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와 현시창.
![Million Dollar Baby by Maria Kaner](http://25.media.tumblr.com/tumblr_m59i3cuGDi1qe2w1uo1_500.jpg)
한국일보'에 난 김소연의 글을 읽었다. 김소연은 공지영의 < 의자놀이 > 와 임지선의 < 현시창 > 을 비교 평가하면서 공지영'을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이 좀 묘하다. " 공지영은 < 의자놀이 > 를 통해 면죄부를 갖고 한결 당당해졌는지 모르겠지만 " 이라는 경멸의 가정법을 전제로 한 후 " 정의를 실천했다는 착각은 갖고 있지 않기를 바래본다. " 라고 끝을 맺는다. 그리고는 공지영의 선의'를 불의'라고 단정한다. 이 정도면 지나친 것은 아닐까 ? 돈 잘 버는 작가에 대한 질투일까 ? 한 사람의 선의를 무조건 불의'라고 말하는 말투'가 상당히 거슬린다.
이 글은 최근에 출간된 임지선의 매우 훌륭한 르포 < 현시창 > 에 대한 이야기로 지면을 할애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현시창을 빌미로 한철이 지난 < 의자놀이 > 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다. 주와 종이 바뀐 것이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는 꼴이다. 손님을 초대했으면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주인의 도리이다. 가을이면 전어의 고소한 맛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봄 도다리 얘기다. 옆에 있는 전어 서운하다.
그녀는 임지선을 초대해 놓고는 온통 공지영 험담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다. 논술적 관점에서 보아도 수준 이하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지나치게 냉정하다. 김소연은 공지영에게 자기 PR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글의 서두는 온통 자기 PR에 열중한다. 이 글의 1/3은 자신이 속한 2009년 6월의 시국 선언'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다. 그리고는 이 경험을 " 아름답고 정의로운 방식 " 이라고 말한다. 이 정도면 오버'가 아닐까 ? 자신의 정의'는 " 아름답고 정의로운 방식 " 이라고 정의하면서, 공지영의 정의는 " 정의를 실천했다고 착각 " 하는 것으로 폄하하는 방식이야말로 착각이 아닐까 싶다.
시인 문태준은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시는 모두 남의 것에서 빌려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빚을 졌다면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해 카피라이트'를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권리 주장하는 것 또한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공지영의 선의를 불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빚을 졌으니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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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를 천대하는 것은 한국 문학의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잘 쓴 르포는 백 권의 소설보다 훌륭하다. 독서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기록 문학은 대우를 받는다. 다음은 르포 작가 희정의 인터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