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회와 그 적들. 

 

 

 

 

 

 

 

 

 

 

 

 

 

 

현대인은 편리한 것을 문화적인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편한 것은 곧 야만스러운 것으로 정의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울리히 벡'은 기술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현대 문명 사회'가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좋은 예'가 전기 공급의 차단이다. 만약에 문명 도시에 전기 공급이 한 달 간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것이다. 당장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멈추게 되면 지하철에 물이 넘치게 된다. 대한민국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의 화장실은 어떻게 될까 ? 똥이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 아비규환의 세계'를 주제 사마라구는 < 눈 먼 자들의 도시 > 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가 있다. 초고층 빌딩은 현대 최첨단 기술의 총합이지만 그 총합의 부피만큼 재난의 사이즈도 거대해진다. 초가집이 불타면 지붕만 타지만 타워가 불타면 모두가 죽는다. 울리히 벡'은 이러한 기술 사회'를 경계해야 된다고 말한다. 방법은 딱히 없다. 편리함을 조심씩 버리고 불편함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서의 필독서다. 일독을 권한다.

 

 

 


 

 

 다이하드.

 

 

 

<나카토미 빌딩’> 은 하이테크 신기술로 지어진 일종의 <바벨탑> 이다. 방재와 보안이 완벽한 빌딩’은 오히려 그 이유로 인하여 경찰의 빌딩 내 투입이 거부된다. 완벽한 보안 경비 시스템이 오히려 재앙’을 부른 꼴이다. 만약에 이 영화의 무대가 지은 지 50년이 지난 재개발 은마 아파트’에서 벌어졌다면 테러리스트들은 쉽게 소탕되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보안 시스템은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존 맥클레인 형사’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디지털 장비’가 아닌 아날로그 장비’때문이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권총도 아니고, 컴퓨터도 아니며, 위치추적장치도 아니고, 목소리인식시스템도 아니다. 그것은 낡은 <무전기> 였다. 이영화는 일종의 무기판 <다윗과골리앗의싸움>이다. 첨단 무기 대 한물간 무전기’의 격돌인 셈이다.

존 맥클레인 형사에게 있어서 이 무전기’는 일종의 검은 안락의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눕던 그 환자용 안락의자 말이다. 그는 끊임없이 밖의 수호천사’와 소통을 함으로써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의 상실을 치유한다. ( 빌딩 밖에서 순찰을 하던 흑인 형사’는 백인 형사의 멘토이자 멘티이다. 그들은 모두“ 간댕거리는자지”를소유한 거세 직전’의 불쌍한 형사들이다. 흑인 형사 알 파웰’은 실수로 13살 소년을 쏘아 죽인 후, 더 이상 권총/페니스’를 발사/사정’하지 못한다. 그 또한 거세 직전의 형사다 ! 이들 짝패는 서로의 멘토와 멘티가 되어서 서로를 위로한다. 사실 존과 홀리의 화해의 포옹보다는 존과 알의 포옹이 더 감동적이다. )

무전기’라는 상징성’이 말하듯, 존 맥클레인 형사’는 5,60년대 포드주의’에 대한 향수를 대표하는 노동자 인물이다. ( 그는 오로지 육체의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한다. ) 이 영화는 자본과 기술’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반영된 작품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기술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재앙의 리스크’도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고층 빌딩’일수록 화재에 인한 재난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단독주택 화재와 63빌딩에서의 화재’를 떠올려 보라. 디지털 시대도 마찬가지다. 해킹에 의한 금융 전산망과 기계 오작동’은 자칫하면 엄청난 재난을 초래한다. 이제는전기가 며칠만 끊겨도 국가 전체가 멈추게 된다. 사람들은 더위나 추위에 죽을 것이고, 냉장고는 음식들의 시체보관소가 될 것이며, 하루 종일 물을 끌어올리는 지하 펌프’가 멈추면 지하철은 물바다가 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영화 속 나카토미 빌딩’처럼 보다 완벽한 방재와 보안 시스템이 최악의 조건을 만들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다. 오히려 가장 안전한 것은 디지털이 아니라 똑딱이 버튼이 달린 아날로그’다. 더 나아가 맨손이다, 맨발이다. 어쩌면 인류의 희망은 아이폰 따위의 기술이 아니라 존 맥클레인 형사의 씩씩한 맨발처럼, 단순한 자전거가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사람들은 <아이폰>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소릴 할 때마다 나의 페니스보다는 2배 작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엿먹어라, 를 외치고 싶다.클린턴이 부시에게“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라고 말했던 것처럼,나 또한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멍청아, 문제는 하이테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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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라는 숫자.

