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 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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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엔 큰 기대를 안고 읽은 책이지만, 약간의 실망과 큰 아쉬움으로 덮은 책이다. 곳곳에 보이는 사견-시대를 비판하는-들이 거슬리기 그지 없었다. 자신만 깨끗하다고 생각하는걸까...

1부에선 역사학자가 보는 현실, 사회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강자의 역사만을 배운다. 이제는 그러지말고 주위를 둘러보자는 말도 있고, 영국사회가 안고 있던 정치적 부패를 다룬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쇼야>를 보고난 뒤의 느낌이나 <카케무샤>를 보고난 후의 생각들도 그려놓았다. <먼 나라 이웃나라>의 저자가 가진 역사인식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인식에 관해서도 비판해 놓았다. 그러나 자신이 앞에서 주장한 바대로 역사를 보는 것은 상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위의 두 사람의 인식에 대해서는 비판의 시각이 너무나 강하다. 결국 역사는 자신의 인식의 틀을 벗어나서 볼 수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2부에서는 문학으로 보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이 읽어본 책들이라서 그런지 한층 쉽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오이디푸스>나 <뤼시스트라테>, <메데이아>의 경우는 진부한 해석이었고, 단테의 <신곡>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한 작품을 놓고 더 이상 뻗어나가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재미있게 읽으려고 했고, 실제로 재미있었다. <군주론>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석을 해 놓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부르주아 귀족>, <캉디드>, <유토피아>, <멋진 신세계>는 묶어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해줬고, 부르주아의 이상과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이 왜 다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유토피아>가 어째서 유토피아로 그려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보니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유토피아>가 다름 아닌 <멋진 신세계>인 디스토피아가 된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러시아 민족에 관한 글은 사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엮어주는 이음새 구실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각자 삶을 살고 있지만, 현재에서 과거를 덩어리로 보듯이 미래에서 역시 지금의 우리를 덩어리로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몇몇 유명한 사람들만 이름이 남게 된다. 설사 덩어리로 기억된다 해도,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비록 현실이 덩어리로 남게 된다는 서글픔보다 더욱 추악하다 할지라도 나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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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 1 - 엑스칼리버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아웃사이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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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심연의 지옥 타르타로스에는 시시포스나 익시온, 탄탈로스 등이 갇혀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인물 49명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다나오스의 딸들인 다나이데스이다. 원래 다나오스는 50명의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딸들이 왕국을 빼앗으려는 아이깁토스의 아들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큰 딸인 히페름네스트라를 제외한 49명의 딸들이 첫날밤 남편을 살해한다. 그 벌로 그들은 타르타로스에서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이다. 아더왕 이야기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의 한 강력한 왕은 서른 명의 공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결혼과 동시에 자신들이 남편에게 귀속될 것을 거부하였고,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들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의한다. 결국 막내의 고발로 29명의 공주들은 추방되었고, 그들은 바다를 떠돌다 영국에 도착하여 정착한다.

신화나 전설은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체계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마찬가지로 아더왕 이야기 역시 기독교적 색채까지 가미되어 여신은 음란한 여성으로 격하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 시작하는 이야기의 29명의 공주는 자신의 권위와 명예,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 지나쳐 그리되었지만, 만약 남성이 그런 일을 계획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역자인 김정란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음란한 여성들은 대부분 여신들이라 한다. 전통적 모계사회에서 우두머리인 여신이 있으면, 남자는 계속해서 바뀐다. 계승권은 여성에게 있으며, 남성은 그 여성을 얻어야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신이 여러 남자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하며, 또한 신전의 사제들이 여럿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으로 격하되어 버린 여신에게 붙여진 오명은 음란함이었다.

아더왕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히타이트 신화 등 다양한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바로 모르간이다. 모르간은 자신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이슈타르나 이시스라 부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라 부르기도 하지요. 다른 이들은 나에게 다나 또는 돈이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이 말은 곧 그녀가 태초부터 존재하던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녀는 멀린이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며, 자신이 여신이기 때문에 멀린과는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보다 당당한 태도를 지녔다. 멀린은 늘 자신이 악마의 아들이지만, 신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여 신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르간은 다르다. 그녀는 고대의 여신이며, 가부장적·기독교적 시각에 의해 타락하여 사라져야 할 존재이다.  

