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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카르타고 3부작 1부
로스 레키 지음, 이창식.정경옥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인물들 중에 단연코 한니발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니발을 이야기 하면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모두가 영웅이라 불리며 엄청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회자되고 또 회자되어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한니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 있었던 이유..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신념과 사랑, 우정, 형제애 그리고 명예까지.
죽음을 앞둔 한니발은 자신의 이야기를 석판에 남긴다. 잊혀지지 않고 싶어서. 모두가 그가 치러낸 전투를, 그가 살아온 나날들을 알아주길 원해서이다. 그의 적들이 그를 비방하여 깎아내리기전에 그는 자서전을 쓰듯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가 살아온 고독한 영웅의 날들을 말이다.
그는 카르타고의 명문인 바르카 가문의 적자로 태어나 지휘관으로 길러지고, 아버지가 가진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이 책 어디에서도 바르카 가문이 가진 로마에 대한 증오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대대로 내려오는 증오심을 가슴에 깊이 품은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한다. 겨울의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침략한다. 그러나 그의 조국 카르타고는 그를 외면한다. 이탈리아에 고립된 채 자신의 아내와 아들, 형제까지 모두 죽고나자 그는 회의를 느낀다. 가족이라는 강하게 결속된 이들로부터의 지지를 잃은 그는 급속하게 빨리 무너진다. 그를 지탱하는 건 로마에 대한 증오심뿐. 그 증오심은 까닭모를 이어져 내려 온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죽여버린 로마인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그리고 냉정과 지원을 잃은 그는 고통 속에서 트라시메노 전투, 칸나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자마 전투에서 패한 뒤 쓸쓸하게 영광의 뒤안길로 사라져 결국 소아시아에서 자살하고 만다.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대한 장군 한니발의 최후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의 목에 현상금이 걸리고, 많은 이들로부터 쫓고 쫓기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잡히기 직전 자살하고, 그의 시체는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던가.
전쟁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으로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다짐했다면, 로마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아내를 잃고 전의를 상실한다. 게다가 로마 정복이 이루어질 듯한 시점에서 그는 크게 방황한다. 그는 군인일 뿐, 로마를 무찌른 뒤의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로마에 대한 증오심으로 살아온 그가 로마를 물리친 뒤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한 인간으로서의 한니발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였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선 자이기도 했다. 비록 자마 전투에서 수적 열세로 지기는 했지만, 그 전투에서 한니발은 자신의 자랑스럽고도 훌륭한 제자 스키피오를 만났다.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스키피오가 적장이었다는 점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절제된 시각으로 무미건조하게 쓰여져 있다. 흥분이나 스릴 같은 건 없다. 오로지 한니발의 시각에서 매우 정적이고 절도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포로를 처형하거나 자신의 아내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조차도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그의 비통함을 처절하게 느끼게 했다.
심장 약한 분들이나 잔인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부분이 계속해서 나온다. 처음에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가 로마의 집정관 레굴루스의 귀와 혀를 자르는 장면이나, 카르타고의 한노 장군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까지-정말 잔인한 부분이었다.-의 상황들을 묘사한 부분이나, 용병들의 반란과 그들이 자행한 일들, 한니발이 로마에서 임산부에게 행한 잔인함들은 소름이 돋기 충분했으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위장이 틀리기도 했다.
역사가 영웅을 원할 때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라고 하지만, 한니발이 과연 어떤 점에서 영웅이었을까.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분명 역사가 영웅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당시 카르타고의 영웅은 한니발의 아버지로도 충분했으니까. 아마 그 스스로가 영웅으로 길러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잠시 끝없는 고독을 경험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