 

 

 

 

 

 

 

 

 

 

 

1.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엇갈리지 않고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시간, 공간, 벡터,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만날 듯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다.

-김영하의 영화이야기

 

2.   나를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에는 옷(衣)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 당신이라는 세상, 부분

 

3.   <철도원>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철도원'과 '러브 레터' 두 편이 영화화되었고, '츠노하즈에서'와 '백중맞이'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는데, 이는 나오키 상 제정 이래 최초이자, 단일 소설집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들이 영상화된 이례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영화 「철도원」은 99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 출판사 소개글, 부분

 

 


 

 

김영하'는 멜로'를 어긋남의 서사'라고 말했다. 오고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텔레토비'이지, 멜로 영화'가 아니라고 말이다. 강재'는 변두리 바닥 깡패'다. 조직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 영업장을 관리'하는, 30대 중반의 넘버 3'다. 자신의 동료는 조직 오야붕이 되어 있고, 자신은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에게도 치이는 꼬붕 아닌 꼬붕이 되었다. 아귀다툼 속 변두리 깡패들의 바닥'을 보고 있자니 "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 "는 어느 젊은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한때 조선이었던 이 나라는 여전히 살아가는 데 팍팍하다. 아라비아 숫자 3은 묘하게 비루한 느낌을 준다. 3은 그 어느 영역으로도 속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경계'이다. 12시 정오와 6시 저녁 사이이며, 청년과 노년 사이'이다. 강재... 그는 딱 숫자 3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끼인 존재이다.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늦고,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오후 3시의 짜장면처럼 초라한 강재는 깡패라고 하기에는 여리고, 여리다고 하기에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중국 여자 파이란은 그린 카드를 위해 강재와 결혼을 한다. 위장 결혼'이다. 하지만 강재에게 파이란'은 아내이면서 동시에 아내가 아니다. 그는 기혼이면서 동시에 미혼이다. 그들 법적 부부는 단 한 번의 엇갈림이 있었을 뿐, 서로 마주친 적이 없다. < 파이란 > 이란 영화를 다시 보다가 문득 내가 강재의 입장에서 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파이란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파이란의 시선으로 강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사내 새끼'가 강재를 안쓰러워 하다니......

 

 

 

몇 년 전, 도망치다시피 집을 떠나 강원도 속초에 머물렀었다. 영화 속 파이란처럼 그곳에서 1년을 혼자 버텼다. 춥고 배 고팠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첫눈에 반했던 그 여자 생각을 하며 동명항 방파제 앞 가게에서 밖을 바라보면 대설 특보'가 내려진 방파제가 보였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폭설이라...... 어쩌면 나는 그 유배지'에서 파이란처럼 헤어진 정인'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강재처럼 저렇게 방파제에서 통곡 한 적이 있다. 노무현의 노제'를 다녀와서 동명항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방파제에 앉아서 통곡을 했다. 비단 노무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 영화 속 파이란의 손끝, 파란 정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약속이 있었으나 계속 잠만 잤다.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결정을 했다. 오랜 고민이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환해졌다.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는 시인의 말, 요즘 계속 생선 가시'처럼 걸려 있다.

 

 

 

 

 

 

 

■ http://myperu.blog.me/20150522526 : 파이란, 결이 좋은 나무를 잃었다.

