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가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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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세상 모든 똥구멍 !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
- 찰스부코스키, POST OFFICE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경멸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 생활의달인 > 이다. 일종의 < 육체 노동 만만세 !> 전파 방송이다. 자전거 짐칸에 탑처럼 상자를 쌓고 달리기, 뚝배기가 담긴 쟁반을7층 다보탑 높이로 쌓아 머리에 이고 배달하기 그리고 중국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배달의 기수들이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최단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혼자서 3명 몫을 한다. 우, 와. 멋지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단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인다. 우, 와 ! 멋지다, 신난다, 태권 븨이만만세 !( 지랄한다. )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들 달인의 묘기에 가까운 일 처리 기술은 <대한민국 빨리빨리 > 가 낳은 기형적인 안전불감증’처럼 보였다. 자전거 짐칸에 짐을 탑처럼 쌓고 달리는 묘기는 전형적인 과적’이 아닐까 ?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짐칸에 적당한 양의 짐을 싣고 달려야 한다고 지적해야 하는 것이 방송의 의무가 아닐까 ?무엇이 그를 위험한 질주로 내몰게 하는 것일까.배달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면발이 불기 전에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질주를 감행한다. 그들은 200만 원 남짓한 돈벌이를 위해서 한겨울 얼음 빙판길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골병이다.
이처럼 힘든 노동 서사는 곧 가족 이데올로기로 연결된다. 알고 보니, 그 노동자의 힘든 노동은 가족 때문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 한몸다 바쳐서 >다. 불, 꽃을 태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열꽃. 이제 노동의 의미’ 는 숭고한 자기 희생’과 겹친다. 파토스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진기명기에 신기하다며 박장대소하다가 시청자는 가밪기 숭고한 감동을 느낀다.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손은 어느새 아버지의 손으로 바뀐다. 문제 제기는 지금부터다.
왜 주류 사회는 노동의 날 것 그대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을 금지시킬까 ? 한나라-어버이-연합-수구-꼴통-꼰대-사회이며 북파 공작원 및 해병 전우회애국 사랑 실천 마초 연대 주류는 노동자 아버지의 손은 숭고한 것으로 각인시키면서 정작 노동자 손’은 다루지 않는다. < 노동자 아버지 손 > 에서 아버지’가 빠지면 갑자기 숭고에서 종북 좌파로 빠진다. ( 지랄이 흉년이다. )
인간의 본성은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깝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 다가가면 노동은 숭고하거나 신성한 것이기보다는 귀찮은 것에 가까웠고, 오히려 숭고한 대상은 놀이와 축제’였다. 그것이 노동과 놀이의 맨 얼굴’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하면서< 생산성 > 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자 주인은 노예에게 노동의 가치를 과대포장해서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 노동은 제주산 활 고등어에요. 신성해요, 신선해요, 싱싱해요 !고로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신성한 존재에요. 게으른 노동자는 죄인이지만 성실한 노동자는 영웅이에요. 깔깔깔. “ 조삼모사요, 눈 가리고 아웅산 수지 다음은 분당 아래 한나라당. 황당무계다. 노동이 형편 없다는 말이 아니다. 노동이란 가치를 미화하지 않고 폄하하지도 않을 때 비로소<노동의 날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오래된 집단 최면술은 지금까지도 대대손손 내려와서 노예를 바보로 만든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노예다. 속이는 놈도 나쁜 놈이지만 속는 놈도 병신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나마 먹고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 전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계급적, 계층적 모순에 대한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
겉으로 보기엔 < 생활의 달인 > 은 민중 노동 예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주류 기득권 사회인< 갑 >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을 > 이 고된 노동 시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무조건 수긍할수록 입이 째지는 놈’은 < 갑 > 이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짐칸에 짐을 잔뜩 싣고 달리는묘기에 주목하지 말고 과도한 노동 잔혹사에 주목해야 한다. 혼자서 3명 몫의 노동 생산량을 생산해야지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은 육체 노동의 가치가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명징한 징후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생활의 달인 > 을 생활 밀착형 다큐로 읽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마 당신은 이 프로를 보며 고생하는 부모 생각에 가슴 찡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유보하라. 감정이 앞을 가리면 진실을 보지 못하니깐. 소수의 <갑>이 다수의 <을>을 속일 때 가장 즐겨 쓰는 수법이 < 가족 휴머니티’> 이다.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리면, 말 그대로 정말 보이는 게 없으므로,쪽팔리게 이런 가짜 서사에 울지 마라. 당신이 현명하다면...... 갑돌이 새끼들이 뿌려대는 최루탄에 속지 말도록.
