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와 프로이트

 

 

 

 

 

 

 

  

 

 

 

 

 

 

 

 

 


 

 

 

 

 

 


 

셜록 홈즈의 추리'는 철저하게 < 박물학적 세계 > 에서 나온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다. 발자국의 크기나 범인이 벽에 쓴 경고성 메시지의 높이를 통해서 범인의 키'를 유추하는 물리적 추론은 물론이고, 살인 현장에 남겨진 담배의 담뱃잎 종류나 흙의 성분을 분류하여 범인의 거주지'를 파악하기도 한다. 이 모든 능력'은 박물학'에서 나온다. 먹물 투로 말하면 박물학이고, 천박하게 말하자면 잡학다식'이다.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해야지 좋은 탐정이 될 수 있다. 각하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저돌적인 몰입'은 탐정에게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론은 이렇다 : 탐정이란 잡다하게 많이 아는 사람이다.

 

프로이트'가 추리소설광'이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밤 새워 홈즈, 뒤팽, 루팡 and 브라운 신부 따위'를 읽었을 것이다. 그는 몇 페이지'를 읽고서는 단번에 범인'을 파악했으리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추리소설 광'이 존재한다. 끝까지 재미있게 읽는 독자와 중간에 결말을 예측하는 독자. 프로이트는 후자'였을 것이다. 내가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신분석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추리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프로이트'는 논문을 추리소설'처럼 쓴 전무후무한 먹물'이다. 그것도 아주 근사한 먹물'이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추리적 기법'으로 글을 썼다. " 그라디바에 대한 논문 " 은 한 편의 잘빠진 스릴러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 " 이나 "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 살해 " 는 그의 문학적 이해'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알려준다. 그는 미학, 문학, 철학, 고고학, 문화 인류학'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한다. 프로이트야말로 정말 모르는 게 없는 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와 홈즈는 동급 최강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론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 전이 " 와 " 말실수 " 다. 전이'란 어떤 대상에 향한 감정이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가는 감정의 전염 현상인데, 이와지 슈운지의 < 러브레터 > 는 이와 같은 전이 현상'을 쉽게 설명한다.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첫사랑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옛사랑에 대한 감정이 지금의 애인'에게 전이된 예이다. 하지만 전이'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러브레터'에서는 사랑에서 사랑으로 옮겨가지만 어떤 전이'는 사랑이 변형된 증오'로 바뀌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각하를 향한 나의 증오'는 어쩌면 사랑이 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자기애'다. 마음에 드는 이성 사진'을 고르는 실험'이 있다. 10장의 사진 중 가장 끌리고, 꼴리는 사진 한 장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실험 제작진의 꼼수'가 하나 있다. 10장의 사진 중 1장은 사진을 골라야 하는 실험자의 사진'이라는 점이다.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포토샵을 한 후 끼워넣는 것.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 대부분의 실험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쳐다본 후 그 사진을 고르게 된다. 이 여자가 가장 매력있어요, 이 남자가 끌려요. 그 사진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과 닮은 대상에게 홀리게 되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대상을 살펴보아라. 내 남편이 문어처럼 생겼다고 ? 내 아내가 곰처럼 생겼다고 ?! 맙소사, 그것은 당신이 문어나 곰처럼 생겼다는 명확한 증거다. 우리는 많이 보았던 얼굴'을 친숙하고 편한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과 닮은 이성'을 보면 한눈에 반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어쩌면 전이'인지도 모른다. < 나 > 에서 < 나를 닮은 이성 > 으로의 전이' 말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전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돈 많은 추남과 미녀의 결합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사랑의 전이'가 맺은 결실이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른 밀실 야합'이다. 심장의 선택이 아닌 머리'로 맺은 언약식이다.

 

이 시대에 프로이트'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벨 문학상은 개나 줘라. 노벨상 수상 목록이나 기웃거리며 수상작이나 골라서 읽는다고 당신의 문장력이 좋아질 리는 없다.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읽어라. 나는 좋은 명탐정이 되기 위해서 프로이트를 읽었다.

 

 

 

 

 

 

http://myperu.blog.me/20128585529 식스센스 : 전이와 역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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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다섯 개의 꿈 중 하나는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다.

 

 

 

■ 1.

