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토마스 불핀치 지음, 이동일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마태우스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이다. 이 책을 다 읽으므로써, 난 마태우스님께서 주신 책을 모두 다 읽은 셈이다. 진심으로 마태우스님께 감사드린다.

토마스 볼핀치의 이름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새삼 깨달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그가 보여준 나와 다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그였기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 두 권을 먼저 읽어서 였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강렬한 추억 때문일까 한 권으로 줄여놓은 이 책은 나를 크게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많이 배웠다. 하나의 내용을 여러 저자의 입을 통해 여러 번 듣는 것도 꽤 흥미있는 일이니까.

이야기 전개는 대단히 빠르다. 모험 이야기도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없고, 상황 설명 조금에 끝이다. 게임은 끝이 나고, 상대편 기사 혹은 용, 괴물은 죽거나 다치고, 원탁의 기사는 승리한다. 멀린 역시 잠시 등장하고는 비비안에게로 가 버린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트리스트람과 이주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그리고는 순결한 기사인 갤러헤드가 등장하고, 모두 성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결국 성배의 인도로 천국으로 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선택받은 기사 갤러헤드 뿐이고, 나머지 남은 기사들은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아더 왕은 멀린의 예언대로 자신의 조카의 반역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모르가나는 부상을 입어 죽어가는 그를 마중나온다. 명검 엑스칼리버는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가엾은 귀네비어는 수녀원에서 여생을 마친다.

겉에 둘러싸인 기독교적 시각을 걷어내고 싶었지만, 워낙 짧고 빠르게 전개되는 터에 걷어내고 할 것도 없었다. 벌핀치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지, 번역가가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읽는 중간중간 약간은 강요하는 듯한 종교적 어투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하기도 했다.

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 3권이 빨리 나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미하엘 쾰마이어 지음, 김시형 옮김, 이경덕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늘 토마스 볼핀치의 신화를 읽을 때면 식상함과 남성우월적인 면을 의식하곤 했다. 그건 볼핀치의 신화에 기반을 둔 이윤기의 신화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유려한 문체와 막힘없는 서술에 감동했고, 가끔 사견을 첨가해 그 부분에서는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책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 분명했기에, 이 책에 남다른 애착이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신화를 약간은 다른 시각에서 표현한 책. 이 책에서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신화는 결코 어렵지 않으며, 사실은 너무 친숙하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어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화 전문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 역시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생활 속에 깃들여 있는 신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 나이키, 닉스, 헤라... 상품 중 신화와 관련된 상호명이 많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유명한 12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신들의 탄생에서부터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지나 트로이 전쟁 후 오디세우스의 방랑까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들을 식상하거나 딱딱한 투가 아닌 친근하고 유쾌하게 말하고 있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신화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중반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야기는 이나코스로부터 시작되어 다나이데스의 49명의 딸들, 암피온과 제토스, 탄탈로스와 펠롭스, 안티오페, 티에스테스와 아트레우스,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에 이르까지 계속된 집안의 저주이다. 모두가 잘 아는 위의 인물들은 모두 제우스와 헤라, 포세이돈이 실을 제공하여 나약한 이나코스가 실타래를 엮어 에리스가 천을 짜 버려 모두 불행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잔혹하면서 슬픈 이야기들이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닌 신들의 무책임함과 욕심, 변덕에 의해 일어났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신이 그 상벌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신의 만족도였다. 신이 만족하고자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벌을 줬다. 탄탈로스는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타르탈로스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했다. 이나코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저주를 받아야 했던 까닭은 다름아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이었다. 제우스가 이오를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헤라로부터 지켜주었다면 결코 위의 비극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나중에 만신창이가 된 이나코스를 위로한답시고 물 없는 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제우스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이나코스가 불쌍하니까 동정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고자 도와준 것이다. 원인 제공자였던 자신의 행각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미하엘 쾰마이어 역시 나와 같이 불합리한 신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무책임에 화를 냈다. 특히 바람둥이 제우스와 위대한 여신에서 전락해 버린 헤라는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남성우월주의를 찾는 것은 쉽다. 너무나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몇 군데 살펴보자. 헤라. 그녀는 대지모신이었지만, 이방신인 제우스에게 겁탈당하여 질투쟁이 여신으로 전락해 버린다. 악녀 메데이아. 그녀는 악녀라는 호칭이 앞에 붙어있지만, 사실은 이아손의 야망과 우유부단함에 희생된 가엾은 여자 아니던가.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이라 칭송받는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성적으로만 묘사되는가. 제우스가 건드린 모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다 불행해졌다. 여자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제우스의 행각으로 얼마나 불행한 여성들이 탄생했는가. 게다가 그들이 낳은 아이들 중 남자는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는 잊혀져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우스의 딸은 다름아닌 헬레나.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역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레스테스. 모친살해의 주범인 그는 무죄 판정을 받았다. 여성이면서 남성이기를 바랬던 아테네에 의해서 말이다. 

