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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니 케이스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페르디난트 폰 쉬라흐 지음, 편영수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9월
평점 :
법이 더 이상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사적제재 혹은 사적복수가 나타나지 않을까.
베를린에 있는 아들론 호텔 스위트룸 404호에서 한스 마이어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한스 마이어를 살해한 사람은 파브리치오 마리아 콜리니. 그는 마이어 회장을 총으로 쏘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발로 걷어차 뭉개버렸다. 잔인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콜리니는 자수했다.
라이넨은 변호사 자격증을 막 따낸 신참 변호사로 콜리니 사건을 맡게 되었다. 과거 마이어 회장과 친했던 그는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변호사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로 이 사건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절대 살해 동기를 말하지 않던 콜리니에게 지쳐가던 라이넨은 그가 범행도구로 사용한 발터 P38을 보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발터 P38은 루거를 대체한 나치의 총이었다.
우리나라도 친일매국노들을 다 처벌하지 못했다. 독일 역시 나치 부역자들을 다 처벌하지 못했다. '질서위반법 시행령' 때문이었다. 나치 범죄에서 나치 조력자들에겐 공소시효가 적용되었다. 콜리니는 한스 마이어를 법정에서 단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적 복수를 선택했다.
콜리니는 아주 긴 세월을 기다렸다. 콜리니가 억울한 피해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한스 마이어는 대기업의 회장으로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많은 돈을 벌고 명예를 얻었다. 그의 명예를 추락시키기 위해서, 그의 죄를 온 세상에 밝히기 위해서 콜리니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손에 피를 묻혔다. 법은 이 사건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 법에 호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나치 부역자의 손자이기에 라이넨의 고뇌가 더 와닿았다. 이야기 속 라이넨은 한스 마이어의 손자는 아니지만 손자라고 해도 될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그가 한스 마이어의 죄상을 법정에서 낱낱이 밝히는 장면은 작가 본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작가는 나치가 저지른 범죄, 홀로코스트라는 죄를 안고 태어난 독일인들의 과거 청산 딜레마를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냈다. 그렇게 전범국들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는 잊히지 않고 전해진다.
"드러 법은 사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을 위한 소름끼치는 사면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법을 간단하게 다시 폐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입니다. 범행이 공소 시효의 적용을 받으면, 그 판결은 절대 번복될 수 없습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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