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무기를 찾아서
영화사를 써내려갈 때 우리는 대부분 세계 3대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 걸작의 목록을 훑는다. 하지만 로빈 우드는 <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 에서 7,80년대 미국 영화사'를 B급 싸구려 오락 영화 중심으로 풀어낸다. 대중의 욕망을 읽는 것이다. 로빈 우드가 보기에 레이건은 대중 마초의 상징적 존재였다. 수잔 재퍼드의 < 하드바디 > 도 같은 맥락으로 70년대 스타워즈'를 분석한다. 착한 사람의 손에 든 권총은 안전하지만 악당의 손에 든 권총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유포한다. 뻔뻔한 논리이다. 이와 함께 하워드 진의 < 오만한 제국 > 을 읽으면 당신은 그때부터 쌍욕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추악한 제국을 향한 꼿꼿한 지식인의 고백이 꽤 우렁차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시상영관을 들락날락거렸다. 당시 내가 버스를 타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극장만 해도 그 수'가 많았다. 버스를 탄다고 해봐야 모두 은평구 안'이었다. 나열하면 이렇다 : 1. 홍제극장 2. 도원극장 3. 신양극장 4. 양지극장 5. 수색 극장 ! 과장해서 말하자면 은평구에 있는 극장 수는 교회의 수'보다는 적었지만 성직자다운 진짜 목사의 수'보다는 많았다. 은평구는 극장이 먹여살렸어, 야호 ! 당시의 동시상영관은 1+ 1 시스템이었다. 메인 영화 한 편에 보너스로 한 편의 영화'를 더 보여주는 식이었다. 관람 비용도 저렴해서 점심값이면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주말이 되면 10편의 영화가 새롭게 선보였다. 물론 이중에는 서로 겹치는 영화도 있었으나 메인 영화의 경우는 모두 달랐다. 굳이 종로에 있는 개봉관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돌고 돌아서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종로에 걸렸던 불후의 명작은 다시 동네 변두리 극장에서 반딧불이처럼 희미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 영화 " 라는 이름을 가진 창녀의 슬픈 운명과 비슷했다. 한참 젊고 아름다울 때는 588에서 제값 받다가 늙고 병들면 철원 변두리 티켓 다방으로 팔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영화 씨는 온힘을 다해서 자신의 예술 혼을 빛냈다. 가끔은 필름이 끊기고 몸은 온통 스크래치로 더렵혀졌지만 그래도 변두리 헐리웃 키드인 나에게는 위대했다. 그땐, 몰랐다. 섹스가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 당시엔 영화가 제일 재미있는 쾌락이었다. 당신이 그 사실을 알랑가 모르것다. 하지만 헐리웃과의 허니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맑스의 < 자본론 > 은 자본주의 미국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 영화는 가짜다, 더군다나 헐리웃 영화는 진짜 가짜다 ! " 이 글은 한때 헐리웃 키드였던 자의 헐리웃 배신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헐리웃 영화는 뻔뻔하다. 전설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트 시리즈'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 치명적 물건' > 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 [ 스타워즈 ] 에서는 " 데스스타 " 라는 이름의 치명적 물건'이 등장한다. [ 인디아나존스 ]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시리즈마다 보물이 등장하는데 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압솔루트 파워'다. 1편인 레이더스'에서는 성궤'가 그 치명적 물건이다. 이 물건 또한 악의 차지'가 되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친다는 줄거리다.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 반지의 제왕 '] 은 어떤가.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하나다. 치명적인 물건'을 악이 소유하게 되면 치명적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은 이 치명적 물건은 착한 집단이 보관해야지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다. 여기서의 착한 집단은 누구인가 ? 백인이다, 해리슨 포드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앵글로색슨 혈통이다. 결국은 이들이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편 웅이네 가족은.... ( 천일염보다 저렴한 나트륨에 중독된 어리석은 백성으로 인하야, 한반도 각하 정권이 탄생하게 되는데....... 과연 한반도 은하제국의 운명은 ! )
여기에는 교묘한 제국의 우생학이 자리'를 잡는다. " 이눔아, 내가 니 애비여 ! " 라는 인류 최대의 유행어'로 먼 나라 이웃 나라 한국에서 엘티이 와프 광고'를 땄던 다스베이더'는 자세히 보면 유색인종을 형상화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낮은 코,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다스베이더와 킹콩의 모습이 닮았다는 점은 과연 우연일까 ? 킹콩은 명백한 아프리칸 흑인의 은유가 아니었던가. 치명적 물건이 이들 유색인종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치명적 무기가 된다고 신경질적으로 반복하는 서사의 핵심은 무엇일까 ? 팍스아메리카'다.
