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창백한 오필리어여, 흰눈처럼 아름답구나!
어린아기에 지나지 않았던 그대는 물줄기에 운반되어 죽었었노라!
노르웨이의 거봉에서 불어닥치는 한풍은
-아주 낮게 내려와서, 처절한 자유를 그대에게 가르쳐주었노라.

그대의 머리칼을 온통 매질하고,
꿈꾸는 그대의 마음을, 격렬한 소음으로 가득 채웠던 숨결이었다.
나무들의 통곡, 밤의 탄식 속에서
그대는 대자연의 절규를 들었으리라.

그대의 어린 가슴에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너무나 따뜻하게 생각되었노라.
사월 어느날 아침,
얼굴이 맑고 창백한 한 사람의 기사, 어리석은 광인은, 그대의 무릎 위에 말없이 앉았도다.

하늘이여, 사랑이여, 자유여, 아 가엾은 광녀여, 이 꿈은 어쩐 일인가
불에 녹아버리는 눈처럼, 그대는 그에게 마음까지 떠맡겨버렸노라.
그대의 커다란 환상이, 그대의 말을 질식시켜 버렸도다.
그리하여 두려운 영원은 그대의 푸른 눈을 놀라게 하였으리라.

-시인은 지금도 말하노라. 별빛 속에서
그대는 지금도 밤이 되면, 그대가 지난날 꺾었던 꽃을 찾으러 왔노라고,
또한 긴 장옷과 더불어 물을 침상 삼고,
백색의 오필리어가, 커다란 백합꽃처럼 물결 위에 흘러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왔노라고,

랭보의 초기시, Ophelie 중에서 2, 3장

※ 밀키웨이님 서재에서 퍼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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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洛花)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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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기다리는 편지

- 정 호 승 -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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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7-0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정녕 기다림이 이토록 행복할수 있단 말인가요? 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리...

꼬마요정 2004-07-0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기다림을 싫어한답니다..^^;;
 

엄숙한 시간 - 릴케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
세계 속에서 정처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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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꼭 내가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내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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