꿈에 사슴 농장이 나왔다. 하지만 농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슴없는 농장을 울타리 밖에서 보고 있는데

서슴없이 사슴이 다가와서 내 귓볼을 핥았다. 꿈에서 깨어 곰곰 생각하다가 < 서슴없다 > 란 단어를 찾아보았다.

그 사전에는 단어 설명 대신 사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 2.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이명박과 노무현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노무현은 미운 정'이 들어서 밉다가도 그립고

이명박은 미운 정'조차 없어서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

산신령이 금 도끼'를 선물로 주었다.

 

 

■ 3.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미술관과 여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미술관은 혼자 가야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할 수 있고

여 관은 둘이 가야 제대로 된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산신령이 금 도끼'를 선물로 주었다.

 

 

■ 4.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빵의 종류를 나열하라고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빵은 갓 구운 빵과

갓 구운 적이 있는 빵으로 나눕니다. "

산신령이 그냥 도끼'를 주었다. 나는 그 나무로 가문비나무를 베었다.

 

 

■ 5.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새옷과 헌옷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새옷'을 선택했다.

산신령이 다시 새 애인과 낡은 애인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라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애인은 구두와 같습니다.

새 구두가 탐이 나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구두는 불편합니다.

비록 낡고 더러우나 발이 편한 낡은 구두'를 선택하겠습니다. "

산신령이 낡고, 늙고, 병든 애인'을 주었다. 그녀의 등뼈를 어루만지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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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3-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다 진짜 같은데..
굳이 뽑자면 전 5번!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1   좋아요 0 | URL
후훗.... 틀렸습니다.
 

 

엽편소설 no.1

 

 

 

 

 

 

 

 

 

 

400번째 안타.

 

 

 

Rocky by Daniel Norris 

 

 

 

술을 많이 마시거나 피곤하면 종종 화장실에서 혈변을 보고는 했다. 치질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대장암'이라면 어떻게 될까 ?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검사를 계속 미룬 이유는 쪽팔려서 병원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낯선 남자에게 내 항문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애인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항문을 남자에게 보여줘야 하다니, 눈 앞이 캄캄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 미룰 수가 없어서 병원 예약을 했다. 예약 당일, 나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목욕탕으로 갔다. 3시간 동안 항문만 닦았다. 그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리라. 종로 속옷 가게에 들러 19,900원짜리 메이커 팬티'를 사 입고 병원에 도착했다.

 

순간 아차 했다. 산부인과에 가는 환자는 팬티보다 양말이 깨끗해야 창피하지 않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 어차피 산부인과 의사가 보는 것은 팬티가 아니라 거치대에 올려진 양말을 신은 발이니 말이다. 발의 바닥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남편과 산부인과 의사가 유일할 것이다.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소율 손님 ! "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갑자기 똥구멍이 간지러워 ! 빌어먹을.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의사'는 갑자기 진행에 차질에 생겼는지 서류를 뒤적이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진찰실 안을 이러저리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진열장에 야구공과 투수 글러브'가 보였다. 그런 나를 보았는지 의사가 물었다.

 

 

- 야구 좋아하세요 ?

- 네에... 십 년째 엘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사회인 야구'를 하시나 보죠 ?

- 아 ? 핫핫 ! 네에. 의사도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환자들 더러운 똥구멍만 하루 종일 봐야 하니... 앗! 농담입니다.

- 아, 네에 ! 포지션이 투수신가 봅니다. 왼손잡이 투수'가 좋죠.

- ( 차트를 보며 ) 소율 씨 ? 야구에 대해 해박하시군요. 일반 사람들은 투수 글러브와 야수 글러브'가 다르단 사실을 잘 모르거든요.

   하하 반가워요. 그나저나 엘지는 올해 잘 할까요 ?

- 잘 하겠죠. 10년째 그 생각으로 야구장에 가고는 했습니다.

- 하하하

- 허허허

- 이크, 웃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바로 가죠 ? 증상이...

- 종종 혈변을 봐서요.

- 음, 뭐, 동성애.. 이런 건 아니시죠 ? 애널섹스에 의한 단순 파열이 있을 수 있거든요.

- 아, 아닙니다 !

- 그럼 한번 봅시다. 똥구멍 벌려보세요.