읽다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신화를 보면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청목 스테디북스 1
단테 지음, 신승희 옮김 / 청목(청목사)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호메로스, 세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의 명작인 <신곡>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한 것을 다룬 작품이다. 지옥편 33곡,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 전체서문 1곡, 모두 총 100곡으로 이루어진 이 장대한 시는 인간세상을 초월하여 신의 영역을 탐구한다. <신곡>은 단테가 죄 지은 자들이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끝없이 고통받는 지옥과 정죄를 목적으로 하는 연옥과 하나님과 같이 있는 축복의 세계 천국을 두루 여행하고 돌아와 쓴 서사시이다. 처음 그가 지옥에 떨어졌을 때는 지식의 상징인 베르질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며, 천국으로 올라가는 그 곳에서는 신앙의 상징인 단테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와 함께 여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가 계신 곳을 보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때는 성 베르나르도의 인도를 받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 한 번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죄"라는 것에 대해 의문점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죄와 복은 엄연히 다르다. 죄는 복으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값을 치러야만 그 죄는 사해지는 것이고, 그 복은 지은 만큼 복으로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들이 저지른 만행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격의 것들도 있었다. 특히나 4차 십자군은 아예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었다. 같은 기독교 국가를 약탈하고 곤경에 빠트린 그들이 어째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내가 또 다시 생각해 본 점은 각기 지옥과 연옥,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마호메트라고 알고 있는 무하마드 -이슬람교의 교조-는 8번째 지옥의 9번째 구덩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분열을 일으킨 자들이 그 죄값을 받고 있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씻어지지 않는 상흔을 보았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인 제 9옥에는 루치펠과 가롯 유다, 부르투스, 카시우스가 영원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유다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부르투스와 카시우스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이사르를 찔러 죽인 게 그렇게나 큰 죄였던가. 어떻게 생각하면 독재를 막기 위한 시도였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느낀 것은 일종의 모순이었다. 구원받은 자는 지옥에 있는 자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박해자들이 구원받길 기도한다. 또한 단테가 지옥에 있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곳에 올만한 죄를 지었으니 그 곳에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들을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에 목련존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목련존자는 불도를 닦으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모친이 지옥에서 아귀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를 구하고자 지옥으로 내려간다. 그 곳에서 자신의 모친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게 되는데, 목련존자의 자비심과 고통 받던 이들이 참회한 결과였다. 스님들이 공양 후 밥그릇을 깨끗하게 하여 물을 땅에 붓는 이유도 지옥의 아귀들이 배가 고프니까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불편하고 화가 났던 것은 바로 "오타"였다. 어찌나 오타가 많은지 처음에는 내용 연결이 잘 안 되어서 고민했는데, 자세히 보니 의문문을 평서문으로 만들어 놓고,  ~의가 되어야 하는데 '은, 는'을 붙여놓았다. 그 밖에도 기본적인 단어 오타가 많았다.

동, 서양의 차이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전이라고 반드시 읽어보라는 작품들 중에 우리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같은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신앙을 두텁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대로 된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메트리오스 2004-08-2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옥편을 읽으면서 제일 이해가 안 갔던것이 마지막 지옥 부분이었어요. 굳이 죄를 따지자면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데...
게다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순전히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태어났단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 있는 것도 좀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꼬마요정 2004-08-2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지요..
그래도 단테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교와 신앙은 사람을 철저하게 지배하나봐요.. 그렇죠?
 
아더 왕 이야기 2 - 원탁의 기사들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아웃사이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가진 환상과 싸워야만 했다. 어릴 적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던 박진감 넘치는 아더왕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책엔 눈 먼 음유시인은 단 한번 나온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에서는 쉴새없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던 그는 이제 이 책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글의 어투도 점점 소설이나 전설이라기보다는 설명투가 강해진다. 밤을 새면서 읽고 또 읽었던 그런 흥분과 묘한 쾌락을 꿈꾸던 내겐 충격이었다. 1권에선 1권이라서 그런가보다..했건만..2권도 여전히 부연설명이 많다. 더구나 모험이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다. 스릴이..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을 다 읽고 3권을 기다린다. 기사들의 로망을 끝까지 다 보고 싶다. 위대한 전사인 줄 알았던 아더가 한낱 인간이었음을 인정하고, 아직 등장하지 않은 란슬롯에 대한 환상도 깨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옛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서다. 곧이어 등장할 트리스탄 역시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어서다.

내용은 훌륭하다. 역시 전설은 신비롭다. 아더왕 이야기는 신비로우면서도 치밀하다. 결코 그냥 하는 이야기가 없다. 앞에 나왔던 이야기는 모두 뒤의 이야기를 예비한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두 권 읽고 아더왕 이야기를 판단하는 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지식은 사랑에게 먹힌다. 용기는 오만에게 살해당한다. 지식과 오만이 결합하면 겉잡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긴다. 그러나 그런 상처를 보듬어 치료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없는 용기란 있을 수 없고, 자비심없는 지식이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니발 - 카르타고 3부작 1부
로스 레키 지음, 이창식.정경옥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인물들 중에 단연코 한니발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니발을 이야기 하면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모두가 영웅이라 불리며 엄청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회자되고 또 회자되어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한니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 있었던 이유..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신념과 사랑, 우정, 형제애 그리고 명예까지.