이 책의 후반부부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아더'이다. 그는 멀린과 마찬가지로 죄의 씨앗이다. 그들이 나중에 보여줄 결속력은 그러한 동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인 셈이다. 저승에서 만들어진 칼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그는 고구려의 유리 태자이자,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신표로 자신의 피를 증명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 신표가 엑스칼리버이며, 그 칼을 뽑아들면서 원탁에는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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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 2004-07-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트인, 로마인, 게르만인, 노르만인 등.... 브리튼 섬에 여러 민족이 거쳐간 섬이라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복합된 걸까요? 시공사에서 나온 <아서왕>을 보면 앙주 왕조의 헨리 2세가 아서왕 전설을 이용해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아서왕의 무덤을 '발견'하게 하여 여전히 애벌론에서 아서왕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브리튼인들의 희망을 꺾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더군요. 또한 프랑스의 카페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의 영웅인 샤를마뉴에 필적할 만한 인물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고도 하고요. 신화나 전설은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로 종종 이용되는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04-07-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원래 신화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도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이니까요. 조선시대 때도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를 지어 찬양한 것도 정통성을 얻기 위함이었죠... ^^*

verdandy 2004-07-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왕 이야기는 사실 유럽 전설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은 전설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예수는 결혼했었나>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이었고, 원 제목은 'Holy Grail, Holy Blood'(성배와 성혈)이었던가... 그렇습니다. 거의 베스트셀러급이 되었던 책인데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히는 바람에 책을 더이상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미국과 유럽에서는 계속 판매됨) 이 책에서는 엑스칼리버가 변형된 성배 모티브라는 이야기를 했던 듯한데... 읽어본 지가 오래되어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아더왕 전설에 관심이 많으시면 나중에 읽어보실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그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주장들도 나름대로 논지가 탄탄하면서 파격적인 주장들이 많아 인상이 깊었던 책입니다.

꼬마요정 2004-07-2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을 구할 수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군요~~ 제가 신화나 전설 좋아하거든요~~^^*

verdandy 2004-07-2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국내에선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서점에도 전혀 없고 도서관에서도 보지 못했구요... 나중에 시간 된다면 제가 마이페이퍼에 리뷰 올리겠습니다.

꼬마요정 2004-07-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그 리뷰를 기다릴게요~^^*

verdandy 2004-07-2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엔 있네요. Micheal Baigent, Richard Leigh, Henry Lincoln(공저), Holy Blood, Holy Grail, Dell, 1983-1-15.

꼬마요정 2004-07-2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원서겠죠?? ^^;;

verdandy 2004-07-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영문판입니다. 한국어판 그 책은 본가에 있어서, 주말에 들를 때 찾아오겠습니다. 며칠 더 기다려 주시겠어요?

꼬마요정 2004-07-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편하실 때 올리세요~~ 시간은 많아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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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열쇠라는 말을 참 좋아하나보다. 앞서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도 12가지 열쇠로 읽더니 이번엔 사랑의 테마로 보는 열쇠라고 한다. 그래서 한 번 들여다보니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 사랑해서는 안 되는 대상을 사랑하는 사랑, 동성애, 패륜아, 나르시즘... 대충 이런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과 사랑의 대상을 잘못 선택한 사랑, 패륜아는 비슷한 설정이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라 함은 그 대상이 동물인 경우다. 헤르메스의 자식인 판을 보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염소이며, 뿔도 있고 털도 많다. 아마도 헤르메스가 멋진 암염소와 정을 통하여 낳은 자식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또한 그 유명한 미노스의 부인이자,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인 파시파에도 나온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대상을 사랑한 경우는 뷔블리스와 스뮈르나이며, 덤으로 나오는 휘폴리토스는 그 계모가 휘폴리토스를 사랑하여 그만 자살하고 만다. 뷔블리스는 자신의 친오빠를 사랑하였고, 스뮈르나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헤르메스, 뷔블리스, 휘폴리토스의 계모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람들은 신들의 저주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불꽃을 태웠고, 결국 죽거나 나무가 되는 등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대상이 있으니까. 그러나 나르키소스의 경우는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을 사랑하여 그 연못을 떠나지도 못하고, 눈물 한 방울 제대로 흘리지 못한다. 물론 다른 사랑을 아프게 한 죄값을 받는다지만, 왕자병이 중증이다 못해 암으로까지 번졌나보다. 포모나의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그녀는 포도밭을 가꾼다고 연애를 멀리했지만, 베르툼누스의 구애에 그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가. 불쌍한 이는 나르키소스와 에코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남성이 소년을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에서 학문을 전수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아폴론 역시 수많은 애동들을 거느린 신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도마뱀과 함께 나타나면 필시 미소년들을 사랑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레스보스 섬에서는 여성끼리의 사랑이 흔했다고 한다. 그 대표주자가 사포인데, 실은 여성대변가 혹은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한 최초의 여성 운동가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리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남성에 의해 많이 왜곡된 사포를 다시 돌려놓고 싶은 바램도 간절하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엘렉트라 컴플렉스는 모두가 다 잘 안다. 5~6세의 소년이 자신과 동성인 아버지에게는 살의를 느끼고, 이성인 어머니에게 사랑을 느끼는 현상, 그것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이다. 마찬가지로 5~6세의 소녀가 동성인 어머니에게 살의를 느끼고, 이성인 아버지에게 사랑을 느끼는 현상, 그것이 엘렉트라 컴플렉스이다. 이 두 용어는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왔다. 위의 현상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엘렉트라 이야기인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았으며, 엘렉트라는 어머니가 애인과 공모하여 아버지를 살해하자 복수를 계획하여 결국 동생 오레스테스의 손을 빌려 어머니를 살해했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색채를 강하게 띈다. 헤라에게 쫓겨간 이오는 이시스 여신이 되어 이집트에서 이피스의 사랑을 들어주는가 하면, 해협을 헤엄쳐 다니며 애인을 만난 레안드로스는 현재는 터키인 세스토스 사람이다.