< 생활의 달인 > 을 보느니, 차라리 < 포르노 >를 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 그것이 더 정신 건강에 좋다. 적어도 포르노는 나에게 < G스팟 공략 기술 > 과 클리토리스를 통증 없이 다루는 방식을 가르쳐주었으며, D컵 젖가슴의 황홀한 탄성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누워도 펑퍼짐하게 퍼지지 않는 젖가슴이란 ! 아, 싱싱한 계란 후라이를 보는 듯해 ! 흰자위는 퍼져도 노른 자위는 퍼지지 않는 그 탄력말이시. 침대에 누워도 퍼지지 않는 노른자위는 정말 아름다웠어.
찰스부코스키의 장편소설 < 우체국 >은 반 노동 소설’이다. 노동 찬양 소설’은 수없이 봤어도 반 노동 찬양 소설은 본 적이 없으리라. 당연하다. 왜냐하면 반 노동 찬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동 찬양의 대표적 텍스트가 성경인데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 ) 사실 이 말은 종교와 국가가 결탁해서 만들어낸 쉰소리에 가깝다. 예수는 끊임없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공격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 빈둥거리는 예수 > 였다. 일은 하지 않고 선동질만 한다는 비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라는 교회 목사의 말은 뻥이다. 현대의 기독교는 자본가 갑의 편이다.
히틀러도 파시스트이기에 앞서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한 가지.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최대 희생자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날조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유대인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집단은 집시와 장애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히틀러는 인간을 생산의 주체로 판단했다. 그는 베짱이처럼 놀고 먹는 떠돌이 집시와 몸이 병신이어서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생산 신화의 불량품으로 판단했고 그런 그들을 지독하게 경멸했다. 그는 그들을 생산성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유대인보다 몇 배나 많은 희생자가 살해되었다. 히틀러는 철처한 자본가 개새끼였다.
그동안 현대 모더니즘 소설이 실존주의와 도덕적 옮바름을 이야기하며 노동의 순수한 가치를 찬양하며 잘난 척할 때, 부코스키는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쳐들며 반기를 들었다. 그가 보기엔 그들의 주장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코스키의 소설 < 우체국 > 은 우리가 그동안 접했던잘난 양반들이 꼴사납게 쓴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우편배달부 츠나스키’는 도덕적 옮바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는
그냥..... 꼴리는 대로 사는 양반이다. 하루 종일 섹스하고, 놀고, 노름하고, 술에 취해 사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동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의 소설은 反노동가 예찬이다. 역설적이게도 반 자본주의 소설이다. 문장 또한 어찌나 외설스러운지 여성에 대한 묘사는 가히 성희롱 수준이다. 젖퉁과커다란 엉덩이라는 낱말이 따발총처럼 쏟아진다. 아이구, 시끄럽구랴. 그런데
놀라운 점은 책을 덮고 나면 묘하게 슬픔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우편배달부 츠나스키’는 한심한 마초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에게 동화된다. 당혹스럽다. 그는 악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도 아니며 선량한 사람도 아니지만 바로 그 점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왜냐하면 그 소설을 읽는 당신 또한 특별히 악당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량한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 그의 노동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슬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 스스로가 하층 노동자 계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이다. 노동의 강도가 육체를 제압할 때, 우리는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그것은 불경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존나>재밌다 ! 재미만 있나 ?! 그렇지 않다. 작품’도 좋다. 농담과 음담패설이 쉴 새 없이 쏟아지지만 천박하지 않다. 고상하지도 않다. 고상한 척’은 부코스키의친척이 아니다. 차라리 적이다. 그의 소설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담백하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 그렇다. 그리고 전복적이며 도발적이며 웃기고 슬프다. 그것이 그의 소설의 장점이다. 아, 아아아아. 그의 소설, 정말 좋다 !시부럴, 색정광 찰스부코스키 할아버지 만만세 !
환갑이 지났어도 강철보다 단단한 딱딱한 ( 태권븨이처럼 곧게 뻗은 팔처럼 휘지 않은 ) 페니스의 일직선을 간직하셨던 스테미너찰스. 그리고 경마 도박광부코스키 할아버지 만만세 ! 술고래 부코스키, 뿜빠라뿜빠뿜빠바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 병 대신 그에게 위스키술병을 ! 놓지면 후회하는 소설이 있고, 읽지 않아도 후회되지 않는 소설이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읽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는 소설’이다. 헤르만헤세와앙드레 말로가 지겨울 때, 셰익스피어와 괴테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 읽으면 눈에 번쩍 뜨이는 좋은 소설’이다.
***
조이스는 마침내 달팽이를 삼켰다. 그러더니 접시에 담긴 다른 것들도 천천히 살폈다.
- 모두 작은 똥구멍이 달렸어 !끔찍해 !끔찍하다고 !
-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이 있어 !
- 아,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
그녀는 다시 구역질을 했다. 미친년. 나는 사케를 따서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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