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   무 슨   개 소 리 야 ? : 








개소리에 대하여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앞에서 "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 " 라고 천진난만하게 노래했다가는 천만에 !  뺨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 멍청아 ! 지구는 평평하니까 자꾸 걸어가면 거대한 낭떨어지를 만날거야 ! " 이 주장은 거짓말일까, 개소리'일까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거짓말도 아니고 개소리도 아니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믿음에 대한 소신일 뿐이다.  반면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적어도 진실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진실 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A라는 사람이 " (그런 것이있긴 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아 ! " 라고 대답했다면 그것은 개소리'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유무와는 상관없이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 바로 개소리'다. 이 개소리들이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결론은 "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 " 따위가 만들어진다. 누가 나에게 거짓말, 개소리, 엉터리 신념 중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개소리 하는 인간을 뽑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소리는 사실/진실/진리'라는 위대한 가치를 무시하고 폄하하기 때문이다. 개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부류는 대부분 가짜다. 그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포장해서 그럴 듯한 상품으로 내놓는다. " 인스타 감성 지랄체 " 로 포장된 문장으로 작성된 위로 에세이 책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 것은 그것이 개소리라는 데 있다. 개소리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따위다. 죽고 싶은데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고백은 쉽게 말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다시 말해서 살고 싶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은 것이다. 또한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라는 고백은 게으름에 대한 자기 변명에 불과하며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것은 절대로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역설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율배반의 연속이다. 일하기 싫지만 일은 해야 하고, 밥은 하기 싫지만 밥은 해야 하고, 섹스를 좋아하지만 임신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들은 " 따스한 위로 " 가 아니라 " 하나 마나 한 소리 " 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밥은 하기 싫지만 밥은 해야 하고 일은 하기 싫지만 일은 해야 하는 당신을 현혹할 뿐이다.  개소리에 속지 말자.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을 진심으로 위로하지는 않는다. 






+

깊은 산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비에스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보다는 " 집 " 이 주인공이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집 가운데 인상적인 집이 있었다.  그 집은 깊은 산속에 지어진 집인데 모던한 현대식 디자인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건축 잡지에 실릴 만한 집은 외벽 전면이 유리'였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둘 다 똑같은 말을 했다.  "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연 친화적인 집을 짓고 싶어요. 그래서 건축 재료는 모두 친환경 건축 재료를 사용했습니다아. " 나는 그들의 개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산 중턱을 강제로 깎아서 만든 집이 자연친화적일 수 없을 뿐더라 강화 유리로 마감한 집은 새들이 죽는 이유 원인을 제공한다. 새들은 외벽을 유리로 마감한 건물의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데 미국에서만 해마다 10억 마리 이상이 유리창 충돌 사고로 죽는다(한국에서는 해마다 800만 마리가 전원 주택의 그 드넓은 유리창 때문에 죽는다). 유리창에 반사된 나무와 숲이 진짜인 줄 알고 유리벽을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농약으로 인한 죽음보다 유리창 충돌 사고 때문에 죽는 새의 수가 절대적이다.  이것이 과연 자연친화적인 집'인가, 아니면 자연파괴적인 집인가 ?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유리창 충돌 사고에 의한 새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레알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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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9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타령은 정말...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팔리는
포스트트루스 시절에나 가능한
역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도 세월이 수상하다 보니
멍멍이 사운드도 돈으로 환산
이 되는 그런 세상이 도래했네요.

근데 떡볶이가 먹고 싶네요 쩌비.

곰곰생각하는발 2020-06-09 15:19   좋아요 0 | URL
편집부에서 지은 제목일 텐데... ㅎㅎㅎ 참 거시기 합니다.
 














                                         

 

굴림체가 출판계의 주류로 등극할 때  :












                                              오늘처럼 네가 싫었던 날은 없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시를 쓴 시인이 내게 시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속에 火가 많으니 문학적 수양을 단련하면 火가 花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면 이런저런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명망 높은 시인이 한 말이니 빈말은 아닐 듯하여 시를 쓰기로 마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요구한 조건은 간단했다.  줄이 없는 노트에 자신의 글씨체로 시를 쓸 것.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페이지를 찢어서 버리지 말고 다음 장에 다시 고쳐서 쓸 것. 그의 말대로 시를 쓰다 보니 노트 한 권에 쓴 시는 고작 한 편이었다. 단어 한 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조사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행과 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고쳐서 쓰다 보니 시 습작 노트가 아니라 시 한 편을 위한 필사 노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트 마지막 장에 작성한 습작 시가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일까 ? 


