 백성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되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이익을 더 생각하는군요 예나 지금이나 그건 달라지지 않다니...


희선

꼬마요정 2025-01-21 14:08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다니 씁쓸합니다. 요즘은 다들 자기 이익을 위해 정치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명감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네요ㅠㅠ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