 

의사는 수술용 장갑을 끼더니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 아... >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무너진 건물 안에 갇힌 고양이를 살피기 위해 투입되는 카메라 내시경'처럼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 아................ 아프지만 좋다. 갑자기 의사가 내게 속삭였다. " 기모치이이 ? " 기모치 ?!! 의사는 느닷없이 나에게 일본말로 좋냐고 물은 것이다. 뭐가 좋다는 건가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손으로 내 엉덩이를 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 기모치 ? " 아, 아아..... 나는 그의 강압적인 재촉에 그만 무의식적으로 " 야메떼 구다사이 !!!! " 라고 소리쳤다. " 자... 됐습니다. 소율 씨. 이제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 나는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른 채 그 앞에 섰다. 그는 방그레 웃고 있었다.

 

" 선생님은 동성애 항문 섹스에 의한 출혈은 아니신 것 같군요. 대부분은 애널 취향을 창피하게 여겨서 감추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 환자의 40%는 단순한 애널 섹스에 의한 항문 파열 때문에 오죠. 남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죠. 선생님은 이성애자'예요. 이성애 야동을 많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기모치와 야메떼 구다사이'란 단어에 익숙해요. 왜냐하면 남자 배우가 기모치라고 물으면 여자들은 앙앙거리면서 야메떼 구다사이'라고 외치죠. 제가 선생님에게 기모치? 라고 닥달을 했을 때, 선생님이 생각없이 야메떼 구다사이'라고 말한 것은 일종의 무조건반사적 학습효과입니다. 선생님은 노멀한 포르노'를 많이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고로 동성애자가 아니십니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 야동을 보지 않거든요. 게이 포르노는 기모치, 뭐 야메떼... 이런 앙앙거리는 멘트를 날리지 않거든요. 그들의 섹스는 돌직구'예요. 웅장하죠. 이성애 포르노가 피아노 소곡이라면, 게이 포르노는 오르간 연주처럼 묵직해요.푹, 윽, 퍽, 악, 이런... 하여튼 선생님의 병명은.... "

 

나는 무척 긴장이 되었다. 의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선고를 내렸다. " 안구 착색 망막 손상'이 진행 중이십니다. 쉽게 말해 1년 안에 눈이 멀게 되는 병입니다. 괄약근은 눈과 연결이 되어 있죠. 눈은 아시다시피 괄약근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눈이 나쁘면 괄약근에 이상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요. " 나는 대장항문과 전문의로부터 시력 상실'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눈이 괄약근이라는 사실은 태어나서 처음 듣지만... 의사가 괄약근이라고 하면 괄약근인 거다. 의사란 그런 존재다. 나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에 펑펑 울었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의사는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 아니, 뭐 그리 죽상이십니까 ?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 얼굴 안 볼 생각하면 좋지요. 저도 눈이나 멀었으면 좋겠네요. 더럽고 험한 꼴 안 보게 말이지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디 눈 뜨고 볼 만한 풍경입니까 ? 각하 얼굴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행운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강타구입니다... " 의사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각하를 보지 않아도 된다니. 야홋 ! 인생이란 케세라세라 !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다음날 한강 공원에 나와 공을 주고 받는 연습을 했다.

 

- 메이져리그는 어느 팀 좋아하십니까, 소율 씨 ?

- 전 보스톤 레드삭스 좋아합니다.

- 왜요 ?

- 빨간 양말 로고가 예뻐서요

- 그거 아십니까 ? 스티븐 킹이 보스톤 광팬이라는 사실 ?

- 그럼요, 알다마다요.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라는 소설에서 톰 고든은 그 유명한 레드삭스 선수 아닙니까.

- 하하하. 그래요. 소율 씨 꿈은 뭐였습니까 ?

- 투수요 ! 저도 의사 선생님처럼 투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야구부 투수였습니다.

- 그래요? 어쩐지... 꿈 포기하지 마십시요. 인생이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잖아요. 럭비공 같아요.

  럭비공이 하늘을 날 때는 예상 가능한 포지션이지만 땅에 바운드 되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죠.

 

우리는 밤 늦게까지 공을 주고 받았다. 나는 그날 결심했다. 눈이 안 보이는 그날까지 공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그게 세상의 진리'이다.

 

 

 

 

 

 

 

 

 

에필로그.