여기서 치명적 물건'을 핵무기'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 핵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잣대'가 고스란히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적용된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동안 미 군사 전략가나 외교 통상부 혹은 정치평론가들이 하도 잰 체하며 핵 정책에 대해 설레발을 쳐서 그렇지 핵심은 이거다. " 에헴 ! 핵은 위험한 물건이오. 나쁜 놈들 손에 들어가면 뭔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우리 같은 신사들이 보관하겠수다. " 여기서 질 나쁜 양아치는 김정은'이다. 보안관의 손에 든 총은 치안이지만 정은이의 손에 총이 주어지면 위험하다는 논리이다. 놀라지 마시라.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만 개에 육박한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미국인은 보안관이고 나머지는 악당이다. 세상에 이런 논리가 어디 있나.
이러한 억지 주장을 우리는 헐리웃 영화에 의해 세뇌'를 당한다. 관람자인 우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이 치명적 무기는 미국인이 보관해야 안전하다는 믿음을 배운다. ( 적어도 이 무기는 엘티이 와프 모델이 손아귀에 쥐면 안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고작 이런 엉터리 세뇌를 받으려고 돈 내고 영화를 본 것인가 ? 미국인이 스타워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천일염보다 저렴한 나트륨에 중독된 대한민국만 보아도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미국 역사 교과서는 담을 것이 없다. 우리가 박혁거세 신화를 거들먹거릴 때, 그들은 몇 백 년 전에 서부 개척 시대를 미국의 원년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다. 정통성 없는 뼈대 없는 멸치 가문이다. 과거의 역사가 이처럼 비천하니 그들은 역사'를 미래로 틀어버리는 코페루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것이 바로 스타워즈'다. 미래가 배경이지만 사실은 미국의 건국신화이다. 우리가 새 알에서 깨어나고, 곰이 마늘 먹고, 막, 막막 삼켜서 힘들게 인간이 될 때, 미국인은 광선검에 최첨단으로 꾸며진 우주선 안에서 개국 신화'를 연다.
나는 이런 영화'를 보며 미국을 동경했다. 속은 것이다. 깨끗하게 속은 것이다. 재미있으면 장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극우적 메시지'이다. 레이건이 괜히 스타워즈'에 열광한 것이 아니다. 부시는 어떤가. 노골적으로 스타워즈의 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시가 벌인 전쟁의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치명적 무기'를 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의 땅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시는 말했다. " 음마... 이 산이 그 산이 아닌갑소 ! " 이 전쟁으로 인하여 그 무수한 아이들이 죽었는데, 한다는 소리'가 이 산 저 산 한계령 타령이다. 그가 찾고자 했던 살상 무기'는 [ 레이더스 ] 에 나오는 잃어버린 성궤'를 닮았다. 고로 부시는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순간 재앙이 몰아닥친다는 망상으로 열심히 채찍을 휘두르며 성궤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는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 그는 스스로를 세계의 보안관이라고 말했으나 한갓 전쟁광에 지나지 않는다. 총은 악당이 가지고 있을 때에만 위험한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건/gun'은 bad man이건 good man이건 똑같이 위험한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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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 씐나 ~ " 라는 표기가 자주 보여서 뭔가 하고 조사했더니 < 신나다 >를 SNS 식 용어로 " 씐나 " 라고 하는 모양이더라. 갑자기 열받았다. 적어도 내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표기법의 원조는 바로 나다. 나는 그동안 V를 < 븨 > 로 썼기 때문이다. 티브이'는 반드시 티븨'로 표기했고, 태권 브이도 태권 븨'로 썼고 브이 티 알은 븨티알'로 표기했다. 뿐만 아니라 < 희한하다 > 에서 ㅎ 이 연속 세 개'가 나열되어서, 진정으로 희한한 단어'임을 과학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는 씐나'보다는 븨'를 더 많이 애용해 주시기 바란다. 씐'은 짝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