■ http://myperu.blog.me/20152896891 : 파이란, 동명항 방파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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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편지......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와 이언 매큐언의 < 속죄 > 의 공통점'은 편지'가 사건의 열쇠로 등장한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편지 때문에 개고생을 한다. < 도둑 맞은 편지 > 는 편지의 수신인이 여왕의 정부가 아닌 여왕의 정적의 손에 들어간 경우이고, < 속죄 > 는 정상적인 편지지 대신 엉뚱한 편지지'가 편지봉투에 들어간 경우이다. 둘 다 자기 자리가 아니다. 어긋난 것이다. 이 어긋남은 소동'을 만들어낸다. 소설가 김영하가 지적했듯이 모든 멜로'는 엇갈림의 미학이다.

 

 


 

 

 

 

건축의 기본은 < 집 > 을 짓는 일이다. 집의 탄생은 곧 내부와 외부'를 창조한다. 허허벌판이었을 때는 오직 < 밖 > 의 영역으로만 존재하던 터가 집이 만들어지는 순간 < 안 > 이 된다. 이처럼 안과 밖의 경계는 건축 구조물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건축의 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집은 하나의 유기체적 머리'와 비슷하다. 집은 잘린 머리의 은유다. 문은 입이요, 항문이다. 그리고 창문은 눈의 역할을 한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집을 짓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첫사랑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사실 < 건축학 개론 > 은 < 정신상담학 개론 > 이라고 해야 한다.

 

 

최초의 건축 설계도는 엉터리'다. 집을 완성할 수는 있으나 좋은 집'을 얻을 수는 없다. 이 흠'을 방치하면 금'이 갈 것이고, 금의 깊이가 더해지면 거친 바람에 집은 무너질 것이다. 설계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설계 " 하자 " 를 첫사랑에 대한 실패'로 이해하자. 사랑의 설계도'는 완벽하지 못했다. 작은 오해 때문에 결국은 둘의 사랑에 금이 갔지 않은가. 사람 일이란 한 번 쏟아내면 담을 수 없는 법,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설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어 부분 수정한다. 옛 건물의 기둥을 부수고 다시 짓는 방식이 아닌 그 기둥을 살려서 보강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드디어 튼튼한 집 한 채'를 짓는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끄덕없는 집이다.

 

 

멜로의 본질은 엇갈림'이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사소한 오해 때문에 헤어진다. 오고가던 편지'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오지 않을 때 연인들은 그것을 변심'으로 이해한다. 그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먼 훗날뿐이다. 이와이 슌지의 < 러브레터 > 에서 여자 주인공은 남자의 메시지'를 너무 늦게 발견한다. 송해성의 < 파이란 > 이나 이정국의 < 편지 > 에서도 사랑의 메시지는 죽은 후에 도착한다. 영화 < 건축학 개론 > 에서 한가인이 엄태웅에게 불쑥 내민 설계도'는 설계도'가 아니라 설계도의 형식을 빌린 편지'였다. 아주 오래 전, 노트에 그린 그 그림 편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멜로 드라마'에서 편지'가 모두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지는 않는다.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는 letter가 litter'가 되었을 때의 혼란을 다룬다. 편지를 훔친 장관은 편지/letter'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다. 왕비가 비밀리에 밀사(들)를 보내 장관의 집을 이 잡듯이 뒤지지만 편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장관은 이 편지를 어디에도 숨겼을까 ? 정답은 책상 위에 널브러진 편지함에 두었다. 왕비의 밀사들은 왕비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letter가 litter로 둔갑되어 아무렇게나 방치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litter :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 잡동사니, 찌꺼기, 쓰레기, 난잡, 혼잡

 

 

장관은 편지/ LETTER'라는 단어를 잡동사니/ LITTER'로 둔갑시킨 것이다. 장관은 말 그대로 중요한 편지‘를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물건’으로 위장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잡동사니‘였으며, 구겨지고 찢어졌고, 더렵혀진 쓰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팽‘은 장관의 속임수를 단번에 간파한다. 뒤팽이 장관의 집을 방문하여 눈여겨본 것은 고급 양장의 편지 LETTER’가 아니라 더러운 편지 / LITTER'였다. 이렇듯 사물과 장소‘가 서로 엇나가면 소동’이 일어난다. < 도둑맞은 편지 >에서 편지는 편지의 수신자 혹은 발신자‘가 보관해야 하는데 제 3자인 장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배달 사고‘다 !