 

눈이 먼 지 7년이 지났다. 나는 현재 마운드 위에 서 있다. 레드삭스 팀 투수'가 되었다. 물론 나는 맹인'이다. 앞을 못 보는 데 어떻게 공을 던지냐고 ? 비웃지 마라 !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각하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 불가능한 것은 각하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동료인 포수가 종을 울리면 그 소리를 향해 공을 던진다. 내 공은 낙차가 크다. 지금까지의 방어율은 3.12, 10승 5패의 전적이다. 꽤 좋은 성적이다. 타선의 도움도 받았다. 팬들은 나를 소울 재즈 킹'이라고 부른다. 내가 등장하면 팬들은 와와 한다. 그리고 원정 경기에 가면 우우 한다.

 

지금까지 399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한 개 더 맞으면 400개의 안타를 허용할 것이다. 오늘의 경기에서도 운이 좋으면 3,4개의 안타를 내줄 것이다.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몇 번의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인생이란 그러한 실수들의 총합이 아니었던가 ! 몇 번의 성공과 수백 번의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금까지 399번의 실수를 허용했으나 399번의 실패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실수와 실패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3회까지는 안타 없이 잘 막았다. 퍼펙트 게임'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승리를 기원할 뿐이다.

 

" 소울 투수 ! 와인드업 !! 던졌습니다 !!!!!!!!!!!!!!"

 

장내 야구 해설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의 모든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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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3-03-22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정말 재미있네요. 이 새벽에 깔깔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2   좋아요 0 | URL
톰 고든이란 소설을 읽다가 생각났습니다. 아, 나도 레드삭스 팀을 좋아했었지.. ㅎㅎ.

달사르 2013-03-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주어 눈의 괄약근을 오므려보며 깔깔깔 웃는 2인.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2   좋아요 0 | URL
명심하십시요. 눈은 괄약근입니다.

이진 2013-03-23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요새 안 그래도 눈 근육이 다 녹아 사라진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눈이 괄약근이어서 그런가요? ㅋㅋㅋ
아 이글 정말 재밌어요, 정말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11:1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는 반응이 좋군요.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시큰둥했는데 말이죠.. ㅎㅎㅎㅎ
 

 

 

의자놀이와 현시창.

 

 

Million Dollar Baby by Maria Ka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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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반성

 

 

 

 

 

 

 

 

 

 

 

 

 

 

 

 

세헤라자데, 살기 위해서는 밤마다 이야기'를 속삭여야 하는 박복한 여자. 그녀에게 있어서 침묵은 곧 죽음이 아니었던가. 침묵의 본질이 정지라면 세헤라자데의 수다는 생의 지속'이다. 시지푸스가 구르는 돌을 계속 정상에 올려놓는 형벌이라면, 세헤라자데'는 계속 이야기 / 소설'을 말해야 하는 형벌을 가진 여자다. 천일야화( 1001日 야화 ) 는 1000일 동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1001일 동안의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천일(일)야화'인 셈이다. 여기서 0'이라는 아라비아의 숫자가 완성을 의미한다면, 1'은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깐 < 1001'= 1000 + 1' >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1000 and 1 > 이다. 1000'으로 완성되었다고 여기는 순간 다시 1부터 시작해야 한다. 겹치는 데자뷰, 그렇다 ! 시지푸스'가 연상된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바닥으로 구르는 돌'을 다시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반복이라는 형벌'을 간직한 시지푸스' 말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반복을 동일증식'이라고 말하고, 들뢰즈'는 반복에 따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한다. 복제는 원본과 동일하면서 동시에 동일하지 않다. 누군가는 이것을 변주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원본 없는 복제'라고 지시하며, 또 누군가는 실존적 균열'이라고 말한다.

