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편지......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와 이언 매큐언의 < 속죄 > 의 공통점'은 편지'가 사건의 열쇠로 등장한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편지 때문에 개고생을 한다. < 도둑 맞은 편지 > 는 편지의 수신인이 여왕의 정부가 아닌 여왕의 정적의 손에 들어간 경우이고, < 속죄 > 는 정상적인 편지지 대신 엉뚱한 편지지'가 편지봉투에 들어간 경우이다. 둘 다 자기 자리가 아니다. 어긋난 것이다. 이 어긋남은 소동'을 만들어낸다. 소설가 김영하가 지적했듯이 모든 멜로'는 엇갈림의 미학이다.

 

 


 

 

 

 

건축의 기본은 < 집 > 을 짓는 일이다. 집의 탄생은 곧 내부와 외부'를 창조한다. 허허벌판이었을 때는 오직 < 밖 > 의 영역으로만 존재하던 터가 집이 만들어지는 순간 < 안 > 이 된다. 이처럼 안과 밖의 경계는 건축 구조물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건축의 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집은 하나의 유기체적 머리'와 비슷하다. 집은 잘린 머리의 은유다. 문은 입이요, 항문이다. 그리고 창문은 눈의 역할을 한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집을 짓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첫사랑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사실 < 건축학 개론 > 은 < 정신상담학 개론 > 이라고 해야 한다.

 

 

최초의 건축 설계도는 엉터리'다. 집을 완성할 수는 있으나 좋은 집'을 얻을 수는 없다. 이 흠'을 방치하면 금'이 갈 것이고, 금의 깊이가 더해지면 거친 바람에 집은 무너질 것이다. 설계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설계 " 하자 " 를 첫사랑에 대한 실패'로 이해하자. 사랑의 설계도'는 완벽하지 못했다. 작은 오해 때문에 결국은 둘의 사랑에 금이 갔지 않은가. 사람 일이란 한 번 쏟아내면 담을 수 없는 법,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설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어 부분 수정한다. 옛 건물의 기둥을 부수고 다시 짓는 방식이 아닌 그 기둥을 살려서 보강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드디어 튼튼한 집 한 채'를 짓는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끄덕없는 집이다.

 

 

멜로의 본질은 엇갈림'이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사소한 오해 때문에 헤어진다. 오고가던 편지'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오지 않을 때 연인들은 그것을 변심'으로 이해한다. 그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먼 훗날뿐이다. 이와이 슌지의 < 러브레터 > 에서 여자 주인공은 남자의 메시지'를 너무 늦게 발견한다. 송해성의 < 파이란 > 이나 이정국의 < 편지 > 에서도 사랑의 메시지는 죽은 후에 도착한다. 영화 < 건축학 개론 > 에서 한가인이 엄태웅에게 불쑥 내민 설계도'는 설계도'가 아니라 설계도의 형식을 빌린 편지'였다. 아주 오래 전, 노트에 그린 그 그림 편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멜로 드라마'에서 편지'가 모두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지는 않는다.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는 letter가 litter'가 되었을 때의 혼란을 다룬다. 편지를 훔친 장관은 편지/letter'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다. 왕비가 비밀리에 밀사(들)를 보내 장관의 집을 이 잡듯이 뒤지지만 편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장관은 이 편지를 어디에도 숨겼을까 ? 정답은 책상 위에 널브러진 편지함에 두었다. 왕비의 밀사들은 왕비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letter가 litter로 둔갑되어 아무렇게나 방치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litter :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 잡동사니, 찌꺼기, 쓰레기, 난잡, 혼잡

 

 

장관은 편지/ LETTER'라는 단어를 잡동사니/ LITTER'로 둔갑시킨 것이다. 장관은 말 그대로 중요한 편지‘를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물건’으로 위장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잡동사니‘였으며, 구겨지고 찢어졌고, 더렵혀진 쓰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팽‘은 장관의 속임수를 단번에 간파한다. 뒤팽이 장관의 집을 방문하여 눈여겨본 것은 고급 양장의 편지 LETTER’가 아니라 더러운 편지 / LITTER'였다. 이렇듯 사물과 장소‘가 서로 엇나가면 소동’이 일어난다. < 도둑맞은 편지 >에서 편지는 편지의 수신자 혹은 발신자‘가 보관해야 하는데 제 3자인 장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배달 사고‘다 !

 

 

 

그런가 하면, 이언 맥큐언의 < 속죄 > 라는 소설 속에는 cunt'라는 단어가 전체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사랑 고백 편지‘로 빠진다. 그런데 그만 성적으로 흥분한 나머지 삐딱선을 탄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맨발로 너희 집을 활보하고 다니고, 그 오래된 꽃병을 깨뜨리기도 했으니 네가 날 미쳤다고 해도 난 할 말 없어. 사실 난 요즘 네가 있는 자리에서 자꾸 경솔한 행동을 하게 되고 ( 중략 ) .... 날 용서해주겠니 ? 꿈속에서 난 너의 보지에, 너의 그 부드럽고 젖은 보지에 키스를 해. 상상 속에서 난 하루 종일 너와 사랑을 나눠. "

 

이언 매큐언, 속죄 중

 

 

 

남자는 이 편지를 버리고 다시 정중하게 사과 편지‘를 쓴다. 그런데 사과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낙서처럼 쓴 음란한 편지‘를 넣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CUNT''라는 걸러지지 않은 단어가 쓰인 편지’가 그녀에게 도착한 것이다. 이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두 남녀’에게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낸 것은 letter가 아니라 litter'였던 셈이다. 편지란 이처럼 배달 사고'가 잦은 소통 도구'이다. 하지만 그것이 러브레터의 운명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다운 멜로'는 이와이 슌지의 < 러브레터 > 나 송해성의 < 파이란 > 처럼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연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위험에 빠트리지만, 위험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사랑은 보다 더 운명적인 사랑으로 남는다. 편지의 힘'이다.

 

 

cunt에서 c, u, n 은 서로 닮았다. cunt는 보지'라는 뜻이지만, 인체해부학적으로 c,u,n 이라는 철자 또한 여성 질을 닮았다.

 

 

멜로 영화에서 편지'란 매력적인 오브제다. 누군가에게는 letter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litter가 된다. 사랑 편지 속 문장은 뛰어난 문필가의 문장보다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며 먼 훗날에 당신 앞에 한 통의 낡은 편지가 도착할 지도 모른다. 파란 잉크로 쓰여진 글씨가 눈물 때문에 번져 그 뜻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해도, 당신만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수한 글자 하나 하나'가 거대한 파란 얼룩으로 남는다고 해도 말이다. 눈물에 젖은 편지의 내용은 모두 하나다. 그리움이다. 파랗게 번진 모든 것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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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내가 한가인과 맥주를 마신 사연. http://myperu.blog.me/2015648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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