 

 

 

그런가 하면, 이언 맥큐언의 < 속죄 > 라는 소설 속에는 cunt'라는 단어가 전체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사랑 고백 편지‘로 빠진다. 그런데 그만 성적으로 흥분한 나머지 삐딱선을 탄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맨발로 너희 집을 활보하고 다니고, 그 오래된 꽃병을 깨뜨리기도 했으니 네가 날 미쳤다고 해도 난 할 말 없어. 사실 난 요즘 네가 있는 자리에서 자꾸 경솔한 행동을 하게 되고 ( 중략 ) .... 날 용서해주겠니 ? 꿈속에서 난 너의 보지에, 너의 그 부드럽고 젖은 보지에 키스를 해. 상상 속에서 난 하루 종일 너와 사랑을 나눠. "

 

이언 매큐언, 속죄 중

 

 

 

남자는 이 편지를 버리고 다시 정중하게 사과 편지‘를 쓴다. 그런데 사과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낙서처럼 쓴 음란한 편지‘를 넣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CUNT''라는 걸러지지 않은 단어가 쓰인 편지’가 그녀에게 도착한 것이다. 이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두 남녀’에게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낸 것은 letter가 아니라 litter'였던 셈이다. 편지란 이처럼 배달 사고'가 잦은 소통 도구'이다. 하지만 그것이 러브레터의 운명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다운 멜로'는 이와이 슌지의 < 러브레터 > 나 송해성의 < 파이란 > 처럼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연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위험에 빠트리지만, 위험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사랑은 보다 더 운명적인 사랑으로 남는다. 편지의 힘'이다.

 

 

cunt에서 c, u, n 은 서로 닮았다. cunt는 보지'라는 뜻이지만, 인체해부학적으로 c,u,n 이라는 철자 또한 여성 질을 닮았다.

 

 

멜로 영화에서 편지'란 매력적인 오브제다. 누군가에게는 letter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litter가 된다. 사랑 편지 속 문장은 뛰어난 문필가의 문장보다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며 먼 훗날에 당신 앞에 한 통의 낡은 편지가 도착할 지도 모른다. 파란 잉크로 쓰여진 글씨가 눈물 때문에 번져 그 뜻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해도, 당신만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수한 글자 하나 하나'가 거대한 파란 얼룩으로 남는다고 해도 말이다. 눈물에 젖은 편지의 내용은 모두 하나다. 그리움이다. 파랗게 번진 모든 것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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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내가 한가인과 맥주를 마신 사연. http://myperu.blog.me/2015648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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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필요한 시대.

 

 

 

 

 

 

 

 

 

 

 

 

대한민국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가족이다. 뭔가 막힌다 싶으면 " 가족이잖아 ! " 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을 풀린다. 그래서 일일드라마'는 가족 이야기'가 끝날 줄을 모른다.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는 이명박 각하 시대의 불행이 엄마를 무시한 죄'라고 은연 중에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이 복원된다고 상황은 달라질까 ?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니라 계급이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철저하게 무시했다. 가족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득재의 <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는 제목 그대로 " 가족 신화 " 의 허구를 살벌하게 폭로한다. 그가 가족 주의의 병폐'에서 벗어나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들뢰즈의 노마드 개념이다. 싸돌아다녀야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니 말이다.

