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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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지를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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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7-3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시 처음보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죠.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이 구절 때문이었죠.^^

꼬마요정 2004-07-3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동기부여란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책이 많은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역시 그런 책이죠..동기가 없으면..끝까지 다 읽을 수 없다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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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7-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함석헌옹의 이 시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진실된 관계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다 갑니다.

꼬마요정 2004-07-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저 위의 시에 해당하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좋겠습니다.^^
 

초혼(招魂)

  -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예전엔 이 시가 너무 좋아서 외우고 다녔다. 요즘은 그런 열정도 없나? 만사가 다 귀찮다니...더위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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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 2004-07-2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월의 "招魂"은 소월의 시 가운데서도,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소 옛스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혼을 부르는 시인의 절절함은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에서 기어이 눈을 흡뜨게 합니다.
오랜만에 소월의 시를 읽었네요. 잘 읽었다는 말을 남깁니다..

꼬마요정 2004-07-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오랜만에 소월의 시에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겨울 나그네> 中 보리수

    - 빌헬름 뮐러


성문 앞 샘물 결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 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는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나는 두 눈을 꼭 감아버렸네.

나뭇가지들이 살랑거리면서
꼭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내게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아라!" 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세차게 때렸네,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돌아다보지 않았네.

이제 그곳에서 멀어진지
벌써 한참이 되었네,
그래도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 들리네:
"친구여,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겨울 나그네>(민음사,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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