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










형편없는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  형편이 딱한 사람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잘것없는 영화는 그저 연출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든지 형편없는 영화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볼 용의가 있다. 명작은 명작대로, 망작은 망작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 엄복동 >> 은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 영화는 0.3초마다 욕이 튀어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급 용어를 빌려오자면 불타는 욕동의 찬란한 경험'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영화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형편의 문제도 아니고("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 ")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질이 낮은 영화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질이 나쁜 영화는 용서할 수 없다. 전자는 상품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성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을 선정하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면, 나는 0.3초의 망설임도 없이 << 악마를 보았다 >> 와 << 국제 시장 >> 을 뽑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싫어하는 영화이다 보니 옛날에 기록으로 남겨둔 글이 있다. 그 글이 이 글을 갈무리하기로 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질이 낮은 상품에 대하여 크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질이 나쁜 성품(을 간직한 사람)에 대하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가 있다. 










1.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과 한송이




                                                                                                          네이버 검색창에 " 악마를 보았다 " 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간호사 > 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사면발니처럼 강렬하게 달라붙는 장면은 이병헌도 아니고 최민식도 아닌,

백의의 천사(간호사)가 장경철(최민식)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살려주세요 _ 라는 대사 외에는 이렇다 할 대사도 없던 그녀가 씬스틸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당신에게 의뭉스러운 질문 한 개를 던져보자면  :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요, 명장면도 아닌데 관객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서는 애써 소환하려는 것일까 ?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지옥도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품 의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이 영화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 지옥도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 판타지 " 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경철에게 강간당하는 간호사의 나이를 스무 두 살'로 설정한 것을 보면 감독이 숨겨둔 꿍꿍이를 읽을 수 있다. 화장실 벽낙서 서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성대상화가 스무살 무렵의 여자요, 직업군이 여교사와 간호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이 장면에서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 (악마)본성 " 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 (남성) 본색 " 을 자극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잣거리 입말로 무식하게 말해서 감독이 노린 것은 " 남성 관객을 꼴리게 만드는 것 " 이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도 울고 갈 만한 에로틱한 장면 연출인 셈이다. 장경철이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몇 살이야 ?
- 스물 둘이요.
- 어우 !  좋을 때네, 남자친구는 ?
- 네에 ? 없어요.
- 귀엽게 생긴 게(?) 많겠다.
- 네에 ?
- 사실은 어제 좀 재미를 볼 일이 있었는데 어떤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망쳐 버렸어.




스물 둘이라......  더군다나 간호사 이름이,             한송이다.  문자 그대로 꽃이니 꽃 같은 여자'다. 뭐야, 이런 좆 같은 작명. 수현의 약혼녀 세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간호사'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독이 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여자를 관상용 꽃에 비유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잰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본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이다.

감독은 포르노 영화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장면(포르노 영화에서 간호사 복장은 망사 스타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을 연출해서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남근으로 쏠리도록 유도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았던 열혈남아는 어느새 열혈남근으로 변한다. 아아. 내가 이 영화를 두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장경철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장경철은 " 어떤 개또라이 새끼(이병헌) " 때문에 망쳐 버렸다고 궁시렁거리지만,  사실은 그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몇 번이나 희생자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요원 수현은 " 쾌락의 포주 " 인 셈이다.

감독은 수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폭력과 강간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악마와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가 된 존재가 아니라 악마에게 희생당할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악질 포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타락'이다 ■

 


 


2. 영화 국제시장



​​

​윤제균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영화를 " 더럽게 못 만드는 감독 " 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 더럽게 만드는 감독 " 이 있다.  전자는 < 불후의 걸작(傑作) > 를 만들고 싶었으나 결심과는 달리 < 불우한 걸작(乞作) > 을 연출한 감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유형에 속하고, 후자는 이도 저도 둘 다 용서가 안 되는 유형에 속한다.

한마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매우 더럽게 만드는 감독'이다. 이 방면에서는 강우석과 함께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질이 나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없다. 언어유희를 섞어서 말하자면 질이 낮은 영화는 上品의 문제이고, 질이 나쁜 영화는 性品의 문제이다. 전자가 영화라는 상품으로써의 물성'에 대한 지적이라면 후자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티튜드'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이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쉬운 말을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  뚜껑 열고 bang-bang 쏘면서 말하자면 윤제균 사단 영화는 대부분 " 좆같은 영화 " 다. 윤제균 영화는 코미디와 신파를 섞어서 < 한국형 ㅡ 패밀리 플롯 > 을 구성하는데, 그 맛이 똥맛이라. 윤제균의 초기 코미디 영화1)에서 코믹한 설정은 주로 폭력으로 점철된 슬랩스틱에서 얻는데 그 대상은 남성'이다.  << 두사부일체 >> 에서 대가리(정운택 분)는 계두식(정준호 분)에게 쉴 새 없이 맞는데 이 폭력은 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아픈 척하는 웃기는 폭력 " 이다.  여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슬래스틱 코미디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아크로바트만 남을 뿐이다. 윤제균 감독이 신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도 폭력이다. 코미디 요소로서의 폭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성'이라는 데 있다.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리얼리티 없는 몸 개그'라면 2)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리얼리티한 폭력 > 이다.  영화 속 이은주(오승은 분)는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에서 하지원이 여자 복서 명란을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서 명란은 남성들에게 마른 북어처럼 구타를 당한다.

이 아저씨가 만든 초기 영화 - 들에서 여자들은 오로지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명랑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에 매 맞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는가를 살펴보면 보다 악질적이다. 흥남 철수 때 잃어버린 << 막순 >> 은 덕수네 가족이 불행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사용된다. 막순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그 후로는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는 덕수가 투비 낫투비 _ 하며 방황할 때

덕수 아버지는 스크린 앞에 햄릿의 유령처럼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이북 사투리로 이 종간나 새끼 ! 투비는 하되, 낫 투비는 허지 말아야지비. 아니그럼 ?  너는 이 가문의 장남이고 가장이야 !  _  라고 지껄인다.  김슬기 배우가 연기한 끝순이라는 캐릭터도 덕수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끝순은 철딱서니가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결혼 혼수를 위해 오빠를 사지로 보내는 악녀에 가깝다. 덕수는 끝순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으로 향한다. 덕수모'도 있으나 마나 한 여성 캐릭터'다. 덕수가 투비_ 할 것인가 낫투비 _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 유령이다(어쩌면 진짜 유령은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산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윤제균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월남에서 다리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결국 다리에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는다. 국뽕 휘날리는 장엄한 서사의 유치찬란을 논하기에 앞서 이 장면은 매우 악질적이다. 덕수가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는 베트남 남자아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으로 이끌고 남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이 선명한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장면이야말로 윤제균의 잰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그가 배역을 선정하고 배분할 때 잰더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덕수는 항상 징징거린다. 그는 고민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 유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 달구(오달수 분)와 상의할지언정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른 통보만 할 뿐이다.  덕수가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어쩌라고, 어 ?! " 

윤제균, 이 인간 영화 참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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