죽음을 앞둔 한니발은 자신의 이야기를 석판에 남긴다. 잊혀지지 않고 싶어서. 모두가 그가 치러낸 전투를, 그가 살아온 나날들을 알아주길 원해서이다. 그의 적들이 그를 비방하여 깎아내리기전에 그는 자서전을 쓰듯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가 살아온 고독한 영웅의 날들을 말이다.

그는 카르타고의 명문인 바르카 가문의 적자로 태어나 지휘관으로 길러지고, 아버지가 가진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이 책 어디에서도 바르카 가문이 가진 로마에 대한 증오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대대로 내려오는 증오심을 가슴에 깊이 품은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한다. 겨울의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침략한다. 그러나 그의 조국 카르타고는 그를 외면한다. 이탈리아에 고립된 채 자신의 아내와 아들, 형제까지 모두 죽고나자 그는 회의를 느낀다. 가족이라는 강하게 결속된 이들로부터의 지지를 잃은 그는 급속하게 빨리 무너진다. 그를 지탱하는 건 로마에 대한 증오심뿐. 그 증오심은 까닭모를 이어져 내려 온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죽여버린 로마인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그리고 냉정과 지원을 잃은 그는 고통 속에서 트라시메노 전투, 칸나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자마 전투에서 패한 뒤 쓸쓸하게 영광의 뒤안길로 사라져 결국 소아시아에서 자살하고 만다.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대한 장군 한니발의 최후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의 목에 현상금이 걸리고, 많은 이들로부터 쫓고 쫓기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잡히기 직전 자살하고, 그의 시체는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던가.

전쟁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으로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다짐했다면, 로마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아내를 잃고 전의를 상실한다. 게다가 로마 정복이 이루어질 듯한 시점에서 그는 크게 방황한다. 그는 군인일 뿐, 로마를 무찌른 뒤의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로마에 대한 증오심으로 살아온 그가 로마를 물리친 뒤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한 인간으로서의 한니발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였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선 자이기도 했다. 비록 자마 전투에서 수적 열세로 지기는 했지만, 그 전투에서 한니발은 자신의 자랑스럽고도 훌륭한 제자 스키피오를 만났다.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스키피오가 적장이었다는 점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절제된 시각으로 무미건조하게 쓰여져 있다. 흥분이나 스릴 같은 건 없다. 오로지 한니발의 시각에서 매우 정적이고 절도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포로를 처형하거나 자신의 아내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조차도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그의 비통함을 처절하게 느끼게 했다.

심장 약한 분들이나 잔인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부분이 계속해서 나온다. 처음에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가 로마의 집정관 레굴루스의 귀와 혀를 자르는 장면이나, 카르타고의 한노 장군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까지-정말 잔인한 부분이었다.-의 상황들을 묘사한 부분이나, 용병들의 반란과 그들이 자행한 일들, 한니발이 로마에서 임산부에게 행한 잔인함들은 소름이 돋기 충분했으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위장이 틀리기도 했다. 

역사가 영웅을 원할 때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라고 하지만, 한니발이 과연 어떤 점에서 영웅이었을까.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분명 역사가 영웅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당시 카르타고의 영웅은 한니발의 아버지로도 충분했으니까. 아마 그 스스로가 영웅으로 길러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잠시 끝없는 고독을 경험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verdandy 2004-08-0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 2권이 주제가 아마 한니발 전쟁이었을 겁니다. 오래 전에 저도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여기 저기 찾다가 보니, 당시로서는 그 책만큼 한니발에 대해 자세히 다룬 게 없어서 읽게 되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1권부터 10권까지 모두 사는 바람에 2권이 하나 남게 되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보내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세요?

꼬마요정 2004-08-0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만 어쩌죠..?? ^^;;
저도 로마인 이야기 열두권 다 가지고 있거든요.. 역사를 좋아해서 동, 서양사에 관한 책들이 대충 있는데, 유럽사중에서 이탈리아 역사에 관한 책은 별로 없잖아요..그래서 시오노 나나미에게 의존하는 편이죠... 그녀의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4-08-0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니발에 대하여 자세히 읽은것은 <로마인 이야기>입니다. 애꾸눈, 최고의 전략전술가, 알프스를 넘은 사나이 등으로 알려진 한니발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이겠군요. 저도 이책 보관함에 넣고 있는데 아직 읽지못한 책이 많아서 구매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마 올 년말에나 가능할것 같네요.

꼬마요정 2004-08-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못한 책... 흑흑..저도 많답니다. 이거 다 언제 읽지... 행복한 고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