 

 

 


 

 

 

 

 

북촌방향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라고 알려준다. 빨간 바탕에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타이틀'은 70년대에나 쓰던 타이포그라피'다. 하지만 관객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홍상수가 지금까지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게릴라 방식'으로 영화를 찍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 화면과 펜/pan 그리고 성급한 줌인 효과'는 복고'라기보다는 오히려 초창기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홍상수의 이 영화를 복고적 취향'으로 이해했다면 잘못 판단한 것이다. 홍상수는 공지영 식 후일담'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와 감독의 관계, 창작자와 창착품의 관계, 나아가 영화 서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북촌방향'을 보면서 내내 내 머리속'에서 맴돈 것'은 천일야화' 와 시지푸스 신화'였다.북촌방향'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반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재생은 원본과는 조금씩 다르다. 관객은 어느 순간 < 틀린 그림 찾기 > 의 재미에 푹 빠진다. 홍상수는 지금 영화적 서사1의 변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 북촌방향 > 은 세헤라자데'처럼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감독 자신의 시지푸스적 운명'에 대한 고백이다. 단언하건대, 섣부른 감'이 있지만2, 북촌방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홍상수 영화 중에서 최고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그가 에릭 로메르'를 벗어나 우디알렌 쪽'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탁월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초기작'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데뷔작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과 < 강원도의 힘 > 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를 호명하고,

 

 

< 오, 수정 > 에서의 인사동 고갈비집'를 배경으로 찍은 만취' 장면은 일종의 초기작에 대한 자기반성과 화해3'처럼 보인다. ( 실제로 홍상수의 분신인 영화 속 성준'과 김의성이 분한 중원'은 이 영화를 통해 화해한다. 성준'이 중원을 이야기하면서 < 착한 사람 > 이라고 말할 때, 이 울림은 홍상수가 김의성'에게 하는 고백으로 중첩된다. 홍상수는 영화를 빌려서 고백을 한 셈이다. ) 그리고는 그의 영화를 거론할 때마다 따라붙는 일상성'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혹은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긋지긋해진 것일까 ?

 

 

다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세헤라자데가 임금에게 들려주는, 280편의 이야기'는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일까 ? 다작의 작가로 알려진 조르주 심농'이 300여편의 소설'을 쓴 것을 보면 인간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심농은 300편의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1편의 소설'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쓴 것'에 불과하다.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전부이니깐 말이다. 그러니깐 이야기의 원형' 은 하나인데 각기 다른 살인과 죽음이 300' 개인 것이다.

 

 

세헤라자데' 또한 한 가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말한다는 측면에서 <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 고주망태'에 가깝다. 하지만 ( 이 부분이 중요하다 ! ) 임금은 이 여자의 주사'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에게는 어제의 이야기와 오늘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린다.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 그것은 바로 < 반복과 변주' > 에 답이 있다. 어제의 악당은 칼잡이'이지만 오늘의 악당은 소매치기'다. 그리고 내일의 악당은 사기꾼'이 될 것이다. 세헤라자데'는 이런 식'으로 살짝 레퍼토리'를 바꾼다. ( http://myperu.blog.me/20115635317 )

 

영화 북촌방향'에서 홍상수는 영화감독'을 세헤라자데와 시지푸스 같은 운명을 동시에 가진 자'라고 말한다. 창작'이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형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이야기를 재배치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몇 가지 팩트, 그러니까 몇 가지 논픽션을 가지고 수많은 픽션'을 만들어낸다. 영화 북촌방향'에서의 이야기 뼈대'는 몇 개 없다. 고척동과 만취 만담 그리고 거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 허술한 몇 개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든든한 동앗줄'을 만든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하나의 원형이 어떻게 반복되고 변형되어서 재생되는가를 지켜보게 된다. 관객은 똑같은 레퍼토리'를 보며 낄낄거린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을 감지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웃음기'가 사라진 유준상의 불안한 얼굴'이다.

 

 

이것은 일종의 희비쌍곡선'이다. 그는 시지푸스를 통해서 창작의 고통을, 그리고 세헤라자데를 통해서 창작의 무한한 변주의 방식'을 본다. 영화 만들기'란 고통 속의 희열'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느긋하게 낡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이 여유만만'한 자포자기'는 그 어느 영화보다도 새롭고 경이롭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확실히 홍상수의 새로운 출발점이다.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에는 낡은 자' 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이 엿보인다. 그래서 그랬을까 ? 우디알렌이 뉴욕의 밤 풍경을 잡아내고, 히치콕이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아름답게 창조했듯이, 홍상수는 서울의 눈 내리는 풍경을 포착한다. 흑백으로 처리된, 느릿느릿 내리는 눈은 묘하게 슬프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빠른 것'은 슬프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느린 것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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