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지금 당신은 자신이 쓴 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살이 붙기도 하고 살이 빠져서 날씬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맨 마지막에 작성된 시가 가장 좋은 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의 변화를 통해서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시인이 내게 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는 최종적으로 명조체의 세계'라는 말이었다.  당신이 손으로 작성한 글씨체가 종이에 인쇄되어 명조체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시는 새롭게 탄생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를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명조체로 작성된 활자가 매트릭스의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왜 명조체일까 ?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글꼴은 굴림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윈도우의 한글 기본 글꼴일 뿐만 아니라 관공서 공인 문서의 폰트도 모두 굴림체'다(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은 굴림체의 촌스러운 미학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굴림체는 네모 한 칸에 자음과 모음을 최대한 확보하여 허투루 낭비되는 여백을 없앤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가독성이 뛰어나다.   반면에 명조체는 네모 한 칸에 남아도는 여백이 커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꼴이다. 


명조체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굴림체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굴림체가 패스트 - 폰트라면 명조체는 슬로우 - 폰트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는 명조체의 세계'라고 지적한 그 시인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글배우가 문학동네 시인선의 표지를 표절한 이유는 문학동네 시인선이 명조체의 세계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갖췄기 때문이다. 가로 길이는 짧고 상대적으로 세로 길이가 긴 문학동네 시인선 판형은 글씨체가 얇고 허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듯한 글꼴(문학동네 시인선에 사용된 글꼴은 SM세명조체'다)을 닮았다. 


그러니까 판형과 글꼴이 서로 닮은 것이다. SM세명조체는 덜 또렷해 보이고 옛날 글씨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곧 가독성이 떨어지기에 시집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 문맥을 곱씹으며 느리게 시를 읽어라 _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 디자인 제작 의도는 명백하다. 속도와 편리 대신 느림과 불편이 목적인 것이다. 주류에 편입되고 싶은 비주류 SNS 시인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 만화 인스타 감성체가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주제 파악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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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 게   식 혜 를   권 한 다  : 











일일일글 배우는 거 어때 ?











보그병신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엣지 있는 머스트 해브....... " 따위로 연결된 문장이 대표적인 보그병신체'다. 듣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인데 수동형 문장 중심으로 비문이 작렬하고 문맥이 엉망이어서 듣는 이는 난독증에 걸리기 쉽다. 보그체는 허세를 부리고 싶은데 글솜씨가 형편없는 이들이 고육지책으로 만든 문장'이다. 이 지랄 같은 허세를 처음 경험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 이보다 더 괴랄한 문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내 예언은 빗나갔다. 88년생인 그가 쓴 문장은 마치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산신령의 말투를 닮았다. 글솜씨는 형편없는데 허세는 부리고 싶다 보니 계룡산 산신령 말투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 개소리에 열불을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에 대하여 아예 관심이 없다. 해리 G. 프랭크퍼티는 << 개소리에 대하여 >> 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되듯이 독자 또한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저자를 만난다. 여러분에게 제안 하나 하련다. " 어서와 글배우는 처음이지 ? 일일일깡 대신 일일일글 배우는 거 어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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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동안 8000만 원 번 사연