 

 


 

 

 

 

 

< 7번 방의 선물 > 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동네 바보 용구'가 천만 관객을 울린 것이다. 흥행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 중년의 남성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었으니 " 부성애의 재발견 " 인 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를 본 그날의 가족 풍경이 눈에 선하다. 다 큰 자식들은 아빠'를 쇼파에 앉히고는 이런 율동을 선보였을 것이다. "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 참새처럼 글썽거리면서, 물개처럼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부르는, 다 큰 딸은 커다란 가슴을 출렁거리고, 군대를 막 제대한 아들은 곰 같은 몸으로 촐랑거리면서, 아.... 이런 슬픈 가족의 풍경 !

 

 

그런데 < 가족의 재발견 > 은 용구 아빠'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우리는 " 엄마가 필요해 ! " 를 외쳤다. 그 촉매제'는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였다. 책만 보면 쳇 ! 이라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들도 이 책은 사서 읽었다. 이 책의 서평 란에는 온통 눈물 바다'다. 종종 " 배송이 빨라서 좋아요 ! " 라는 이상한 감상평이 올라오기는 하나 주류는 엄마에게 잘하자, 이다. 그러니깐 이명박 정부는 엄마의 재발견으로 시작해서 아빠의 재발견'으로 끝나는, 매우 독특하며, 꽤나 신파적인, 일일 드라마 가족극에 충실한, 복고 취향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각하는 (기업)프렌들리'가 아니라 (가업)페밀리'적이다. 아마도 이명박이 욕심을 부려서 정권을 5년 더 연장했다면 오빠, 언니, 누나, 여동생은 물론이고 당숙에 당숙 조카의 재발견 시리즈'가 미친듯이 이어졌을 것이다. ( 아, 잡담은 집어치우자 ! 아빠는 사형을 당하고, 엄마는 집을 나갔는데 잡담이 웬 말인가. )

 

 

현상'이란 결핍'의 결과이다. 영화 < 배트맨 > 에서 고담 시민들이 초인적 영웅'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초인적 영웅의 출현이 아니고서는 병든 고담 시티'를 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웅을 간절히 원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건강한 사회'는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웅 없이도 세상은 알아서 잘 돌아가지 않던가 ?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요, 풀뿌리 정치'이다. 건강한 사람의 면역 기능처럼 말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다고 펑펑 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 간단하다 ! 가족은 해체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결핍의 존재가 되는 순간, 우리는 가족을 복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호명해야 한다. 그래서 다 큰 어른들이 엄마와 아빠 앞에서 슬픈 동화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 가족 " 이 강박적으로 호명되는 현상은 징조가 나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현상을 마치 휴머니티의 복원이라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한 섬세한 증후'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파란 신호등이 아니라 빨간 신호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당 환자'가 급히 초콜릿'을 찾는 이치와 비슷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비행기를 뉴욕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하면 콘돔은 많이 팔린다. 신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재난으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맞는 말이다. 가족 서사'가 강조된다는 것은 재난이 발생할 때이다. 헐리웃 모든 재난영화는 사실 해체된 가족을 복원하는 가족영화이다.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조된다는 것은 이미 위기에 봉착했거나 위기일발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처럼 가족 이데올로기'의 강조는 위기의 증후'인 것이다.

 

 

< 7번 방의 선물 > 에서 용구'는 바보'로 나온다. 착하고 착한 우리 용구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딸. 하지만 용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다. 아, 시발 ! 이 지점에서는 동네 굴다리 아래 컨테이너'에 살던 해병전우회 마초들도 눈물을 흘리고, 어버이 연합 가스통 할배'들도 눈물을 쏟는다. 안경을 고치는 척하지만 사실은 눈물을 훔친다.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은 눈물뿐이로구나. 아, 아아아. 보아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부성애냐. 그런데 이 슬픔'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멜랑꾸리'하기는 한데 뭔가 야리꾸리'하다. 대한민국 사람은 바보'가 나오는 영화'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 포레스트 검프 > 는 워낙 세계적인 흥행작이니 그렇다고 쳐도, 숀 펜이 나온 < 아이 엠 샘 > 은 수입사마저 예상하지 못한 대박이었다. 본토에서는 별 볼 일 없어서 천대를 받던 영화가 한국에 오면서 대박을 친 것이다. 바보 코드는 먹힌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맨발의 기봉이는 어떤가 ? 백만불짜리 다리'를 외치던 조승우는 ? 영구의 원조인 < 여로 > 는 ?