사랑... 신화를 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이기도 하며, 신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 역시 신화의 중요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좀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미해 줬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트로이 전쟁과 관련 있는 헬레네나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빠진 것은 의아했다. 앞 권에 나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오이디푸스는 중복해서 나오지 않았나. 게다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모순되는 점도 불편했다. 그런 점에서 재미는 있지만,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별을 세 개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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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3 -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사마천 지음, 김진연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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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해문집에서 나온 사기는 이 3권이 마지막이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면서 이 권에서는 그 동안 다루지 못했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소 어리둥절할 인물들도 있다. 방사나 연금술사, 점성술사 등이 그런 인물들인데, 진시황이 불로불사를 원했기 때문에 나타난 이들이다. 물론 그 중에서는 사기꾼도 있었고, 진심으로 찾아다닌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인데, 진시황인들 피할 수 있었으랴.

이 책의 부제는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이다. 멋진 말이다. 숙손통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 2세 황제 때 등용된 사람이다. 한 사건으로 진나라에서 도망쳐 한 때는 항우의 밑에 있다가 다시 유방의 슬하에 들었다. 학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파악하여 받아들인 그는 아첨할 때는 아첨하여 자신과 여러 신하들의 목숨을 건지고, 때에 맞는 인물들을 추천하여 거사를 성공하게 하고, 마침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한나라의 예악을 정립하였다. 그가 진나라를 도망치기 전 2세 황제에게 아첨을 하였는데, 다른 신하들이 그 일을 비꼬자 이렇게 대답한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호랑이 입 안에 있지 않소? 내가 그렇게 아부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무사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이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도망친 그는 항우를 거쳐 유방에게 정착하는데, 드디어 천하통일이 이루어지자 학자들을 모으기 위해 노나라 땅으로 가 학자 30명을 초청하였다. 그 때 두 사람이 거절하며 그를 비난하길, 아직 전사자의 장례도 끝나지 않고, 부상자들도 완치되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예악을 찾느냐, 당신이 하는 일은 옛 법에 맞지 않다. 그 말에 숙손통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 고루한 선비들이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그러나 그는 아첨만 하거나 처세만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유방이 장자가 아닌 척부인의 아들을 태자로 내세우려 하자 목숨을 걸고 반대한다. 또한 유방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혜제가 어머니인 여후에게 문안을 드리기 위해 이층길을 내자 종묘 위를 지나는 것은 불효이므로 종묘를 북쪽으로 이전, 확장하게 한 일은 큰 지혜였다. 사마천은 숙손통을 칭송하길, "세상에서 보기 드믄 사람으로서 사물을 잘 판단하였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고 의식을 제정하여 한나라 유학의 거장이 되었다. 그의 처세 또한 진퇴의 절도를 잘 지켰으며,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대처하였다. '참으로 곧은 것은 굽어 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라는 말은 바로 숙손통의 경우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하였다.

3권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모두가 잘 아는 장건이나 동중서, 진승, 오광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위의 숙손통에게 호감이 갔다. 고루하기 짝이 없던 그 시대의 윤리에 숨이 막혀있던 차, 그는 현대에 내놓아도 쓸모있을 사상을 가지고 실천한 인물이었다.