음식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약(msg)을 뿌리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 인공 조미료 대신 천연 감미료로 맛을 낸 요리가 최고이기는 하나 대중의 입맛은 이미 싸구려 인공 감미료 맛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살을 깎는 아픔으로 글을 조탁한다 한들 인기를 끄는 책은 주로 이기주나 글배우 같은 글이다. 이 사람들, 약을 치거든 !  약 치면 답 없다. 글배우의 <<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 에 소개된 떡 에피소드는 압권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청년(글배우)이 서울로 상경한다. 가진 돈은 35만 원이 전재산.  그는 떡을 팔기로 결심한다. 사람들 앞에서 똑(떡) 사세요 ~ 맛있는 똑, 사세요 ~ 라고 외치려니 부끄럽다. 입도 뻥긋 못한 나날들. 고시원에서 내내 울었다고. 울다 울다 지칠 무렵, 청년은 결심을 하고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앞에 돗자리를 펼친다. 그는 똑, 사세요 _ 라는 말 대신 대기업 사원들에게 천 배 올리는 수행승처럼 큰절을 올리며 " 오늘 하루도 모두 파이팅 하십시오 ! " 라고 외친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는 "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 라고 외쳤다. 그는 이 짓거리를 무려 8개월 동안 실천했다고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기업 사원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 서울역에서 가장 큰 빌딩의 대기업 회장이 그를 호출한다. 대기업 회장은 그에게 1시간짜리 영상을 틀어주고 그 대신 떡 바구니를 들고 사라진다. 회장님이 대신 떡을 팔아주었다고 한다. 무려, 8000만 원어치 떡을 말이다. 나는 이 에피소트가 가짜라는 데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글배우는 약을 쳐도 너무 쳤다. 이런 식의 에피소드는 코믹 판타지 드라마 작가도 부끄러워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판타지다. 작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서울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이름과 회장님 이름만 알려주시라. 취재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대기업 빌딩 앞에서 8개월 동안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_ 라는 소리를 외쳤다면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이토록 훈훈한 미담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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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










형편없는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  형편이 딱한 사람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잘것없는 영화는 그저 연출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든지 형편없는 영화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볼 용의가 있다. 명작은 명작대로, 망작은 망작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 엄복동 >> 은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 영화는 0.3초마다 욕이 튀어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급 용어를 빌려오자면 불타는 욕동의 찬란한 경험'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영화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형편의 문제도 아니고("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 ")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질이 낮은 영화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질이 나쁜 영화는 용서할 수 없다. 전자는 상품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성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을 선정하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면, 나는 0.3초의 망설임도 없이 << 악마를 보았다 >> 와 << 국제 시장 >> 을 뽑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싫어하는 영화이다 보니 옛날에 기록으로 남겨둔 글이 있다. 그 글이 이 글을 갈무리하기로 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질이 낮은 상품에 대하여 크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질이 나쁜 성품(을 간직한 사람)에 대하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가 있다. 










1.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과 한송이




                                                                                                          네이버 검색창에 " 악마를 보았다 " 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간호사 > 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사면발니처럼 강렬하게 달라붙는 장면은 이병헌도 아니고 최민식도 아닌,

백의의 천사(간호사)가 장경철(최민식)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살려주세요 _ 라는 대사 외에는 이렇다 할 대사도 없던 그녀가 씬스틸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당신에게 의뭉스러운 질문 한 개를 던져보자면  :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요, 명장면도 아닌데 관객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서는 애써 소환하려는 것일까 ?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지옥도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품 의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이 영화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 지옥도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 판타지 " 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경철에게 강간당하는 간호사의 나이를 스무 두 살'로 설정한 것을 보면 감독이 숨겨둔 꿍꿍이를 읽을 수 있다. 화장실 벽낙서 서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성대상화가 스무살 무렵의 여자요, 직업군이 여교사와 간호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이 장면에서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 (악마)본성 " 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 (남성) 본색 " 을 자극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잣거리 입말로 무식하게 말해서 감독이 노린 것은 " 남성 관객을 꼴리게 만드는 것 " 이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도 울고 갈 만한 에로틱한 장면 연출인 셈이다. 장경철이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몇 살이야 ?
- 스물 둘이요.
- 어우 !  좋을 때네, 남자친구는 ?
- 네에 ? 없어요.
- 귀엽게 생긴 게(?) 많겠다.
- 네에 ?
- 사실은 어제 좀 재미를 볼 일이 있었는데 어떤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망쳐 버렸어.




스물 둘이라......  더군다나 간호사 이름이,             한송이다.  문자 그대로 꽃이니 꽃 같은 여자'다. 뭐야, 이런 좆 같은 작명. 수현의 약혼녀 세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간호사'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독이 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여자를 관상용 꽃에 비유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잰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본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이다.

