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라는 숫자.
1.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엇갈리지 않고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시간, 공간, 벡터,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만날 듯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다.
-김영하의 영화이야기
2. 나를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에는 옷(衣)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 당신이라는 세상, 부분
3. <철도원>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철도원'과 '러브 레터' 두 편이 영화화되었고, '츠노하즈에서'와 '백중맞이'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는데, 이는 나오키 상 제정 이래 최초이자, 단일 소설집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들이 영상화된 이례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영화 「철도원」은 99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 출판사 소개글, 부분
김영하'는 멜로'를 어긋남의 서사'라고 말했다. 오고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텔레토비'이지, 멜로 영화'가 아니라고 말이다. 강재'는 변두리 바닥 깡패'다. 조직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 영업장을 관리'하는, 30대 중반의 넘버 3'다. 자신의 동료는 조직 오야붕이 되어 있고, 자신은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에게도 치이는 꼬붕 아닌 꼬붕이 되었다. 아귀다툼 속 변두리 깡패들의 바닥'을 보고 있자니 "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 "는 어느 젊은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한때 조선이었던 이 나라는 여전히 살아가는 데 팍팍하다. 아라비아 숫자 3은 묘하게 비루한 느낌을 준다. 3은 그 어느 영역으로도 속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경계'이다. 12시 정오와 6시 저녁 사이이며, 청년과 노년 사이'이다. 강재... 그는 딱 숫자 3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끼인 존재이다.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늦고,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오후 3시의 짜장면처럼 초라한 강재는 깡패라고 하기에는 여리고, 여리다고 하기에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중국 여자 파이란은 그린 카드를 위해 강재와 결혼을 한다. 위장 결혼'이다. 하지만 강재에게 파이란'은 아내이면서 동시에 아내가 아니다. 그는 기혼이면서 동시에 미혼이다. 그들 법적 부부는 단 한 번의 엇갈림이 있었을 뿐, 서로 마주친 적이 없다. < 파이란 > 이란 영화를 다시 보다가 문득 내가 강재의 입장에서 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파이란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파이란의 시선으로 강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사내 새끼'가 강재를 안쓰러워 하다니......
몇 년 전, 도망치다시피 집을 떠나 강원도 속초에 머물렀었다. 영화 속 파이란처럼 그곳에서 1년을 혼자 버텼다. 춥고 배 고팠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첫눈에 반했던 그 여자 생각을 하며 동명항 방파제 앞 가게에서 밖을 바라보면 대설 특보'가 내려진 방파제가 보였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폭설이라...... 어쩌면 나는 그 유배지'에서 파이란처럼 헤어진 정인'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강재처럼 저렇게 방파제에서 통곡 한 적이 있다. 노무현의 노제'를 다녀와서 동명항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방파제에 앉아서 통곡을 했다. 비단 노무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 영화 속 파이란의 손끝, 파란 정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약속이 있었으나 계속 잠만 잤다.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결정을 했다. 오랜 고민이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환해졌다.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는 시인의 말, 요즘 계속 생선 가시'처럼 걸려 있다.
■ http://myperu.blog.me/20150522526 : 파이란, 결이 좋은 나무를 잃었다.
■ http://myperu.blog.me/20152896891 : 파이란, 동명항 방파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