 

 

한국인은 바보가 어눌하게 말하면 감동하고, 일반인이 잘못을 또박또박 지적하면 화를 낸다. 하지만 무조건 바보'에게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착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 사람이 착하기만 하면 못 써 ! 독한 구석이 있어야 돼... " 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바보는 백치일 만큼 착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착할수록 눈물은 곱하기'가 된다. 이러한 태도가 불쾌한 이유는 바보'나 장애인'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 때문이다. 리퀘스트 방송은 집요하게 마음씨 착한 장애인'을 부각시킨다. 아파도 엄마 마음 아플까 봐서 내색도 못하는 자녀의 깊은 성정'을 나레이터는 앵무새처럼 읽는다.

 

 

이 지점에서 반대로 한번 물어보자. 그렇다면 성질 고약한 장애인은 도울 필요가 없는 것일까 ? 만약에 둘 중 한 명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누구에게 사랑의 열매를 주어야 할까 ? 사람들은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이 착한 장애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둘 다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 그게 바로 복지의 기본이다. 성질 고약한 장애인 대신 착한 장애인에게 기부하는 행위'가 당연하다고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편애는 장애인 주제에 성격마저 고약하네, 라는 태도가 은연 중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시대가 지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어쩌면 각하'야말로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공식을 몸소 증명해 보인 셀프 무비-바디'였다. 국민 대다수인 에브리바디를 혼자서 웃기고 울렸으니깐 말이다. 코미디 정권이라기보다는 신파 정권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 같다. 이명박 시대의 서사가 어머니 신파라면, 박근혜는 시대는 아버지 신파'로 첫 번째 문장을 찍었다. 나는 그녀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동안 아버지 신드롬'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 이데올로기'란 시대의 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성공하길 바란다. 진심이다, 라고 말하고 싶으나 캄캄한 어둠뿐이란 사실을 잘 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글 속에 늘 작은 반전을 숨겨두고는 했다. 이 글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책을 읽지 않고도 서평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바야르는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노하우를 가르쳐주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

자기계발서의 경우는 한 권만 읽으면 읽지 않은 천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은 것처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목만 바뀌었지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 디테일이 중요하다 > 란 책과 < 사소한 것에 목숨 걸자 >라는 책이 있다.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자기계발서(들) 같지만 사실은 디테일과 사소한 것은 같은 말이다. 일처리가 꼼꼼해야 된다는 주문 아닌가 ? <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경영 철학 > 이란 책은 어떤가 ? 자상함이란 키워드는 결국 꼼꼼하다는 뜻이다. < 중요한 것은 성과가 아니라 인간이다 > 이라는 책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전혀 읽지 않는 이유이다. 만약에 자기계발서'를 백 권 읽었다고 자랑하는 놈은 멍청한 놈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한 권도 읽지 않았으나 그 책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고도 그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피에르 바야르의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도 읽지 않은 책이다 !! 내가 이 글에 숨겨둔 반전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피에르 바야르의 책마저도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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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무기를 찾아서

 

 

 

 

 

 

 

 

 

 

 

 

 

영화사를 써내려갈 때 우리는 대부분 세계 3대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 걸작의 목록을 훑는다. 하지만 로빈 우드는 <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 에서 7,80년대 미국 영화사'를 B급 싸구려 오락 영화 중심으로 풀어낸다. 대중의 욕망을 읽는 것이다. 로빈 우드가 보기에 레이건은 대중 마초의 상징적 존재였다. 수잔 재퍼드의 < 하드바디 > 도 같은 맥락으로 70년대 스타워즈'를 분석한다. 착한 사람의 손에 든 권총은 안전하지만 악당의 손에 든 권총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유포한다. 뻔뻔한 논리이다. 이와 함께 하워드 진의 < 오만한 제국 > 을 읽으면 당신은 그때부터 쌍욕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추악한 제국을 향한 꼿꼿한 지식인의 고백이 꽤 우렁차다.