감독은 포르노 영화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장면(포르노 영화에서 간호사 복장은 망사 스타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을 연출해서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남근으로 쏠리도록 유도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았던 열혈남아는 어느새 열혈남근으로 변한다. 아아. 내가 이 영화를 두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장경철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장경철은 " 어떤 개또라이 새끼(이병헌) " 때문에 망쳐 버렸다고 궁시렁거리지만,  사실은 그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몇 번이나 희생자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요원 수현은 " 쾌락의 포주 " 인 셈이다.

감독은 수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폭력과 강간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악마와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가 된 존재가 아니라 악마에게 희생당할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악질 포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타락'이다 ■

 


 


2. 영화 국제시장



​​

​윤제균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영화를 " 더럽게 못 만드는 감독 " 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 더럽게 만드는 감독 " 이 있다.  전자는 < 불후의 걸작(傑作) > 를 만들고 싶었으나 결심과는 달리 < 불우한 걸작(乞作) > 을 연출한 감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유형에 속하고, 후자는 이도 저도 둘 다 용서가 안 되는 유형에 속한다.

한마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매우 더럽게 만드는 감독'이다. 이 방면에서는 강우석과 함께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질이 나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없다. 언어유희를 섞어서 말하자면 질이 낮은 영화는 上品의 문제이고, 질이 나쁜 영화는 性品의 문제이다. 전자가 영화라는 상품으로써의 물성'에 대한 지적이라면 후자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티튜드'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이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쉬운 말을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  뚜껑 열고 bang-bang 쏘면서 말하자면 윤제균 사단 영화는 대부분 " 좆같은 영화 " 다. 윤제균 영화는 코미디와 신파를 섞어서 < 한국형 ㅡ 패밀리 플롯 > 을 구성하는데, 그 맛이 똥맛이라. 윤제균의 초기 코미디 영화1)에서 코믹한 설정은 주로 폭력으로 점철된 슬랩스틱에서 얻는데 그 대상은 남성'이다.  << 두사부일체 >> 에서 대가리(정운택 분)는 계두식(정준호 분)에게 쉴 새 없이 맞는데 이 폭력은 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아픈 척하는 웃기는 폭력 " 이다.  여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슬래스틱 코미디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아크로바트만 남을 뿐이다. 윤제균 감독이 신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도 폭력이다. 코미디 요소로서의 폭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성'이라는 데 있다.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리얼리티 없는 몸 개그'라면 2)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리얼리티한 폭력 > 이다.  영화 속 이은주(오승은 분)는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에서 하지원이 여자 복서 명란을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서 명란은 남성들에게 마른 북어처럼 구타를 당한다.

이 아저씨가 만든 초기 영화 - 들에서 여자들은 오로지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명랑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에 매 맞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는가를 살펴보면 보다 악질적이다. 흥남 철수 때 잃어버린 << 막순 >> 은 덕수네 가족이 불행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사용된다. 막순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그 후로는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는 덕수가 투비 낫투비 _ 하며 방황할 때

덕수 아버지는 스크린 앞에 햄릿의 유령처럼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이북 사투리로 이 종간나 새끼 ! 투비는 하되, 낫 투비는 허지 말아야지비. 아니그럼 ?  너는 이 가문의 장남이고 가장이야 !  _  라고 지껄인다.  김슬기 배우가 연기한 끝순이라는 캐릭터도 덕수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끝순은 철딱서니가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결혼 혼수를 위해 오빠를 사지로 보내는 악녀에 가깝다. 덕수는 끝순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으로 향한다. 덕수모'도 있으나 마나 한 여성 캐릭터'다. 덕수가 투비_ 할 것인가 낫투비 _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 유령이다(어쩌면 진짜 유령은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산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윤제균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월남에서 다리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결국 다리에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는다. 국뽕 휘날리는 장엄한 서사의 유치찬란을 논하기에 앞서 이 장면은 매우 악질적이다. 덕수가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는 베트남 남자아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으로 이끌고 남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이 선명한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장면이야말로 윤제균의 잰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그가 배역을 선정하고 배분할 때 잰더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덕수는 항상 징징거린다. 그는 고민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 유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 달구(오달수 분)와 상의할지언정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른 통보만 할 뿐이다.  덕수가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어쩌라고, 어 ?! " 

윤제균, 이 인간 영화 참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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