사기를 다 읽었다면 다음엔 열국지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열국지를 읽고, 초한지를 읽고, 삼국지를 읽고, 수호지를 읽고, 정관정요를 읽고, 서유기를 읽는다면, 아 그리고 사기에 앞서 봉신연의도 읽으면 좋다. 중국 고중세사는 머리 안에 쏘옥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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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7-1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네요. 전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는 읽었는데 아직 사기, 정관정요, 봉신연의는 읽지 못했네요. 사기는 저도 꼭 한번 도전해 볼 요량입니다. 전 무지하게도 봉신연의는 만화인줄 알았네요.^^

꼬마요정 2004-07-1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역사를 좋아해요~ 사실 사기도 3년 전에 읽은 걸 이제사 리뷰로 적었답니다. 제가 리뷰 적는 게 서툴러서 읽고도 막상 쓰질 못해요..ㅡ.ㅜ 제가 말씀 드린 책 다 읽으시면,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나중에는 다 아는 이야기만 나올거에요..^^

verdandy 2004-07-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직 <사기> 우리말 완역본이 없습니다. 사야 할 때가 되었는데... 혹시 저 책 처음 사실 때, 뭔가 다른 출판사 본과 대조해서 보셨는지요? 그랬다면 타 번역본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꼬마요정 2004-07-2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 땐 저게 제일 좋았었어요..근데 요즘 새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일단 저는 서해문집이라는 거 믿고 샀었는데, 요즘 나온 사기도 괜찮아 보이던걸요...^^
사마천의 사기라는 제목으로 옮긴이가 유소림이고 출판사가 사사연인 책은 쉽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어요.. 서해문집의 이 책은 열전이랑 세가를 시대순으로 정리했거든요..완전히 시대순은 아니지만, 오자나 탈자, 오역은 거의 없구요..뒤에 고사성어 해설도 되어있어요..저는 아직까지 서해문집이 그래도 제일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verdandy 2004-07-2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구입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네요. 서해문집... 저도 이 회사 책 풍수 관련서 한번 샀다가 기억하는데... 역사책이나 고전에 눈에 띄는 게 많더군요.
 
사기 2 - 진실로 용기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사마천 지음, 김진연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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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이, 숙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듯 하다. 그들이 충신의 대명사라는 사실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후대 선비들은 백이, 숙제를 칭송하여 그들의 충절을 그린 글들을 많이 지어 신하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런 그들을 조선조 세조 시절,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이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라는 시조에서 비웃고 있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나니.

[풀이 - 수양산을 바라보며, (남들은 지조 있다 하는) 백이와 숙제를 한탄하노라.
굶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어 먹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산과 들에 절로나는 것들이라 하지만 그 누구 땅에 난 것인가?
(절대로 나 같으면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지 않겠다.)]

또한 사기에서도 백이, 숙제가 절개와 충의를 지키다 굶어 죽었다 하니, '하늘의 도리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뒤에 공자의 말씀을 들어 부귀를 위해 살면 소인이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초개같이 살아간다면 군자라 하여 다시 백이, 숙제를 칭송한다. 사기 2권에서 제일 청음 등장하는 사람이 백이와 숙제이며, 진실로 용기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정비석의 소설 「초한지」에는 그들의 삶이 영웅적으로 그려져 있고, 어른들이 자주 두시는 장기 역시 그들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항우와 유방 모두 가볍게 죽지 않았다. 승자였던 유방은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로서 죽었고, 항우는 비록 패했으나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유방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참모 장량은 신선이 되었다는 풍문을 남겼고, 소하는 건국공신 제 1위로 사냥개를 길들인 사냥꾼이라는 명성을 들었다. 그러나 소하는 의심많은 유방에게 고초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상국이라는 신하의 최고 위치에서 죽는다. 그에 반해 질도는 충직하고 절도 있었으나 끝내 참수형을 당한다.

사기와 같은 배경에서는 가족보다 나라를, 부인보다는 친구를, 자기 목숨보다는 주군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것이 충절이요, 당연한 도리였다. 특히 왕들의 애첩은 대부분이 질투가 많고, 왕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필요악인 듯 위험에 처해 있어도 왕을 지키기 위해 그녀들은 버림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없건만,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물론 반역죄 등 일가족이 모두 처벌받을 때에는 여자는 노예로 팔려가고 남자는 죽임을 당하였다. 궁형을 당하여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사마천의 세계에서는 항상 남자는 복수한다. 그러나 여자는 복종한다.   

이 책을 읽고, 과연 충절이란 무엇인지, 의인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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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han 2006-04-05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기 2,3 권에 대한 글에 thanks to 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으시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사마천의 궁형에 대한 컴플렉스로 이해되는 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여성, 외국인 ,장애인 등)에 대해 편견없는 시각을 갖으시길 바랍니다.

젊은분인것 같아, 좀 더 넓은 시야를 갖으시길 바라는 마음에 주제넘은 글 올립니다.

꼬마요정 2006-04-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자는 복종한다고 적어놓았던 것은 비꼬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의 표현력이 부족하여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셨나봐요... 사기에서 그리는 여자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남자가 다스리기 위해 태어났고, 그 남자를 다스리기 위해 여자가 태어났다는 말도 있는데, 사마천의, 아니 그 시대 사람들이 느끼던 여자에 대한 편견이 몸서리쳐지게 싫더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편견 없는 시각을 가지려고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땡쓰투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