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이 있는 길목에서

 - 유희


우리 품에
엽서 몇장 품고 살자
푸른 잎 때 없이 흩날리다
흩날리다 자취없는 길목

우리 서로
잊었다가 문득 생각나는 날
식지 않게 살아온 이야기 몇줄
엽서를 꺼내쓰자

바람 든 골 깊을수록
울림은 깊고 멀리 여운지리니나
우리 살아가는 길목
못다한 이야기 퍼 담을
우체통은 어디 있는지
가끔은 찾아 볼 일이다

우리 가슴에
엽서 몇장 품고살자
서로 그리운 마음 엮어
바람만 고이는 우체통
뜨거운 속삭임 채워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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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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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女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픔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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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춤

 -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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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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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8-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읽으면 강의 큰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고
철없는 눈의 무관심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

꼬마요정 2004-08-1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시를 평가해 주시면 저는 오오~~ 감탄만 한답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아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