 


 

 

 

Star Wars by Leon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시상영관을 들락날락거렸다. 당시 내가 버스를 타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극장만 해도 그 수'가 많았다. 버스를 탄다고 해봐야 모두 은평구 안'이었다. 나열하면 이렇다 : 1. 홍제극장 2. 도원극장 3. 신양극장 4. 양지극장 5. 수색 극장 ! 과장해서 말하자면 은평구에 있는 극장 수는 교회의 수'보다는 적었지만 성직자다운 진짜 목사의 수'보다는 많았다. 은평구는 극장이 먹여살렸어, 야호 ! 당시의 동시상영관은 1+ 1 시스템이었다. 메인 영화 한 편에 보너스로 한 편의 영화'를 더 보여주는 식이었다. 관람 비용도 저렴해서 점심값이면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주말이 되면 10편의 영화가 새롭게 선보였다. 물론 이중에는 서로 겹치는 영화도 있었으나 메인 영화의 경우는 모두 달랐다. 굳이 종로에 있는 개봉관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돌고 돌아서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종로에 걸렸던 불후의 명작은 다시 동네 변두리 극장에서 반딧불이처럼 희미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 영화 " 라는 이름을 가진 창녀의 슬픈 운명과 비슷했다. 한참 젊고 아름다울 때는 588에서 제값 받다가 늙고 병들면 철원 변두리 티켓 다방으로 팔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영화 씨는 온힘을 다해서 자신의 예술 혼을 빛냈다. 가끔은 필름이 끊기고 몸은 온통 스크래치로 더렵혀졌지만 그래도 변두리 헐리웃 키드인 나에게는 위대했다. 그땐, 몰랐다. 섹스가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 당시엔 영화가 제일 재미있는 쾌락이었다. 당신이 그 사실을 알랑가 모르것다. 하지만 헐리웃과의 허니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맑스의 < 자본론 > 은 자본주의 미국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 영화는 가짜다, 더군다나 헐리웃 영화는 진짜 가짜다 ! " 이 글은 한때 헐리웃 키드였던 자의 헐리웃 배신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헐리웃 영화는 뻔뻔하다. 전설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트 시리즈'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 치명적 물건' > 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 [ 스타워즈 ] 에서는 " 데스스타 " 라는 이름의 치명적 물건'이 등장한다. [ 인디아나존스 ]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시리즈마다 보물이 등장하는데 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압솔루트 파워'다. 1편인 레이더스'에서는 성궤'가 그 치명적 물건이다. 이 물건 또한 악의 차지'가 되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친다는 줄거리다.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 반지의 제왕 '] 은 어떤가.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하나다. 치명적인 물건'을 악이 소유하게 되면 치명적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은 이 치명적 물건은 착한 집단이 보관해야지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다. 여기서의 착한 집단은 누구인가 ? 백인이다, 해리슨 포드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앵글로색슨 혈통이다. 결국은 이들이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편 웅이네 가족은.... ( 천일염보다 저렴한 나트륨에 중독된 어리석은 백성으로 인하야, 한반도 각하 정권이 탄생하게 되는데....... 과연 한반도 은하제국의 운명은 ! )

 

 

여기에는 교묘한 제국의 우생학이 자리'를 잡는다. " 이눔아, 내가 니 애비여 ! " 라는 인류 최대의 유행어'로 먼 나라 이웃 나라 한국에서 엘티이 와프 광고'를 땄던 다스베이더'는 자세히 보면 유색인종을 형상화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낮은 코,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다스베이더와 킹콩의 모습이 닮았다는 점은 과연 우연일까 ? 킹콩은 명백한 아프리칸 흑인의 은유가 아니었던가. 치명적 물건이 이들 유색인종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치명적 무기가 된다고 신경질적으로 반복하는 서사의 핵심은 무엇일까 ? 팍스아메리카'다.

 

 

여기서 치명적 물건'을 핵무기'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 핵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잣대'가 고스란히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적용된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동안 미 군사 전략가나 외교 통상부 혹은 정치평론가들이 하도 잰 체하며 핵 정책에 대해 설레발을 쳐서 그렇지 핵심은 이거다. " 에헴 ! 핵은 위험한 물건이오. 나쁜 놈들 손에 들어가면 뭔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우리 같은 신사들이 보관하겠수다. " 여기서 질 나쁜 양아치는 김정은'이다. 보안관의 손에 든 총은 치안이지만 정은이의 손에 총이 주어지면 위험하다는 논리이다. 놀라지 마시라.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만 개에 육박한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미국인은 보안관이고 나머지는 악당이다. 세상에 이런 논리가 어디 있나.

 

 

이러한 억지 주장을 우리는 헐리웃 영화에 의해 세뇌'를 당한다. 관람자인 우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이 치명적 무기는 미국인이 보관해야 안전하다는 믿음을 배운다. ( 적어도 이 무기는 엘티이 와프 모델이 손아귀에 쥐면 안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고작 이런 엉터리 세뇌를 받으려고 돈 내고 영화를 본 것인가 ? 미국인이 스타워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천일염보다 저렴한 나트륨에 중독된 대한민국만 보아도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미국 역사 교과서는 담을 것이 없다. 우리가 박혁거세 신화를 거들먹거릴 때, 그들은 몇 백 년 전에 서부 개척 시대를 미국의 원년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다. 정통성 없는 뼈대 없는 멸치 가문이다. 과거의 역사가 이처럼 비천하니 그들은 역사'를 미래로 틀어버리는 코페루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것이 바로 스타워즈'다. 미래가 배경이지만 사실은 미국의 건국신화이다. 우리가 새 알에서 깨어나고, 곰이 마늘 먹고, 막, 막막 삼켜서 힘들게 인간이 될 때, 미국인은 광선검에 최첨단으로 꾸며진 우주선 안에서 개국 신화'를 연다.

 

 

나는 이런 영화'를 보며 미국을 동경했다. 속은 것이다. 깨끗하게 속은 것이다. 재미있으면 장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극우적 메시지'이다. 레이건이 괜히 스타워즈'에 열광한 것이 아니다. 부시는 어떤가. 노골적으로 스타워즈의 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시가 벌인 전쟁의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치명적 무기'를 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의 땅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시는 말했다. " 음마... 이 산이 그 산이 아닌갑소 ! " 이 전쟁으로 인하여 그 무수한 아이들이 죽었는데, 한다는 소리'가 이 산 저 산 한계령 타령이다. 그가 찾고자 했던 살상 무기'는 [ 레이더스 ] 에 나오는 잃어버린 성궤'를 닮았다. 고로 부시는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순간 재앙이 몰아닥친다는 망상으로 열심히 채찍을 휘두르며 성궤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는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 그는 스스로를 세계의 보안관이라고 말했으나 한갓 전쟁광에 지나지 않는다. 총은 악당이 가지고 있을 때에만 위험한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건/gun'은 bad man이건 good man이건 똑같이 위험한 무기이다.

 

 

 

 

 

 

+

요즘 " 씐나 ~ " 라는 표기가 자주 보여서 뭔가 하고 조사했더니 < 신나다 >를 SNS 식 용어로 " 씐나 " 라고 하는 모양이더라. 갑자기 열받았다. 적어도 내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표기법의 원조는 바로 나다. 나는 그동안 V를 < 븨 > 로 썼기 때문이다. 티브이'는 반드시 티븨'로 표기했고, 태권 브이도 태권 븨'로 썼고 브이 티 알은 븨티알'로 표기했다. 뿐만 아니라 < 희한하다 > 에서 ㅎ 이 연속 세 개'가 나열되어서, 진정으로 희한한 단어'임을 과학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는 씐나'보다는 븨'를 더 많이 애용해 주시기 바란다. 씐'은 짝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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